김승봉 시조집 해설
굳건한 생을 염원하는 무한긍정의 시학
이달균(시조시인)
바다, 그 삶의 현장에서
김승봉 시인의 시조에선 갯내음이 난다. 섬을 건너온 바닷바람이 잠시 가쁜 숨을 쉬듯 목쉰 음성으로 뱉어내는 시편들이 정겹다. 김 시인은 통영에서 바다 관련 일을 한다. 낚시꾼들에게 배를 렌탈 해주거나 갯바위 안내를 하고, 고기를 키워 파는 일 등으로 삶을 영위 한다. 어쩌다 해변을 거닐거나 바다를 조망하며 쓴 시가 아니라 현장을 뛰어다니고 체험하며 쓴 시다. 남이 갖지 못한 소중한 체험들이다.
그런데도 이런 풍부한 소재들을 작품에 옮겨오는 데는 조심스러워 한다. 뚜렷한 삶의 철학이 뒷받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다. 자신의 삶을 시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숙성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점이 다소 부족하다는 겸손함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이 시집 『작약이 피다』를 펴내기까지 많은 고심이 있었다고 한다. 저서를 갖는다는 설렘보다 작품의 질을 냉정히 평가받는 일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좋아서 쓴, 지극히 주관적 입장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독자와 평자들에 의해 재단되는 객관적 상관물로 치환 된다. 그러나 애써 지은 작품들을 창고에 가둬두는 것 또한 예의는 아니라는 반성 위에서 시집 발간을 계획한 것이다.
시인의 덕목 중 하나가 자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그것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2004년 《현대시조》 겨울호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한 이후, 통영을 떠나지 않으면서 지역문학발전을 위해 매진해 왔다. 통영문인협회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현재는 통영문인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물목문학회’ 회장으로도 솔선수범하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2. 묵언으로 새긴 지천명의 나이테
전체 수록작품 70편은 한 시인을 구성하는 습작시절을 지나온 일단의 흔적을 보여준다. 시류에 물들지 않은 날것의 모습이며 정제되지 않은, 나 홀로 가꿔온 서정이기에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앞에 말한 “김승봉 다움”이란 무엇일까? 시조의 내일을 위해 문제의식을 던지거나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대상을 낯설게 하는 신선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혼자만의 내밀함으로 서정성을 키워온 시인이란 생각이 든다. 시대의 아픔에 포커스를 들이대거나 작품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보다 시조의 창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키고 키워가고자 하는 올곧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갯벌에 반신(半身)을 묻고 지심에 꽂힌 녹슨 닻
외진 곳 바다 위에 교신 없이 닥친 풍랑
목 놓은 생명 앞에서 장승처럼 버티어라.
몰아치는 고뇌를 한 몸으로 감싸 안고
포개고 또 포개어 돌섬처럼 단단하다.
수천 길 아랑곳 않고 잠겨 사는 네 행로.
가뭇없는 물결에 까치발로 버티며
빈혈에 야위고 야윈 몸뚱어리 붙안으며
차라리 너울보다 먼저 갯벌을 딛고 선다.
-「닻」 전문
내가 나를 만난 것은 오랜 뒤의 일이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던 젊은 날
스스로 덫에 걸려서 넘어지기 일쑤였다.
자명종 소리에 거듭거듭 나를 깨워
몸과 정신이 하나임을 알았을 때
비로소 지천명이 된 세월을 만났다.
묵언의 나이테를 그리고 조율하며
거울 바라보다 내게 던진 한 마디
“그대는 무엇으로 사는가?” 물음표를 던진다.
-「나에게 쓰는 편지」 전문
바다와 시인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과관계를 갖는다. 스스로를 드러내는 대상 또한 바다와 무관치 않다. 대충 일별해 봐도 시선이 바다로 쏠린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바다는 삶의 현장인 동시에 시련과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돌아본다. 「닻」의 첫 수 초장에 놓인 ‘지심에 꽂힌 녹슨 닻’은 자신의 모습이다. 갑작스레 닥친 풍랑에 온갖 것들은 부유한다. 비록 녹슨 닻일지언정 ‘갯벌에 반신(半身)을 묻’은 채 안간힘으로 버텨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그런 의지는 세월 속에서 ‘돌섬처럼 단단’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물결이 더욱 거세진다 해도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려는 힘의 원천이 된다. 누구나 시련과 마주하면 극복 의지를 갖게 된다. 믿을만한 구석을 태생적으로 타고나지 못한 시인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는 그런 ‘나를 만난 것은 오랜 뒤의 일이다.’라고 고백한다. ‘나’를 비로소 바라보는 나이는 지천명쯤이 되어야 한다. 육체는 성숙하였으나 정신의 성숙도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덫에 걸려서 넘어지기 일쑤’였다. 녹슨 닻이 버텨낸 인고의 세월은 육체의 성숙과 함께 정신의 성숙으로 자리 잡는다. 가슴에 새긴 ‘묵언의 나이테’는 단단한 내면세계를 구축한다. 하지만 아직은 완성을 향해 가는 단계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거울 앞에서 더욱 진솔해 지고 싶다. ‘그대는 무엇으로 사는가?’하며 물음표를 던지면서 자신을 뒤돌아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인용한 두 편의 시는 살아온 날을 반추하고 살아갈 날을 다짐하는 시인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간단치 않지만 이 시인의 경우도 만만찮은 내력을 상상케 해 주었다. 구구절절 말할 수 없으나 ‘자명종 소리에’ 화들짝 깨어나는 숙명이라면 일정부분 알만하다. 하지만 지천명을 지나며 ‘너울보다 먼저 갯벌을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시련 앞에 절망하지 않는 긍정의 태도는 시집 전편에 묻어난다. 이 긍정의 힘이 오늘날 한 시인의 삶을 떠받힌 토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3. 매혹의 도시 통영
시리도록 푸른 물빛 다도해로 태어나다
천둥과 비바람이 뭇 생명 잉태하고
침묵한 산의 향기가 피어나는 바다의 땅
국운이 위기일 때 승전보를 알리던 수향
한 마리 학의 비상 날개 속에 가둬버린
임진란 한산 대첩은 한민족 지존의 땅
비탈진 작은 밭을 일구는 손길에서
백의를 사랑하고 자연과 동행하는
토지란 웅장한 산맥 그려내신 문학의 땅
바람소리 파도소리 오선지에 새긴 음표
큰 바다 동서양을 이어주던 음악의 땅
산이여, 그대 그림자를 뒤따르고 싶습니다.
-「미륵산에서」전문
고향 집 앞마당에 섬 하나 떠있다.
바람만이 유영하는 남해바다 모퉁이에
밤이면 희미한 불빛 내 영혼을 키웠다.
넝쿨진 비바람이 흔적 없이 지웠다가
파도로 감금되는 겨울날의 청령포
때로는 더욱 선명히 바라보던 푸른 물빛
언젠가 꼭 한 번은 가고 싶은 남해바다
쉬이 갈 수 없었던 젊은 날의 밀물 썰물
지금도 간직하리라 가슴 속 비밀의 섬
-「두미도」전문
인용한 두 편은 시인이 발 딛고 사는 통영에 관한 시다. 지역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타관의 시인이 대충 스치며 쓰는 것과 지역을 지키며 구체적인 희로애락을 시에 담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미륵산에서 1」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시는 각 수 마다 소재를 달리한다. 첫 수는 아름다운 바다와 육지를 두루 가진 통영을 예찬한다. ‘바다의 땅’이란 말은 몇 해 전부터 통영에서 통칭되고 있는데, ‘바다도 땅’이란 말의 문학적 수사다. 즉 육지뿐만 아니라 넓은 바다 역시 통영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곳에는 수많은 전설이 있고, 개척의 역사가 있다. 둘째 수는 미륵산에서 바라본 한산대첩을 이룬 역사의 바다를 일컫는다. 한산대첩이 없었으면 해상권을 잃고 영영 일본화 되었을 수도 있었기에 ‘지존의 땅’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셋째 수와 넷째 수는 각각 박경리, 윤이상 등 통영의 인물을 노래한다.
「두미도」는 가슴에 간직한 이상의 섬으로 읽힌다. 어릴 적 ‘고향 집 앞마당’에선 등대처럼 작은 섬 하나가 있었다. 그 미지의 섬은 소년에서 청년이 되기까지 꺼지지 않는 대상으로 가슴에 남아 있었다. 낚싯배 사업을 하는 지금이야 수차례 두미도에 가보았겠지만 어릴 적 품은 그 섬은 미지의 섬으로 남겨 두고 싶다는 심정이 잘 드러난다. 향수만큼 시심을 자극하는 것이 있을까. ‘젊은 날의 밀물 썰물’은 잊혀졌다 되살아나는 숱한 사연들을 집약한 표현이다.
이 두 편 말고도 ‘딸에게’, ‘통영누비’, ‘불혹’, ‘매물도에서’, ‘붉은 바다’, ‘가는개(細浦) 마을 소묘’, ‘용화사 가는 길-전혁림 화백께’ 등이 직접적으로 통영을 소재로 쓰였다. 이곳을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꿈을 심어주기도 하고, 다도해와 리아스식 해안 절경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시편들이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덧붙인다면 멋진 풍광과 승리의 역사를 넘어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입은 도시의 상처와 아픔, 시의 본연인 갈등과 성장통 등에 대해서도 눈길을 고루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묻어나긴 하지만.
4. 시의 행간에 숨은 그윽한 향기
밤새도록 뻐꾹새 울어 쌓던 늦은 봄날
멀미의 그루터기 마른 흙에 금을 긋고
빠알간 속살을 품은 대궁 하나 내밀다
한낮 햇살 따사로이 청보리 익어가고
튼실한 뿌리의 생은 푸른 꿈으로 물들다
영그는 봉오리마다 찾아드는 산들바람
어제 모란 지고, 오늘 작약 핀다
주고받은 언약도 없이 계절은 분주하다
뜨거운 오월의 햇살, 고단한 신열의 뜰
-「작약이 핀다」전문
벤자민 한 그루와 동행을 약속한다
이른 아침 흩어졌다 지친 몸으로 찾아들면
초록이 드리운 그늘 포근한 침상이 된다
텅 빈 거실에서 반려의 숲을 위해
조금씩 잎을 키워 공간을 채워가며
스스로 커튼을 열고 공기를 비질한다
초인종 울리면 짐짓 제자리로 가
잎새는 잎새끼리 가지는 가지끼리
청정한 도량이 되어 영혼을 헹궈낸다
-「벤자민과 살다」전문
시집의 제호로 쓰인 「작약이 핀다」는 어떤 상징성을 갖는가? 모란이 지면 곧바로 작은 함지박을 닮은 작약이 핀다. 작약의 꽃말을 “수줍음, 부끄러움”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모란을 남성의 꽃이라 하고, 작약을 여성의 꽃이라고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빠알간 속살을 품은 대궁’은 꽃의 생태뿐만 아니라 잉태하는 자궁의 빛깔과 닮았다. 뿌리가 있는 생은 무한긍정의 시심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작약은 수줍게 세상의 문을 여는 시인의 시들과 맥락이 유사하다. 허공이 피워낸 꽃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것들과 교감하고 갈등하며 피워낸 뿌리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차례로 피고 지는 봄의 왕성함은 ‘뜨거운 오월의 햇살, 고단한 신열의 뜰’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처럼 시들 역시 신열의 뜰을 통과하며 피워낸 결과물인 것이다.
「벤자민과 살다」 역시 ‘동행’을 약속하는 시인의 심지가 잘 묻어난다. 벤자민은 익숙한 식물이다. 잎의 질감도 좋고 무성히 잘 자라는 장점도 있다. 거실에 함께 사는 초록빛 식구다. 식구들이 일터로 떠난 거실에서 탁한 공기를 정화하는 몸짓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벤자민의 쉼 없는 정화작용을 ‘스스로 커튼을 열고 공기를 비질한다’로 의인화한 것은 상당한 내공을 보여준다. 연시조를 풀어가는 힘이 좋고, 구와 구의 보법도 안정되어 있다.
5. 절제와 응축의 미학
쓰고 남은 시간들을
자투리로 모아두고
하늘도 쉬어 가고
땅도 쉬어가는
깊은 산
바람을 따라
길 떠난
사람아.
-「윤달」전문
섬에서의 한 생애
쌀 몇 말 먹었더냐?
그래도 주려 죽은
이름은 없었다네
빼떼기
죽 한 그릇으로
보릿고개를 넘었다네
-「빼때기」전문
인용한 두 작품은 절제와 응축의 미학이라는 시조 본질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윤달」은 생략과 감각적인 시어 구사를 통해 상상력의 행간을 메우고 있다. 윤달은 달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太陰曆)의 소산으로 태양력과 날짜를 맞추기도 어렵고, 계절의 추이를 정확하게 알 수도 없기에 날짜와 계절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달이다. 그래서일까 혼사날도 좋고, 수의를 만들어도 좋으며, 불공을 드리면 치성의 힘으로 극락에 통하는 달이라고도 했다. 이런 어려운 개념과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쓰고 남은 시간들을/자투리로 모아’두었다고 표현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의 자투리가 어디 있을까만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치열 어긋난 세월을 맞추기 위해 만든 윤달을 훌륭히 그려낸다.
사연만으로 얘기하자면 「빼때기」만한 것이 있을까. 햇살 좋은날, 아낙들은 고구마를 썰어 쪄 말렸다. 보릿고개 지나며 시쿰한 빼때기에 쌀 한줌과 소다를 넣고 죽을 쑤어 한 끼를 나곤 했다. 빼때기는 섬사람들의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었다. 그 하고 많은 사연을 ‘섬에서의 한 생애/쌀 몇 말 먹었더냐?’라 표현한다. 지금은 웰빙식품으로 인기가 높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눈물의 이력서가 아닐 수 없다. 단수로 그려낸 빼때기를 산문으로 엮으면 수필 하나는 거뜬히 탄생할 것이다. 물론 절제와 응축만으로 시조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적절한 메타포를 사용하여 긴 사연들을 짧게 엮어내는 세련된 기교와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시선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 예를 든 두 작품은 가작이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고고성을 울리며 탄생한 시집에 박수를 보낸다. 급히 걸으면 쉽게 숨이 찬다. 시인은 고통의 축제를 즐기는 사람이다. 타인의 고통마저 함께 노래하며 축제로 승화시킬 때 진정한 소명을 완수한다. 그러므로 천천히 먼 길을 가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일취월장한 제2시집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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