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생명을 위한 연가 2 - 지워지면서 생명을 위한 연가 2 ―지워지면서 어머니, 한 방울 눈물의 평토제 꽃답고 아름다웠으니 가시어요 훌훌총총 빛낡은 수사법 몇 잎 은장도로 잘라내듯 애장터 돌무덤길 혼점(魂占)의 사내따라 분바르고 연지찍어 봄꿈처럼 가옵니다 철자법 틀린 언문 한 줄 지워져 가옵니다 이달균의 대표시 2018.06.22
이달균 -생명을 위한 연가 1 - 낙태 생명을 위한 연가 1 ―낙태 이달균 오두마디 한 소절 표절의 시구처럼 가위질에 잘려서 점점 한 점 점이 되어 왔던 길 되짚어 가는 절름발이 별 하나 이달균의 대표시 2018.06.22
이달균 - 오래된 약국 오래된 약국 이달균 그 오래된 약국엔 늙은 약사가 있다 먼지나는 헌책방과 풀빵집이 있던 때부터 조제실 의자도 함께 낡아가고 있었다 그들을 다 떠나보내고 성자처럼 홀로 남아서 쿨럭이며 감기를 데불고 온 사람들에게 하루분 첩약을 지어 이마를 만져준다 그리고는 가만히 담배를 .. 이달균의 대표시 2018.06.22
이달균 - 우울한 빗속의 드라이브 우울한 빗속의 드라이브 이달균 낯익다 가을날 어느집 처마 밑을 맨발로 서성이는 사십대의 빗줄기 불빛에 문득 비치는 누굴 닮은 빗줄기 우울한 날이면 FM도 우울하다 빗소리도 섞여서 잡음으로 떠도는 우울한 저녁을 향해 경적을 울린다 이달균의 대표시 2018.06.22
이달균 - 내원동 내원동 이달균 내원동에 없는 것은 사람들의 자취 뿐 허물어진 연초 건조창을 헤집는 늙은 쥐들과 마른 잎 담배처럼 서걱이는 바람들. 지겨워서 뿌리치고 온 생이 이곳에도 있다니. 가보면 아니고 또 가봐도 아닌 것이 소리라고 되뇌던 안숙선을 생각했다. 그녀가 평생을 부 르다 갈 목쉰.. 이달균의 대표시 2018.06.22
이달균 - 남쪽물고기자리의 별들 남쪽물고기자리의 별들 이달균 남쪽엔 물고기를 닮은 별들이 있다네 신화집 속에서도 별들의 무덤 속에서도 예전에 본 적이 없는 눈이 붉은 작은 물고기 자꾸만 자꾸만 강물이 어두워지고 넋 나간 고기들 하얗게 떠올라 오면 개오동 잎사귀처럼 등뼈가 휘는 남쪽 물고기 가난한 사람들.. 이달균의 대표시 2018.06.22
이달균 - 일기(日記) 일기(日記) 이달균 오늘은 하루끼*의 소설집 한 권과 벗들이 보내주신 시집들을 읽었다 왼종일 나는 없었고 그대들만 있은 하루 *무라카미 하루끼: 일본 소설가 이달균의 대표시 2018.06.22
이달균 - 늙은 플라타너스에 관한 기억 늙은 플라타너스에 관한 기억 이달균 늙은 플라타너스에 기대어 귀를 대본다 그때 무슨 약속인 양 칼금으로 이름을 새기고 역무원 깃발을 따라 타관으로 떠나왔다 달디단 수액을 빨며 잎새들 피어오를 때 물관부로 차 오르던 눈물의 투명한 삼투 나무는 저 홀로 훌쩍 키가 자라 있었다 .. 이달균의 대표시 2018.06.22
이달균 - 돌배의 노래 돌배의 노래 이달균 잘 있거라 나무야 함께 열린 돌배들아 네 잎새 그늘은 아름다웠지만 그대의 자양만이 나를 키운 게 아니라 지나치던 햇살과 바람들이 그리고 더 많 은 무엇들이 나를 만들었기에 나는 나무의 것도, 거두는 농부의 것도, 또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라네. 운명처럼 그저 .. 이달균의 대표시 2018.06.22
이달균 - 잠자리 2 잠자리 2 이달균 사람의 뒤꼭지에선 비애의 냄새가 난다 제국을 꿈꾸던 공룡들의 최후처럼 백악기 그 잿빛 소멸의 쓸쓸한 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공룡이 남긴 발자국을 헤며 놀지만 어른들은 선 채로 석유냄새를 맡곤 했다 한 차례 더운 바람이 전야처럼 몰려왔다 잠자리는 날개를 펴고 .. 이달균의 대표시 2018.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