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시조 : 이달균 시인 ♣
-2018년 12월 26일 수요일-
다시 가을에
또다시 늑대처럼 먼 길을 가야겠다
사람을 줄이고, 말수도 줄이고
이 가을 외로움이란 얼마나 큰 스승이냐
근조화
꽃들이 영안실에 부동자세로 서 있다
목발에 의지한 덧없고 창백한 도열
언제나 벽을 등진 채 배경이 되고 만다
관계를 맺지 못한 死者와의 시든 동행
한 번도 저를 위해 피고 지지 못했던
목 잘린 꽃들의 장례, 殉葬은 진행형이다
낙타
등짐이 없어도 낙타는 걷는다
고색한 성채의 늙은 병사처럼
지워진 길 위의 생애 여정은 고단하다
생을 다 걸어가면 죽음이 시작될까
오래 걸은 사람들의 낯익은 몸내음
떠나온 것들은 모두 모래가 되어 스러진다
모래는 저 홀로 길을 내지 않는다
동방의 먼 별들이 서역에 와서 지면
바람의 여윈 입자들은 사막의 길을 만든다
낙타는 걸어서 죽음에 닿는다
삐걱이는 관절들 삭아서 모래가 되는
머나먼 지평의 나날 낙타는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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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균 시인의 시조 세 편을 보내드립니다. 시조문단에서 보기 드문 개성을 가진 시인이지요. 신작이 발표될 때마다 화제에 오르곤 합니다. 재작년에 시조집『늙은 사자』(책만드는집, 2016. 8)를 펴낸 바 있습니다.
「다시 가을에」에는 시인의 결기가 잘 드러납니다. 예언자적 사명을 지닌 시인이 일반인과는 확연히 다른 면모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여느 사람과는 다른 눈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길을 걷지 않는다면 어찌 시인이라 이르겠습니까? 그래서 화자는 단호히 말합니다. 예전에도 여러 차례 그러했듯이 ‘또다시 늑대처럼 먼 길을 가야겠다’고 안으로 소리치며 선언합니다. 다른 짐승도 아닙니다. 매서운 눈을 가진 무서운 포식자 ‘늑대’입니다. ‘늑대’는 곧 시인이니, 그가 생산하는 시편은‘늑대’의 속사람을 집약하는 셈이지요. ‘사람을 줄이고, 말수도 줄’인다는 말은 결국 안으로 더욱 침잠하겠다는 뜻이지요. 은인자중하며 천착에 전심전력을 다하고자 하는 의지가 서늘하게 느껴집니다. 종장‘이 가을 외로움이란 얼마나 큰 스승이냐’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가을에」는 고독을 가까이 하면서 고독 속에 오래 머물 때 시인이 비로소 시인으로서 우뚝 서리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강렬한 단시조입니다.
「근조화」는 개성적인 목소리로 사물과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사로운 눈이 아니지요. 이 작품은 신비스러운 자기장을 스스로 형성하면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꽃들이 영안실에 부동자세로 서 있다’는 첫줄부터 비범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목발에 의지한 덧없고 창백한 도열’이란 구절과 맞닥뜨리는 순간 전율이 일어납니다. 그런 까닭에‘언제나 벽을 등진 채 배경이 되고 만다’는 첫수 종장에 고개를 곧 끄덕이게 되지요. ‘관계를 맺지 못한 死者와의 시든 동행’에서 ‘동행’을 꾸미는 ‘시든’이라는 시어 앞에 국화라는 근조화가 클로즈업되면서 동공을 크게 확대시킵니다. 동행은 동행이되 천천히 시들어가는 동행이라는 해석은 매우 독보적이지요. 근조화는 ‘한 번도 저를 위해 피고 지지 못했던/ 목 잘린 꽃’이었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사자에 대한 이야기보다 ‘꽃들의 장례’를 예의주시하며 또 한 번 주목할 만한 해석을 내립니다. ‘殉葬은 진행형’이라고.
「낙타」는 무거운 주제를 노래하고 있지만 수월하게 읽힙니다. 그만큼 비유가 적절하고 신선하기 때문이지요. 낙타를 빗대어 시인은 우리의 생을 말합니다. 고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이 시편은 잘 증명하고 있지요. 삶의 길은 누구에게나 고달픕니다. 행복은 잠깐이요, 고통과 질병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그림자가 얼비치곤 합니다. ‘고색한 성채의 늙은 병사’라는 구절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군요. 그 모습에서 각자의 초상을 엿볼 수 있겠지요. ‘생을 다 걸어가면 죽음이 시작될까’라는 독백에서 죽음을 종언으로 보지 않고 생의 이어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뭇 긍정적입니다. 오래 걸은 사람에 대한 신뢰의 표현도 좋고, 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탐색이라는 구도적 자세도 눈길을 끕니다. 또한‘동방, 별, 서역, 바람의 여윈 입자, 관절, 지평’과 같은 시어들이 후반부에 놓이면서 이 시편에 깊이를 더합니다. 이 작품을 천천히 좇아가다 보면 장면 속으로 서서히 빨려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즉 자아와 낙타의 동일시 상태에 이르게 되지요. 대체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형태적인 면에서 네 수를 연이은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그보다는 내적 틀 즉 유기적인 체계를 지닌, 이 시편만이 간직한 독특한 생명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봄이 옳을 테지요.
지난 사월에 비롯된 <세상의 모든 시조> ‘세모시’가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가을날의 늑대’와‘순장은 진행형인 근조화’와‘뚜벅뚜벅 사막 길을 걷는 낙타’가 삶에 지친 우리에게 새 희망을 제시하고 있어서 든든합니다. 이달균 시인은 오래 전 시조가 아직도‘저무는 가내공업 같은 내 영혼의 한 줄 시’일지라도 ‘그래도 나는 쓰네 손가락을 구부려/ 떠나는 노래들을 부르고 불러 모아’라고 노래한 바 있습니다. 진실로 그러하지요.
부족한 글을 애정 어린 눈으로 읽어주시고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큰절 올립니다. <세모시>는 계속 됩니다. 12월을 잘 보내시고, 새해 기쁘게 맞으소서.
2018년 12월 26일 <세모시>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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