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위엄과 아름다움에 대한 노래 - 이달균
그동안 이달균은 시조문학의 본령인 정형의 형식을 충실하게 유지, 확산시키면서 우리의 생의 본질적 형식을 응시하고 그 안에서 삶의 종요로운 비의(秘義)를 발견하는 눈을 보여온 시인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객관적 풍경으로만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이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관철하는 복합성의 세계이다. 그 점에서 사물들이 그리는 고유한 파동을 남다른 기억과 고스란히 겹쳐 받아들이는 그의 품은 참으로 넓고 깊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의 근원을 발견하고 자신의 존재 방식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하지만 그 성찰은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삶이 지속되는 동안 필연적으로 견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 조건으로 승화해간다. 그래서 우리는 이달균 시인이 우리 시조 시단에서 돌올하게 빛날 참신한 언어적 의장(意匠)을 여러 차원에서 견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는 날고 싶다 들바람 둠벙 건너듯
휘몰이로 돌아서 강물의 정수리까지
아름찬 직소폭포의 북벽에 닿고 싶다
적벽강 채석강을 품어 안은 변산반도
북두성 견우성이 어우러져 통정하고
윤슬의 만경창파는 진양조로 잦아든다
결 고운 그대는 국창國唱이 되어라
깨진 툭바리처럼 설운 난 바람이 되어
한바탕 쑥대머리나 부르며 놀다 가리니
그날은 찾아올까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이뤄질까
가을빛 스러지면 어느새 입동 무렵
노래는 구만리 가고 기러기는 장천 간다
― 이달균, 「득음得音」 전문(?시조시학? 2017. 봄)
‘득음’이란 판소리 창자(唱者)의 음악적 역량이 완성된 상태로 성음을 얻었다는 뜻이다. 이때 창자는 시인과 상징적인 존재론적 등가를 이룬다. 소리가 “휘몰이”로 돌아 강물의 정수리까지 이르는 과정이 득음의 과정으로 처리되고 있는 이 시편은, “적벽강 채석강을 품어 안은 변산반도”에서 북두성 견우성이 어우러지거나 만경창파가 치는 것조차 모두 ‘소리’가 번져가는 것으로 만들어간다. 그렇게 “국창國唱”이 되어, “바람”이 되어, “우화등선羽化登仙”을 이루며 “노래는 구만리 가고” 있지 않겠는가. 여기서 시인은 ‘노래(=시)’의 위엄과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상상력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의존성을 생성의 경이로 노래하면서, 그러한 태도와 관점을 시의 경험적 가치로 선명하게 이월시켜간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노래하는 존재론이 한편으로는 비극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새로운 예술적 의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견결한 의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이달균 시학의 정점은 진정성과 품격에 바탕을 둔 슬픔과 희망의 존재론에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눈부신 사랑의 기억들이 그의 시조를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모처럼 따뜻하고 깊은 시적 순간을 허락한 이 시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한동안 느릿느릿한 말들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수행하는 그 한없는 귀 기울임이, 그로 하여금 시조를 쓰게 하는 원질(原質)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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