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칼럼

새로 뽑힌 목민관(牧民官)에게

이달균 2011. 8. 19. 17:06

새로 뽑힌 목민관(牧民官)에게


  

이 달 균


  지방선거가 끝났다. 골목골목을 뛰어다닌 후보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스피커의 소음으로부터, 하늘을 가린 어지러운 현수막으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벨로부터 놓여난 셈이다.  당락에 관계없이 그들은 모두가 애민하고 헌신하려 했다. 지명도에서 떨어지는 후보라 하더라도 화려한 공약과 말씀의 성찬은 뒤질게 없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도민을 사랑하고 시민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환경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목쉬어 다짐하였다.

 

  네거티브 선거는 확실히 줄어들었지만 그 허전함은 여전하다. 선거운동이 너무 제도화된 탓일까. 예전 선거 때는 삼보일배하여 표를 구하기도 하였다. 이젠 그것도 식상하여 아예 삼일낮밤을 자지 않고 유권자를 만나고, 다른 이는 철인삼종경기 하듯 표밭을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 방식 역시 손 끝에 만져지는 구체성은 미약했다.

 

  선거운동도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좀 더 다양해져야 하지 않을까. 눈길을 끄는 이벤트보다는 가슴에 따뜻하게 다가가는 실천을 보여주어야 한다. 환경을 말하기 전에 몇 뙈기의 땅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무덤을 만들지 않겠다는 공약을 하고, 장기기증서약을 하여 진실로 몸이 아픈 이들에게 내 한 몸 던져주겠다고 말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만약 후보자 이하 모든 선거운동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헌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전직 대통령 한 분은 조상 묘소를 성터처럼 가꿔놓았고, 또 다른 유명한 정치인은 선대의 묘소를 옮기기도 했다. 조상에 대한 효심을 표하는데 뭐라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이런 행위들이 스스로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앞장서는 모양으로 비춰진다. 온갖 미사여구로 다가가기보다 작은 것 하나라도 솔선수범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되리라 여겨진다.

 

  이제 얼마 후면 우리가 선택한 새로운 목민관에 의해 역사가 쓰여 질 것이다. 다산(茶山)선생의 ‘애절양(哀絶陽)’ 같은 시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군정(軍政)의 문란 앞에 자신의 생식기를 잘라 잉태의 근원을 없애려고 했던 가슴 아픈 옛 사연과 가난 때문에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는 요즘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 묻고 싶기도 하다. 제발 목민관이여, 산에 올라 구름에 닿기를 원하지 말고 낮은 곳으로 임하여 고통의 신음을 들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