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문학 여행

청소년시절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이달균 2011. 8. 19. 16:56

청소년시절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이 달 균


 중2 가을,  일기장엔 “죽음이 찾아오면 나를 드리리”라고 써 두곤 했던 성장기의 첫 방황이 시작되던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싸늘한 냉기만이 맞아주던 자취방은 나를 밖으로 떠돌게 했고,  어느새 다닥다닥 붙어있던 헌 책방 골목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퀴퀴한 곰팡내 가득한 책방이었지만, 내겐 고향처럼 포근한 곳이었다. 주인 아저씨는 몇 번의 헛기침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뿐 이렇다 할 간섭도 관심도 없는 듯 무심히 나를 버려두었다.


이곳에서 주로 본 책들은 성적 호기심에서 읽었던 야한 책들과 당시 최고의 대중 작가였던 박계형의 소설들이었다. 그런 책들의 탐닉은 차츰 나를 어떤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다. 가뜩이나 왜소한 몸은 더 야위어갔고, 학교에서 세상에서 나 홀로 떠나온 것 같은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지금껏 읽었던 소설류와는 전혀 다른, 그리고 우리가 글짓기를 위해 배우던 시들과도 다른 이상한 그 무엇이 나를 이끄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산 모롱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자화상 중에서


 윤동주였다. 한참 뒤에 알게 되었지만, 그 책은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였다.  그저 몇 편의 글을 지어본 게 고작이던 내게 시란 이런 것인가 하는 알지 못할 끌림을 경험케 했다. 

 

 내게 있어 윤동주는 언제나 스물아홉의 청년으로 남아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동안의 몽롱한 독서 편력에서 헤어 나왔다. 그리고 삼국지, 초한

지, 수호지, 말테의 수기, 이방인, 이십오시 같은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어줍잖은 시를 쓰는 인생을 사는 이유도 그날의 청년 윤동주를 만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