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칼럼

BBK와 ‘비비’, 그 차이와 교훈

이달균 2011. 7. 29. 15:21

대선이 끝났다. 올해도 역시 축제가 되지 못했다. 투표율은 62.9%로 낮았다. 투표율이 낮은 것은 그만큼 국민적 기대를 모으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매스컴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독주로 인해 결과가 예측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유머와 여유는 물론, 공약마저 사라진 채 오직 공격적 언어만이 난무한 선거에 대해 유권자들은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표현보다는 ‘기권’을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이번 대선은 상대의 단점만 부각시키다 보니 우리의 소중한 가치마저 잃어버렸다.

 

생각해 보면 내세울 것도 많다. 세계 1위의 조선산업국,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 세계 1위의 메모리반도체산업국가, 세계 7번째 자체위성 보유국, 세계 최우수 언어로 선정된 한글, 아시아를 휩쓰는 한류 등등 이런 장점을 어떻게 융성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들은 BBK공방에 의해 다 사라져버렸다.

 

16대 때는 그래도 나았다. 노무현 후보의 “맞습니다. 맞고요.”, 권영길 후보의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 같은 유행어가 등장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는 유행어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다. 물론 권영길 후보는 그 말을 반복했지만 이미 식상한 말에 관심 기울일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기호 8번 허경영씨가 화제다. 득표율 0.4%(9만6000)를 기록하여 민주당 이인제 후보(0.7% 득표율)를 육박하기도 했다. 국회의원 출마자격을 고시제로 하고, 출산장려금 3000만원, 첫 결혼 시 1억원 무상지원, 2년 이내에 외채 완전상환, 유엔본부의 판문점 이전 등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아이큐 430의 천재정치를 하겠다. 오프라인의 대통령 당선자는 이명박이지만 인터넷 대통령은 나다. 인터넷에 가상 정부를 만들어 차기 대선을 준비하겠다”고 호기를 부린다. 이런 황당한 인물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리꾼들은 찬반으로 갈려 댓글을 단다. 이 웃지 못할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차라리 현실보다는 가상의 세계에서 대선을 치르고 싶은 정치적 허무주의, 냉소주의의 결과가 아닌가.

 

대선과 함께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 대해 진단하는 언론은 별반 없다. 그러므로 한번 짚어 보자.

 

당초부터 교육감 선거는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교육계와 이렇다 할 연관이 없다 보니 정보는 물론 이슈도 없었다. 한마디로 이런 식의 선거는 무리였다. 경상남도·울산광역시·충청북도·제주특별자치도 네 곳에서 선거가 열렸는데 모두 2번이 당선되었다. 만약 호남 지역에서 치러졌다면 1번이 당선되지나 않았을까. 만에 하나 이런 우연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었다면 어쩌나 아찔해진다. 그게 아니기를 믿고 싶다. 어쨌든 법률개정이 시급해 보인다.

 

그렇게 선거는 끝났다. 지루했던 BBK공방을 보면서 나는 내내 고성오광대 연희 3과장에 등장하는 ‘비비’란 존재를 생각했다. 비비는 절반은 괴수고 절반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엔 두 개의 뿔이 달렸고 얼굴 양 볼과 이마엔 검고 붉고 푸른 문양이 있어 무섭고 흉측해 보인다. 옷에도 동일한 색의 문양을 넣어 일부러 무서움을 강조한다. 비비는 양반을 징치하기 위해 등장한다. 양반을 혼내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비비는 양반을 겁박하지만 탈놀이 특유의 해학을 잃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양반과 비비의 관계는 징치당할 자와 징치할 자라는 이분법 이상의 것이 있다. 즉 비비가 양반을 공격하지만 종국엔 그 태도를 순화시켜 탈놀이 특유의 조화의 장을 연다. 그래서 마지막엔 전 연희패와 관중들이 하나 되어 마당놀이를 끝낸다. 이 갈등의 승화야말로 진정 오광대 놀이가 민중의 것임을 알게 해 준다.

 

우리 정치는 이런 탈놀이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단죄하기 위해 마당을 여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화합을 위해 여는 것이다. 결국 최고의 무기였던 BBK는 실패했고, 고성오광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탈놀이로 성장하여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고 있다. 한 세상 펼치면 마당이요, 접으면 외줄타기다. 압도적 표차로 승리한 당선자는 비비의 교훈을 새겨 외줄타기보다는 활짝 펼쳐서 마당이 되는 정치를 해 주기를 바라 본다.

 

- 기사작성: 2007-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