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칼럼

경부운하건설에 대한 또 하나의 생각

이달균 2011. 7. 29. 14:37

정해(丁亥)년이 밝았습니다. 지난 날을 돌아보거나 새로운 일을 예비할 때 저는 강으로 갑니다.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하염없이 내 안의 나를 흘려보내고 강둑에서 말라가는 갈대의 서걱임을 듣습니다. 그건 아마 강가에서 자란 탓인가 봅니다. 소년시절. 학교에 갔다 오면 책보따리를 던져두고 강에 나가 모래성을 쌓으며 멀리 붉게 물들던 서녘 하늘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모래톱 위에 오종종종 새겨진 어미새와 어린 새들의 발자국은 신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남강은 진주를 거쳐 동으로 내려옵니다. 함안 군북쯤에서 마산 진동쪽으로 남동진하여 남해바다에 이르러야 하지만. 강줄기는 남으로 뻗은 여항산에 막혀 다시 북으로 올라갑니다. 북상하는 물길은 함안 대산을 거쳐 창녕 남지쯤에서 낙동강을 만나 합강을 이루어 긴 여정을 김해와 부산에서 마감합니다.

 

 

왜 뜬금없이 강타령이냐구요? 유구한 역사를 국토를 감돌며 흘러온 민족의 젖줄인 강이 자칫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운하 구상이 그것입니다.

 

 

남쪽의 낙동강과 서쪽의 영산강. 금강을 남한강에 이르게 하고. 나중에는 북으로 예성강. 대동강. 청천강을 지나 신의주에 닿게 한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우선은 총 연장 553㎞의 경부운하 건설이 되겠지요. 하지만 강과 강은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낙동강과 남한강 사이엔 문경새재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신은 그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조령(해발 140m 지점)에 20.5㎞의 터널을 건설하면 별 문제가 없다고 하니까요. 물류비용 절감. 국토균형 발전. 수자원 보존 및 효율적 이용. 관광산업 발달 등 제2의 도약기를 맞을 수있는 획기적인 사업이라 역설합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국토개발연구원(현 국토연구원)의 조사결과를 빌려 타당성 없음을 강조하기도 하고. 구시대적 발상이므로 가당치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운하를 통해 물류수송이 줄어가는 외국의 사례를 열거하기도. 환경과 생태계의 파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만에 하나 실패하였을 때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목소리는 파괴력이 약합니다. 생태계와 운하 전반에 대해 조금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뭐니 뭐니해도 현 세태에 대한 불만으로 당신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높아진 까닭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건설입국을 이루는데 일조하였고. 현대그룹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완성하였습니다. 서울시장 시절에는 숙원이었던 청계천을 복원하였고. 난제였던 서울시 버스 운영체제를 개혁하기도 하였습니다. 늘 가능이란 씨앗에 희망을 걸고 도전하고 성취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린 ‘그만!’이란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이들은 경부고속도로를 반대하였듯 미래를 두려워하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가뜩이나 경제는 어렵고 민심은 흉흉한데 미래건설을 외치는 이를 깎아내릴 수는 없다고 합니다.

 

 

올 한 해 끊임없이 설왕설래될 경부운하건설. 제발 이것만큼은 다시 재고하자고 간곡히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경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이를 통해 얼마만큼의 경제효과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홍수 방지를 위한 장점이나 하상정비 사업으로 인한 수질 악화. 혹은 생태계 교란을 우려하는 의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다른 부문에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민족성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자연을 닮아가며 생성됩니다. 산맥에서 발원하여 역사와 함께 유장하게 흘러온 강은 한민족의 심성과 근본을 만들어왔습니다.

 

여기에서 아리랑 같은 노래가 태어나고 문학이 탄생하였습니다. 문경새재 조령산 마루는 백두대간의 한 맥을 이룹니다. 백두대간을 뚫고 수많은 댐과 수십 개의 갑문. 선착장과 터미널 등이 세워진 강을 상상해 봅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은 직선으로 바뀌고 시멘트 골조가 하상을 이룬 강을 보고 자란 미래의 아이들은 분명 수천년을 이어온 민족의 서정과는 전혀 다른 심성으로 살고 있겠지요.

 

 

원형을 잃어버린 강. 경제라는 목표 하나로 조상으로부터 면면히 물려받은 민족의 전통 서정을 잃는다면 송두리째 잃는 것이 아닐까요? 이는 발상의 전환이기 전에 태초를 지켜온 거대한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경제를 얻고 고유한 민족의 심성을 잃는다면…. 아. 두렵고도 아득해집니다.

 

 

 

- 기사작성: 2007-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