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杞憂)라는 말이 생각난다. 중국 기(杞)나라의 한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여 식음을 전폐하였다는 말이다. 이 말이 문득 떠오른 이유는 ‘경남도 문화상’(賞) 관련 공고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소 뜬금없다고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작금의 문화상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둔 반쪽짜리 상이 되고 말았다.
한 해를 갈무리하면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였거나 괄목할만한 성취를 이룬 이들에게 업적을 평가하고 격려하는 자리는 당연하다. 문화 외길을 걸어온 이들에게 시·도민이 주는 문화상은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수상식이 축제는커녕. 수상자와 전체 문화인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풍기는 까닭은 무엇인가.
현재의 문화상은 결코 문화적이지 않다. 이 상이 비문화적인 것은 창작지원금 혹은 연구비 형식으로 주어지던 상금을 선거법에 저촉을 받는다는 이유로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상이 꼭 상금이 있어야 권위가 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적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거법을 이유로 여태껏 주어지던 상금을 없앤 졸속행정이라면 한 번 따져봐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시·도지사 및 시장·군수는 상금은 줄 수 없고 상장만을 수여해야 한다. 상금은 기부행위에 해당되므로 선거법 위반이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 위에 선거법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선거법은 선거와 관련된 한시적인 작은 규약이고. 문화는 영속적이고 포괄적인 광의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문화상을 선거법으로 제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시·도지사의 이름으로 수여한다지만 누구도 이 상이 자치단체장 개인이 주는 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문화상은 문화인들의 공감대 속에서 주어지거나 시·도민이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주는 것이다. 상장과 함께 주어지는 상금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긍지를 잃지 않고 맡은 소임을 성실히 해온 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요, 격려금이다. 창작자들에게는 더 열심히 창작에 임해달라는 창작지원금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돈이 없어 저서를 출판하지 못하는 문인이 있는가 하면 전시장의 대관료와 팸플릿 제작비가 없어 전시회를 열지 못하는 화가도 있다. 상금은 이런 이를 위해 마련된 작은 보상인데 이를 기부행위라 하여 없애버린다면 누가 이해하겠는가.
이 상금이 단체장들의 호주머니 속에서 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아니면 단체장과 심사위원. 수상자들 간에 상을 매개로 은밀한 거래라도 있는 양 의심하는 것인가. 지금까지의 수상자들이 그 상금으로 인해 단체장 선거와 관련하여 물의를 빚은 사례를 보지 못했다. 선관위의 논리대로라면 수해복구기금 지원. 막강한 인사권 행사. 도로 보상비 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유독 문화상에만 기부행위란 이름으로 상금을 없애야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문화는 이미 지난해부터 관에 묻혔다. 선거법으로 문화를 제약하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경남도와 시·군은 이런 구차한 유권해석에서부터 벗어나기 바란다. 다른 도와의 형평성에 얽매이지 말고 분명한 명분을 내세워 타도보다 먼저 상금 있는 상을 시상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도 좋으리라. 그러면 경남의 차별화된 문화 정책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한편으로 무엇보다 자괴감이 드는 것은 문화계가 이런 실정을 보고도 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교육계. 언론계. 예총과 민예총. 학술단체. 체육계 등에선 왜 침묵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이를 수긍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정부시책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습성이 몸에 밴 탓인지 알 수 없다. 사석에서는 분명 설왕설래가 있다. 그런데도 정작 공론화하지 못한다.
지금부터라도 선거법에 저촉되어 축제가 되지 못하는 문화상을 되살려내어야 한다. 하다못해 작은 백일장. 사생대회에도 부상이 있는데. 분야별로 시·도에서 한 해 단 한명에게 주는 상금이 선거법 위반이라니 소가 웃을 일이다. 문화의 세기라는 오늘. 이 문화의 달 10월에 갈기갈기 찢겨져 관에 갇힌 그대를 조상(弔喪)한다. 문화여. 문화란 이름이여.
이달균(시인)- 기사작성: 200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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