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칼럼

한국의 혼으로 사라예보를 껴안다 - ‘사라예보 윈터 페스티벌’을 다녀와서

이달균 2011. 7. 29. 14:45

사라예보의 윈터 페스티벌을 다녀왔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내겐 낯선 도시였다. 고작해야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곳, 혹은 두 발의 총성으로 일차대전 발발의 진원지, 굳이 연관을 짓자면 이에리사를 비롯한 탁구팀이 세계를 제패한 도시 정도로 알고 있었다.

 

 

눈이 많은 도시, 사라예보엔 겨울이면 지구촌 곳곳에서 예술인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조금씩 사라예보에 동화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평화주의자가 되고 만다. 필자도 한국예술인 24명 중 한 명으로 사라예보를 찾았다.

 

사라예보는 지금까지 10회째 이 축제를 열어 세계의 예술인들을 초청하고 있다. 평화를 소망하는 이곳에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예술단이 찾은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우리 음악과 서양음악의 접목을 통해 한국음악의 세계화를 위해 한길을 걸어온 `어울림'(대표 이병욱·서원대 교수) 실내악단이 찾은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주목을 끌만한 일이다. `어울림'은 말 그대로 세대와 이념, 국경을 초월하여 한국음악과 서양음악의 공동선을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그룹이므로 이 축제의 기본 취지와도 잘 부합된다. 뿐만 아니라 출국 전에 이미 `축제의 사라예보'(이달균 작사·이병욱 작곡)라는 노래를 작곡하여 몇 차례 준비모임, 유니세프 기금마련 공연(청주) 등을 통해 발표함으로써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2월 10일 오전 10시. 터키 문화센터에서 `한국음악의 이해'란 제목의 워크숍이 있었다. 현지의 패스티벌 관계자, 문화인, 취재기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병욱 교수의 “한국 음악은 시김새를 중심으로 이뤄지므로 멜로디 선이 다양한 변주를 가진다”는 부분과 `꺾는 청과 떠는 청, 구밈새의 특성으로 한국음악의 고유성을 드러낸다'에 대한 설명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바로 이어진 가야금(김순진)과 해금(윤주희)의 `꺾고 떠는 청' 실연에 이어 장구(박준형)의 거친 듯하면서 호흡을 조율하는 섬세한 울림에 이국의 눈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마지막 진도아리랑의 합창에서는 동서양의 봇물이 한꺼번에 터지는 감격을 맛볼 수 있었다.

 

 

2월 11일 오후 8시 드디어 한국팀의 피날레인 `어울림'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용가 황경애씨의 태평무에 이어, 첫 음악 `어울림을 위한 2007(Oulim for 2007)`이 연주되었다. 기타, 첼로, 플루트로 구성된 양악기와 해금, 가야금, 장구와 어울린 한국 악기들의 앙상블이 이채롭다. 서양 악기와 동방의 낯선 악기의 어울림이 빚어내는 조화에 모두 귀를 기울인다. 이어서 `우리민요 주제에 의한 환상곡(fantasy on a Korean folk song)', `달아 높이곰', `한강 아라리', `오 금강산'이 이어지면서 사라예보 땅에 한국의 혼은 점점 퍼지고 있었다.

 

 

다음은 시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순서였다. 필자는 `어울림'의 반주에 맞춰 축시 `축제의 도시 사라예보에서 노래하라'를 낭송하였다.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이 흥분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듯 박수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이번 공연의 주제음악 `축제의 사라예보'가 연주된다. 이윽고 대회 조직위원장이 무대로 올라왔다. 이병욱 교수와 필자는 `축제의 사라예보' 악보와 축시 `축제의 도시 사라예보에서 노래하라'를 헌정하였고, 그는 조직위원회를 대표하여 인사말과 보스니아 대표작가의 판화를 선물하였다.

 

 

곧이어 앙코르가 쏟아져 한국 예술단 전원과 조직위원회 사무국 인사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손에 손을 잡고 `축제의 사라예보'를 소리 높여 불렀다. 가히 민간외교, 문화예술교류의 필요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장이었다. 수십 명 외교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한국의 위상을 단번에, 그것도 가슴으로 껴안을 수 있는 예술인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충분히 실감한 자리였다.

 

그곳에 사는 유일한 한국인인 이선이네 가족들은 이런 감동은 처음이며 영원히 잊을 수 없으리라 하였다. 이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엔 한국이 있다. 아직 국교도 체결되지 않았고, 정부 인사 한 사람 그곳에 있지 않았지만 사라예보인들의 가슴 가슴엔 코리아의 혼이 숨 쉬고 있다. 지난 역사에 가슴 아파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맑은 눈을 가진 사람들의 도시 사라예보를 두고 우리는 떠나왔다. 끝까지 진지하게 동행취재를 해준 아리랑TV 관계자 분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드린다.

 

- 기사작성: 2007-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