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칼럼

`가고파', 예향의 노래를 목놓아 부른다

이달균 2011. 7. 29. 14:55

서정주, 이효석, 김달진, 김정한, 정지용 등 이들 문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는 자신의 고향에서 문학제가 열린다는 것이고, 둘째는 안타깝게도 친일 글을 남겼거나 행적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미당 서정주의 친일행적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해마다 전북 고창에선 100억 송이 국화꽃과 함께 `미당 문학제'가 열린다.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은 봉평에 메밀꽃이 한창일 때 `이효석 문학제'를 연다.

 

이때는 경향에서 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문학의 향기에 취한다. 그 역시 친일 글과 행적이 뚜렷하지만 문학관도 있다. 김달진은 강원도청으로부터 여비 보조를 받아 일본 불교계를 시찰하고 와서 여러 차례 `심전개발운동'에 대한 보고강연회를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김달진 문학제' 역시 성공한 축제로 자리 잡았고 문학관이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초대 회장을 지낸 부산의 대표적 소설가 요산 김정한은 희곡 `인가지'를 발표하여 그 대열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그를 기리는 `요산문학제'는 부산을 대표하는 문학축제다. 노래 `향수'로 잘 알려진 정지용은 친일 성격의 시 이토(異土)를 발표하였고, 조선군보도연습(朝鮮軍報道演習)을 위해 진용을 정비할 때 시부문 간부로 활동하는 등 행적이 뚜렷하다. 충북 옥천에서 매년 5월 `지용 문학제'를 연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실 앞에서도 그들을 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지역민의 성숙함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36년이란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면서 말기의 극악무도함에 굴해 다소의 친일 전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모국어로 쓴 문학마저 외면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공감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노산은 한 시민단체의 편견에 의해 단죄된 경우다. 친일은 고사하고 반일(反日)로 인해 감옥을 들락거렸으며 간절히 고향을 그리는 글을 썼다. 처음엔 `친일혐의'라는 올가미를 씌웠다가 이렇다 할 것이 없자 민주성지 마산 정신의 위배란 죄목으로 족쇄를 채우고 만 것이다.

 

 

여기에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마산 육호광장 근처의 `은상이 샘' 앞에서 “은상이 샘과 동거하는 3·15는 통곡한다”고 현수막을 들고 몇 년에 걸쳐 격렬히 시위를 하였지만, 5공 정권하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낸 김춘수 시비가 3·15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데 왜 침묵하는가. 뿐만 아니라 원근의 친일 문인들에겐 관대하면서 유독 노산에게만 집요하게 공격한다. 역사를 비판하려면 객관적 기준을 가져야 한다. 먼저 친일과 독재부역, 어느 쪽이 더 무거운 죄인지 잣대를 설정해야 하고 그 비판의 강도도 달라야 한다.

 

 

마산은 의거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예향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예향 마산'이란 이름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두 축은 공존해야 한다. `가고파'의 바다가 문명에 의해 오염되었지만 노래 속에서는 여전히 푸른 물결을 간직한 바다로 기억되고 있다. 한 문인이 일생을 살아오면서 완전히 순결하기란 쉽지 않다. 원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었고 원하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시대였다. 더 이상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역사 인물을 폄하하는 소모적 행위를 그만두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2000년 11월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문구를 생각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동인은 친일 글을 여럿 남긴 문인이다. 그러나 이문구는 당시 양심적 문인의 대표적 단체를 이끈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이었지만 상을 받으면서 이런 소회를 피력하였다. 새겨들을 부분이 있어 여기 옮겨본다. “김동인 선생을 친일 문인의 범주에 넣고 그 이름으로 된 상을 받을 수가 있느냐고 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애시당초 독립운동가의 자제가 아닐 뿐 아니라 일제 때 마끼무라로 창씨개명했던 보통사람의 자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뿐더러 `진정한 의미의 친일 문인은 춘원 하나뿐'이라고 한 스승의 견해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전 수상자들의 빛나는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작품으로 죽지 않는 일이다.”

 

 

이 지역에도 작품으로 죽지 않으려는 문인들이 있다. 그들에겐 선인들의 부끄러움도 상처도 큰 거름이 된다. 힘없는 나라, 힘겨운 역사를 걸머지고 살아온 선대의 일들은 원죄와 같다. 당신들이 단죄하지 않더라도 이미 마음으로 단죄하고 용서함에 게으르지 않는 시민들이 있음도 알아야 한다.  

 

 

- 기사작성: 2007-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