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시집

이달균 제5시집- 문자의 파편(도서출판경남, 2011)

이달균 2011. 7. 14. 14:01

문자

         

 

시인의 말

 

 

 

오래된 시들을 묶는다.

1987년, 첫 시집 《남해행南海行》 이후의

파편들이다.

 

칼이 너무 무뎌졌다.

다시 벼려야겠다.

 

2011년 5월

 

 

 

 

 

 

나는 왜

 

 

 

나는 왜 불처럼 살지 못할까

나는 왜 얼음처럼, 눈물처럼

새벽처럼 살지 못할까

 

문틈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나를

누가 회색물감으로 그리고 있다

 

 

 

 

 

 

인 생

 

 

 

생에 대해 묻지 마라

네가 본 책 속에

영화 속에

 

혼자 기울인 술잔 속에

다 있으니

 

 

 

 

 

 

마산항

 

 

 

고래는 없다

파도를 물어뜯는 상어도 없다

 

그래도

고래고래 소리치는

술고래는 있다

 

풀린 동태 눈깔에 비치는

어시장 난전

 

 

 

 

 

 

뫼르소의 여름

 

 

 

갑자기 한 움큼의 시간이 굴러 왔어 너무 반갑고 낯설어서 한동안 황당했지 어쩔거나 무엇을 해야 할거나 이 시각, 녀석들은 뭘하지? 따르릉 따르르르릉…… 신호음들은 돌아오지 않았어 도시는 떠나가고 없었어 자동차의 얽힌 바퀴자국 위로 경적 소리만 비닐처럼 흩날리는 곳에 나는 섬처럼 서 있었어 아니, 둥둥 떠가고 있었어 등을 비추는 뜨거운 햇살 어디선가 “나는 뫼르소가 되었다”고 누가 외쳤어 아, 햇살도 빨려드는 소용돌이, 지푸라기처럼 나는 곤두박혔어

 

의사는 빈혈이라 말하더군

 

 

 

 

 

 

매립장에서

 

 

버린다

사소한 내 하루

버리다니

스스로 땀 흘려 얻지도 않은 하루를

맘대로, 가볍게 버리다니

이곳은 몸 바친 것들의 공동묘지다

늙은 완행버스의 뒷다리 곁에

내 콩트 같은 하루를

슬쩍,

버린다면

맑은 날 잘못 내린 빗방울의 착각처럼

뒷머리 긁적이며 돌아가야지

 

 

 

 

 

 

모노드라마

 

지금쯤 그이는 수술을 끝냈을 시간입니다

맞은편 옥상 위의 구름이

해체된 정신처럼 역겹다고 칭얼대고 있겠지요

나는 오전 일과의 마감을 알리고

정갈한 모이와 영양제 몇 알을 씻어놓고

소박한 행복에 취해보기도 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죽은 아이를 낳는 소녀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습니다

쓰다 버린 메스로

알뜰히 과일을 깎아놓고

알맞게 말려둔 태아를 달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살림에

재미를 느껴가는 나를

친구들은 부러워하는 눈치입니다

참, 이제 오후 일과의 시작을 알려야겠죠

간혹, 그이는 쇼팽을 듣다가 잠들어 버리는

탐미적인 남자거든요

 

 

 

 

 

 

현악 4중주

 

 

누가 바쁘게 계단을 올라가고, 또 누가 땅 밑으로 내려간다 시궁쥐들이 속삭이고, 그들 위로 콩콩콩 세월이 뛰어가고, 버스가, 공룡이, 가을 속으로 겨울이 달려들고, 금빛 메타스퀘어 잎새 위로 얇게 햇살 가루가 바스러지고……

 

나는 방금 살해되었다

죽으며 듣는 생의 소리

 

 

 

 

 

 

동백꽃

 

눈 위에 떨어진

동백꽃 한 잎

새벽 정사 끝내고

황급히 돌아가다 볼일 보는 여인처럼

 

입술

붉다

 

 

 

 

 

 

소인국

 

 

저는 소인국 백성이옵니다.

 

삼삼오오 선술집에 모여

별을 따먹고, 개를 잡아먹고

내친 김에 소도 잡아먹지만

 

다음날 이런 방이 나붙는 나라

 

“이 아무개가 누구네 집 개 잡아먹었다

우리는 국물도 안 먹었다”

 

 

 

 

 

 

풍속도

 

 

극장을 나오며

모두 손전화를 꺼낸다

약속하지 않아도 너무나 익숙한 연기

위성과의 교신은

일상으로 가는 통과제의

 

안 받데?/ 어, 영화/ 어제 말한 그거? 잼데?/ 별로/

리얼리티는?/ 개뿔/ 하긴/ 모하니?/ 넌?/ 배고파서 라뽂/

누구랑?/ 신경 꺼/외계인이랑?/ 신경 꺼래도/좋겠당/

부럽냐?/ 응/ 너 가져

 

문자는 하늘로 가고

구름에 부딪힌 말들은

증발한다.

빗방울이 되지 못한

허공의 입자들

흩어져 끊임없이 과거가 되는

파편,

문자의 파편

 

 

 

 

 

 

가을이 온다

 

 

하늘 혹은

먼 강물

릴케와

윤동주

그들에게 가을이 있다고

믿은 적이 있다

하지만 가을은

쪽빛처럼

시집詩集처럼

오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부엌 식칼 옆에서

울고 있는

늙은 귀뚜라미

그렇게

이 빠진 가을이 온다

 

 

 

 

 

 

흥부반점, 12시 5분

 

 

새벽시장에 음식 준비, 오토바이 손보고 배달 가고 그릇 챙기고…… 개자슥, 다방은 언제 가고 여관은 언제 갔단 말인가. 오냐, 뒈져봐라 퉤퉤! 니 죽고 내 살자. 침 뱉고 밀가루 흩날리며 면발 때린다.

 

“여기 기산 프라잔데 짬뽕 두 개 빨리요!” 전화는 울고, 희뜩퍼뜩 출몰하는 바퀴벌레 프라이팬으로 작살내자, 참았던 오줌보 터진다. 바지는 엉덩이에 걸려 내려가지 않고, 찔끔찔끔 눈물은 나고, 남은 오줌 털어낼 짬도, 손 씻을 새도 없이 재워둔 아이가 울어서 후다닥! 문을 여는데, 또 전화 “아까 시킨 짜장 우찌됐소?” 아아, 씨팔.

 

 

 

 

 

 

그림자의 잠

 

 

 

잠 속에서 몰래 빠져나와

잠든 나를 볼 때가 있다

보던 책은 72페이지에 펼쳐져 있고

시계는 두 시에서 세 시로 열심히 가고 있다

돌아누운 아내의 허리는 휘어져

수면의 긴 밤도 고단하다

나는 미라처럼 반듯이 누워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잠들어 있다

영혼이 빠져나와 버린 탓일까

어쩌면 이 시각

죽음에 더 가까이 가 있는지도 모른다

불안하다 차라리 악몽을 꾸거나 이를 갈거나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그런 사내의 잠이 그리워진다

저 창백한 잠 속에서 수도관은 마르고

지상의 잎들은 부스러질 것이다

차디찬 돌처럼 밤은 식어 있다

 

 

 

 

 

 

황신혜

 

 

오빠아, 나 슬퍼

왜라니이?

자궁이 으니까 슬프지이

있잔나 나 있지

지금은 신혜에, 황신혜지만

원래 내 이름은 준수다

보일러공 기임 주운 수우

방위 마치고

일본 가서 수술할 때엔…… 기집애들

쟤들은 다아 부러워들 했지만

그래도 난 슬퍼어

자꾸 왜라니이?

자궁이 으서 슬프다니까아

오빠아, 근데

나 김치 무지 잘 담근다아

시집가도 되겠지 그치?

근데 막 자꾸 슬퍼지는 거 있지

자궁이 으니까아, 자궁이……

나 김치 무지 잘 담근다아

시집가도 되겠지 그치?

근데 막 자꾸 슬퍼지는 거 있지

자궁이 으니까아, 자궁이……

 

창원에서도 예비군법 위반으로 첫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5년 동안 예비군 훈련을 기피해 왔던 피의자 김준수(29세·무직) 씨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여성으로 변장을 한 채 뺑소니를 치다가 하이힐이 벗겨져 붙잡혔다〈하·하·하 웃지 못할 사건 하나­지역 통신원 올빼미〉

─선데이 먼데이(95년 4월)

 

 

 

 

 

 

일간 스포츠

 

 

왜 하필 거기서 미망인의 상복喪服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까.

 

친구들은 포커, 난 무심히 박찬호를 읽는다.

상가에서도 메이저리그의 고군분투는 감동적이다.

 

하긴, 며칠 후면 아이들은 어린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그녀도 야간경기에 갈 옷들을 장만하리라

 

연봉이 영웅을 정의하는 시대

살아온 패와 손에 쥔 패를 비교하면서

열심히 카드를 돌릴 때

 

나는 혼자서 일간 스포츠를 본다

승부할 그 무엇도 없는 밤이 길다.

 

 

 

 

 

 

평사리행 국도에서

 

 

살아있는 것들은 죄다 반짝인다

재첩을 줍는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분주한 한 떼의 송사리들처럼

강의 비늘은 살아서 반짝인다

강물은 늘 그 자리에 있어 왔지만

오늘은 내 여기 있다 여기 있다 손을 흔든다

물끄러미 가을 햇살들이 뒤돌아보는 평사리행 국도

나는 돌아갈 집을 잊기로 했다

눈 떠 있는 깨진 사발의 영혼처럼

나도 함께 반짝이며 어울릴 순 없을까

사납게 사라지는 버스, 두껍고 짙푸른 잎새

살아서 빛내는 오후는 아름답다

재첩이 여무는 날에 나란히 배들이 익어가듯이

아무것도 혼자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왜 살아있는 것들은

내 여기 있다 외치며 해종일 반짝이는가

존재의 고단함 역시 산 자의 몫이 아닌가

외로워서 반짝이고 싶은 나를 거기 세워두고

황혼 속에 파묻힌 우리들의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에 관한 구체적인 기억

 

 

준모야, 오늘도 집에 없구나.

부엌에 굴비 한 두름과 미풍 한 봉지 두고 간다.

 

미풍은 내가 태어나서 먹은 가장 새로운 맛이었고

굴비는 조금씩 아껴먹어야 할 귀한 반찬이었다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이런 등식은

누가 알면 경을 칠 일일 것이나

좀처럼 놓여지지 않는 버릇이 되어버렸다

 

그때마다 나는 추산동 헌책방에서

징병 갔다 어찌어찌 해서 ‘우라지미루’란

소련 이름을 얻은 남자의 야한 소설과

프랑스에 유학 온 영국 소녀의

레즈비언 일기를 읽고 있었다

 

그런 슬픈 독서가 삶에 독이 되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구체적으로 미안한 기억들을 갖게 하였다

어릴 적 이름인 ‘준모야……’로 시작되는 메모지 몇 장

 

 

 

 

 

 

나는 누군가의 세상 속으로 버려져 가고 싶다

 

 

세상 밖에서 별똥별이 하나 버려진다

그대가 버려지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버려지는 것들의 덜미는 아름답다

그냥 버려진 채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빈 가슴으로 버려진 서로의 가슴을

데우고 녹이는 눈물이 있을 뿐

버려진 시구詩句처럼 누가 나를 버려다오

내 일찍이 슬픔을 버리고

증오의 반짝이는 칼날도 죄다 버리고

망가진 쓰레기통마저 버리고 버렸어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하늘이 기어이 별똥별을 버리듯이

누가 나를 사정없이 버려다오

그리하여 저 창백한 별똥별이

세상 안으로 버려지듯이

나도 누군가의 세상 속으로 버려져 가고 싶다

 

 

 

 

 

 

내 오래된 기억의 집

─이월춘에게

 

 

그때 내가 있었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도원 같은 집 나는 내게서 너무 멀리 떠나왔네 처음 그곳에서 나는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너무 낯설어서 마르고 까칠해져서 외면하고 돌아서 버리지나 않을까 담쟁이 넝쿨 가득한 기억의 집이여 그때 내 무엇을 열망하고 믿었기에 오래된 수도원 같은 집을 가졌던가

 

걸음이 둔하다 애인의 습관처럼 익숙해진 관념들을 잘라내고 돌아가려 한다 회귀본능이란 낡은 언어를 쓰지 말아다오 누군들 떠나온 언덕 위의 한 그루 소나무가 그립지 않으랴 그때 내가 있었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도원 같은 집 지금 나는 내게로 돌아가려 하네

 

 

 

 

 

 

보길도

 

 

 

세상에서 내몰리면 이곳까지 오게 되는가

하지만 세상 너머에도 세상은 있다

이곳에서 보면

등을 떠밀던 그대들의 세상도

유배의 땅인 것을

 

떠나온 이도

찾아온 이도

모두

발목이 시린,

 

 

 

 

 

 

歲寒圖

 

 

추사秋史의 세한歲寒

겨울에 그도 외로웠을까

 

산정에 오르면

사람들은 낙락장송만 보고 간다

바람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머리 위로 날아간 되새들이

어느 산 어느 숲 속에 깃을 접는지

 

낙락장송은 안다

하지만 안다는 건 외로움이야

멀리서 폭설이 오고, 몇 마리 쥐가 얼어죽고

산을 오르는 한 산인山人의 기침소리가 끊어질 것을

남 먼저 아는

 

그래서 외로움을 스승이라 하지

추사秋史는 말하지 않고

보여줄 뿐이었지

 

 

 

 

 

 

마 음

 

 

강 건너 고향. 여름이면 아이들 하나 둘 잡아먹던 식성 푸른 강. 오늘은 물배미 허물처럼 잠들어 있다. 에라, 망설이는 마음 저 홀로 두고 과속으로 지나가자. 마음은 늘 시발택시 실어 나르던 그 뗏목의 시속으로 따라오는 걸. 저물녘 허공 잃은 새들 허둥대며 길 떠날 때 두고 온 마음이야 빈 지서 자리에 세워 둔 주인 없는 낡은 자전거라도 타고 오겠지.

 

 

 

 

 

 

두레박

 

 

두레박은 하늘에 걸려 있습니다. 제대로 정박하지도 지상에 내려오지도 못합니다. 잊혀질 준비를 하는 기억의 문 한켠에 쓸쓸히 낮달로 걸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의 존재를 믿지 않았으므로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는 내 닫힌 유년의 문, 혹은 의문의 지하로 이르는 통로, 뚝뚝 정수리를 때리던 먼 지하의 물방울 소리. 어두운 지구의 수맥에서 올라오던 냉기에 끌려 우물 속으로 나무관을 내려버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두레박은 불안한 아이의 영혼처럼 하늘에서 잠들지 못합니다. 물론 지상에도 그의 집은 없어진 지 오랩니다. 우물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끌어올려야 할 그 무엇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계시의 날들은 너무 멀리 가버렸습니다. 내게서 먼 지하의 음성이 사라지듯이 두레박은 철문에 닫혀버릴 것입니다.

 

 

자전과 공전의 시속을 따라가지 못하는 별들은 별똥별이 됩니다. 유성이 되어 지상에 추락한 사람들. 세월의 시속을 따라잡지 못한 그들 속에 내가 보입니다. 슬픈 두레박처럼 둥둥 떠가는 낯설고 낯익은 내가.

 

 

 

 

 

 

모던타임스·5

 

 

자유는 있는가? 그대에게 자유를 주겠다

자, 이제 해태제과 제공의 자유시간이다

 

젊은이여, 자유를 찾아 우리 모두 떠나보자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금강제화 랜드로바 협찬으로 이 길을 떠나자

 

하늘이 푸르고 물은 깊지 않는가

무엇이 보이는가 점점이 조금씩 보인다 자유가

500원짜리 맥스웰 캔커피를 마시고 나면

뚜렷이 자유가 보인다

 

다 함께 외쳐보자 모델처럼 두 손 번쩍 들고

나는 자유인이다!

 

만약, 자유가 필요하시다면 가까운 슈퍼를 찾아

골라 가지세요 가격도 품질도 다양하게

500원부터 자, 골라골라, 골라골라

 

 

■초대글-동갑내기 시인들 이달균을 말하다.

 

마산의 흙먼지와 시를 위하여

 

 

│이월춘(시인)

 

 

시민극장 앞이었어

10·18 마산항쟁 전야에도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우린 무슨 약속처럼 그곳에서 만났지

조조할인 입간판 앞에서

영화처럼 바람에 깃을 세우며 서 있던 사람들

포장마차의 불빛이 따스해지는 시각

극장을 돌아가는 골목에서 먼저 어둠이 오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닥터 지바고

그 빛나는 사내들의 화음도 들려오곤 했지

이제 극장은 없고

하릴없이 기다리던 시민들도 가고 없고

간판화가로 초년을 살았다는

문신 화백도 가고 없는 마산의 겨울

내게는 아득하여라

썰물의 발자국들만 어지러운

시민극장이 있던 자리

─이달균, 〈시민극장이 있던 자리〉 전문

 

하아, 우리들의 칠십년대여!

마산 불종거리와 부림시장통, 창동 거리를 거쳐 남성동 파출소여!

참 춥고 쓸쓸하고 외롭고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던 그때, 지금은 없어진 술집 ‘고모령’에서 이광석, 최운 선생이나 현재호, 허청륭 화백, 창동 백작 이선관 형님(왜 우리는 형이라고 불렀을까? 동년배인 오하룡 시인은 선생님이라 부르면서)을 비롯한 ‘우리’ 마산의 문화 예술인들의 냄새를 맡으며 늙어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말석에 앉아서 막걸리 한 잔에도 넉넉해지던 시절이 눌재訥齋(이달균의 호)와 나의 문학적 자산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걸핏하면 문을 닫았던 학교를 떠나 거제로 통영으로 쫓겨 다니고, 하릴없이 마산과 진해, 창원의 술집 골목을 전전하며 어깨를 걸고 고래고래 악을 쓰던 나날이며, 남성동 낡은 중국집 2층에서 짬뽕 국물에 무학소주를 들이키던 날들, 함안군 산인면 입곡못 언저리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보냈던 ‘살어리’ 동인 시절, 그 사람들 중 정이경, 정일근, 성선경, 배한봉, 권경인, 정완희 등은 살아남았는데 성창경 형을 비롯한 나머지 분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늙어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없이 열정 하나에 목숨을 걸었던 그 마음들이 누가 뭐래도 나는 그립다. 그 젊음의 눈매와 뒤통수까지 그립다.

이달균의 이번 다섯 번째 시집은 그런 그리움의 집적이다. 아니, 나는 그렇게 읽고 싶다.

예전 《계간 진해》에서 그의 세 번째 시집 《장롱의 말》(고요아침)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새삼 그때의 글 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이 시집의 시들이 《장롱의 말》에 실린 시들보다 묵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오늘도 한 사람 등지고 왔습니다

슬픔을 나눠 지라던 소명을 거역하고

냉정히 등만 보인 채 돌아온 내가 미워집니다

─이달균, 〈등〔背〕〉 전문, 시집 《장롱의 말》 42쪽

 

등을 뜻하는 한자 背는 긍정적 의미보다는 부정적 의미에 가깝다. 배신자背信者나 배은망덕背恩忘德이나 배반背叛 같은 어휘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손바닥에 못을 박고 하늘과 땅 사이에 몸을 누이신 예수님도 유다라는 배신자가 있었다. 사람살이에서 배신하거나 배신당하는 일은 다반사일 것이다. 그것은 삶의 곡절이 만들어낸 문화의 한 단면일 수도 있겠고, 팍팍한 세상의 뒷골목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의인義人이니 비겁자卑怯者니 하는 말들을 쓴다.

그러나 나는 그와 생의 동행자가 되고 싶다. 삶의 공통적 지향점을 향해 가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며, 고통과 눈물까지도 말없이 안아 들이는 그런 동행자가 되고 싶다.

하루에도 수없이 만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그야말로 복잡하기 그지없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고, 기분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으며,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보기도 싫은 사람도 있다. 오늘도 화자는 어느 누구와 등지고 돌아왔다. 화가 나서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 표현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그를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한 자신을 꾸짖는다. 누구나 공감하는 상황이요 누구나 이런 일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 하략 …)

 

그렇다. 벌써 이달균과 나는 우리 나이로 오십다섯이다. 그렇다고 복고의 의미를 붙이진 마라. 자극적이고 순간적인 삶의 맛을 버리고 눅진하면서도 곡진한 사람살이의 참맛을 그리워하는 것이니까. 그것이 시인의 숙명이니까. 결국 이달균은 시적 대상과 대상 사이의 관계를 애정의 시선으로 살피고 나아가 사람살이의 모든 의미를 사랑으로 엮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번 시집에서 뽑은 〈시민극장이 있던 자리〉와 세 번째 시집 속 〈등〔背〕〉은 생의 길목에서 만나는 애환과 지향, 그 공통점이 잘 묻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역시 눈을 감아도 이달균 냄새가 충실한 글들임을 알 수 있다.

이형, 없어진 게 어디 ‘시민극장’뿐이며, 가신 분이 어디 문신 선생뿐이랴. 황선하 선생도, 이선관, 정규화, 최명학 선배도 다 가셨다. 세월은 늘 거기 있는데 우리가 가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나. 무엇이나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날마다 깨달으며 하루가 간다.

팔십년대, 그 어수선한 시대의 골목을 지나 우리는 지천명을 넘어 이순을 향해 가고 있다. 아무 연고가 없던 우리가 이십대 초반에 만나 이렇게 함께 나이 들어 갈 수 있다는 게 나는 좋다. 이제는 서로 마음을 드러낼 필요도 없을 정도가 됐다. 말이 없어도, 좀 섭섭한 일이 있어도 서로의 가슴에 앉아 있다 싶을 만큼 여유롭게 되었다. 언제나 눌재의 마음이 고맙다. 그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도 건강을 염려하며, 자식들의 취업과 결혼을 생각하는 세속의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 오랜 우정과 문학을 면면히 엮어가고 있으니 친구여,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신가.

 

이월춘 1986년 《지평》과 시집 《칠판지우개를 들고》로 등단. 월하지역문학상 외 수상. 시집 《그늘의 힘》 外.

 

 

 

■초대글

 

〈평사리행 국도에서〉를 읽으면서

이달균, 아니 우리를 추억하다

 

 

│이상옥(시인)

 

 

이달균과 만난 지 20년이 넘었다. 내가 1989년 《시문학》으로 등단하고 곧바로 경남문협에 가입하면서, 그 무렵 만났지 싶다. 우리는 같은 경남문협 식구로서 더구나 갑장이니 의기투합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재기발랄하고 시재가 넘치는 친구는 그 당시 이미 한 권의 시집을 출간했던 것 같다. 그게 《남해행》이지 싶다.

이달균은 만능엔터테이너여서 시낭송도 참 잘한다. 가령 어떤 문학모임 자리에서 흥이 나면 즉석 시낭송을 하는데, 윤동주의 〈별 헤는 밤〉 같은 것을 낭송하면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는지 모른다. 이어서 자작시 〈평사리행 국도에서〉까지 낭송하면, 그가 윤동주 못지않은 빼어난 서정을 지닌 시인이란 걸 알게 된다. 이미 문청시절부터 우리 지역에서 그의 시재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지금은 통영시청 공보실에 근무하는 공무원 신분이지만, 그는 오랫동안 풍각쟁이처럼 도시의, 떠도는 예인으로 살아 왔다. 젊은 시절 제약회사에 취직해 있을 때 이 마을 저 마을, 이 도시 저 도시를 차로 떠돌아다녔다.

 

살아있는 것들은 죄다 반짝인다

재첩을 줍는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분주한 한 떼의 송사리들처럼

강의 비늘은 살아서 반짝인다

강물은 늘 그 자리에 있어 왔지만

오늘은 내 여기 있다 여기 있다 손을 흔든다

물끄러미 가을 햇살들이 뒤돌아보는 평사리행 국도

나는 돌아갈 집을 잊기로 했다

눈 떠 있는 깨진 사발의 영혼처럼

나도 함께 반짝이며 어울릴 순 없을까

사납게 사라지는 버스, 두껍고 짙푸른 잎새

살아서 빛내는 오후는 아름답다

재첩이 여무는 날에 나란히 배들이 익어가듯이

아무것도 혼자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왜 살아있는 것들은

내 여기 있다 외치며 해종일 반짝이는가

존재의 고단함 역시 산 자의 몫이 아닌가

외로워서 반짝이고 싶은 나를 거기 세워두고

황혼 속에 파묻힌 우리들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달균, 〈평사리행 국도에서〉 전문

 

이 시는 아마 그 무렵의 체험을 읊은 시인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것들은 죄다 반짝인다”로 시작하는 이달균의 이 시 낭송을 지금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다. 그러면서 이달균을 만났던 30대 푸른 초반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는 그때 마산에 있었고, 나는 고성에 있었다. 우리는 무슨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주 만났다. 만나서 시를 이야기하고 삶을 얘기했다.

밤새 문청처럼 얘기를 해도 늘 아쉽기만 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외로워서 반짝이고 싶은 나를 거기 세워두고”라는 그의 시구처럼, 우리는 그때 많이 갈급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하지만, 당시는 별로 알아주지도 않던 그냥 우리들끼리의 시인이 아니었던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한 중앙집권적 문단 풍토 속에서 마산이나 고성의 우리는 변방의 시인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 스스로 시의 중심이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많이 외로워했을 터이다. 그러면서 다음날을 기약하고 우리들은 각각 “황혼 속에 파묻힌 우리들의 집으로” 돌아왔다. 날이 밝으면 또 우리는 살아있는 것들이어서, 우리의 존재를 반짝이며 확인하고 싶어 서로를 찾곤 했을 것이다.

그리고 20년이 더 지났다. 우리들은 50대 중반, 중년의 시인들이 되어 있었다. 이달균은 자유시뿐만 아니라 시조도 개척하여 우리 시단에 뚜렷한 자리를 확보한 중견시인이 되었다.

이번에 자유시집으로는 두 번째 출간하면서 우리 갑장 친구 몇 사람에게 지면을 할애해주었다. 역시 이달균다운 발상이다. 중앙의 이름 있는 출판사의 시리즈 시집을 굳이 사양하고, 우리 지역 출판사에서 시집을 출간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 흔한 시집 해설도 달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이달균이다.

 

 

이상옥 1989년 《시문학》 등단. 시문학상, 유심작품상 外 수상. 시집 《유리 그릇》 外. 창신대학 문창과 교수

 

 

 

 

 

■초대글

 

내 친구 시인 이달균

 

│김혜연(시인)

 

 

이달균은 시인이라는 말 말고는 딱히 그를 지칭할 만한 적격인 명칭이 생각나지 않는다.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으나 시인 말고는 도무지 해먹을 게 없을 것만 같은 이달균과는 이십여 년 넘게 거의 동성처럼 착각하며 만날 만큼 편한 친구 사이다. 그만큼 마음을 읽어주는 까닭에 여자들만 참석한 모임에도 곧잘 와서 한참 부담 없이 수다를 떨다 가곤 한다.

절친한 이들은 이런 섬세한 이달균에게 우리 세대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며 입을 모으곤 하는데 농담이 아니라 노는 솜씨 말솜씨 한몫 빠지지 않는데다 글솜씨 또한 빠지지 않으니 분명 한량은 한량이다. 그것뿐인가, 필요할 때마다 부르는 이가 많아 늘 공사다망한데 요즘은 통영에 새 직장을 구해 얼굴 보기가 더욱 쉽지 않게 되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생각나는 이달균과의 개인적인 일이 있다. 후배들과 볼일이 있어 외출했다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이달균을 만났다. 어디를 가려는 참인데 이왕 만났으니 다 같이 자신을 따라가잔다. 일행들을 모두 이끌고 간 곳이 강가 모래밭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에게 새 발자국을 보여주러 왔다는 이달균에 대해서 그날 이후 모든 일에 매우 관대해져 버렸다.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듯이 앞뒤 없이 앞만 보며 빠르게 달려온 이유가 갑자기 보고 싶은 강가의 새 발자국이었다니, 어쨌든 날씨는 화창했고 인적 없이 쓸쓸한 영화 장면 같은 가을풍경 속을 가로세로 어린아이처럼 시시덕거리며 보냈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기쁘게 보낸 뜻밖의 시간에 감동을 받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 엉뚱한 친구가 시인이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많은 매력을 가진 내 친구로도 영원히 자리를 매겼으니 남의 일에 무관심한 나로서도 짜증 내지 않은 참 알 수 없는 변덕스런 사건이었다.

살면서 본의 아니게 상처는 늘 가까이서 혼돈스럽게 따라다닌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놓고 따지는 것도 자존심 상해 혼자서 서운해 하는 일이 많다. 살아온 만큼의 무게를 어깨에 견장처럼 달고 스스로 해결하지도 못하는 시간들을 흘려보내는 불규칙한 삶이란 길 위에서 이달균이라는 친구가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참 좋다.

 

 

나는 왜 불처럼 살지 못할까

나는 왜 얼음처럼, 눈물처럼

새벽처럼 살지 못할까

 

문틈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나를

누가 회색물감으로 그리고 있다

─이달균, 〈나는 왜〉 전문

 

좋은 길동무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로인가, 더구나 거울 보듯 헤아려 내가 쓰는 수고로움 없이도 이렇게 내 마음과 똑같은 시를 지면에서 만나게 해주니 읽으면 읽을수록 또 얼마나 편하고 후련한가.

어찌 용기 없는 비겁함만 남았을까. 큰 칼을 빼고 단칼에 호통치고 해결하지 못하는가. 나와 똑같이 문 뒤에 서서 자꾸만 섭섭한 세상을 엿보고 있는 내 예의바른 몇몇의 친구들에게 눈치, 체면이라는 쓸모없는 문을 발로 한 방에 쾅 차고 나와서 허심탄회하게 만나 술 한잔 하자 말해야겠다. 비록 뻔한 주량이지만 이달균 시집을 핑계 삼아 나이를 잊고 시의 위로로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김혜연 《시와 시학》 신인상 등단

 

 

 

■초대글

 

내 오래된 기억의 집에는 친구가 있다

│정이경(시인)

 

 

그때 내가 있었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도원 같은 집 나는 내게서 너무 멀리 떠나왔네 처음 그곳에서 나는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너무 낯설어서 마르고 까칠해져서 외면하고 돌아서 버리지나 않을까 담쟁이 넝쿨 가득한 기억의 집이여 그때 내 무엇을 열망하고 믿었기에 오래된 수도원 같은 집을 가졌던가

 

걸음이 둔하다 애인의 습관처럼 익숙해진 관념들을 잘라내고 돌아가려 한다 회귀본능이란 낡은 언어를 쓰지 말아다오 누군들 떠나온 언덕 위의 한 그루 소나무가 그립지 않으랴 그때 내가 있었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도원 같은 집 지금 나는 내게로 돌아가려 하네

─이달균, 〈내 오래된 기억의 집〉 전문

 

이러저러한 자리에서 이달균 시인이 말했다. 일반적인 편집방법을 따르지 않고 시집을 낼 생각이라고, 그것도 서울에 있는 출판사가 아니라 우리 지역에서, 하여 받은 가제본 형식의 작품집 속에 있던 ‘이월춘에게’란 부제가 붙어 있는 위의 글이 제일 먼저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혼자서 잠깐 놀랐다. 80여 편의 작품 속에서 누군가가 일부러 펼쳐서 내보인 것도 아닌데 이 무슨 우연이란 말인가.

그렇다, 적어도 삼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시詩의 주인공이 되는 이월춘 시인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우리들 연결고리 속에는 ‘살어리 동인’이 있다. 한두 살, 또는 서너 살 터울의 동인들은 문청시절을 같이 보냈다. 특히 성향은 엄연히 달랐지만 이달균, 이월춘 시인과 나는 동갑이란 나이로 좀은 허물없이(?) 지내기도 하였다. 또 권경인 시인과 나만이 여자였던가? 그러나 합평회 시간이면 남녀가 따로 없었다. 여러 동인들 중에서도 유독 동안의 외모와 함께 미성을 가진, 이달균 시인의 말솜씨는 놀라웠다. 이런 연유로 그는 어느 자리에서건 지금도 유능한 사회자로서도 손색이 없는 걸까?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그 시기에 곧잘 대학들은 교문을 닫아걸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는 기차를 타고 산인저수지를 보러 자주 그의 고향에 가기도, 가서는 이명성, 조문규 선배들과 함께 시간을 갖기도 하면서 오늘날의 우리들을 꿈꾸기도 했다.

모산(이월춘 시인)과 눌재(이달균 시인)의 사이를 달리 길게 말할 필요가 있으랴.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거문고의 명인 백아가 자기의 소리를 잘 이해해 준 벗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 지음을 떠올려 본다.

시詩를 읽다보면,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친구를 끝없이 그리워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그 친구의 집은 수도원 같다고 한다. 아마도 쉽사리 허물어 새로이 고치거나 아니면 소문도 없이 팔아버리기까지 하는, 그런 집은 아니란 말일 게다. 설사 너무 오래되어 담쟁이 넝쿨만 창궐하는 그런 고색창연한 집일지라도.

집이란 무엇인가 밖에서 온갖 일들로 마음 상하고 큰소리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부대끼다가도 집에만 들어서면 가장 편안한 자세로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던가. 화자는 친구가 그런 집 같은 존재인 걸 안다. 심지어 “너무 멀리 떠나와서 낯설고 까칠해진” 화자를 외면하고 돌아서 버리지나 않을까로 잠시 고민도 하지만 “처음의 그곳에서 아직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치를 끝까지 버리지 않는다. 이는 사람에 대한 신뢰이고, 친구에 대한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화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도원 같은 집 지금 나는 내게로 돌아가려”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 집에는 아직도 소나무 한 그루 푸르게 서 있음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으므로.

 

정이경 《심상》 신인상 등단. 경남시인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