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시집

이달균 제4시집- 말뚝이 가라사대(동학시인선, 2009)

이달균 2011. 7. 14. 13:59

 

 

 

 

 

 

 

서문 <말뚝이 아뢰오.>

 

어릿광대 말뚝이 인사 아뢰오

 

이 몸은 말뚝이올시다

천하고 못난 탈놀음의 어릿광대

팔자는 오그라들고 청승은 늘어난다고

뛰어봐야 벼룩인 말뚝이올시다

 

주인공은 애시당초 언감생심이라

이 마당에서 저 마당으로 한 고비 넘길 때나

스리슬쩍 등장하여

익살맞은 몸짓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엑스트라급 조연이오

 

하지만 말뚝이 없는 탈마당은

재미는 고사하고 막힌 가슴 뻥 뚫어 줄

그 무엇도 없는 맹탕이 되고 마니

그 또한 소용됨이 꽤나 쏠쏠한 놈이라는

항간의 추임새도 있긴 있나 보옵디다

 

 

왜 오광대놀이인고 하니

 

양반은 잘나서

오방색 도포에다 팔자걸음

합죽선 손에 쥐고

권세 으쓱, 이리 오라 저리 가라

어르고 달래다가 휭 하니 저들끼리

지져먹고 볶아먹고 개평 한 줌 아니 주고

 

심산유곡 땡중은 내려와서

그나마 저자 울린 객주 처자 제 것인 양

요모조모 뜯어보고

보료에 앉았다가 금침에 누었다가

온갖 호사 다 누리니

 

이놈 말뚝이가

스스로 마당 펴고, 스스로 노래하며

징치하고 등두드릴 지경에 이르고 말았소

욕 하고 싶은 이는 맘껏 욕들 해도 좋소

 

어차피 삼현육각(三絃六角) 앞세우고

어사화(御史花)도 못썼으니

허랑한 광대들 불러 모아

매구 치고 쉬다 울다 엎어지며

놀다나 가고 싶소

 

고성오광대 구경을 한 십년 다녀본께

놀이치고는 참 재미지고

춤사위가 독특하니 그 감칠맛이 진국입디다

 

이 놀이는 말보다 몸짓이 우선이라

이 춤에서 저 춤으로 건너뛰다

아차! 놓친 사연들도 있음직하여

 

당신들은 탈춤으로 놀고

나는 입심으로 놀아볼까 하고

노래를 시작 했던 게요

 

 

마당에선 시(詩)가 곧 놀이고, 놀이가 또한 시더라

 

과장(科場)은 모두 다섯인데

가방끈 짧은 축들은

과장과 과장 사이 건너뛰기가 쉽지 않아

 

이 과장 따로 저 과장 따로

따로국밥을 차린듯하여 내 식대로

그냥 얘기 하나

옷깃에 실밥 풀 듯 풀어내어 엮었으니

원래 것과 다르다고

지나치게 서운케들 생각은 말아주소

 

광대놀음 하다 보니 양반이 동네북이라

매양 뚜르르 울리고 남에 것 가로채고

가슴에 나라국(國)자 붙이고도 백성은 뒷전이고

하는 짓은 제 잇속이나 챙기는

얌체 중의 얌체니 동네북은 당연지사

 

허나, 이 마당에선 죽일 놈의 양반은

양반대로 할 말 있고

큰애미 작은애미 시앗싸움 한창이라

귀 열고 들어보면

큰애미는 큰애미대로 작은애미는 작은애미대로

제 할 말이 있겠거니

딴 데 가선 못할 말

이 마당에선 다 하라고 멍석 한 번 펴보았소

 

문둥이 문둥북춤을 추는데

아침부터 웬 문둥춤이냐고

돌팔매 날아오고 나물 삶은 뜨거운 물에

입도 데고 뭣도 데어, 서럽고 서럽것소!

 

강산 두루미로

한반도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녀보니

산도 조져놓고 강도 조져놓아

천형 문둥이 욕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던 것을

 

그래서 문둥이는 문둥이대로

비비란 놈은 비비대로

제 할 말 조잘조잘

탈바가지 덮어쓰고 노래하니

이 보다 편할 데가 또 어디 있것소

 

 

왜 굳이 사설(辭說)인고?

 

마당에서 혼자 뛰고 구르니

점잖은 분이 툭! 치며

왜 하필 우주 정거장도 만들고

개도 복제하는 시대에

해묵은 시조고 사설이냐고

 

그리고 평시조에 사설을 붙이기도 하여

어째 섞어찌갠지 부대찌갠지

그렇고 그런 형식이란 게

좀 껄적지근 하지 않은가? 라고 묻습디다

 

예, 감히 말뚝이 아뢰오

이 마당을 엮기 전에 형식이라면

알맞은 나름의 형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소

 

그냥 자유롭게 제 할 말하기로야

자유시가 으뜸인데

산문시의 어조와 사설은 다르기도 하거니와

왠지 이 노래는

앞말이 뒷말을 주워섬기는

말부림의 음보가

자연스레 율격을 갖는 고로

그 가락을 의지하여 풍자와 재담을 비벼 넣어

제 맛을 내기에는

사설시조가 딱! 이란 생각을 하였소

 

평시조에 사설을 붙인 섞어찌개라!

그 참 알맞은 능청에 일침이오

물론 고시조에는 없는 형식이지만

현대에 와서 선배 시인들께서

더러 이 형식을 써서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지요

 

따져보면 평시조와 사설 각각의 형식이

어긋나지는 않았으니

둘을 붙인들 뭐 그리 잘못은 아닌 듯하오

 

사설시조에 대해 말들이 많은 줄 아오

암만, 떠돌아다니는 말뚝이라고

사설시조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는 줄 왜 모르겠소

 

자유시가 있는데 굳이 왜 사설이냐고?

고유의 정형을 가지는

시조의 정체성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지당하고도 지당하신 말씀!

허나 사설시조는 자유시 이전부터 이미 있어왔던

우리의 소중한 유산인 걸 또 어쩌것소

구리거울이 유리거울을 대신할 수 없지만

꼭 앉아야 할 동경(銅鏡)의 자리도 있긴 있는 법이오

 

이놈 말뚝이 짧은 생각을 말 해 볼라치면

시조는 선계인 듯 속계인 듯

풍류에 젖어가며 때론 메치고 때론 둘러치는

유장한 노래였거니

바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시조창은 너무 더디 읊는다고 느끼지 않았겠소

 

곰방대 한 대 피우는 시간에

더 많은 노랫말이 필요했다면

그래서 자연스레 노래한 것이

사설시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오

 

어찌 생각하면

사설시조는 요즘의 랩을 닮았소

라디오만 틀면 쏟아지는 랩처럼

빠르게 부르지는 않았겠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빠른 가락이 아니었겠소?

 

그에 담기는 내용도

양반님들 어깨 힘주고 흔히 부르던

지사적, 교훈적, 혹은 관조, 달관, 음풍농월을 담은

근사한 노래가 아닌

못난 놈들과 아낙들의 쌍스러운 음담패설

은근슬쩍 세상에 똥침을 놓는......

 

그 수다에 꽹매기를 때리면

해죽해죽 웃음이 나고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나는

신명이 바로 사설이 아니겠소?

 

다만 사설의 형식이 문제라면 문젠데

예전의 사설시조란 것도

딱히 “이것이 정형이다” 하고 말하기엔

음보의 말부림이 들쑥날쑥이었소

 

송강의 ‘장진주사(將進酒辭)’ 나

작자미상의 ‘두터비 리를 물고’가

각각인 게 그것이오

 

대개 초장은

엇시조처럼 조금 길게 늘어났고

중장은 평시조의 율격에서

크게 벗어나 길어진 형태였는데

『말뚝이의 꿈』에선

초장과 종장은 평시조 형식에 기대고

중장을 늘이는 방법을 취했소

 

어떤 분이 어험! 나서서

“이건 아니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엄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위험하긴 매양 한 가지요

암튼 노래는 노래인 게요

 

 

해학과 재담, 풍자가 그리워서

 

하긴, 섞어찌개라면 어떻고

부대찌개에 잡탕, 음탕이면 어떻소.

음식 게미만 있다 해도 저로선 다행이오

 

시(詩)든 음식이든 칼칼한 맛이 최고라며

우리 시를 자꾸 벼랑으로 몰아갔소

날카로운 메스에 잘려진

언어는 예리하여 그에 찔리면서

외려 통쾌해지는 카타르시스,

그런 타인을 통해 나를 보는 즐거움이

흡사 아편 같소

 

‘현대적’이란 이름이 낳은 무리이며 군상인데

이놈 역시 그 대열에서 이탈치 않으려 했고

시방도 이탈하고픈 맘은 전혀 없소

 

허나 그 시(詩)가 이 시(詩)같고

이 시가 그 시 같은 갈증은 어쩌지 못하겠소

그래서 때론 변덕을 부려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게요

 

노래로부터 너무 멀리 와 버리면

그 노래가 그리워지기도 안 하요

너무 도시적이거나 목가적이다 보면

해학과 재담, 풍자와 사투리를

잃어버리기도 하니께요

 

특히 경상도 보리문둥이 말은 영 재미없다는

선입견도 문제라면 문제고

유희성의 상실도 한 까닭이긴 했소

그래서 이런 풍각쟁이 짓을 해본 거요

 

 

훈수(訓手)

 

어느 날 멀찍이서

이놈 말뚝이 노는 양을 눈 여겨 보시던,

평론가 장경렬(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 형님께서

격려성 이-메일을 보내주셨소

 

“이 형! 어쩌다 일이 생겨, 부산이든, 울산이든, 진해든, 밀양이든, 진주든, 남쪽으로 가서 밤늦게 사람들과 어울리다가도 마지막 순간에 생각나는 사람은 항상 이 형이었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처럼 밤이 늦건 이르건 모든 사람을 다 뿌리치고 마산에 있는 이 형의 집필실로 달려갔겠소? 이처럼 내가 이 형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이겠소? 헤아려 보건대, 이 형의 넓고 깊고 따뜻한 마음 때문이 아닌가 하오. 아무리 늦은 시각에 전화를 해도 이 형은 늘 반가워했고, 또 만사 제치고 기다리다가 따뜻하게 나를 맞아 주곤 했소. 하지만 이 형의 깊고 넓고 따뜻한 마음이 내가 이 형에게 끌리는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소. 이기주의와 속물 근성을 완벽하게 숨기고 ‘모범생’으로 삶을 살아가다 문득 부끄러운 마음으로 떠올리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 바로 그 순수함을 연상케 하는 그 무엇이 이 형에게 있기 때문일 것이오. 이 형은 우리 모두가 이제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항상 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오.

이번에 이 형이 보내 준 ?말뚝이의 꿈?과 만나면서 나는 다시금 내가 왜 이 형에게 그처럼 끌리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소. 무엇보다도 이 형의 “노래” 한 편 한 편이 모두 이 형의 존재를 확인케 하면서 동시에 이 형의 부재를 확인케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오. 말하자면, 이 형의 “노래”를 접하면서 나는 이 형이 내 곁에 있다는 착각에 빠져드는 동시에 각 인물들이 이 형의 손길에서 벗어나 제각기 살아 숨쉬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오. 그만큼 “노래” 한 편 한 편이 이 형의 목소리와 어조, 심지어 이 형 특유의 언어 감각과 상상력을 느끼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 인물이 나름의 목소리와 개성을 지닌 채 각자 살아 숨쉬는 인물들로 느껴졌던 것이오.

이처럼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것 또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케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부재를 확인케 하는 것이 바로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고의 덕목이 아닌가 생각하오. 존재와 부재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그것은 다름 아닌 예술의 세계일 터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항상 이 형의 모습에서 삶을 예술의 경지로 이끌어가고 있는 놀라운 인간의 모습을 본다오. 이번에 나는 이 형의 ?말뚝이의 꿈?에서 이 형 특유의 개성적인 목소리뿐만 아니라 이 형이 우리에게 드러낼 수 있는 그 모든 다성적(多聲的)인 목소리가 마치 카니발의 현장에서 그러하듯 동시에 울려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소. ?말뚝이의 꿈?과 만나고 나니, 이제야 알 것 같소! 내가 왜 그처럼 이 형에게 끌리고 있는가를! 그리고 이 형의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한가를! 정녕코 ?말뚝이의 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이 형 자신인 동시에 이 형 자신이 아니오. 이 같은 경지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오. 이 형의 것과 같은 투명하고 순수한 마음에게만 허락되는 경지일 것이오.

어려운 일을 해 낸 이 형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축하의 말을 전하며 이만 줄이오. 곧 다시 만나 이 형의 집필실에서 하룻밤 이야기의 꽃을 피우거나, 또는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합강정(合江停)에 올라가 술 한 잔 즐길 수 있기 바라오.”

 

 

형님 말씀 흥감코 흥감치만

부끄럽기 그지없소

그저 꿈은 갖되

최선을 다 하라는 말씀으로 새겨듣고 싶소

 

 

파장(罷場)

 

어허, 할 말 많은 세상,

그럴수록 더욱 입을 닫으시오

조목조목 대꾸해봐야

쇠귀에 경 읽기니 침묵이 상수요

 

대신 이놈 말뚝이 잘난 놈 욕도 좀 하고

못난 놈 편에서 슬쩍 훈수도 두려 했는데

어째 영 초발심의 절반도 이뤄내지 못했소

 

그나마 세상이 조금은 변해서

‘오적(五賊)’의 시대는 아니니

이쯤에서 그만 둘라요

 

말뚝이 지치니 비비야 나오너라

비비 몸은 사람 형상

머리에 뿔 달렸고

무엇이든 잡아먹는 희한한 괴수요

그런 비비 뛰어나와 양반 징치하지만

종말엔 결국 서로를 얼싸안고

한바탕 웃고 놀고 끝낸다오

 

소인놈이 펼친 마당은

사연 많은 우리네 삶의 상처와 얼룩

어루만지는 난장이믄 됐소

지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매구치고 놀다보믄

종국엔 영롱한 눈물만 남던 것을

 

그런 법석 한판을 벌이고 싶었던 게요

어떻소? 그러면 된 것이 아니오?

결국은 지지고 볶아도

어울더울 살자는 게지

표창 던져 니 죽고 내 살자는

악다구니는 아니니

구경꾼은 앉아도 좋고 서도 좋소

 

이 마당을 펴는데

이래저래 도움 주신 선배, 친구, 후배님들

인사드릴 분이 한 두 분이 아니오

 

훈수로 덕담으로 격려해주신

이우걸․ 유재영 선생님

사설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신

윤금초․ 박시교 선생님

 

뭐니 뭐니 해도 길을 열어주신

고성오광대 이윤석 회장님,

항상 가까이서 맥을 집어주시고 처방을 해 주신

김열규․ 장경렬 교수님

 

그 외도 많은 분들의 도움이 계셨으니

이놈 말뚝이 그 황감한 마음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소

 

어쨌거나 장도 파장이고

마당놀이도 끝났응게

안녕히들 들어가시오

 

얼쑤!

 

 

 

 

 

1. 길 떠나는 광대들

-여는 노래

 

한 무리 광대패들 훠이훠이 재 넘는다

괭과리 징소리에 마음은 바쁘지만

장고야 뛰지도 말고 날라리야 날지 마라

 

꽃 지는 등성으로 별 먼저 돋아 오고

해 지는 마을에도 쉬어갈 집 있으니

한 세상 펼치면 마당이요 접으면 외줄타기

 

강물가고 산벚 져도 강산엔 눈물 없다

어절씨구, 사랑이야! 꽃이 져야 열매 맺지

내일은 말뚝이 되어 장마당을 울려볼까

 

고성만 자란만에 차오르는 밀물처럼

산첩첩 무량산을 광대패 넘어온다

굽이진 생의 끝자락 바람에 펄럭이고

 

 

2. <한량 조금산>

 

부지깽이도 모찌러 가는 오뉴월 한 방장을

 

훠이훠이 풍채 좋고 신수 훤한 조한량 거동보소. 풀멕인 도포 입고 꿩털 처억 높게 꽂은 중절모 눌러쓰고, 명무(名舞)에 붓 한 자루, 손기름 자르르 밴 단소도 동무하니 이만하면 근 달포 지낼 노자 마련은 되었것다. 오냐 가보자 어여 가보자 물 뎁히지 않아도 암탉이며 도야지 솜털까지 죄다 벳긴다는 돈 많고 한량 많은 동래하고도 펄펄 끓는 온천장이 아니더냐. 왜인(倭人)들 떼로 몰려 떼돈 쓰고 나자빠지는 동래 권번(券番)이 거기라면 오냐 놀아보자 화선지 펼쳐놓고 치자하면 설중매에 쓰자하면 초서에다 추어라 하면 나붓나붓 춤사위도 으뜸이니

 

보아라, 천하의 조금산이 풍류여행 떠나신다

 

 

※조금산 : 본명은 조용배 (趙鏞培1929-1991).

고성오광대를 이끌던 예인.

 

 

3. <‘만신의 피’ 허종복>

 

소가야 벌안으로 달빛도 푸르른 날

생과부 속심지 울음을며 타는 밤에

저만치, 껑충 멀대같은 허연 귀신 몸짓보아

 

오오매 엉덩짝 둥실, 풍만한 달무리

손톱으로 퉁겼다가 품안에도 품었다가 아아, 메구패 따라 남정네도 집나간 텅 빈 마당 위로 바람은 건들 밤꽃 내음만 흩뿌리고 떠나는데 귀신아, 왜 달 밝은 밤이면 논둑에 나와 애써 다독인 마음 이리 아리게 흔들어 쌓노. 굿거리 굿거리장단에 덩실 달은 구름 속에 숨고, 어느새 한 마리 백학 되어 학춤으로 노닐다가, 머언 절간 세속의 연 못내 끊지 못한 비구니 속내 들추이는 승무도 펼칠 즈음, 설핏 꿈결엔 듯 거류산 소롯길로 희뿌염 아침은 와, 한 농부 다랑논엔 피 반 나락 반인 게으름만 지천이라. 웃논에 물대고 오는 실한 농부 탓하기를,

 

“에라이, 온 만신의 피! 피나 뽑고 춤이나 추지.”

 

 

※ ‘만신의 피’: 허종복(1930-1995)의 별호.

조용배와 함께 고성오광대를 이끌던 예인.

 

 

 

4. <정분>

 

사랑이 온신다면 스미듯 오셔야지

시나브로 꿈 적시는 봄비처럼 오셔야지

화들짝 헤픈 도화처럼 왜 난분분 오시는가

내사 못할 짓이네 당췌 못할 짓이네

눈물에 자물자물 시나브로 잠이 들면

문풍지 살바람에도 흠칫 놀라 잠을 깬다

과부야 애솔나무 송화분 흩어지면

은근짜 옷고름 풀듯 보리밭도 흥감터라

궁노루 흐벅진 욕정의 중중모리 휘모리

어디선가 맹렬히 별똥별 떨어지고

들물 날물 한데 엉켜 소용돌이 뺑이 돈다

들끓던 햇살의 산조, 차츰 숨이 잣는다

쟁여둔 시간과 한 송이 목화구름

연두빛 보료는 향기롭고 따뜻하다

달디 단 밀봉의 오후, 꿈처럼 봄날은 간다

 

 

 

9. <문둥이 고하기를>

 

패랭이 눌러쓰고

웃음인지 울음인지

자줏빛 흔데자국

이리 씰룩 저리 씰룩

날라리 장고는 울고

춤사위 시작된다

 

노방초

모진 목숨

고향이라 찾아드니,

 

돌팔매에 몽둥이찜질, 나물 삶은 물 퍼붓는 인심도 서러워라. 조석지변(朝夕之變)하고 조변석개(朝變夕改)한 인간사야 매양 그렇지만, 옥수골 내천이며 무량산 구름은 어이 외면하고 떠나는가. 내 일찍이 강산 두루미로 떠돌고 돌았지만 희다 검다 모의하고 도모한 적 없었는데, 세상은 저들끼리 어르고 달래며 희희낙락이다. 청산엔 봄꽃들 지천인데 내겐 아직 잔설만 남아 있다. 몽그라진 손으로는 코풀기도 어려워라 손가락 떨어진 곳에 파리는 왜 앉느냐.

 

찔레야

무성한 들찔레야

똥파리 좀 쫓아다오

 

※흔데자국: 검은 색의 문둥병 흔적

 

 

 

10. <문둥북춤>

 

어제 밤 자고나니 코뼈에 눈썹 하나

오늘은 또 어디가 문드러져 사라질까

남산도 허리가 잘려 내 꼴인 듯 서러운데

 

양반아 군수님아

공방살 낀 연놈들아

 

대곡산 넘다보니 문드러진 꼬라지 이 몸만은 아니더라. 찢고 이기고 조져놓은 산세가 가히 장관이다. 날라리야 괭과리야 한도 눈물도 상관 말고 뛰놀아라. 코 하나 달아나니 빗물이 들고나고, 귀 하나 떨어지니 세상 잡소리 안 들린다. 소고에 북채 흔들며 굿거리 한 장단에 시름도 한숨도 쏟아내고, 앉거나 서거나 아프거나 마르거나 밟히거나 뒤지거나 나 몰라라 나는 몰라라. 엇장단에 덧뵈기로 춤판을 돌아간다. 어깨춤 한 번이면 고대광실이 내 것이요, 얼쑤 장단을 넘다보면 나랏님도 발 아래니

 

돌아라

부러진 어처구니

이빨 빠진 맷돌들아

 

 

 

13. <나는 말뚝이로소이다>

 

여보시오

소인놈

말뚝이 아뢰오

 

들에 가면 나무말뚝, 옥에 가면 강철말뚝, 과수집엔 공이말뚝, 고런 말뚝이 아니오라, 언 가슴 녹이는 민심의 어사또 말뚝이라 불러주오. 상전 잘 못 만나 분하고 억울하여 미치고 환장할 땐 지체 없이 기별하소. 내 이놈을 득달같이 쫓아가서 묵사발 만든 후에 자빠뜨리고 깔고 앉아 석달 열흘 삭이고 썩힌 지독한 방귀 한 방을 콧구멍에 정조준하여 피시시식! 푸하아아....통쾌하고 고소하다.

 

갓끈도

풀어버리고

반상 굴레 벗겨놓고

 

고쳐야 할 법(法) 있거든

버꾸 들고 버꾸 치고

버꾸 치다 꼴리거든

벗고 치고 벗고 치고

냇갱변

포강배미 허물 벗 듯

활씬 벗고 놀아보세

 

 

 

14. <얼쑤! 말뚝이, 양반 훈계>

 

저런저런! 양반님들

떼로 몰려 나왔구려

 

명색이 양반인데 탈바가지 덮어쓰고 꼴깝을 떠는 양이 한심도 하다마는 귀엽기도 하네그려. 모름지기 양반이면 육법전서 읽은 대로 세상주름 살펴주고, 가슴에 나라 국(國)자 붙였으면 국가대사 바로 읽어 옳은 처신 바랬더니, 남의 집 곳간 털어 지져먹고 볶아먹고 하나당 두나당 너거당 우리당 짝짜궁 궁합 제대로 맞춰 돌고 도는 모양을 그냥 두고 볼 순 없어 소인놈 대들보 들어 올려 호박에 말뚝 박고 똥 싸는 놈 까뭉개는 저 잘난 놈들을 향해,

 

메방을

놓아나 줄까

똥침을 콱

찔러나 줄까

 

 

 

15. <말뚝이 두레 결성>

 

말뚝아, 이놈 말뚝아!

어디 갔다 이제 오냐?

 

아따, 상줄라꼬 찾았능교, 밥줄라꼬 찾았능교? 나으리 할 일 따로 있고 말뚝이 할 일 따로 있지, 물에 데었소 불에 데었소? 벼룩이 뜀박질 하듯 요들방정, 와 그라요? 남인 북인 노론 소론 저들끼리 작당하여 찜쪄먹고 고아먹고 개평도 안 주길래 함안 말뚝이 의령 말뚝이 끼리끼리 모이고 모여 계 만들고 오는 길이오. 새경은 고사하고 끼니밥은 우찌됐소? 깃발 아래 대동단결, 오죽하면 떼로 모여 나발 불고 북 치것소.

 

나으리

노여워 마소

지렁이들 두레 모임

 

 

 

16.<다섯 양반 춤>

 

말뚝이 탈만 말고 기왕에 나왔으니

명문사학 기방에서 족집게 수학했던

동문들 다 불러 모아 춤 한번 놀아보소

 

논 팔아 산 생원님도

집 팔아 산 진사님도

과거 급제 못했지만

기방 급제는 따논당상

사대부

체면 잠시 접고

춤사위 한 번 보여주소.

 

일곱 양반 몰려나와 춤판을 어르는데

 

희고 검고 누르고 푸르고 붉은 복색 차려입고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들고나며 노니던 중, 원양반 지팽이 들고 어깨 으쓱 들썩이면 젓양반들 호응하며 까치걸음 발품이다. 노름판이고 삼세판이고 양반 버릇 개 주더냐? 춤판에서도 문자타령, 오방색(五方色)은 무엇이며 음양오행(陰陽五行)은 또 무엇이요. 툭 까놓고 말하자면 음양합일(陰陽合一) 운우지정(雲雨之情), 공맹자는 안중에 없고 매화 동백 품을 요량, 얼쑤! 장단을 넘는데, 접고 펴고 또 접으니 부채만 죽어난다.

 

쥘부채

접었다 펼 때

앙가슴은 멍이 들고

 

 

 

17. <양반 자랑>

 

얼씨구, 양반님들

때깔 곱고 맵시 좋다

북방에는 흑제양반, 남방에는 적제양반

원양반 중앙을 돌며

춤판을 호령한다

 

나으리, 저 양반님들

인물평이나 들려주소

 

어디 보자 발맘발맘 걸음새를 뜯어보자, 이 몸으로 말한다면 양반 중의 으뜸양반 원양반님이시고, 물색옷 입은 저 양반은 청보생원님이시다. 끄덕끄덕 저 양반은 수원 백서방과 남양 홍서방이 한 이불 덥고 만든 접으로 된 양반이시고, 빨아 논 김치가닥 같고 밑구녕에 빠진 촌충이 같은 저 도령은 이 몸이 평양감사 갔을 때 병풍 뒤에서 낮거리로 만든 도령이시다. 남방 북방 동방 서방 니 서방인지 내 서방인지 올 서방은 오고 갈 서방은 가고 주 서방은 죽고 서 서방은 선 채로 양반님들 떵떵 울리며 저자행차 하였으니,

 

인사나

탱탱 꼴아 올려라

유명짜한 분들이시다.

 

 

 

18. <말뚝이 타령>

 

이놈도 이리오라

저놈도 저리가라

통시 앉아 개 부리 듯

좌라좌라 우로우로

서러운 바사기 신세

어디 가서 한탄할꼬

 

말뚝이는 가벼운 놈,

남의 말 수이 마소

 

춤판 탈판 심심할까 재담하고 놀았는데, 반지빨라 못 쓸래라, 킥킥큭큭 이러쿵저러쿵 주둥이들 놀리지만, 쌀을 줬나 술을 줬나 눈대중으로 가늠마소. 버드남ㄱ에 쇠불알 추, 바람도 천근만근, 보풀인들 가벼우랴.

 

한치 앞

뵈지 않으니

제 앞가림 단디하소

 

연당못에 줄남생이

청석 틈에 송사리떼

말뚝인지 개뚝인지

맨맨한기 홍어좇이라

더럽고 아니꼬와서

유언장이나 쓰야것다

 

 

 

27.<제갈공명 환생이요>

 

낭패다 낭패로다!

어쩌나 어쩔거나!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진퇴양난(進退兩難), 장량(張良)아 복룡(伏龍) 봉추(鳳雛)야, 계책을 알려다오. 비비님 앞에 서니 나는 왜 작아질꼬. 역발산기개새(力拔山氣蓋世)던 항우(項羽)도 못 당하고 여포(呂布) 관우(關羽) 장익덕(張益德)도 당할 재간 없다하니, 오냐 묵어라, 비우 상하나따나 앵꼽아도 할 수 없다. 내가 니 고조할애빈데 그래도 묵을라쿠모 퍼뜩 쳐묵고 사라져라.

 

아이쿠! 고조할배요?

그리는 못 합니더!

 

탐관오리 악덕 양반 징치하러 왔다지만

동몽선습(童蒙先習) 읽은 터에 장유유서(長幼有序) 모를 리가

아무리 헛헛증 심하기로 할애비를 어찌할까

 

살았다 살았구나!

내가 바로 제갈공명

조상님 은덕인가 부처님이 도왔는가

얼씨구 굿거리장단 한 판 춤을 놀아보자

 

 

 

30. <두 각시춤>

 

불빛에 날라리 울고 징소리 애잔하다

감는 듯 감기는 듯 여인 둘 마주보며

살포시 코고무신 들어 나울나울 춤을 춘다

 

속살은 인절미 맛

찰지고 쫄깃쫄깃

도화살 낀 년이라면

복상사 조심조심

문단속 서방질 단속

자나 깨나 다시 보자

 

못 보던 색신데 어디서 왔다던가?

니가 아나 내가 아나 달포 전에 왔다는군

갓 따온 애호박같이 무쳐먹기 딱 좋구만

 

언뜻언뜻 스쳐가는

불빛에 비친 눈물방울

흰 장삼 휘감아 올려

얼굴을 훔치고는

먼 하늘 용마루에 걸린

별빛을 바라본다

 

슬픔인지 교태인지

우수인지 화냥낀지

이 밤 남정네들

돌아갈 집은 없다

춤사위 흐드러지니

밤은 자꾸 깊어가고

 

 

 

32. <땡중 가라사대>

 

보다시피 이 몸은

심심산골 중놈이오

 

내가 자발적으로다가 온 것이 아니라 박하분 냄새가 날 인도하였으니 이해들 하더라고. 밤낮없이 용맹정진(勇猛精進) 초의채식(草衣菜食) 하였더니 몸이 영 부실하여 약 삼아 개장국에 뒷다리 수육 두어 접시, 목 메이니 물 삼아 탁배기 한 동이 먹고 보니 아랫도리 뻐근하여 몸 좀 풀러 온 길이오.

 

뭣이여?

날 더러 부도덕?

차라리 돌로 치소

 

 

저자거리 가득 메운 군자님들 들어보소

 

갑자기 부도덕 부도덕 하니 이빨 뽀드득 갈리면서 설사 뿌드득 나올란다. 식첸가 급첸가, 아이고 속이야! 더럽고 메스껍다. 우리 불자들은 밥보시 돈보시 보다 육보시를 중히 치니 불제자 된 도리로 못 본 체할 수 없음은 당연지사 툭 까놓고 얘기해서 나는 잡놈에 땡중이요. 그래도 출퇴근 버스 대절하여 남의 신도 가로채고 면죄부 팔고, 부적 팔아 살진 않소. 아미타불도 하다보면 재미타불이 되기도 하고 그 짓도 심심하면 니미기씨불이 되기도 하니 부처가 별거든가 깨치면 성불이지. 이미 나는 도(道) 텄응께 시방 예가 도솔천이요 미륵세상이로구나.

 

쯧쯧쯧

법문 들었으면

불전이나 내 놓아라

 

 

 

40. <큰어미 타령>

 

영감아, 나도 엄연히

입술 붉은 꽃이요

술청에서 장마당에서

꽃 본 듯 희롱해 보소

지천엔 분분한 꽃잎

벌나비는 희희낙락

 

월향인 듯 매향인 듯

눈길 한 번 주어보소

 

세상 숫컷이란 다 요렇코롬 변죽인가? 장인 사위도 쑥떡쑥떡 앞서거니 뒷서거니 기방출입이라더니, 열녀문 홍살문에 이름은 좋다만은 기생질에 처첩살림 아이고 내 팔자야! 들병이도 방물년도 뽀얀 분단장에 찡긋 눈짓이면 은근슬쩍 지분대는 내 서방 바람끼 감당키 어려워라. 나도 한때는 눈부셨거니, 연지 곤지 찍고 초례청에 섰을 때는 천지간 눈발에도 향기 그윽하였으니, 오호라! 그 지엄한 법도가 날 가두네. 남녀가 유별하고 칠거지악 엄존하니 눈 멀고 귀먼 삼년에 벙어리 석삼년이 뉘집 똥개 신세던가.

 

진사댁 친정 가문에

똥칠할까 참아왔소

 

홧김에 서방질이라 맞바람 피워볼까

벌나비야 남정네야 꽃 지고 저무는 봄날

나 홀로 지지도 못해 속절없이 서러워라

 

누구 없소? 화급한

그림자로 담 넘어와

 

쿵떡쿵 마주 찧는

방아방아 양다리방아

 

물 철철 휘감아 도는

물레방아 퉁방아

 

한밤을 삭신 저리

아리고 쑤시도록

 

좌삼삼 우삼삼

휘몰아 좌우삼삼

 

부랑한 치한이라도

어울려 볼까

훠 얼 훨

 

 

 

 41. <작은어미 타령>

 

큰어미 강짜 새암

누구라 당하리요

 

서럽다 서럽다 한들 내 신세에 비할 손가. 족보에도 못 오르는 작은 어미 되었구나. 조실부모하고 밑으로 동생이 넷, 젓배도 걸식하고 이 골 저 골 떠돌다가 객주집 술청에서 허접한 갓 밑으로 기르다 만 염소수염에 낯바닥인지 손바닥인지 물꼬 패인 늙은 양반만나 내 꼴이 니 꼴 같고 니 꼴이 내 꼴 같아 못난 정도 정이라고 여기까지 왔건만은, 큰어미 없다하여 대라도 이을 요량, 인삼 찌꺼기에 녹용국물 얻어 멕여 삭정이 같은 아랫도리 하룻밤 사랑으로 애지중지 키운 씨앗 욕지기 참아가며 열 달을 보냈건만, 팔자소관 기막혀서 내 자식 낳아본들 큰어미 자식 되고 서러운 처첩살림 불을 보듯 뻔할 뻔자.

 

낸들 와

할 말 없것소

큰어미야 작작하소

 

 

 

49. <별사(別辭)>

 

잘 가소

훌훌 털고

다 잊고

떠나 가소

 

죄 있다면 이놈의 시상, 여자로 난 게 한 가지 죄요, 서방 복 못 타고 난 게 두 번째 죄요, 대 이을 자식 바란 일이 죄라면 세 번째 죈데, 곰곰 생각하니 전부 사내가 엮고 사내가 비튼 여자의 운명이오. 다음 생엔 할멈이 맹글고 뚜르르 울리는 시상에 태어나 정승판서도 해보고 꽃미남 기방에 불러 꺾고 만지고 빨아도 보소.

 

미련 둘

무엇도 없는

이승 하직 하구려

 

객사에 상주 없는

쓸쓸한 장례지만

 

발상(發喪) 고한 후에

만가(輓歌) 한 줄 지어 읽고

 

안동포 고운 수의하여

향나무관에 모시리다

 

 

 

53. <파장>

 

하직 막죽

가는 길에

소원이나

빌어주소

 

어화넘자 어화넘자 조심넘자 어화넘자 밀어라 땡겨라 어화넘자 이장님 면장님 군수님도 지전 한 장 꽂고 가소. 조롱박 벙거지 다 닳아가고 상두꾼 짚신마련 시급하니. 어화넘자 어화넘자 탈 바가지 벗어보소. 갑갑해서 지리 죽것다. 탈 쓰고 탈놀음 백날을 놀아도 말뚝이 누군지 문둥이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몰라도 탈, 알아도 탈, 먼지 탈탈 털지 마라. 어화넘자 어화넘자

 

춤꾼도

구경꾼들도

목축이고

파장하자

 

 

 

54. <마무리>

  

횃불은 사위고

광대놀이 끝났건만

 

신명은 신명대로

취기는 취기대로

 

흥타령 사랑타령에

삼삼오오 몰려간다

 

봄밤은 깊어가고

달은 이지러진다

 

광대놀이 끝나고 나니

개구리만 청승인데

 

멀리서 별똥별 하나

벽방산을 넘어간다

 

 

 

 

 

 

 

한국다운 폴키즘의 깨춤

-이달균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에 붙이는 산문

 

 

 

김 열 규 (서강대 명예 교수)

 

 

1) 통쾌할 통의 항렬자는?

 

현대시가 말뚝이와 맞대면 하면 어떤 판이 벌어질까? 오늘의 시가 말뚝이와 맞통하면 또 어떤 판이 벌어질까? 이 물음, 이 궁금증을 답하고 풀고 하면서 시인 이달균은 ‘말뚝이 가라사대’를 기획하고 또 연출했다.

 

“강남에 땅 부자면 일단 한번 조져본다. 학벌 좋고 품 넓어도 일단 한번 조져 본다. ”-<28. 양반도 할 말 있다>에서

 

이 한 토막 사설로도 그 기획이며 연출의 속내는 웬만큼 드러나고야 말 것이다.

말뚝이는 항변이고 고발이다. 레지스탕스요 도발이다. 그것은 제대로 된 문학이, 그리고 시대적 사명에 눈뜬 시가 으레 도맡아 나설 으뜸가는 구실이기도 하다. 이달균 시인은 그걸 하자고 시의 판을 왕창 벌인 것이다. 말의 춤판을 얼쑤! 하고 벌인 것이다.

말뚝이는 비야냥댐이고 창날이다. 펑펑 욕바가지고 벼락 치 듯 하는 비수요 칼날이다. 속 다르고 겉 다른, 어긋맞은 녀석들 웃음거리로 삼고 감투며 돈에 홀려서 넋이 빠진 얼치기들 난도질 하는 걸로는 말뚝이는 천하제일의 스타다.

이달균 시인은 시대를 넘어서서 통할 인간 윤리와 덕성을 위해서 말뚝이와 장단 맞추고 춤사위 맞추어서 시를 창작했다. 그게 다름 아닌, 바로 ‘ 말뚝이 가라사대다’이다. 이 ‘시로 읊는 탈춤 판’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고약한 사회와 시대로 해서 맺힌 응어리가 풀릴 것이다. 못 된 이간들로 해서 십년 묵은 마음의 체증이 내려 갈 것이다, 그래서 통렬하고 통쾌할 것이다. 그래서 ‘말뚝이의 꿈’은 해탈의 기운으로 설렐 것이다. 그래서 이달균 시인은 구세주가 되는 것이다.

 

...<앞 부분 생략>...

 

들에 가면 나무말뚝, 옥에 가면 강철말뚝, 과수집엔 공이말뚝, 고런 말뚝이 아니오라, 언 가슴 녹이는 민심의 어사또 말뚝이라 불러주오. ...(중간 생략)... 내 이놈을 득달같이 쫓아가서 묵사발 만든 후에 자빠뜨리고 깔고 앉아 석달 열흘 삭이고 썩힌 지독한 방귀 한 방을 콧구멍에 정조준하여 피시시식! 푸하하하.... 통쾌하고 고소하다.

 

갓끈도 풀어버리고

반상굴레 벗어놓고

 

고쳐야 할 법(法) 있거든

버꾸 들고 버꾸치고

버꾸 치다 꼴리거든

벗고 치고 벗고 치고

냇갱변

포강배미 허물 벗듯

활씬 벗고 놀아보세

 

-<13. 나는 말뚝이로소이다> 중에서

 

‘훗세, 물렀거라!’

모처럼 시원했다. 아니 통쾌했다. 통렬하기도 했다. ‘통쾌환’이면 변비가 창자를 통과하게 하는 옛적 방물장수의 약인데, 그걸 먹은 것 같다. 막힌 숨통이 열리고 침통이 사라지고 부화 통이 정화된 기분이다. 애통도 이젠 없다.

뭣 또 ‘통’자 항렬자가 없나? 간통은 안 되겠지만 관통은 어떨까? 똥통은 고약하지만 한숨 돌린 숨통은 또 어떻고 어떨까? 심통은 피해야지만 돼지저금통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 때 ‘통자 돌림자의 한자, 한글 내력을 캐는 것은 영, 아주 먹통일 게 분명하다.

십년, 아니 삼십, 사십년 묵은 체기, 우울, 답답함이 다 날아갔다. 물론 이 글도 그래서 얻은 신명, 그 때문에 누린 신바람으로 쓰고 있다. 아니 일필휘지하는 기분으로 평론 사촌쯤, 서평의 사돈쯤으로 행세할 글을 써 갈기고 있는데, 이 꾀는 바로 이달균 시인의 시속에서 배운 그대로다.

이달균의 문체, 말투를 흉내내면서 글을 써나가다 보니 속 깊이 군살로 맺힌 것, 혹으로 박힌 것, 딱지로 앉은 것, 군더더기로 집적대던 것, 모두 모두 ‘삼십육계 주위 상계’ 꽁무니를 빼고는 내빼고도 모자라서 달아났다. 물러 갈 것 다 물러가고 풀릴 것 죄 풀리고 씻가실 것 몽땅 가시고, 그야말로 태풍 일과! 세상이 후천개벽을 한다. 옹이, 공이, 뻐더렁이가 모조리 빠져 달아났다. 우리집 멍멍이는 나고 시퍼런 속내의 멍도 시뻘건 피멍도 다 삭았다. 이건 정말이다.

 

 

2) ‘폴키즘’, 그 꼬부랑말의 어사 출도

 

...<앞 부분 생략>...

 

앞의 비자가 성(姓)인지 뒤의 비자가 이름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비비라 부르니라. 옥황상제 명을 받아 남도 땅 기찰 중에 새털구름에 새가 없고, 양떼구름에 양이 없어 필시 무슨 사단이 난듯하여 왔느니라. 마패는 구경도 못한 한갓 먼지 같은 신세인데, 몸은 사람이요 머리는 괴물이라, 육간대청에 붙으면 폐가가 되고, 화려 뽐낸 자개농도 내가 들면 헌 농이 되니, 아무 씨잘대기 없는 미물이기도 하고, 넘볼 수 없는 놈 재판하는 판관이기도 하다.

 

찍히면

닥치는대로

잡아먹고 보느니라

-<25. 비비타령> 부분

 

 

이달균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배워서 남 주냐고 붓대를, 아니지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그게 탈춤 북장단은 아니지, 막대기 장단을 닮았으면 좋겠다. 가령, 김삿갓이 한글로 시를 쓰되, 고성오광대 춤사위로 쓴다면 어떻게 될까? 그 시 솜씨와 그 춤재주가 비빔밥이 되어서 한 덩치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그게 바로 다름 아닌, ‘말뚝이 가라사대’이다. 김삿갓의 그 욕설, 쌍소리, 재담이, 그리고 그 창날이 한자(漢子) 탈을 벗어던지고 탈춤 탈을 쓰면 이내 이달균의 ‘오광대’가 될 것이다. 이래서 ‘오광대’는 인류 문화 생기고 자그마치 2000년대와서 한국적인 ‘폴키즘’의 첫 탄생이 될 것이다. 첫 옥동자가 될 것이다.

폴키즘은 저 양것들 꼬부랑 말로는 ‘FOLKISM'이라고 쓴다. 글쎄 지구촌 시대니까, 탈춤과 ‘탈춤 시’ 이야기에 혀 꼬부랑 소리 한마디 정도야 어쩔라고! 폴키즘, 그 코맹맹이 소리는 뭔가? 폴카인지 뭔지 하는 남미의 춤? 천만에, 무식하기는. 아! 그럼 알겠다. 서부 총잽이 영화에 곧잘 나오는 그 포카 게임인지 뭔지 하는 그 포카? 맙소사, 더 무식하긴! 아아! 그럼 드디어 무식 면할 수 있게 됐다. 그래, 그래. 그 왜 돼지새끼 가리키는 그 ‘포크’ 아니면 저들 양코배기 음식 처 잡수실 때 쓰는 병신 숟갈 같은 그 포크, 그 숟갈 되다만 것 같은 포크지 뭐야? 치아라, 치아라. 그 무식 어디 남 주나!

이쯤 신갱이 부렸으니 이제 정체를 밝혀 보자. 폴키즘의 말뿌리는 물론 ‘폴크’다. 혀짜래기 소리대로 옮겨 쓰면 ‘FOLK'다. 동방예의지국의 진문(眞文)으로 고쳐 말하자면, 민속, 민중, 서민, 평민의 모든 것, 그 이념, 그 행동짓거리, 그 속내, 그 말투 등등 ......

모조리 ‘폴키즘’에 합가(合家)시켜도 된다. 그러니까, 당연히 사투리, 쌍말, 변말, 속어(俗語)가 그 기세를 황소 뿔처럼 돋굴 수 있다. 하긴 ‘사투리’란 말 그 자체를 이젠 씨를 말려야 한다. 표준어란 말, 그 잘난 척하는 말도 혀를 잘라놓아야 한다. 그저 경남 말이고 고성 말이 있을 뿐이다. 서울말도 지역말의 한가지일 뿐이다.

잘해야 상민으로 불러주고 심하면 상것, 아랫것들이라 불러오던 그 사람 씨종자가, 그 인간 피내림이 가진 모든 문화가 곧 ‘폴키즘’이다. 못난이, 모자라는 사람, 천덕구럭, 무지랭이, 반편, 가난뱅이, 소작농, 머슴, 종, 노비(奴婢)..... 이게 모두 우리나라에서 ‘폴키즘’을 빚어낸 주역들이다.

탈춤은 고성오광대가 그렇듯이 모두 ‘폴키즘’의 극치다. 육갑떨기일지도 모르고 병신 깨춤 추는 것이라고 해도 그만인 게 곧 ‘폴키즘’이다. 그러니 악에 차 있을 수밖에 없다. 악에 바쳐서는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치고 박고 두들기고 한다. ‘악다구’는 그들의 논설문이고 사설이고 평론이다. 사주고 팔자다. ‘뼉다구’가 비록 부러져도 그 악다구는 중앙청 종합청사만큼 올라선다.

악다구는 뭐고 깡다구는 또 뭘까? 소위, 윗것들이, 뭐라더라? 양반인지 쌍반인지, 양반인지 양말인지, 사대분지, 진분(塵氛)인지, 그자들이 다그치면 칠수록, 깔보고 얕보면 얕볼수록 그들 악다구, 그들 깡다구는 발악을 한다. 그들로서는 발악(發惡)이 ‘발 진리’고 ‘발 선(善)’이다. 발악과 반항을 가리기 힘든다. 말은 으레 삿대질이고, 손짓은 언제나 몽둥이질이고 발짓은 늘 '슛 골인'이다.

오기 빼고 나면 남을 게 없다. 육기가 없는 게 오히려 섭섭하다. 몸은 깡말라도 간은 다이어트를 해야 할 지경이다. 간 빼고 나면 인간이 없어질 상황이다. 간덩이는 부을 대로 부어 있고 쓸개는 소가죽, 쇠가죽, 철 가죽이다.

 

 

3) 말뚝이 국회 앞에 서다

 

‘말뚝이’는 이 문명 시대에, 이 글로벌리즘의 시대에 이들 ‘폴키즘’을 덩덩쿵, 춤추고 나섰다. 단순한 복구(復舊)나 복고(復古)는 아니다. 옛것 살리면서 이 시대의, 우리 지금 사회의 ‘신조어’, 새 팻션, 새 디자인이 되게 하고 있다. “정보시대면 다야? 정떨어지게! 서구 문명이면 그만이야? 문들어질 대로 문들어진 꼴 하고는! 산업사회면 뭘 해, 지구촌 시대면 다란 말인가? 많이 배운 자식이 못 배운 아비 욕한다고 민족 민중 말하면서 작금에 와서 시조 폄하 운운도 있다는데, 제발 하려거든 말뚝이에게 매 맞을 각오나 하고 지껄여라!” 하며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옛말 그런 것 없는 거’ 없음을 보여주자는 게다.

 

 

...<앞 부분 생략>...

명색이 양반인데 탈바가지 덮어 쓰고 꼴깝을 떠는 양이 한심도 하다마는 귀엽기도 하네그려. 모름지기 양반이면 육법전서 읽은 대로 세상 주름 살펴주고, 가슴에 나라 국(國)자 붙였으면 국가 대사 바로 읽어 옳은 처신 바랬더니, 남의 집 곳간 털어 지져 먹고 볶아 먹고 이 당 저 당 너거당 우리당 짝짝궁 궁합 제대로 맞춰 돌고 도는 모양을 그냥 두고 볼 순 없어 소인놈 대들보 들어 올려 호박에 말뚝 박고 똥 싸는 놈 까뭉개는 저 잘난 놈들을 향해 ,

 

메방을 / 놓아나 줄까 / 똥침을 찔러나 줄까

 

-<14. 얼쑤! 말뚝이 양반 훈계> 중에서

 

위의 인용에서 지금 이 글 쓰고 있는 필자가 직접 밑 줄 친 부분을 유심히 살펴봐주시기 바란다. 내시경까지는 모르고 현미경이나 돋보기 들이대고는 깨알 줍듯, 탐구하시기 바란다. 이 말뚝이 녀석이 서울 여의도의 어느 큰 건물 앞에서 누굴 보고 요사를 떨고 있는지 그걸 모르면 그 건물 안의 의식에 앉을 자격이 없을 것이다. 수많은 언어의 배설이 한국전역을 어지럽히고 있지만, 진정한 해학과 풍자가 사라진 한국시는 뭐란 말인가. 또 욕설과 고함은 있으되, 카타르시스는 없는 시들은 또 뭐란 말인가. 이런 시대에 이달균 시인이 그려낸 말뚝이 폴키즘은 찬란히 꽃핀 시사평론이다. 이 시들은 결코 옛이야기가 아니다. 사설은 바로 오늘 우리 시대의 거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들은 사설의 전범을 보여준다.

 

 

4) 난(亂)과 난(難) 그리고 또 난(爛)

 

그래서 난리가 났다. 폴키즘의 핵이자 뿌리는 난(亂)으로 궐기한다. 입신하고 양명한다. 한국적인 ‘폴키즘’은 난장판에서 우선 판을 쳤다. 마을 큰 굿에는 으레 남장이며 난장 놀이 또는 난장판이 벌어지곤 했다.

“흿뜩 디비가, 확! 엎어뿔까!’

바로 이것이다. 큰 소리쳐대던, 또는 헛소리 아우성치던 상층 사회가 억지로 떠맡긴 질서, 조직, 체제 그 따위를 쪽박 깨듯 하는 것이 난장판이다. 그 난장놀이의 집대성이 다름 아닌 탈춤이었다. 난장의 또 난장이 곧 탈춤이다. 과장마다, 거리마다, 무대 장면마다 사방에서 혼란, 문란, 교란 그리고 대란(大亂)을 일으킨다. 그래서 난은 드디어는 반란이 되고 동란(動亂)이 된다. 그러기에 사회의 주류에게서는 탈춤은 다만 난(亂)일 뿐이다.

한데 그 폴키즘의 난은 사회 상층에게는 잘난 척 구는 못난이들, 높은 척 버티는 저질들에게는 고난이 되고 난관이 되고 난처함이 된다. 서민의 난(亂)이 상층에게는 난(難)이 된다. 그들은 난관에 내팽개쳐지고 환란의 구렁텅이에 처박힌다. 그래서 서민의 난(亂)은 소란의 난이 되고 산란(散亂)의 난이 되다가 드디어 민란(民亂)이 되다가는 마침내 일대 변증법적인 지양을 거쳐서는 찬란(燦爛)의 난(爛), 현란(絢爛)의 난(爛)이 되어서 눈부시게 피어오른다. 아비 불길이 되어서 치솟아 오른다.

말, 말솜씨, 말재주 , 말버릇, 말투 .....

그리고 드디어는 욕, 욕지거리, 쌍소리, 비꼼, 비아냥, 빈정댐, 악다구, 등등..... 이 모든 이름을 총동원해서 불러야 할 게 곧 탈춤 사설이다. 폴키즘 말재주의 총본산이다. 이들은 발악, 야유, 놀림, 조롱, 콧방귀, 악쓰기 등을 뒤범벅으로 하고는 마침내는 칼날 같은 비판이 되고 청천벽력 같은 탄핵이 된다. 이것이 탈춤, 즉 ‘폴키즘의 언변’이다.

한편, 몸, 몸놀림, 몸짓, 몸 시늉, 몸 사위, 몸치장, 그리고 드디어는 몸부림까지 사대육신, 눈짓, 코치, ‘귀치’까지 또 오장 육부까지 총동원해서는 익살, 비웃음, 해학이 된다. 한데 우리 국산 말로는 모자란다. 천생 수입을 좀 해야 한다. 코미디, 유머, 사타이어, 파스, 넌센스, 슬립스틱 등등 층이 다르고 품격이 상이하고 질이 오사리 잡동산이인 또 들쭉날쭉인, 온갖 소극(笑劇)의 종내기들이 되어서 나타난다. 이 모든 몸의 놀림이 탈춤, ‘폴키즘의 액션’이다. 그러면서 가슴으로는 서러움, 고달픔이며 애달픔을 타고 체념, 달관을 익힌다. 그러다가 눈물 투성이인 채로 박장대소하고 그래서 그들 배가 터지면 그 여세로 못난 세상, 모순덩어리의 세상, 그 잘난 체면이 박살난다. 이것이 탈춤이 추어내는 ‘폴키즘의 정서’다.

 

...<앞 부분 생략>...

들병이도 방물년도 뽀얀 분단장에 찡긋 눈짓이면 은근슬쩍 지분대는 내 서방 도화끼 감당키 어려워라. 나도 한때는 눈부셨거니, 연지 곤지 찍고 초례청에 섰을 때는 천지간 눈발에도 향기 그윽하였으니, 오호라! 그 지엄한 법도가 날 가두네. 남녀가 유별하고 칠거지악 엄존하니 눈멀고 귀먼 삼년에 벙어리 석삼년이 뉘집 똥개 신세던가.

...<중간 생략>...

홧김에 서방질이라 맞바람 피워볼까

벌나비야 남정네야 꽃 지고 저무는 봄날

나 홀로 지지도 못해 속절없이 서러워라

 

누구없소? 화급한 / 그림자로 담 넘어와 // 쿵떡쿵 마주찧는 / 방아방아 양다리 방아 // 물 철철 휘감아 도는 / 물레방아 퉁방아 / 한밤을 삭신 저리 / 아리고 쑤시도록 // 좌삼삼 우삼삼 / 휘몰아 좌우삼삼 // 부랑한 치한이라도 / 어울려 볼까 / 훠 얼 훨

 

-<36. 큰 어미 타령> 중에서

 

 

이 모든 언어와 연기의 폴키즘을 그리고 정서의 폴키즘을 이달균 시인은 꿰뚫어 보고 있다. 말마다 몸짓마다, 사설마다, 몸 사위마다, 대사마다 표정마다 구석구석 남김없이 이 잡듯 잡아내고는 그 모든 것을 그의 시법으로, 시학으로 드디어는 시 정신(포에지)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달균 시인은 놀아댄다. 놀아도 대판 놀아댄다. 미국 남부를 집어삼킨 ‘카트리나’ 그 회오리처럼 휩쓸고 다닌다. 그 모든 것들을 말로 둔갑시켜서 이 서사시편들은 태어났다. 가장 한국적인 ‘폴키즘의 시학’, 그 결정(結晶)으로 54편의 ‘말뚝이 가라사대’는 춤추고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