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문학 여행

이달균의 시조 일람 - 신웅순

이달균 2015. 12. 9. 14:05

 

 

이달균의 시조 일람

 

석야 신웅순

 

 

오후의 햇살이 산밑까지 내려 왔다. 하산하는데 몇 달이 걸렸다. 햇살이 까칠까칠하다. 낙엽이 또박 또박 지상에다 편지를 쓰고 있다. 얼마 후면 흘림체가 되어 개발새발 쓸 것이다. 그 때면 글씨들은 가을 바람에 몸을 맡겨 기약 없이 먼 겨울길을 떠날 것이다.

그래서 가을은 외로운가 보다.

시인은 필자에게 다시 가을에라는 시를 보내왔다.

 

또 다시 늑대처럼 먼 길을 가야겠다

 

사람을 줄이고, 말수도 줄이고

 

이 가을, 외로움이란 얼마나 큰 스승이냐

 

이달균 - '다시 가을에' 전문

 

  

                                                                                             이달균 시조 '다시 가을에' 석야 서화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시인은 좀 외로워야 되는데, 요즘 문단은 시인을 외롭게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 다 끊고 혼자 있을 수는 있지만 문학축제, 출판기념회 등등이 너무 많아 사람 구실하며 살아가는 시인되기는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약간 혼자 칩거하면 누구 행사엔 가고 내 행사엔 안 온 다는 서운함을 표하는 이도 있어 외로움의 바다에 빠져보기도 쉽기 않습니다.

어쨌든 사람을 줄이고, 말수도 줄이면서 외로움이란 스승에게 기대어 보는 수밖에 없겠지요.

 

시인에게 설명은 사족이다. 시는 분석이 아니라 느낌이다. 시인은 외로워야 시를 쓸 수 있고 배고파야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은 거저 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 살아가면서 사람과의 관계도 판이 커진다. 이 노릇을 어찌하는가. 사람 구실이 쉽지 않다.

외로움이 큰 스승이라는 말은 경구 중의 경구, 평범한 기막힌 절구이다.

 

얼마 전 시인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저 이달균입니다.”

, 시 잘 쓰시는 분요?”

혹 시조 잡지시조예술을 읽어 볼 수 있는지요.”

, 일부 남은 것이 있습니다. 보내드리겠습니다.”

 

시조예술2007년 창간호 이후 2011년에 9호로 종간된, 필자 발행의 시조예술 잡지이다. 현대시조의 자유시화의 우려에서 출발한 잡지였다. 시조의 정체성 회복과 시조의 현대적 복원에 초점을 맞춘 시조 잡지였다.

필자는 글 잘 쓰시는 이 시인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시집 속에서 시인의 이름을 익혔고 시를 읽으면서 시인과 가까워졌을 뿐이었다. 궁금했던, 보고 싶은 남쪽 땅 어느 시인이라는 것만 필자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시인은 이 묵은 잡지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놀랐다. 이 잡지는 시조가 문학과 음악이어야 한다는 현대적 복원, 음악과의 소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현대시조시인들에게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잡지였다.

그런데 시인은 시조 음악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이다. 시조창과 시조문학에 대한 문제로 십여년을 고민해왔던 잡지였다.

반가웠다. 몇 권의 책을 부쳐드렸다. 시인도 자신의 시집과 산문집을 보내왔다. 필자에겐 커다란 기쁨이요, 행운이었다.

 

그 성당 종지기 영감이 죽었다

말없이 종만 울리며 살다간 사람은

가슴에 무슨 말들을 여미고 살았을까

 

종각 옆 광목 빨래처럼 펄럭이던 한 생애

당신의 아빨 빠진 웃음도 내 유년도

한 장의 낡은 사진처럼 붙박혀 남았을 뿐

- 이달균의 종소리전문

 

먼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 이국의 성당 종소리 같은 어느 영감. 아름다운 이런 외로움도 있을까. 빨래처럼 펄럭이던 생애도 이빨 빠진 웃음도 종소리로 사라져 어디선가 이름 모를 들꽃으로나 피었을 영감, 남은 것은 자신이 살아온 한 장의 흑백 사진뿐이라니. 우리도 그렇게 남을 인생이 아닌가.

 

오래 전 일이지만 아직도 생각나는 이달균과 개인적인 일이 있다. 후배들과 볼 일이 있어 외출 했다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이달균을 만났다. 어디를 가려는 참인데 이왕 만났으니 다 같이 자신 을 따라가잔다. 일행들을 모두 이끌고 간 곳이 강가 모래밭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우리에게 새 발자국을 보여주러 왔다는 이달균에 대해서 그날 이후 모든 일에 매우 관대해져버렸다.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듯이 앞뒤 없이 앞만 보며 빠르게 달려온 이유가 갑자기 보고 싶은 강가의 새 발자국이었다니, 어쨌든 날씨는 화창했고 인적 없이 쓸쓸한 영화 장 면 같은 가을 풍경 속을 가로세로 어린아이처럼 시시덕거리며 보냈다.

- 김혜연의 시인 이달균 내 친구일절

 

일 없이 새발자국을 보러 가다니. 필자도 일 없이 새 발자국 같은 그런 시인을 만나보고 싶다. 기다리면 새 발자국처럼 만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이 시인에게 필자의 그 사람시가 화답은 될 수 있을까. 가당찮지만 동병상련 같은 시였으면 좋겠다.

 

가을이 지났는데도

그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다.

 

가을꽃 이름 외우느라 길을 잃었나 봅니다.

- 필자의 그 사람전문

 

이 참에 딸의 남자 친구에게 산국이 어떤 꽃이고 구절초, 쑥부쟁이가 어떤 꽃인지 물어보아야겠다. 대답을 못하면 물릴 생각이다. 아니면 그 꽃을 직접 따오라고 하던지. 늘 듣는 새소리이지만 그 새의 이름을 어찌 알며, 늘 보는 꽃이건만 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어찌 아는가.

시인은 1987지평과 시집남해행을 출간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으며 1995시조시학신인상으로 시조 창작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문자의 파편,북행열차를 타고,말뚝이 가라사대, 6인시집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등이 있다. 중앙시조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시인에게는 또 하나의 빈자리가 있다. 그는 영화 마니아이기도 하다. 낯선 곳으로 길을 떠나는, 때로는 헤매다 길을 잃어도 좋은, 무채색 일상을 걸어나오는 그런 빈자리가 있다. 그는영화, 포장마차에서의 즐거운 수다영화 에세이를 펴내기도 했다.

금요일은 필자가 시민대학으로 시조 창작, 그 풍류와 멋을 강의하러 가는 날이다. 오늘은 이달균 시인의 시조를 갖고 학생들과 공부해야겠다. 시인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하는 와락 안겨드는 애인 같은 그런 시를 쓴다. 어쩌면 그리 쓸 수 있을까.

시인은 필자에게 단수 정격 시조에 대한 저의 생각은 선생님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덧붙이면서 시조 몇 수를 보내왔다. 가을하늘, 가을 호수 같이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가진 시들이다.

 

오늘도 한 사람과 등지고 왔습니다

 

슬픔을 나눠지라던 소명을 거역하고

 

냉정히 등만 보인 채 돌아온 내가 미워집니다

- 이달균의 ()

그래도 나는 쓰네 손가락을 구부려

떠나는 노래들을 부르고 불러 모아

 

저무는 가내공업 같은 내 영혼의 한 줄 시

- 이달균의 저무는 가내공업 같은 내 영혼의 한 줄 시

 

어느 교수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혹 연구실에 혈압계가 있느냐고.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손혈압계로 한 번 재보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가 가신지 십년도 넘었다. 어머니에게 재어드렸던 혈압계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냐고 했다. 추운 날은 반드시 목도리를 하고 다니시라고 신신당부했다.

아침이 춥다.

늦가을 어르신들은 저무는 가내공업같은 영혼의 한 줄 시같은 생각이 든다.

이달균 시인의 시조를 읽으면서 필자는 훌쩍 컸다. 그리고 행복했다. 필자도 그런 시조를 쓰고 싶다. 학문의 길에서 벗어나 이젠 시조 창작에 전념하고 싶다.

- 시조문학,2015.겨울호,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