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문학 여행

통영 - 상처입은 龍들의 도시 2.

이달균 2011. 10. 10. 22:06

굽 높은 祭器

神前에

제물을 받들어

올리는 -

굽 놉은 祭器

詩도 받들면

文字에

메이지 않는다

굽 높은 祭器!

- 김상옥의「祭器」전문

 

초청 김상옥의 시「祭器」는 언어에 대한 경외심을 극명히 보여준다. 극도로 말을 아끼고 다듬은 살아있는 시론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시 속에 내재된 은유의 심상들을 애기하기보다, 그가 이런 격조 높은 시 한 편을 써 낼 수 있었던 환경적 요인을 짚어보고 싶다. 그의 시「祭器」와 통영의 자랑인 중요 무형문화재 제55호인 소목장(小木匠)과는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 비록 지금은 쓰임새가 요긴하지도 잇속이 쏠쏠하지도 않은 탓에 잊혀져 가는 유산의 하나이지만, 전통목공예를 지켜가고자 하는 일부 소목장 전승인들의 열기만은 뜨겁다. 그런 격조에 걸맞는 향그런 목기 냄새가 나는 시를 쓴 시인의 고향이 통영이라면 그 또한 얼마나 근사한 어울림인가.

 

옛사람들은 통영을 퇴영이라 불렀다. 어쩐지 사투리로 불려지는 이름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통영군과 충무시가 합쳐져서 통영시가 되었지만, 노인들은 아직도 퇴영이라 부르는 이가 많다.

 

보채는 개펄도 없네

덕지덕지 찍어 붙일 흙도 없네

어글어글하는 돌담 뿐

돌구멍마다 소금바람만 불어

서글서글 떨어지네

진눈개비처럼 수염부터 적셔

비끌어 맨 벼랑들이 먼저 떨어지네

감싸고 감싼들 나가 눕는 세월

삿대로 짚어도 서퍼런 눈알 굴리며

칼을 갈며 서러운 것부터 잡고

한 시대의 간을 떼어

갈바람 끝에 거꾸로 매단 가난

찹다 참으로 찹네

올데갈데 없는 힘없는 백성의 한숨만 남아

문어 낙지 다리처럼 시뻘건 발버둥

보이지 않는 목덜미만 잡혀

가슴 찢어 먹물들인 기다림만

저물어 후미진 물이 간다 가네

길잃은 반물 잡혀 튀는 비늘

너털웃음에 걸려 따돌리고 있네

건너서 옆길로 내달리는 게거품

부글부글 일어 치밀어 앓는 물발

울음으로 모여 벼랑 끝에 흰피 쏟아내네

저어 몸부림의 번뇌 맨발로 퍼질러 앉아

두고두고 저승보다 이승을 되묻고 있네.

-차영한 <소매물섬> 전문

 

소매물도는 아름답다. 돌아앉으면 싸안는 가슴이 아늑하지만 바로 앉으면 대해를 마주한 거친 물살도 함께 가진 섬. 그 파도와 바람에 깎인 기암괴석과 물때를 맞춰 닿으면 한 아름의 둥근 돌들이 밭을 이뤄 등대섬을 이어주는 천혜의 비경.

 

그런데 왜 이 시는 슬픈가. 시집 한 권으로 섬시들을 묶은 통영의 시인 차영한에게 소매물도는 아름답기만한 섬은 아닌가 보다. 섬사람들의 가슴은 오징어 먹물처럼 검게 번져있다. 바람이 불기 전 만선의 꿈에 부푼 가슴이 이승인가 하면, 어느새 꺾인 돛배는 저승일 게다.

 

소매물도는 너무 아름다워 우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지난날 이곳을 가기 위해 몇 차례의 짐을 꾸린 적도 있다. 어떤 날은 배가 결항이 되어 또 어떤 날은 일행과의 약속이 파기되어 못간 적도 있다. 친구여, 소매물도는 혼자서 가라. 포구에 내려 언덕 위 폐교에 잠시 들러 숨을 고르고 맞은 편 등대섬의 비경을 보라. 그리고 민박을 정하고 여유가 된다면 낚싯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보라. 한 밤을 온전히 평상에 앉아 낯선 이와 함께 소주잔이라도 기울여 보라. 맑은 잔에 비친 별들이 객수를 달래주리라. 그 하루의 일박이 그대에겐 한 권의 사진첩이 되어주리니.

 

통영의 섬들을 다 말할 순 없다. 다만 긴장과 이완, 일탈과 구심력의 여정을 동시에 갖게하는 몇몇 섬들을 떠올리면 그 뿐. 다시 육지에 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