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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햇살이 눈을 찌르고 마른 바람이 머리칼을 날려 보내는 내 시월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늘 떠돌았던 삶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더 허허로웠고 그래서 행복했다.
옛 고을 비화가야는 합천, 의령, 함안을 경계 지으며 낙동강이 흐르고 화왕산, 천왕산, 영취산, 열왕산이 둘러서 비옥하고 아름다운 농경의 꽃이 피었던 고장. 창녕 사람들은 창녕을 제2의 경주라고 말한다. 남해가 지역민들끼리의 연대의식이 강하다면 이곳 사람들은 지역 그 자체에 대한 자긍심이 유달리 강한편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진통놀이인 쇠머리대기와 문호장굿 같은 것들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창녕군 초입엔 남지읍이 있다. 창녕읍을 향해 달려가는 차들은 남지에 눈길도 한번 주지 않지만 아직도 버스는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손님을 태우고 떠난다. 이곳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함안군 대산면이나, 3칠면이라 불리는 칠원, 칠서, 칠북면에 살았던 사람들 역시 남지 장날의 추억 한가지씩은 갖고 있으리라.
내 나이 열 서너 살쯤 되었을까. 빗물에 패여 먼지 풀풀 날리는 시오리 길을 리어카를 끌며 남지장에 와 씨돼지를 사가던 생각이 난다. 아버지와 함께 천막을 친 장국밥집에서 굵은 털이 박힌 돼지국밥 한 그릇을 사먹고 리어카를 끌며 남지철교를 건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절, 이 철교는 우리들에게 가슴 설레는 볼거리였으므로 먼 길을 걸어 이곳으로 가을 소풍을 오기도 하였다. 지금 내겐 그 시절 사진 한 장도 없지만 그 기억은 소중한 흑백 사진처럼 가슴깊이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철교 위로 차는 다니지 않는다. 철교의 생명이 다해가는 탓이다. 쿵쿵거리며 버스가 지날 때 차창으로 거대한 쇠기둥이 휘휘 지나는 모습을 이젠 볼 수가 없다.
남지철교는 1950년 9월8일 한국전쟁 때 북한군 남하의 방어선 역할을 했으며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145호 지정되었다. 이 다리 아래를 흐르는 강은 7백리 낙동강 가운데서 절경 중에 절경이라 한강 정구선생과 곽재우 장군이 뱃놀이를 펼치기도 했다.
아, 옛날이여, 너는 거기 가만히 서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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