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영화 이야기

김약국의 딸들 -1963년작 (유현목 감독. 흑백)

이달균 2011. 9. 1. 11:23


  영원한 영화(榮華)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그로인한 페허 또한 영원하지 않다.

 

  나는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을 자신의 고향 통영에 바치는 헌사로 읽었다. 통영시 명정리 출신인 작가는 통영 곳곳을 소설 속에 아로새겨놓았다. 그것이 바로 통영을 진정한 예향으로 만들고 있다. 통영인의 삶 속에서 기억되는 통영이 아니라 통영과 무관한 이에게도, 이 시대를 함께 살지 않은 이에게도 통영을 마음의 고향처럼 가깝게 여겨지게 했기 때문이다. 


  EBS에서 방영한 “김약국의 딸들”을 보았다. 물론 너무나 유명한 소설을 각색한 것이기에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마산영화자료관에 문의해 보았지만 DVD도 비디오테이프로도 제작된 적이 없다고 한다. 그곳에서도 EBS방영물을 녹화해둔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이 언어로 통영을 존재하게 했다면 이 영화는 영상으로 1963년 당시를 존재하게 한다. 몇 장의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그때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료적 가치가 크다. 남망산에서 바라보는 항남동과 강구안, 그리고 장터풍경은 단번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게 한다.


  1963년 제작된 영화지만 현대영화에 비해 전혀 손색없다. 지나친 비약으로 관객을 현혹케 하는 현대극보다 훨씬 리얼리티가 살아있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유현목 감독의 화면 곳곳에 진정성이 묻어난다.


  "정치는 최고의 예술이고 혁명은 로맨틱하다."


  이 말은 당시 최고의 배우였던 신성일이 조연으로 출연하여 한 말이다. 그는 주인공 둘째딸 용빈의 사촌오빠로 나오는데, 독립운동을 하는 젊은 로맨티스트를 연기했다. 물론 혁명가는 그의 친구(나중에 용빈의 남편이 될 사람)를 가리키는데, 현재의 강구안을 걸으며 한 말이다. 


  “저 노파가 물 푸는 노역이 싫다고 바가지를 내던질 수 있을까요? 안 푸면 배는 가라앉고 생명은 죽고 말지요. 인간 세상에는 비극이 없는 곳이 없는데 미칠 것만 같은 슬픔과 괴로움을 삼키고 극복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비극을 짓밟고 살 수 있는 것이죠.”


  이 말은 그 독립운동가이며 혁명가인 사내가 고통의 한을 품고 통영을 떠나려는 용빈에게 한 말이다. 김약국집의 대를 이은 비극을 가슴 속에 품고 살기보다 그 비극을 짓밟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갖기를 원한다. 이 말은 이 영화의 주제어라고 보면 된다.

 

호주 아이가
한국의 참외를 먹고 있다.
호주 선교사네 집에는
호주에서 가지고 온 뜰이 있고
뜰 위에는
그네들만의 여름하늘이 따로 또 있는데
 
길을 오면서
행주치마를 두른 천사를 본다
<김춘수 幼年時 1>

 

  당시 영화로는 흔치않게 외국인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선교사의 부인이며 용빈의 상담역으로 나온다. 소설엔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용빈은 어릴 때 주일학교에 나가면서부터 영국인 힐러 선교사와 전도사 케이트 양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들은 총명한 용빈을 가리켜 신의 축복을 받은 아이라 하였다. 그들이 살고 있는 붉은 벽돌집은 김 약국 집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김 약국 집에서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다. 이 호주선교사의 집은 통영 교회 120년의 역사이며 신교육의 전당이었다. 이 집은 김춘수의 유년기뿐만이 아니라 유치진, 유치환, 김상옥, 윤이상, 전혁림, 등등에게도 예술적 영감을 준 곳이라 한다.


 엄앵란, 김동원, 황정순, 박노식, 신성일, 황해, 최지희 등등 당대를 주름잡았던 배우들의 열연이 잘 조화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