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자료

新 문학기행 - 마산시인들과 文鄕 마산을 거닐다

이달균 2011. 8. 23. 10:25

新 문학기행 -- 마산시인들과 文鄕 마산을 거닐다


'가고파'의 그 바다가 깨어나고 있었다

 
  마산이 자랑하는 문신미술관 마당에서 조각가 문신을 회고하는 이달균(왼쪽) 시인과 성선경 시인.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 "승무원이 주는 사탕 하나 녹여 먹었더니 그사이 비행기가 김해공항에서 제주공항에 도착했더라"는 우스개를 듣고 낄낄대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남 얘기가 아니었다. 문학기행 버스 안에서 주최 측인 부산문화연구회가 장만한 삶은 달걀 하나 까먹었더니 그사이, 마산이었다.

국제신문이 동보서적, 부산문화연구회와 함께 '무작정 떠나는 문학기행'이라는 별칭의 신문학기행을 다닌 것이 이달로 82회째다. 82개월 동안 전국 문학현장을 다녔다는 뜻이다. 이 가까운 마산을 우리는 왜 무려 82번째만에야 찾게 된 것일까.

이렇게 말하면 마산이 섭섭해할지 모르겠지만, 그걸 무릅쓰고 말해야겠다. 그동안 마산에서 좀처럼 '소식'이 올라오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벌교가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기행 명소로 떠오르고, 한승원과 고 이청준의 고향인 장흥이 전국 최초 문학기행관광특구가 됐다. 춘천 김유정문학촌 근처 기차역 이름은 김유정역으로 바뀌었고, 하동이 이병주와 박경리의 문학 유산을 차곡차곡 챙기는 사이 통영은 문화예술 대표도시로 자리잡으면서 문화예술에서 상당한 투자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마산에서는 이런 방면에서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소식이 별로 안 들려왔다. 마산문학관이 개관하고 국립3·15민주묘지가 단장됐다는 뉴스 등이 있긴 했지만 이런 개별적 사안으로는 펄펄 나는 전국 지자체의 행보를 쫓기엔 역부족이었다. 소식이 없으니 몰랐고, 몰랐으니 문학기행도 못갔던 셈이다.


한국 처음 '시의 도시' 선포

 
  마산 동서동 어시장 바닷가에서 "이곳이 바로 노산 이은상의 '가고파'에 나오는 바다"라고 설명하는 오하룡 시인.
겨울가뭄에 단비가 왔던 지난 18일. 하루 동안 마산문학기행을 다닌 일행은 "놀랐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마산이 이렇게 가까웠냐"(박현주 동보서적 과장)며 한번 놀라고 "도심 곳곳에 문학 명소들이 몰려있어 볼 것도 많고 다니기도 편하다"(참가자 교사 김진숙 씨)며 두 번 놀랐다.

그 놀라움 속에는 마산이 이렇게까지 문화적으로 유서 깊은 도시인지 미처 몰랐다는 감탄과 그런 문화적 자원이 아직도 체계적으로 정리되거나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바로 그 때문에 앞으로 가능성과 희망이 더 클 것이라는 기대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이날 부산에서 찾아간 일행을 위해 마산의 시인이 무려 네 명이나 나와 환대하고 안내를 맡아줬다. (사실 이런 지극한 환대도 놀라운 것이었다.) 이광석 오하룡 이달균 성선경 시인이 그들. 이광석 시인은 1958년 청마 유치환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마산문인협회장, 경남문인협회장을 지냈다. '경남신문' 편집국장과 주필을 역임한 원로 언론인이기도 하다. 이달균 시인은 "이 선생님은 우리 지역에서 어떤 일을 도모하거나 단체를 꾸릴 때마다 후배들이 나서서 고문으로 모실 만큼 존경받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일행을 마산시 산호동 산호공원 시의 거리로 안내해 준 사람이 바로 이광석 시인이다. 마산시는 지난해 5월 3일 이곳에서 '마산 시의 도시 선포기념 문학축제'를 열었다. 이 행사는 '신호탄'으로 해석되었다. 문화가 침체한 도시라는 오명을 털고 지금부터라도 문화예술의 도시임을 만방에 알리고 내실도 기해나가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특이한 것은 마산이 그 출구를 '문학'으로 잡았다는 점이다.


20년간 차근차근 조성

 
  산호공원 시의 거리의 산 증인 이광석 시인.
'부산은 영화, 대구는 오페라, 전주는 국악과 한지, 통영은 윤이상 박경리 전혁림…'하는 식으로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을 내세우는 것이 대세인 상황에서 마산은 '문학'을 잡은 것이다.

영화나 오페라에 비해 흥행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는 문학을 도시의 대표 문화 아이콘으로 내세운 마산의 배포있는 전략이 싹튼 곳이 산호공원 시의 거리다. "이 공원에 이원수 고향의 봄 노래가 세워진 것이 1968년이다. 나도 그때 실무에 참여했는데 제막식 전날 겨우 노래비를 완성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2년 뒤 노산 이은상 선생의 '가고파' 시비가 여기에 섰다."

초창기부터 마산 시의 거리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이 시인은 "1990년대 초부터 이곳을 시의 거리로 조성했고 지금은 10기의 시비가 서 있다. 마산시는 이곳을 명실상부한 시의 거리로 가꾸기 위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느 날 갑자기 토목공사하듯 시비들을 꽂은 것이 아니라 20여 년 세월 동안 차근차근 시비를 세워왔고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 지난해 시의 도시를 선포했다는 설명에서 마산의 진짜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산호공원 시의 거리를 포함해 여정은 국립3·15민주묘지~마산문학관~문신미술관~돝섬~어시장 일원 마산바다~복국거리와 아구찜거리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확실하게 각인된 것은 마산 사람들은 마산을 '문향'(文鄕)으로 본다는 점. 특히 마산 출신의 문인으로 '가고파' 등을 국민 가슴에 심어준 노산 이은상의 비중이 컸다. 문학기행 일행을 안내한 시인들 또한 노산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


깊은 뿌리와 다양한 열매

그러나 마산문학관에서 마산 문학의 전모를 살폈더니 노산 또한 문향 마산의 일부일 뿐 마산 문학의 맥은 훨씬 뿌리깊고 열매도 많았다. 마산문학관은 원래 이은상 선생을 기려 노산문학관으로 하려다 그의 흠결을 부각시키고 문제 삼은 쪽의 의견과 충돌해 현재의 이름으로 2005년 개관했다. 여기서 마산에서 태어났거나, 마산에서 문학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보낸 문인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극로(국문학자·문인) 이은상(시조시인) 권환(카프문인) 이일래(동요 '산토끼' 작사·작곡) 지하련(여성소설가) 이원수(아동문학가) 김수돈 조향 김춘수 천상병 김태홍(이상 시인) 등 분야와 개성이 다양하다.

또 마산문학의 전통을 결핵문학의 산실, 민주문학의 터전, 바다문학의 보고로 정리해놓은 점이 눈에 띄었다. 특히 '결핵문학의 산실'이란 표현은 특별했다. '국내 문학관 학예사 1호'인 한정호 학예사는 "마산에 있던 국립마산병원에 나도향 권환 구상 김남조 김지하 등 유명한 문학인들이 결핵치료 차 요양을 왔고 이들은 '보건세계'를 비롯해 동인활동과 동인지 발행 등을 통해 결핵문학 활동을 펼쳤다"며 "결핵문학은 결국 치유와 갱생의 문학"이라고 설명했다. '결핵문학의 산실'을 자처할 수 있는 고장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돝섬과 상상력의 가능성

기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돝섬이다.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10분 채 안되게 들어가야 하는 돝섬은 마산이 자유수출기지로 번성하던 무렵 유원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지금은 마산의 경제적 쇠퇴와 함께 퇴락했다. 옛 시설물과 풍경은 그대로였다. 상상력과 이야기라는 무기로 퇴락한 섬 유원지를 아시아 유명 여행지로 탈바꿈시킨 남이섬이 떠올랐다.

돝섬은 남이섬보다 조건이 좋아보였다. 이 퇴락한 유원지 섬에 화가 음악인 연극인 문학인을 불러들이고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을 결합시킨다면 훌륭한 문화예술공간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해보았다. 탄탄한 문학적 토대를 갖춘 마산이면 못할 것도 없을 일. 그런 점에서 마산의 문화예술엔 더 큰 희망이 있는 것 아닐까.

성선경 시인과 이달균 시인은 "마산은 한국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 3·15의거의 정의로운 정신과 '가고파'의 따뜻한 마음이 공존하는 도시다. 둘 중 하나만 강조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돼선 안된다"고 문신미술관 마당에서 토로했다. 오하룡 시인은 마산수협 앞바다에서 "여기가 바로 '가고파'의 그 바다다. 이곳을 더 널리 알리고 가꾸고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 오염이 심하고 준비가 안돼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마산의 대표 시인들은 '문향 마산'의 오늘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결국 그런 애정어린 걱정이 이 '가진 것 많은' 도시의 잠재력을 깨워 일으킬 것이다.

신문학기행 참가문의 동보서적 (051)803-8000 부산문화연구회 441-0485 www.문학기행.kr
글·사진=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입력: 2009.01.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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