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을 대표하는 서원 관해정(觀海亭)
이 달 균
마산 사람 대부분은 서원곡을 성호골로 부른다. 대책 없는 경상도 발음 탓이기도 하지만 ‘성호동 위에 있는 계곡이니 그리 부르지 않을까?’ 하고 생각도 하겠지만 누가 그렇게 말한다면 단호히 “그건 정말 아니올시다.”라고 정정해 줘야 한다.
이곳은 서원이 있는 계곡, 즉 서원곡(書院谷)으로 부른다. 조선 중기의 학자 한강 정구(鄭逑:1543∼1620)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제자들이 회원서원을 세웠던 곳이다. 조선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지고 지금은 관해정(마산시 교방동 237번지)만 남아 있다. 관해정은 모옥(茅屋)으로 지어 강학하였던 곳이고 수차례의 중수와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마산시 문화재자료 제 2호로 등록되어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한강(寒岡)과 그의 문하(門下)인 미수(眉) 허목(許穆)의 향사(享祀)를 모시고 있다.
장맛비에 씻긴 계곡이 모처럼 청정하다. 서원곡 계곡물은 예전엔 이불빨래를 쉽게 할 정도로 맑고 수량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끊어질 듯 말 듯 처량히 흐르고 있다. 무학산 등산객들은 이 물길에 눈길도 주지 않고 산을 오른다.
손에 쥔 김태홍의 시는 세월을 말해 준다.
골을 감돌아 나간
절의 은은한 저녁 종소리
동실! 동실! 동실!
여운이 파문 짓는 곳
돛단배 셋 넷
놀 속에 졸구나
합포만은
오붓한 한 폭의 그림!
-김태홍 <관해정(觀海亭)에서> 전문
시인은 이곳에 놀러와 합포만을 떠가는 배들과 저녁놀, 석양을 울리는 산사의 종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 오늘 관해정 위 서원곡 계곡에서는 ‘은은한 저녁 종소리’ 대신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예불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물길이 없으니 여울지는 물살의 파문도 없고, 돛단배는커녕 아예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건물이 늘고 도시가 커지는 대신에 바다는 멀어지고 관해정을 둘러싼 풍경도 사라졌다. 그 맑고 풍부했던 서원곡물은 다 어디로 갔는지 계곡은 초췌하기만 하다.
한강 선생은 한훤당 김굉필의 외증손자이로서 유학의 양대 산맥인 퇴계와 남명 두 문하에서 수학한 큰 선비였다. 12세 무렵 통감(通鑑)을 읽었고, 21세 되던 해에 퇴계선생의 문하에 들었는데 한강의 영민함을 보고 훗날 대유(大儒)가 되기를 기대하였다. 그해 가을 향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대과에 응시하려다가 시절이 불순하여 단념하고 성인(聖人)의 학문에 힘쓸 것을 결심하게 된다.
24세 무렵에는 남명선생의 문하가 되어 남명의 기개와 학문을 전수 받았다. 선조 때 여러 선비들의 추천으로 벼슬에 올랐고, 이율곡은 그의 능력과 업적을 임금께 고하며 녹봉을 올려줄 것을 간청하기도 했다.
선조와 광해군을 거치면서 사임과 부임을 거듭하였다. 특히 광해군에게 수십 차례의 상소를 올려 목숨을 초개같이 내건 진정한 선비의 모범을 보였다. 아쉬운 것은 72세 무렵 강학당이었던 노곡정사가 화재를 입어 저술한 평생의 역저들과 수 천 권의 서적이 잿더미가 되어 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我欲爲亭近海灣 나는 바닷가 인접한 곳에 정자 짓고 싶노니
座中誰作蔡西山 좌중에 그 누구 채서산 같은 이 되어 보려는가
梔橘梅筠須早植 치자, 유자, 매화, 대나무 일찌감치 심어놓고
莫敎風雨六年間 적어도 6년간은 비바람에 상하지 않도록 하게나
이 시를 보면 한강이 관해정을 얼마나 생각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채서산은 주자의 제자로서 주자가 위학사건으로 핍박받아 도주에 유배되어 용릉에서 죽는 날 까지 섬김에 변함이 없었다. 서산은 복건성 건양 서산에 서산정사를 짓고 그 곳에서 한 평생 학문에 몰두하였는데, 한강은 이곳이 채서산을 떠올리며 학문할 만한 곳이라고 제자들을 고무시킨 것이다.
이처럼 퇴계와 남명으로부터 학통을 이어받고 나라를 위한 큰 인재였던 선생이 열과 성을 다해 제자들의 학문을 강학한 곳이니 중요한 문화재임이 틀림없다. 이곳 관해정에 와서 한강 선생의 발자취를 잠시나마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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