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문학 여행

마산 제 2경 돝섬

이달균 2011. 8. 18. 14:30

마산 제 2경  돝섬


이달균


 

시인에게 돝섬은 ‘푸른 보퉁이’


저만치 어머니가 돌아오신다

어머니는 목이 휘도록 푸른 보퉁이를 이고

가물가물 바다를 건너오신다

파도에 아랫도리가 다 젖은 어머니

어머니 푸른 보퉁이 속에는 내가 오래 소원하던

그리운 것들이 잔뜩 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그래 조금만 더 기다리렴 나를 향해

손 대답하는 듯 너울너울 푸른 보퉁이

그 모습은 신기하게 내가 자라는 만큼 멀어져서

처음에는 마루 끝에 서면 보이더니

.........<중략>........

지금은 아예 두 눈을 감아야 보인다

..........<중략>........

그래그래 조금만 더 기다리렴 나를 향해

손 대답하는 듯 너울너울 푸른 보퉁이

뺨에 젖은 바다새들 푸른 보퉁이에 앉아

지친 날개를 쉬어가기도 하고

콧날이 뾰쪽한 배들이 건달처럼 휘파람을 불며

푸른 보퉁이를 흔들며 지나가곤 할 것이다

-조은길 <돝섬>



어린 날 가고파의 바다는 꿈이며 동경이었다. 배들은 고동을 울리며 돌아오고 새벽잠을 깬 어른들은 쯧쯧! 하며 또 누구네 집 딸이 뱃사람과 눈이 맞아 봇짐을 쌌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바다 한 가운데에 돝섬이 있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돝섬은 어떻게 기억될까. 바다를 건너 돌아오는 어머니는 푸른 보퉁이를 들고 계셨다. 그 보퉁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하염없는 그리움이 되어 저만치 바다에 떠 있다. 그땐 너울너울 파도를 타며 다정히 손 대답도 해 주곤 했다. 하지만 섬은 차츰 멀어져 간다. 소녀에서 처녀로 더 나이든 여인이 되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처음엔 마루 끝에서 보이다가 차츰 지붕 위에서, 언덕에서, 산꼭대기에서 이젠 아예 두 눈을 감아야 보인다. 어쩌면 아득히 잊히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동심의 섬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손에 잡힐 듯 많은 얘기를 들려주던 섬은 천천히 걸어서 어느새 여느 섬처럼 그냥 멀어져 갔다. 매립이 되고 그곳에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자꾸만 위쪽으로  올라야만 보이는 섬. 비단 그녀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두 눈을 감으면 보인다. 푸른 보퉁이의 섬은 늘 여전하다. ‘뺨에 젖은 바다새들’ ‘지친 날개를 쉬어가기도 하고’, ‘콧날이 뾰쪽한 배들’은 항구를 돌아 휘파람을 불며 지나는 길목을 지킨다.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고 비치는 형상이 다르다. 어떤 이는 전설 탓인지 복된 돼지가 누워 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마산항에 떠 있는 한 마리 고래, 혹은 십장생의 하나인 거북이 누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조은길 시인은 특이하게도 먼 곳의 소식을 전해주는 푸른 보퉁이로 형상화 한다. 아직 매듭을 풀지 않은, 그래서 수많은 사연들을 주절주절 읊조려 줄 어릴 때 보던 그 보퉁이의 섬. 돝섬은 그렇게 앉아 있다.


최치원과 돼지와 돝섬


지난 호엔 무학산을 말하면서 돝섬의 전설을 얘기했다. 마산과 최치원은 뗄 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예전에는 돝섬에서 월영대가 가까웠다. 월영대는 그야말로 돝섬 위로 떠오른 달의 그림자를 보기에 최적지였으리라. 신라로 대표되는 선비인 최치원과 가락국왕이 총애한 미희에 얽힌 전설이므로 이채롭다. 

 

김해 가락왕에게 골포(마산의 옛 지명) 앞바다에 절세미인이 산다는 보고가 들어갔다. 그녀는 일찍이 왕의 총애를 받던 미희였으므로 사람을 보내 환궁을 재촉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금빛 돼지로 변해 큰 울음소리와 함께 두척산(무학산의 옛 이름) 어느 바위틈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에 왕은 군병을 보내 두척산 바위를 포위하고 활과 창으로 잡으려 하자 금돼지는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자 이상한 기운이 돝섬쪽으로 뻗더니 이내 사라졌는데, 이후엔 웬일인지 돝섬에서 밤마다 돼지 우는 소리와 함께 괴이한 광채가 났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최치원 선생이 마산에서 한동안 거주하였는데, 돝섬에서 제를 올리자 괴이한 현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돼지꿈은 돈을 부르는 길몽이다. 마산 바다 한 가운데에 돼지의 전설을 담은 섬이 있으니 마산은 길한 운을 가진 도시다. 한때 영화를 누리다 지금은 피폐해졌지만 그래도 드림베이의 꿈은 늘 갖고 있다.


가을이면 국화로 화려해진다.


강원도 춘천에 남이섬이 있고 거제에 외도가 있다면 마산엔 돝섬이 있다. 남이섬과 외도는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유명해지면서 덩달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두 섬은 사랑을 잃었거나 연애 중인 젊은이들이 주로 찾아온다. 특히 배용준을 사랑하는 일본인들도 더러 눈에 띈다.

 

여기에 비해 돝섬은 외부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아 조금 안타깝다. 몇 달 전 부산에서 온 문학기행단은 돝섬을 다녀가면서 가꾸기에 따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곳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우선 마산. 창원. 진해의 110만 인구를 끼고 있고, 특별한 관공코스가 없는 단점을 이곳으로 유인하는 방안을 강구한다면 꽤 매력 있는 곳이 될 수 있으니까. 또 마산에서 수시로 배가 다니고, 10분 정도의 거리이므로 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런 이점을 살려 문화적으로 이 섬을 꾸민다면 마산의 명소가 될 수도 있다. 한동안은 동물원과 서커스를 넣어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섬에 동물원이 있다는 것은 바로 환경과의 불화를 의미한다. 나름 여러 방안을 강구했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다.

 

20년 간 마산국제연극제를 해 왔는데 돝섬은 공연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3.15아트센터가 개관되기 전에는 이렇다 할 공연장이 없어서 이곳에서 야외무대를 꾸며 관객을 맞았다. 바다라는 이점을 살린 하늘극장, 파도극장, 갈매기극장, 물개극장 등 4개 야외극장이 대표적이었다. 이런 공연장은 정극 중심의 공연보다는 야외에서 대중들과 쉽게 호흡할 수 있는 작품들을 올려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해마다 10월이면 돝섬은 부산해 진다. 바로 가고파 국화축제 때문이다. 국화는 마산이 시배지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기려 축제를 한다. 지난 해 제 8회 대회에는 국화 한 뿌리에서 1053송이의 국화꽃이 전시되어 한국기록원으로부터 대한민국 최고기록 인증서를 받기도 했다. 이른바 ‘다륜대작’이라 불리는 이 거대 국화는 명실공히 마산 가고파 국화축제를 전국 최고의 명품 축제로 만든 걸작이었다. 섬 전체를 국화로 장식한 축제는 마산의 대명사가 되어간다.

 

그렇지만 평소의 돝섬은 너무 조용하다. 돼지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 돝섬은 선착장을 한가롭게 한다. 마산 9경 중 하나인 돝섬 앞으로 마창대교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지만 대교의 불빛도 빛을 잃고 있다. 드문드문 다니는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조금은 쓸쓸하다. 돝섬의 영화와 함께 마산의 영화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