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칼럼

가상 소설 ‘최진실’

이달균 2011. 7. 29. 15:37

원로배우 최진실이 올해 여든을 맞았다. 단역과 조역을 가리지 않고 영화와 드라마 현장을 뛰는, 가히 노익장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젊은 세대에겐 그저 노인배우로만 보이겠지만 사실 그녀는 빛나는 청춘의 별이었다. 1988년 데뷔한 이후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 이르기까지 일약 국민요정으로 불리며 톱스타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그칠 줄 모르는 성공가도였지만 그녀에게도 역경은 있었다. 야구선수 조모씨와의 결혼과 이혼 과정에서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의 여러 장면들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아픔 또한 그녀를 옥죄는 사슬이 될 수는 없었다. ‘정체는 배우의 독’이라며 작품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였고, 동시에 두 아이를 그늘 없이 키우고 성장시킨 강한 어머니였다. ‘줌마렐라’란 신조어는 상처를 극복한 그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었다.

 

이 배우의 생애를 말하면서 ‘최진실 사단’이란 모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함부로 타인의 세계에 나타나지 못하는 연예인들의 애환을 나눠가지는 것이 편해서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당시 성공한 연예인이었던 이영자, 정선희, 홍진경, 엄정화, 최화정씨 등등이었는데 함께 찜질방을 다니고 애경사도 챙겨주는 가족 같은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이 사적 관계는 중년이 되면서 대사회적 변화를 모색하는 공적 관계로 진화된다. 개인적 성취가 높아가면서 사회를 이끄는 각계각층의 인물들과 교제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관심은 사회적인 것으로 옮아갔다.

 

그 첫 시선은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었다. 최진실의 이혼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 사회단체의 위탁을 받아 일일 상담을 시작하면서 자녀 양육과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 이혼녀들의 삶에 눈 뜬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최진실 사단’은 이혼 자녀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하였고, 꾸준히 교육보조금을 후원하기도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모임에서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한참 후에 알려졌다. 그들은 성공한 연예인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사회적 책무이기에 작은 것부터 하나씩 실천한 소박한 모임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고 했다.

 

삶이 그렇듯 연기에서도 변화가 왔다. 늘 주연만 맡던 그녀에게 단역 제의가 왔다. 조연도 아닌 단역 제의는 생에서 부딪힌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애용했던 거울을 깨어버리고 집을 나섰다고 한다. 난생 처음 전국 일주에 나선 것이다. 그녀의 국토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들을 감고 도는 섬진강은 서녘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배를 드러낸 모래톱은 물살이 만든 주름으로 거대한 빗살무늬토기처럼 누워있었다. 그녀는 섬진강의 주름살을 바라보면서 출렁거리는 젊음의 충만도 좋지만 물이 떠난 자리를 지키는 늙은 모래톱이 더 좋아 보였다. 그 여행을 돌아와서 흔쾌히 단역을 맡았다. 이후 중장년 역을 거쳐 성실히 노인 연기에 몰두해 왔다.

 

그렇게 여든이 되었고 즐겁게 늙어온 팬들과 함께 수많은 추억을 돌아본다.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았지만 아직 방송국이나 충무로에선 공로상을 받지 않았다. 이는 “아직도 왕성한 현역이기에 공로상은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 때문이었다. 성급히 은퇴를 선언하고 얼마 후 재기를 외치는 이들의 계산된 상업성에도 준엄한 화살을 날리는 원로가 되었다.

 

며칠 전 자신의 재산 일부를 순수 예술인들을 위한 창작지원금으로 내놓았다. 자신은 대중예술인으로 인기와 재산을 모았지만 대중예술을 더욱 높은 차원으로 이끌고 밀어 올리는 데 공헌한 순수 예술인들에 대한 존경을 지원금이란 이름으로 드린다는 것이었다.

 

한 문화평론가가 쓴 400페이지 분량의 책 ‘인간 최진실’의 한 페이지는 이렇게 쓰여 있다.

 

“미당과 만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지 않았다면 국민요정이란 작은 성취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연기는 또 하나의 생을 사는 것이다. 극작가가 만든 인물은 배우에게 오면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빛깔로 거듭난다. 그러므로 그 인물이 내게 다가오기 전에 다른 인물들의 체험을 미리 해둘 필요가 있다. 그 열쇠는 바로 내가 읽은 문학작품들이었다. ‘뫼르소’와 ‘베르테르’는 내게 연기의 무게를 더해 준 스승이었다”라고.

 

 

- 기사작성: 2008-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