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칼럼

독도와 하이쿠, 그리고 시조

이달균 2011. 7. 29. 15:33

덥다. 올해 대한민국의 7월의 기상도는 무더위와 답답함이다. 날씨가 그렇고 나랏일이 그렇다. 촛불이 전국을 들끓었고, 유류인상으로 가계는 더 힘들어졌다. 곧바로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총격 피살 사건이 터졌고, 진상조사는커녕 사건은 미궁에 빠져든 형국이다. 결국 일본의 독도 야욕의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됨으로써 울화병의 결정판이 터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아무리 더워도 살아야 하고 아무리 미워도 이 나라 국민인 걸 어쩌겠는가. 시인 이육사는 일제치하에서도 칠월을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라고 아름답게 노래했다. 그래, 이럴 때일수록 우리 것, 우리 것의 우수성과 소중함에 빠져보는 것도 좋다.

 

지난 17일 경북 안동을 지나 영양군 석보면 두들문화마을을 다녀왔다. 이곳은 조선시대 광제원이 있었던 곳으로 퇴계학파의 중심인물인 석계 이시명의 고택, 석전서당, 1999년 1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안동 장씨부인 예절관, 이문열소설문학의 산실인 광산문학연구소가 있다.

 

이곳에서 하버드대학 한국학회 교수들과 학생,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생들이 한국전통문화체험을 하고 있었다. 하버드대 학생 중 절반 정도는 미국 거주 한국인 2세들이었는데 모기와 나방에도 불구하고 한옥에서의 생활이 매우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날 저녁, 이문열 소설 ‘선택’의 주인공인 장씨부인이 330년 전 자손을 위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요리서인 ‘음식디미방’의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체험은 귀한 시간이었다.

 

난생 처음 먹어본 죽처럼 떠먹는 술을 비롯하여, 꿩고기를 넣어 담근 물김치인 꿩김치, 석이버섯을 주재료로 잣을 으깨어 켜켜로 놓고 찐 석이편법, 두견화와 목단화 꽃잎을 찹쌀가루와 메밀에 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화전 등등의 요리들이 차례로 나온다. 이 요리들은 1600년대 조선 중엽과 말엽, 경북지방의 가정에서 실제 만들어 먹던 음식이라 한다. 생활양식이 변하면서 이 전통음식들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지만 문헌에 의거하여 생생히 재생된 음식들은 잔잔한 감동이었다.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식사 후의 한국고유의 문학인 시조의 학습시간이었다. 외국에서 사는 학생들과 하버드 교수 일행들의 너무나 적극적인 학습태도는 우릴 흐뭇하게 했다. 즉석에서 통역으로 진행된 강의에다 비교적 까다로워 보이는 3장6구 양식의 설명에도 눈을 빛내며 듣고 쓰는 모양이 보기에 좋았다. 지도상에 너무나 작게 그려진 모국이지만, 500년에 가까운 한글의 역사, 700년에 이른 전통 시가양식, 이런 설명을 듣는 그들의 눈빛은 긍지를 넘어 감동 그 자체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맥캔 교수는 시조의 우수성에 반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는 이미 세계적인 문학이 되었고 미국 지성인 1만5000명 정도가 하이쿠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시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이쿠는 시조의 3장 중 종장만으로 이뤄진 양식인데 반해 시조는 논법의 기본인 3장 형식을 갖추고 있으므로 가장 완전한 정형시다. 다만 민족 고유의 것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홀대받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세계문학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장르가 바로 시조다”고 역설한다.

 

이어 작가 이문열은 이곳에서 세계 시조쓰기 대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이런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인들을 초청하여 시조대회를 열어 시조의 위의를 알리고 한국문학 전체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일본을 생각한다. 소리 없이 강한 것이 진정 강한 것이다. 그들은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기 위해 수십년간 노력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마다 국회의원들이 독도를 찾아가고 하는 식으로 소리만 요란했다.

 

우리 문학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소리 없이 하이쿠를 앞세워 노벨 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할 때 우리 학계와 문단에선 정작 우리 것을 외면하고 격하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기에 요원해 보이는 한 단면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란 말은 명언이다.

 

  

- 기사작성: 2008-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