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칼럼

2008년 12월 마산 풍경

이달균 2011. 7. 29. 15:41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친구와 12월의 마산을 돌아보았다. 세계적인 불황 탓인지 시내는 썰렁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이 썰렁함은 세계 경제가 나빠지기 훨씬 전부터였다. 그의 기억은 70년대와 80년대 중반 즈음에 머물러 있다. 수출자유지역 근로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각, 강구항에 몰려와 출렁이던 숭어떼들과 함께 왁자지껄했고, 어시장에선 화기애애한 웃음과 상인들의 악다구니가 공존했다.

 

그런 기억을 가진 친구가 보는 지금 마산은 정말 철 지난 바닷가가 따로 없다. 오동동의 철제문이 내려진 상점들의 상호는 대부분 점포세다. 이곳이 거목다방이 있던 곳이고, 저곳은 송학다방이 있던 곳이지 하며 손짓을 해보지만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로 시내는 텅 비어 있다. 번성했던 족발골목과 어갈비 굽는 냄새가 진동하던 골목길도 허전하긴 마찬가지다. 두어 군데 아직 명맥을 잇고 있지만 예전의 분위기와는 너무 대조된다. 당시 마산에서 젊은 날을 보낸 이들이라면 고등어 갈비 굽는 냄새에 단박 기억의 시계를 되돌릴 수 있으리라.

 

다시 예전의 통술골목을 지난다. 우인촌, 귀빈 등등 이 골목에 즐비했던 통술집은 지금 없다. 신마산에 몇 해 전부터 통술거리가 생겼지만 예전 우리가 알던 곳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물론 변하는 시대 탓이긴 하지만 오동동 골목의 통술집들은 안주가 무료였다. 일을 마친 저녁 무렵, 시민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통술집을 찾았다. 주탁 위에 계속 나오는 안주에 주당들은 불콰해질 때까지 술을 마셨고 안주파들에게도 한 끼 식사를 대신하기엔 요긴한 장소였다.

 

이 무렵 창동 네거리엔 늘 구세군 자선냄비가 서 있었다. 그 종소리와 함께 가게마다 캐럴송이 울려 퍼졌다. 즐비했던 레코드 가게들은 도심을 한결 밝고 아름답게 해 주었다. 지금 창동엔 음악이 없다. 음악이 없는 거리는 유령의 도시처럼 낯설다. 음악 소리에 이끌려 팻분의 레코드 한 장을 산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커피맛을 제대로 알게 해준 가배다방, 동인활동 시절 시낭송회를 하곤 했던 까페 어린왕자, 예스터데이, 숲속의 빈터, 정원다방 등등 어느 것 하나 이름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하긴 세상 어느 것도 시종여일할 순 없다. 그래도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 나오는 자보식당처럼 옛 추억을 간직한 카페 하나쯤은 남아 있어도 좋으련만. 자보식당은 창작된 공간이지만 실제 유럽에는 역사를 간직한 곳들이 많다. 남프랑스 아를르에 있는 카페 (Cafe La Nuit)도 대표적인 곳 중 하나다. 걸작으로 꼽히는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이 된 이곳은 고흐카페로 불리며 여행객들을 맞는다.

 

친구는 강남극장이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그렇다. 얼마 전 강남극장이 무너졌다. 이 무너짐은 하고 많은 건물 중 하나를 허문 것과는 다른 상징성이 있다. 옛 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는 도시 마산의 절망이며 기성세대에게 거의 마지막 남은 추억 하나가 아득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극장은 돔형지붕에 원형의 집을 가진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필자는 언젠가 이 난을 통해 강남극장을 시에서 인수하여 영화자료관 등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다. 마산운동장에 어렵사리 영화자료관을 개관했지만 옛 영화포스터와 손때 묻은 자료들은 역사를 가진 곳에 두어야 제격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마산시는 오동동을 살리기 위해 3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 붓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사적인 건물 하나 보존하지 못하고 과연 문화거리 조성은 성공할까?

 

마산은 묵은 도시다. 개항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도시다. 그러나 정작 그에 걸맞은 고색창연한 그 무엇 하나 없다.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 가포는 매립되었고 추억들은 다 쓸려나갔지만 팔베개, 돌베개, 소낙비에서 들었던 그 막걸리잔은 우리들 기억 속에 여전히 있다. 잘 찾아 보면 3대째 내려오는 식당들도 있으니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고 누가 말한다. 그래. 온 행정력을 동원해 로봇랜드 유치를 확정지었다고 현수막을 내걸었으니 기다려 보자. 사라진 것은 사라졌지만 새로워질 것은 더 새롭게 맞아 보자. 이런 쓸쓸함이 가신 2009년의 마산을 기약해 본다.

 

 

- 기사작성: 2008-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