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를 생각한다. 우리들 욕망의 제어를 위해 회자되는 그리스 신화 속 이름이다. 미궁 속에서 탈출하면서 아버지(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날개는 밀초로 만들었으니 너무 높이 날지 말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이카루스는 충고를 듣지 않고 더 높이 날다 결국 태양열에 녹아 바다로 추락하고 만다.
1998년 금호미술관에 욕망의 덫에 걸린 26세의 신정아씨가 찾아온다. 미국 예일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는 이력과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통역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큐레이터가 된다. 2001년 성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수석 큐레이터를 거쳐 학예연구실장에 오른다. 그리고 2005년 9월 동국대 조교수, 2007년엔 광주비엔날레 공동감독에 임명된다. 하지만 그 화려한 비상은 처절한 종말을 예고하고 있었다. 빛나던 졸업장들이 허위로 드러나면서 9년 동안 한국 미술계를 쥐락펴락했던 신데렐라는 그만 추락하고 만 것이다.
파장은 의외로 심각하다. 허위학력에 분노하기도 하고, 예일대라는 간판에 선뜻 빗장을 따준 문턱 높은 미술관과 대학을 탓하기도 한다. 한편에선 처음부터 고졸 학력으로 미술관을 찾아갔다면 최소한의 기회나 있었을까. 그렇게라도 해서 잠재된 능력을 펴보고 싶었던 저학력자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이들도 있다.
사실 신정아씨의 추락도 자격 부족이지 자질 부족은 아닌 듯싶다. 큐레이터로서의 능력은 이미 검증된 바 있다. 1998년 5월, 금호미술관의 <쿨룩이와 둠박해>전을 비롯하여 같은 해 7월 <대한민국 언더그라운드 만화페스티벌> 전, 11월의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 전은 주요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기획전이었다. 참신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성공시키면서 신정아라는 이름을 각인시켜 성공가도에 이른 것이다.
지금 한국은 걷잡을 수 없는 학력 논란에 빠져들고 있다. 고백이든 저격성 루머든 줄줄이 이름은 거론된다. 영어방송 진행자 이지영, '디-워'의 감독 심형래, 만화가 이현세, 교수 정덕희,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창하, 동숭아트센터 대표이며 교수인 김옥랑, 연극배우이며 '월간 객석' 발행인 윤석화 등등의 명사들이 이 논란을 비켜가지 못했다.
그러자 신문에선 가방 끈 짧은 학력을 속이지 않고 성취를 이룬 이들을 조명하기도 한다. 영화감독 임권택, 시인이며 연출가인 이윤택, 대중음악인 신중현, 소설가 황석영, 시인 장정일, 영화배우 정우성, 가수 서태지, 만화가 허영만 등등. 이들은 분명 학력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히 제 분야에서 승부하여 성공한 예술인들이다. 허나 여기에 맹점이 있다. 이들을 기준으로 결코 우리 사회를 판단할 수 없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은 작품과 업적으로 검증받고 싶어 한다. 이미 검증된 예술인도 그와 관련된 공직을 맡으려면 학위가 걸린다. 그래서 아예 지원을 포기하거나 늦었지만 학위 대열에 동참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박사·교수를 예술가·전문인보다 위에 놓는 통념 때문이다. 능력과 열정보다 학력이 지배하는 시대, 이런 때에 신정아씨에게 무차별적으로 던지는 돌팔매는 너무 가혹하다. 자질이 아닌 자격으로 평가하는 사회가 낳은 기형아가아닌가.
한국사회의 맹점을 곧바로 치고 들어가 점령해 버린 당돌함에 허를 찔린 것이다. 그녀가 던진 부메랑은 간판전성시대의 옆구리를 찌르는 비수가 되었고 다시 자신을 파멸시킨 것이다. 무모하게 세상의 하늘을 높이 날고 싶었던 이카루스의 욕망, 그 허무한 추락은 결코 신정아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흩어지는 날개의 깃털은 시대의 얼굴 위로 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 기사작성: 200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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