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대표시

2017『시조시학』봄호 원고 (득음 외 4편)

이달균 2017. 4. 11. 10:52

2017『시조시학』봄호 원고 (득음 외 4편)

 

득음得音

이달균

 

소리는 날고 싶다 들바람 둠벙 건너듯

 

휘몰이로 돌아서 강물의 정수리까지

 

아름찬 직소폭포의 북벽에 닿고 싶다

 

적벽강 채석강을 품어 안은 변산반도

 

북두성 견우성이 어우러져 통정하고

 

윤슬의 만경창파는 진양조로 잦아든다

 

결 고운 그대는 국창國唱이 되어라

 

깨진 툭바리처럼 설운 난 바람이 되어

 

한바탕 쑥대머리나 부르며 놀다 가리니

 

그날은 찾아올까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이뤄질까

 

가을빛 스러지면 어느새 입동 무렵

 

노래는 구만리 가고 기러기는 장천 간다

 

 

기념관

이달균

 

시인,

바람 닮고

비 닮은

애인이여

 

헌 책방 먼지 묻은 서재를 지키는

 

오롯한

시집 한 권이

묵중한

기념관이다

 

 

고사목(古死木)

 

이달균

 

올 가을 나무는 성장을 멈추었다 허리 고추 세워 하늘에 닿으려던 욕망을 갈무리하고 뼈대를 여미었다

 

천 년 전 씨앗 하나로 지상에 내렸을 때 표표히 떠도는 한 선비의 뒷모습도 황산벌 그 영웅들의 흙먼지도 보았다

 

왕조를 세운 이도 흥망을 불러온 이도 지금은 강토의 거름이 되었듯이 기왓장 한 조각에도 궁량한 사연은 있다

 

칼끝에 스치는 찰나의 섬광처럼 맹렬하고 고요했던 천년 생애를 건너 즈믄 해 목신木神의 날들을 다시금 헤며간다

 

 

죽순

 

이달균

 

비 온 뒤, 땅에다

 

발 묻고 서 있으면

 

무럭무럭 푸른 가지

 

푸른 생각 절로 돋는다

얼씨구! 고마운 봄비

 

한 마디 더 자랐네

 

 

시집詩集


이달균

 

경기가 안 좋다는데 시집은 쏟아진다

 

수요는 없는데 공급은 과잉이다

 

저명한 경제학자도 풀지 못한 방정식

<2017 시조시학 봄호>

 

 

 

약력

57년 경남 함안 출생

87년 시집『南海行』과 무크 『지평』으로 등단.

『늙은 사자』외 5권의 시집이 있고,

영화에세이집『영화, 포장마차에서의 즐거운 수다』가 있다.

중앙시조대상, 경남문학상 외 수상

 

주소 : 53040 경남 통영시 통영해안로 통영시청 집필실

E-mail : moon1509@korea.kr

010-2590-1509

 

시작노트

 

진정한 명창이라면 소리도 만질 수 있어야 한다. 그 경지가 득음일까. 하지만 득음했다고 느끼는 순간, 길은 허방이 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생선 경매사들도 득음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고 한다. 오늘도 우화등선을 꿈꾸면서 명창의 길을 따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