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시조시학』봄호 원고 (득음 외 4편)
득음得音
이달균
소리는 날고 싶다 들바람 둠벙 건너듯
휘몰이로 돌아서 강물의 정수리까지
아름찬 직소폭포의 북벽에 닿고 싶다
적벽강 채석강을 품어 안은 변산반도
북두성 견우성이 어우러져 통정하고
윤슬의 만경창파는 진양조로 잦아든다
결 고운 그대는 국창國唱이 되어라
깨진 툭바리처럼 설운 난 바람이 되어
한바탕 쑥대머리나 부르며 놀다 가리니
그날은 찾아올까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이뤄질까
가을빛 스러지면 어느새 입동 무렵
노래는 구만리 가고 기러기는 장천 간다
기념관
이달균
시인,
바람 닮고
비 닮은
애인이여
헌 책방 먼지 묻은 서재를 지키는
오롯한
시집 한 권이
묵중한
기념관이다
고사목(古死木)
이달균
올 가을 나무는 성장을 멈추었다 허리 고추 세워 하늘에 닿으려던 욕망을 갈무리하고 뼈대를 여미었다
천 년 전 씨앗 하나로 지상에 내렸을 때 표표히 떠도는 한 선비의 뒷모습도 황산벌 그 영웅들의 흙먼지도 보았다
왕조를 세운 이도 흥망을 불러온 이도 지금은 강토의 거름이 되었듯이 기왓장 한 조각에도 궁량한 사연은 있다
칼끝에 스치는 찰나의 섬광처럼 맹렬하고 고요했던 천년 생애를 건너 즈믄 해 목신木神의 날들을 다시금 헤며간다
죽순
이달균
비 온 뒤, 땅에다
발 묻고 서 있으면
무럭무럭 푸른 가지
푸른 생각 절로 돋는다
얼씨구! 고마운 봄비
한 마디 더 자랐네
시집詩集
이달균
경기가 안 좋다는데 시집은 쏟아진다
수요는 없는데 공급은 과잉이다
저명한 경제학자도 풀지 못한 방정식
<2017 시조시학 봄호>
약력
57년 경남 함안 출생
87년 시집『南海行』과 무크 『지평』으로 등단.
『늙은 사자』외 5권의 시집이 있고,
영화에세이집『영화, 포장마차에서의 즐거운 수다』가 있다.
중앙시조대상, 경남문학상 외 수상
주소 : 53040 경남 통영시 통영해안로 통영시청 집필실
E-mail : moon1509@korea.kr
010-2590-1509
시작노트
진정한 명창이라면 소리도 만질 수 있어야 한다. 그 경지가 득음일까. 하지만 득음했다고 느끼는 순간, 길은 허방이 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생선 경매사들도 득음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고 한다. 오늘도 우화등선을 꿈꾸면서 명창의 길을 따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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