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터널을 지나 용화사를 찾았다.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선사가 처음 지었으며, 조선 인조 6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18년 벽담선사가 다시 지어 용화사라 하였다 한다.
화가 이중섭이 통영에 와 있을 때 미륵도 용화사 위에 있는 도솔선원의 효봉스님과 교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조시인 김상옥이 길을 터놓았기 때문이었다. 효봉스님과 이중섭은 고향이 같은 평양이라 옛 고향 얘기도 하며 다정히 지냈다고 한다. 고은의「이중섭 평전」을 펼쳐 보면 당시 통영을 무대로 석수정, 전혁림, 유강렬, 장욱진, 박생광, 송혜수, 유치환, 이영도, 김상옥 등이 어울렸던 일화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보물 제 293호인 세병관을 돌아보았다. 제 6대 통제사 이경준이 1605년에 창건한 객사로서 통제영의 상징적 건물이다. 세병관이란 이름은 挽河洗兵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곳에서 통영의 예인들은 한산도와 다도해 일대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작곡가 윤이상이 교육받았던 소학교로써 맨처음 서양악기(오르간)를 만난 곳이기도 했다.
나는 세병관을 생각하면 건물 전체 천장에 그려진 낡아가는 벽화가 걱정이다. 사람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술혼을 보러 이탈리아에 가지만 통영의 이름 없는 화가들이 빼곡이 그린 세병관의 그림을 보러 오지는 않는다. 더욱이 이 그림들은 풍상에 낡아만 가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절의 단청처럼 복원하기도 쉽지 않은 그림들이라 더욱 그렇다. 레이저로 그림의 복원은 가능하나 도료가 옛도료 그대일 수 없으니 진정한 복원은 요원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대로 두는 편이 낫다니 낡아가는 저 그림들을 어쩌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를 지배한다
사계의 별빛을 짙고 엷게 하는 바람의 빛깔과
죽어가는 사자의 꿈 혹은 그 곁을 맴도는 개미의 꿈
이미 부재하는, 그러나 내게서 실존하는……
노화가는 평생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에 의해 지배당해 왔다
-이달균의 졸시 <抽象> 전문
전혁림 미술관 간다. 이 미술관은 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전혁림 선생이 사비를 들여 지은 것이다. 벽은 선생께서 즐겨 사용하던 오방색의 타일을 사용하였는데, 카메라를 든 이라면 작가가 아니라도 아름다운 사진이 찍혀진다.
몇 해 전, 노화가는 말했다. 청마문학관에서 시화제를 할 때다. 가을 뙤약볕을 피해 차양 아래서 노구임에도 그림에 대해 말할 때는 눈빛이 형형했다. “생각과 느낌은 볼 수도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나는 그것을 그린다. 그게 바로 추상이다.” 라고. 그의 그림이 실험적이라 하지만, 나는 익숙한 삶의 반영이라 말하고 싶다. 원색의 바다와 하늘, 바람의 빛깔과 민화, 단청, 지함을 닮은 형상들. 평생 통영에서 보고 체득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한국의 나폴리라고 부르지만 기실은 나폴리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한다. 항구 통영엔 너무 많은 인물과 너무 많은 섬들과 깨알 같은 전설들이 있다. 충렬사, 착량모, 미래사, 통제영의 열두 공방, 한산도, 사량도, 욕지도를 비롯한 오백스물 여섯개의 섬들, 이 짧은 지면 속에 그토록 출중한 인물들과 수없이 많은 문화유적의 지도를 어떻게 다 그릴 수 있으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와 거가대로가 개통되어 이제 통영은 교통이 수월해졌다. 그런 탓으로 관광객이 줄을 잇는다. 예술혼에 젖거나 신이 내린 축복이라는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거나 한려수도조망 케이블카를 타러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통영시 초입에서 고성군 동해면으로 빠지는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고성군과 통영시의 경계인 벽방산이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릴 겸 우회전하여 올라가면 신라 태종 무열왕 원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안정사가 있다. 절 입구엔 잘 뻗은 적송들이 서 있고 몇 개의 돌탑들과 장승이 서 있다. 시조시인 이문형의 시「해탈교」는 이곳 안정사 작은 개울을 건너는 교각의 이름인데 지금은 화강석으로 다시 만들어 예전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고 시인은 웃으며 말한 적이 있다.
한 모금의 물을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나자. 오른쪽으로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인 학섬을 지나왔다. 이곳은 도산면 선창마을에서 약 50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무인도인데 소나무 300여주와 삼나무 10여주가 있는데 키 작은 적송림에서 백로와 왜가리가 집중적으로 번식했다. 하지만 1980년부터 서서히 그들의 번식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으며 90년대엔 간혹 일시 기착하는 중대백로 무리가 눈에 띨 뿐 아직 번식을 한적은 없다고 한다.
나는 이 글에서 그들의 번식이 이뤄지지 않는 원인을 분석하고 진단할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학섬의 이런 폐허는 왠지 한국현대예술사의 한 획을 그은 통영 위대한 예인들의 상처 입은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통영바다의 물빛은 언제나 코발트빛으로 나그네를 유혹한다. 믿지 못하겠다면 비진도 선유대를 오르는 산길에서 비진도물빛을 보라!
유난히도 상처 입은 용들이 많은 도시 통영. 그 상처가 질풍노도의 한국현대사를 헤쳐 오면서 얻은 것이라면 후학인 우린들 또한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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