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문학 여행

함안-역수의 땅, 역류하는 혼 4.

이달균 2011. 9. 16. 11:21

  함안은 한국현대문학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바로 함안면 출신의 조연현 때문이다. 함안엔 석재 조연현기념사업도 하지 않고 그를 기리는 흔한 시비나 문학비도 하나 없다. 시인이자 평론가로 문명을 날린 조연현의 생가는 함안면에 있다. 1955년「현대문학」을 창간하고 한양대 문과대 학장을 지냈으며 김우종, 김윤식, 천이두 등의 평론가를 배출시켰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장 등 이루다 열거할 수 없는 업적을 남긴 한국 현대문학의 거봉이다. 일제 말 친일전력이 그를 옭죄는 이유다.


 선생의 생가는 집안 원족이 살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엔 ‘市隱’이라고 각을 한 조부님의 친필 자연석 아호비가 외롭다. 석재 선생의 생가엔 아무것도 없다. 소년 시절을 살았다는 그 무슨 흔적도 없다. 표지판 하나도 없는 그저 평범한 시골집 하나가 있을 뿐이다. 가옥의 모양새가 어떠하든 간에 선생의 발자취와 인연의 끈들을 메어줄 매개물이 없다면 생가를 찾아올 이유가 있을까. 표지석 하나 없는 생가. 고향은 쓸쓸하다.


                 

시는 어디로 갔나

앞에서는 높은 빌딩들이 줄줄이 막아서고 뒤에선

인터넷의 바다가 출렁이고

머리  위를  번개처럼 가로지르는 핵탄두 미사일


인도의 새끼코끼리 귀만한

광화문 네거리 플라타너스 새 잎사귀에 머물었나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3층 완구점에서 내려

파란 스웨덴 인형의 눈알 속에 숨었나


핸드폰 뚜껑 속 번호의 유령

리모컨으로 조종하면

스크린에 알록달록 빈 그림자들이 뜬다

시는 어디로 갔나

서울역 앞 지하에서 너끈히 사흘을 굶은

풋내기 노숙자들의 체중에 휴지로 밟혔나

  -문덕수 「시는 어디로」전문


  조연현을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이가 문덕수다. 이곳 함안 출생으로 홍익대 교수와 한국 PEN 회장을 역임하였다.

  표지석 하나 없는 생가를 나오면서 ‘시는 어디로?’, 혹은 ‘조연현은 어디로?’하고 생각했다. 시인은 이제 시는  “사흘을 굶은/풋내기 노숙자들의 체중에 휴지로 밟혔나”고 한탄한다. 하긴 인터넷의 바다에 표류하는 시라면 어쩌면 자취가 없을 수도 있다. 빵이 되진 않을지라도 혹시 빵을 굽는 누군가의 가슴에 와 닿을 한 편의 시는 존재하지 않을까.



    빈  산막山幕엔      

    능구렁이처럼 무겁고 살찐 고요가

    땅바닥에 배를 깔고 숨을 몰아쉬고 있다.

    흙담이 무너져 내려 썩고, 나무기둥이며 문살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썩고 썩어

    향기로운 부식의 냄새를 피워 올리는,

    이 버려진 산막山幕 하나가 고스란히 해묵은 포도주처럼

    맑은 달빛과 바람소리와 이슬을 먹고 발효하는

    심산深山의 특산품인 것을.

    -신神이 가끔 그 속을 들여다보신다.

         - 이수익 「폐가廢家」전문


 이수익은 주문돈과 함께 ‘현대시’ 동인을 이끈 시인으로 고향은 함안이다.  물론 그의 여러 시편에서 드러나는 기억의 편린들은 부산의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시편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우수와 비애의 정조는 태생지인 함안의 기억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듯싶다.

 그는 어느 시작노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 비애의 근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언제나 비애의 필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 슬픔의 발원이 태어날 때부터 생득적으로 얻어진 것인지, 아니면 어린시절부터 내가 겪어야만 했던 어둡고 불행했던 가난의 체험이 스며들어 비애의 굴절된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의 이런 생득적인 것 혹은 불행과 가난의 기억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함안과의 상관물이지는 않을까. 

 

 필자는 경관이 아름다운 아라공원을 내려오면서 왠지 어느 한구석이 허전해옴을 느꼈다. 만약, 이 공원 어느 곳에 작은 기단을 세우고 자연석 하나를 얹어 몇 자 시를 새긴 시비 하나가 놓여진다면․․․․


    산동백 절로 일어

    부풀다 터지던 밤


    누나는 창백한

    달빛처럼 떨더니만


    반만 연

    가슴을 한 채

    송학도松鶴圖를 그렸다

                - 홍진기〈누나생각〉전문


 이런 시 한 편을 새긴 시비 하나가 선다면 하고 생각했다. 홍진기 시인은 고향 함안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크다. 함안문협지부를 발족시켰고 초대 지부장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