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문학 여행

창녕-문화재처럼 찬연한 문인들의 태묘-5

이달균 2011. 9. 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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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엔 진흥왕 척경비와 더불어 석빙고(보물 제310호)가 있다. 이 석빙고는 1742년(영조 18) 현감 신후서(申侯曙)가 강세복(姜世復)·김정일(金鼎一) 등과 함께 축조했다. 경주 석빙고안동석빙고와 동일한 구조이며 크기는 약간 작다.

 

 석빙고는 대형 냉장고다. 화왕산 언 계곡물을 보관했다가 여름에 썼다. 그러나 지금은 역사를 증거 할 유산일 뿐이다. 당시 고관들의 여름나기를 위해 존재했던 석빙고는 이제 무덤처럼 철장 속에 갇혀 있다. 그래서인지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잊혀 져 가는 것이 어디 석빙고뿐이겠는가.

 

 이 석빙고 앞에서 문득 김영현을 생각했다. 그가 유년을 보냈던 읍내 변두리 옛집의 우물이 사라졌음을 안타까워하던 산문을 읽은 적이 있다. 석빙고와 우물, 이 사라지고 사라져가는 두 소멸의 존재가 그를 떠올리게 했을까. 김영현은 소설가로서 시인으로서 동화작가로서 그의 넘나들기는 자유분방하다. 그리고 그는 매우 특이한 작가다. 똑 같은 제목으로 시와 소설을 쓰기도 한다. 「마른 수수깡의 연가」, 「짜리투스트라의 사랑」같은 것이 그것이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미처 다 연소해 내지 못한 외적갈등들이 꿰어져 한 편의 소설을 쓰게 했을까.

 

    갈랫강은 해만 저물면 금세 금물결이 된다 아침의 갈매빛 물결이 차차 은빛으로 바뀌면서 높이 솟아오른 해가 다시 기울 때면 물결은 금빛을 이루는 것이다. 구름 낀 날을 빼고는 저녁은 으레 낙조落照를 물고 온다. 서산으로 기우는 사양斜陽을 받아 마치 금싸라기를 부어놓은 듯 점점이 번쩍이는 것이다. 가끔 바람이라도 볼 때면 물결은 기어가는 꽃뱀의 등허리처럼 잔주름이 일어 출렁거리고, 그 비단자락이 강변에 끊임없이 밀려와 부딪치는 것이다.

    갈랫강은 낙동강의 상류에 연한 지류다. 원류에서 오륙십 리 밖에 뻗어 나가지 않은 이 조그만 강을 사람들은 갈랫강이라 불러왔다. 아주 먼 조상 때부터.


- 노명석 장편소설「노들강변」앞부분


 이 글은 노명석이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1996년) 19세의 나이로「새농민」 장편 현상공모에 입선한 작품으로 그의 사후에 그를 아끼는 이들에 의해 책으로 출판된 것이다. 위 소설이 입선하던 그 해「태양에서 제외된 양지陽地」라는 시집도 출간하여 세간에는 천재문학도의 탄생을 반겼다고 한다. 노명석의 문학비는 창녕군 이방면 동산리에 있다. 유어면이나 이방 쪽에서 창녕읍으로 오다보면 오른편 양지 바른 산녘에 세워져 있다. 그의 사람됨을 작가 이동하는 이렇게 말한다.


  "재승박덕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타고난 재주라면 웬만한 자리 같은데서 더러 호기도 부릴 법 하건만 그는 도무지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창녕문학의 원류를 따라가면 거론해야 할 문인이 많다. 50년대엔 설창수와 ‘산토끼’노래를 지은 이일래가 잠시나마 문학의 토양을 뿌렸고, 친일문학론으로 이름높은 임종국, 이후엔 성춘복, 황명, 김현우 등등이 창녕문학을 이끌었다. 

 

  여기서 임종국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는 시인 등단 이후 사상계 등에 여러 편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스승이었던 조지훈의 권유로 평론 <이상론> 발표에 이어, 1956년엔 3권 분량의 <이상전집>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이후 1965년 한일회담의 체결로 인해 친일문제 연구가의 길로 들어선다. <친일 문학론>발간에 이어 <일제침략과 친일파>,<밤의 일제침략사>, <친일논설선집> 등 14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설과 시론을 남겼다. 1989년 11월 12일 평생 숙원이었던 <친일파 총서>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후 한동안은 아동문학가 임신행이 창녕문학을 주도하게 된다. ‘교사문학동호인회’를 조직하여 동인지「만년교萬年橋」를  내게 된다. 이 모임은 「창녕문인협회」의 모태가 된다. 이후 창녕문학의 골격은 김현우와 신용찬에 의해 갖춰진다.

 

 신용찬은 평생 농사를 지으며 지역문학을 지켜내었다. 그의 시집「청우靑牛」를 읽어 보면 겸손하지만 올곧게 살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노명석 문학비를 찾은 김에 근처 이방초등학교에 있는「산토끼 노래비」를 찾아갔다. 동요작가 이일래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다 아는 동요「산토끼」를 작사 작곡했다.

 

 그리고 유어면 마을회관 앞에 고즈넉이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를 배경으로 서 있는「이준범 시비」도 함께 둘러보았다. 시비에는 이준범 시인에 관한 정보가 전혀 적혀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준범은 시인, 아동문학가,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창작을 했으며 특히 아동문학 쪽의 성과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시 한 편을 읽어본다.



색옷을 갈아입고 뜰을 내리서면

감나무 가지 높이

고려高麗 하늘이

구름 한 점 없다.

동리東籬의 황국黃菊 옆에

암탉 벼슬이 곱게 붉었고

정지 앞 우물가엔

새댁이 술쌀을 담근다.

한 해를 거두어

강江마을 보리갈이가 끝나면

은배銀杏잎이 몹시 앓는 새벽에

된서리가 내렸다.


-이준범 ‘가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