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누군가가 못내 그리워지면
통영統營으로 오라.
이달균(시인·통영시 집필실장)
1. 사량 상·하도 연도교, 한려수도의 랜드마크가 되다.
통영섬 570개는 숨겨진 보석이다. 대양을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 그렇다면 분명 21세기 통영의 미래는 섬에 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영국 런던의 테임즈강에 가로놓여진 ‘워털루 다리’는 화가 모네로 인해 전쟁의 역사가 예술의 역사로 변모되었고, 영화 ‘애수’로 인해 연인들이 즐겨 찾는 사랑의 명소가 되었다. 교량은 세월의 더께와 함께 숱한 사연을 담고 변해간다. 섬과 섬이 만나고, 주민과 관광객이 만나고, 바라만 보던 마음이 현실이 되는 오늘, 그 껍질을 깨고 통영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날라 온 찻잔에 녹은 오늘은 맑은 연둣빛
감싸 쥔 잔은 아직 살결이 따뜻하다
한 모금 목을 축이면 설탕처럼 풀리는 피로
건너 옥탑 끝에 남아 떨던 노을이 지면
참새 서너 마리 휘돌고는 날아간다.
깨소금 개운한 맛의 낱말 몇 점 떨구고......
-박재두 「녹찻빛 歸路」부분
통영 사량도 출신 박재두 시인의 시조 한 편을 조용히 음미한다. 이곳의 가을은 코발트빛 바다를 배경으로 섬은 더 가까워지고 하늘은 더 멀어진다. 사량하도의 나뭇잎은 ‘맑은 연두빛’에서 다갈색으로 변해가고, ‘노을마저 지면 참새 서너 마리 휘돌고’ 날아갈 뿐, 섬은 금방 적막해진다.
사람 사는 곳엔 역사가 있고, 전설이 있다. 욕정에 굶주려 금수처럼 변해버린 아버지를 피해 산정에 올라 천애의 바다에 몸을 던진 옥녀의 전설이 깃든 섬 사량도. 상도와 하도를 가로지르는 물길은 오래 섬사람들을 떨어져 있게 했다. 손끝에 닿을 듯 가까운 곳이지만 배 없인 닿을 수 없는 섬이었다. 하도로 시집간 딸이 그리워 상도의 늙은 어머니가 부두에 나와 뱃고동 소리만 하염없이 듣고 섰던 그 안타까움은 이제 지난 얘기 속에 묻어두어야 한다.
2010년 7월 22일은 태초 이래로 두개의 섬이었던 것을 하나로 잇기 위한 교량건설의 첫삽을 뜨는 날이었다. 이날의 기공식은 가슴 뭉클한 감동 그 자체였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도서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것이고, 관광 통영이란 측면에서는 한려수도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행정안전부의 연륙․연도교사업으로 국비 333억원을 포함한 476억원이 투입된 대 역사는 2015년 10월 30일 드디어 완공 테이프를 끊고 자태를 드러낸다. 이 연도교는 사량면민의 교통편의는 물론, 시너지 효과로 인해 관광객이 급증할 것이라 기대된다. 뱀의 모양을 닮았다는 사량도는 이제 남해바다를 비상하는 한 마리 용이 되어 승천을 위한 용트림을 시작한 것이다.
2. 연대(烟臺)·만지도(晩地島) 출렁다리에서 노을을 본다.
연대도는 봉수대가 있던 섬이었는데 연기를 내어 왜적을 경계하고 알렸다는 의미에서 이름 지어졌다고 하고, 만지도는 200년 전 박·이·천 씨가 들어와 정착한 섬으로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늦게 일구었다는 뜻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두 섬 사이엔 자란목도라는 좁은 해협이 지나가는데 출렁다리는 그 해협에 가로놓여 있다. 낚시꾼 외엔 별반 찾아오지 않던 만지도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분주해졌다.
달아항에서 연대도 가는 배를 탄다. 학림도 거쳐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시간에 벌써 보도교가 눈앞에 나타난다. 연대도에 배가 닿자 사람들은 곧바로 출렁다리 건너 만지도 해변을 따라 설치된 데크를 걷는다. 만지도 언덕 너머엔 바다와 너럭바위가 펼쳐져 절경을 이룬다. 다리 위에서 서녘 바다를 물들인 노을을 보면 그만 나를 잃어버리고 만다.
섬사람의 숙원이었던 이 다리는 2010년 행정자치부의 ‘베스트 섬 10’에 연대도가 선정되면서 사업이 시작되었고, 2013년 10월 22일 첫 삽을 뜬 뒤 2014년 12월 17일 완공을 보았다. 길이 98.1m폭 2m, 연결도로 92m, 총사업비는 국·도비 등 13억 2천만 원이 소요되었다.
마을 중앙에 ‘별신장군비’가 있는 것을 보면 기실 이 섬의 상징은 바로 ‘별신장군’이 아닐까 싶다. 척박한 섬사람들의 소망은 늘 안녕과 풍어였다. 별신장군에게 그런 간절한 기원을 담아 기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대도엔 주민들이 지게지고 나무하러 가던 ‘지겟길’이 있는데, 한 40분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한려수도의 수려함에 눈길을 빼앗기고 만다. 에코아일랜드 연대도와 적막했던 섬 만지도는 출렁다리로 인해 새롭게 태어나는 중이다.
3. 추봉교 위에서 그리운 이름을 불러보라.
통영을 제대로 보려면 한산도는 필수코스다. 비단 경관뿐만 아니라 이충무공의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이 있었고, 이를 근거로 한산대승첩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3년 8개월 동안 이곳에 계시면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난중일기’를 쓰신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건물은 1930년대에 중수하였고, 1976년 성역화작업으로 정비되었다. 건너편 과녁을 향해 활을 쏘며 쉬던 한산정(閑山亭), 당시의 호령소리가 들릴 듯한 귀선각(龜船閣), 대첩문(大捷門), 이후 세워진 유허비 등이 장군의 구국혼을 말해주고 있다. 한산도 곳곳의 지명은 이순신 장군과 연관 있는 곳이 많다. 군사들의 소금을 담당했다는 염개, 병기를 제작했다는 야소, 왜군이 길을 물었다는 문어포, 군복을 말렸다는 옷바우 등등이 있어 역사체험 섬으로는 안성맞춤이다.
한산도 진두마을에서 연결된 교각을 건너면 추봉도이다. 추봉교는 2002년 12월 행정자치부의 제2차 도서종합개발사업에 포함되어 사업이 시작되었고, 2004년 9월 착공하여 2007년 7월 4일 역사적인 개통을 보았으며 건설비는 약 255억원이 소요되었다.
추봉도 역시 역사적으로 중요한 섬으로 인식되고 있다. 역사의 시계를 먼 과거로 되돌리면 세종1년 이종무가 대마도 정벌에 나섰던 곳이었으며, 6.25전쟁 당시에는 악질 공산포로들을 수용하던 수용소가 들어서기도 하였다. 지금은 4개 마을에 450여명의 주민 살고 있는데 여름이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섬은 범이 입을 벌리고 앉아 있는 형상인데 그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봉암몽돌해수욕장이 있다. 해수욕장을 따라 산책길이 나 있다. 이곳 사람들이 ‘고부랑개’라고 부르는 곡룡포 앞바다의 여러 여들은 강태공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통영엔 섬다운 섬이 많다. 그 섬을 잇는 다리도 많다. 교각들로 인해 지도는 소리 없이 변해간다. 명품 다리들은 한려수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추억의 보고가 된다. 못내 그리운 이름이 있거든 통영으로 오라. 그리하여 섬과 섬을 잇는 교각 위에서 그 이름을 불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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