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문학 여행

중앙시조대상 이달균 시인 수상(2012)

이달균 2015. 3. 9. 14:57

[대상] 사자는 죽어가며 초원을 살찌운다, 그게 세상 이치다

[중앙일보]입력 2012.12.21 00:02 / 수정 2012.12.21 00:50

대상 이달균 시인


늙은 사자

죽음 곁에 몸을 누이고 주위를 돌아본다

평원은 한 마리 야수를 키웠지만

먼 하늘 마른번개처럼 눈빛은 덧없다

어깨를 짓누르던 제왕을 버리고 나니

노여운 생애가 한낮의 꿈만 같다

갈기에 나비가 노는 이 평화의 낯설음

태양의 주위를 도는 독수리 한 마리

이제 나를 드릴 고귀한 시간이 왔다

짓무른 발톱 사이로 벌써 개미가 찾아왔다


2012 중앙시조대상 대상을 받은 이달균 시인. 9년 전 신인상을 받은 데 이어 한국 시조단의 최고 영예를 안았다. [사진 조영래]
이달균(55) 시인은 끊임없는 실험을 해왔다. 자유시에서 출발해 시조로 발을 옮겼다.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에서는 해학과 풍자, 서사로 시를 풀어가는 도전도 했다. 여전히 자유시를 쓰는 것도 그런 초발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의 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지역과 저잣거리다. 올해 중앙시조대상 대상 수상작인 ‘늙은 사자’도 그렇다. 지역은 ‘지금 이 곳’에 대한 관심이고, 저잣거리는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현장이다.

 “초원은 동물들의 저잣거리에요. 시의 영혼이 살아 있는 곳이죠. 그 공간에서 자연의 소멸과 생성에 관해 생각해 본 것이죠.”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사자를 통해 공포와 평화의 시간을 같이 생각해봤어요. 사자는 힘을 잃어가고 쓸쓸해지지만 그것이 초원의 평화를 상징하기도 하죠. 나비 한 마리가 갈기에 와 앉는 평화요. 사자는 죽어가면서 초원을 살찌우는 거름도 되고, 윤회의 모습도 담았죠.”

 이 시인이 꼽은 가장 대표적 시제(詩題)는 그가 오래 살았던 마산이다.

 “마산은 바다에 면한 작은 도시였는데 갑자기 인구가 늘면서 주택가와 학교, 환락가가 공존하게 됐어요. 그 속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이야기가 나를 지배했죠. 산업사회가 저무는 모습, 물질문명에 가려진 도시 문명을 시조로 형상화하고 싶어요.”

 이런 모습을 그려내는 데 시조는 적절한 장르다.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에요. 말 그대로 시대의 노래인 셈인데, 리얼리티가 생명이죠. 현대인의 고통과 좌절을 담아야 시조도 생명력을 얻을 수 있어요.”

 시조의 가능성을 점치며 그는 “현대인이 짧은 글을 선호하는 만큼 시조는 미래에 가까운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시조가 시의 본질에 다가서 있는 장르라는 자부심도 내비쳤다.

 “시조는 일탈하려는 원심력과 그를 형식 속에 제어하고 축약하려는 구심력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죠. 3장6구의 제어 장치 속에 운율도 살아 있고 시가 지나치게 산문화하는 것도 막아주죠. 경계 위에서 누리는 언어 유희에요. 시의 전형에 맞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구요.”

하현옥 기자

◆약력=1957년 경남 함안 출생. 87년 시집 『남해행』 출간하며 문단활동 시작. 95년 ‘시조시학’으로 등단. 2003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수상. 시집 『문자의 파편』 『장롱의 말』 등.

 

일탈과 절제의 충돌, 다시 절창이 움트고 …

[중앙일보]입력 2012.12.27 00:06 / 수정 2012.12.27 00:39

2012 중앙시조대상 시상식

제31회 중앙시조대상과 제23회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시상식이 26일 서울 의주로 리더스나인에서 열렸다. 올 한해 한국 시조의 성취를 결산하는 큰 잔치였다. 왼쪽부터 이달균 중앙시조대상 대상 수상자, 정혜숙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수상자, 김태형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자, 김교준 중앙일보 편집인 겸 JTBC 보도총괄. [김도훈 기자]

시조 시인은 운율의 감옥에 기꺼이 자신을 가둔다. 3장 6구라는 정형미와 그 틀에서 벗어나려는 일탈의 욕망이 끊임없이 갈등하며 한 구절 한 구절을 벼려낸다. 올 한해 한국 시조단에선 어떤 욕망이 움트고 충돌했을까.

 2012 중앙시조대상 시상식이 26일 오후 6시 서울 의주로 리더스나인에서 열렸다. 제31회 중앙시조대상 대상과 신인상, 제23회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 시상식이다. 한국 시조 시단의 오늘을 체감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큰 잔치였다.

 올해 중앙시조대상 대상은 이달균(55) 시인의 ‘늙은 사자’, 신인상은 정혜숙(55) 시인의 ‘풍경, 적막한’,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은 김태형(26)씨의 ‘바람의 각도’에 각각 돌아갔다.

 이날 시상식은 시조 시단의 한 해를 정리하는 송년회처럼 펼쳐졌다. 대상을 받은 이달균 시인은 “정말 큰 격려가 됐고, 절창 한 편을 뽑아내야 하는 가슴의 무게를 얻게 됐다”며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요즘 시들이 지나치게 산문화되고 생경해졌는데, 시조는 시의 전형을 마지막 보루처럼 지키면서 700년을 지속해왔습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소멸하면서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합니다. 그렇게 시조도 면면히 이어져 갈 것입니다.”

 이 시인은 무한한 자연의 소멸과 생성을 노래한 ‘늙은 사자’로 대상을 받았다. 그는 “초원의 지배자였던 사자는 죽음 앞에서 위엄을 잃었지만 대신 나비가 와 앉는 낯선 평화에 직면한다. 사자를 통해 공포의 시간과 평화의 시간을 함께 생각해보았다”고 말했다.

 신인상을 받은 정혜숙 시인은 “중앙신인문학상으로 시조단의 식구가 된 지 10년 만에 이 자리에 섰다”며 감격에 젖었다. 그는 “어릴 적 고향집 사립에 시인 생가라는 문패를 달겠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는데 그 꿈이 실현됐다”며 즐거워했다. 수상작인 ‘풍경, 적막한’은 “밀도 있는 시상 전개와 투명한 필법이 눈에 띄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을 수상한 서강대생 김태형씨는 어느 때보다 큰 박수를 받았다. 김씨는 “국문학과 교수님이 자유시로 등단을 원했지만 시조시인이 되겠다며 그 권유를 뿌리치고 외톨이가 됐다”며 “아직도 외톨이이지만 여기 계신 많은 시인과 함께하면 시조단의 빛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 현대시조를 이끌어온 원로 시인들의 축사도 이어졌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우걸 이사장은 “그 동안 시조대상이 시조의 모범정답을 찾으려 했다면 이제는 성공한 개성을 찾아내는 쪽으로 심사관점이 변했다. 그래야 시조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뽑힌 작품은 모두 그런 경우였다”고 말했다.

 시상자로 참석한 김교준 중앙일보 편집인 겸 JTBC 보도총괄은 “오랜 역사를 가진 시조라는 장르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나가는 데 중앙일보가 작지만 힘을 보태겠다”라고 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한국시조 시단을 대표하는 중견·신예시인 10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