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의 둘째 누님 이위남씨의 미국여행기입니다. 2013년 5월 22일부터 6월 11일까지 미국 LA에 있는 셋째 누님의 초청에 의한 여행으로 첫째 누님(이순균)도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이 글을 보면서 예전 저의 아버지께서 여행을 갔다오시면 늘 여행기를 쓰시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수려한 문장과 글씨체를 보면서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했는데, 그때의 분위기가 느껴져 새롭습니다.
20일간의 미국 여행기
이 위 남 미국 여행이 쉽지만은 않았다. 미국에 거주하는 동생으로부터 한 번 다녀가라는 말은 여러 번 들었지만 어디 쉬운일인가. 비자를 서울에서 받아야 했고, 언니와 모처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동행을 위한 조건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남편, 언니와 함께 한 여행이라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우리 3명은 일행과 같이 김ㅎ에서 JAL항공을 타고 일본 나리따 공항을 경유, 다시 델타항공으로 환승하여 약 17시간의 비행(알래스카의 툰트라지역, 로키산맥, 오대호 상공 경유)으로 뉴욕에 도착했다. 첫날 미국 동부인 워싱턴 DC와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이 버스의 승차인원이 53명, 이 지역의 여행은 여러 지역에서 여행 온 사람들과 합류해서 관광하였다. 그들과 우린 각기 코스가 달랐지만 나이아가라로의 여정엔 동반자가 되었다. 이 버스의 승차 인원은 53명. 우린 정작 여행에 들떠 있었지만 가이드는 많은 인원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미국의 광활함이야 누가 모르랴만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잘 실감되지 않는다. 어떤 날은 하루 중일 버스만 타고 가기도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란 노랫말이 생각나 나도 몰래 흥얼흥얼 그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워싱턴 DC에서 국회의사당을 관람할 때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이 생각났다. 백악관, 자연사박물관,, 제퍼슨과 링컨기념관을 돌아보았는데, 문득 미국 민주주의의 기틀인 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란 말이 생각났다. 대통령이 거주하는 백악관을 멀리서 바라보면 실망할거라는 가이드의 말에 설마 했는데, 정말 우리나라 청와대보다 외려 외양은 작아 보인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그들의 검박함이 느껴진다. 백악관 앞에는 현장체험 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질서 정연함이 묻어난다. 조용조용 말을 하면서 사진을 찍는 등 자유와 질서가 균형을 이룬 모습이 보기 좋았다. 왠지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의 지나친 자유분방함과 비교되는 기분이었다. 한국전쟁기념관과 6.25참전용사 비를 둘러보면서 지구촌의 평화를 위한 휴머니티를 느낄 수 있었다. 태평양 건너 낯선 나라의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분들에게 우리는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다음날 워싱턴을 출발하여 6시간의 장정으로 나이아가라폭포에 도착했다. 몇 년 전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이곳을 다녀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언제 다시 이곳에 와 볼까 했는데, 2번째의 여행이 되었으니 감회가 새롭다. 펜실베니아주, 뉴욕주를 경유하여 미국 쪽 폭포에 도착했다. 웅장한 소리가 들리는 폭포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숙녀호를 타고 깊숙이 들어가 물을 맞으며 관광했다. 저녁에는 국경을 넘어 캐나다 쪽의 스카이론타워 전망대에 올라 불꽃놀이와 야경을 보면서 우아하게 특식을 먹고 아이맥스 영화도 보았다. 다음날 테이블락, 월풀(나이아가라 물줄기가 휘몰아 쳐 물살이 빠른 곳), 꽃시계, 캐나다의 명산 아이스와인 공장 등등 여러 곳을 둘러보고 다시 국경을 넘어 6시간의 버스 투어를 끝내고 뉴욕으로 돌아와 호텔에 묵었다. 다음날, 뉴욕의 중심지 맨하탄 관광을 위해 일찍 일어났다. 높은 빌딩숲 사이로 세계의 경제를 움직이는 증권시장, 9.11테러의 현장, 예술가의 거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0년대 완공된 빌딩으로 당시 최고층이었으며 여러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다.)의 전망대에 올라 뉴욕 전체를 조망하였다. 유람선에 승선하여 마천루, 횃불과 독립선언문을 든 자유의 여신상을 가까이서 보았다. 뉴욕 번화가인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를 거닐면서 그곳 뉴요크들의 여유와 친절함도 함께 느껴 보았다. 미국 동부 여행을 마치고 뉴욕에서 비행기로 6시간 30분을 날아 서부 LA로 향했다. 시내의 코리아타운을 들렀는데 늘 느끼듯 한국다운 것들은 거의 없어 아쉽다. 덴마크를 상징하는 솔뱅(덴마크풍의 민속마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본, 중국도 그들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과연 코리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회의하게 한다. 헐리우드를 찾아 미국 영화의 엄청난 영향력을 본다. 맨스 차이니즈 극장 앞, 우리에게 너무도 낯익은 배우, 가수들의 핸드프린팅과 사인 등은 이국의 멋을 느끼게 해 준다. 기념사진을 찍으니 나 또한 유명배우가 된 기분이다. 호텔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동생과 제부가 반가운 얼굴로 들어온다. 얼마만인가. 조국을 떠난 지도 오래되었기에 반가운 마음은 곱절 더하다. 다음날 황량한 모하비사막(선인장 같은 식물이 많다.)을 경유하여 예전 보았던 서부영화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폐광 캘리코 탄광촌을 관광했다. 교통의 중심지인 바스토우로 이동하여 늦은 시각 카지노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여 야경을 보러 갔다. 후버댐의 건설로 사막에 만들어진 도시, 그런 만큼 생기가 넘치고 젊음의 낭만이 넘실대는 곳,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밤새워 도박을 즐기는 모습과 거대한 호텔들의 모습이 과연 미국답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다음날 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자이언캐넌으로 향했다. 이곳은 엄청난 크기의 사암으로 이뤄져 있는데, 바위산, 터널 등 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한없는 인간의 왜소함을 보았다. 다시 브라이언캐넌으로 향했다. 오랜 시간 버진강의 풍화작용에 위해 부드러운 흙은 없어지고 단단한 암석만 남아 수만 개의 분홍색, 크림색, 갈색의 돌기둥들이 절경을 자랑한다. 협곡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이채롭다.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길에는 스프링클러가 물을 내뿜는 목장지대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다음날은 세계7대불가사의 중 하나인 그랜드캐넌으로 향했다. 버스로 오전 내 달려 도착. 어마어마한 협곡이 펼쳐진다.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4억년이 넘는 동안 콜로라도강의 급류가 만들어낸 대협곡을 우리는 경비행기를 타고 그 신의 선물을 만끽했다. 기념으로 단체사진도 찍었다. 오후 늦은 시각, 콜로라도 강변의 휴양도시인 라플린에 도착하여 강변을 거닐기도 하고 주변을 돌아보기도 했다. 예전 음악시간에 어디인지도 모르고 불렀던 ‘콜로라도강의 달빛’의 고향이 이곳이라니. 우린 노래를 흥얼거려 보았다. 서부관광 4일째, 캘리포니아의 끝없이 펼쳐진 농장지대를 지나게 되었다. 키위, 포도, 오렌지, 살구, 자두, 아몬드 등의 과일과 밀, 옥수수, 딸기, 감자 등의 채소가 생산된단다. 지평선이 있는 농장의 작물과 어찌 경쟁할 것인가. 비교자체가 되지 않는다. 일년 중 한두 달 정도만 비가 오는 탓으로 스프링클러를 작동하여 농사를 짓는다. 길옆에는 유도화가 많이 피어있다. 유도화의 독성을 이용하여 들쥐나 두더지 등의 피해를 막는다고 한다. 오후 늦게 농업도시인 프레즈노에 도착했다. 이곳은 치안이 불안한 곳이라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거대하고 많은 풍력발전소와 베이커스 필드 지역을 경유하여 미국 제2의 국립공원인 요세미티 국립공원 관광에 나섰다. 수백 미터의 화강암이 땅 밑에서 솟구쳐 올라 형성 된 듯한 절경을 자랑하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1,000m 높이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앨 캐피탄 바위와 하프돔, 면사포 폭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수백 년 된 나무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절경을 뽐내고 있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감상 한 후 아름다운 미국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시청사, 도서관 등을 돌아보고 유람선 관광을 나섰다. 베이크루즈 유람선은 샌프란시스코의 워터프론트와 미를 자랑하는 금문교, 지중해식 마을인 소살리토, 알카드래즈 감옥을 둘러보는 환상적인 여정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케이블카는 전차 같아서 조금은 실망했다.(시내를 내려 보는 것으로 생각함) 다음날 몬트레이 17마일 드라이브코스를 경유하여 덴마크 민속촌 <솔뱅>을 관광했는데 그 먼 거리를 공원처럼 아름답게 만들어 국민들의 정서 순화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했다. 마지막 날, 함께 여행한 일행은 우리나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고 우리는 제부를 만나 동생의 가게로 갔다. 흑인들이 사는 동네였다. 그들은 물건 사는 방법이 조금 달랐다. 모자, 신발, 티 샤스를 셋트로 맞추어 샀다. 바지는 엉덩이가 보일정도로 내려 입은 모양이 우스웠다. 동생 집에서 1박하고 제부의 도움으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같이 갔다. 가이드가 한번쯤 다녀가면 좋은 곳 이라고 하였는데 하루 종일 보아도 볼거리가 많았다. 기차를 타고 스튜디오를 둘러보았는데 지진, 죠스, 쥬라기공원, 트렌스포머, 귀신 집, 비행기추락, 물쇼, 스턴트 맨과 우먼이 공연하는 아찔하고 스릴이 넘치는 쇼 등 볼거리가 너무너무 많았다. 1주일을 더 머무르면서 샌디아고의 시월드에서 돌고래쇼, 고래쇼(큰 고래가 꼬리로 물을 쳐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물 세레를 맞게 한다.), 바다사자쇼, 펭귄 서식처, 물 서커스(원맨쇼를 하는 배우가 마지막에 강남스타일 춤을 추는데 싸이의 세계적인 인기를 느낄 수 있었다.) 등 이곳 역시 볼거리는 많다. 미국 국민의 교통질서는 가히 선진국다웠다. 우선멈춤 지역은 3초 정도 기다려서 출발하고 과속을 하는 차량도 없고 경적 소리는 들은 기억이 없다. 법치 국가로서 경찰에게 많은 권한은 주며 법을 어겼을 때는 엄한 벌칙이 내려진다고 한다. 거기에 비해 우리는 공권력의 힘이 너무 미약하다. 지나친 님비현상으로 어느 도시를 가도 데모가 끊이지 않는다. 질서와 안녕은 국가의 몫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몫이다. 동생과 친하게 지내는 교민을 만났는데 신발 3켤레를 선물로 주셨다. 현지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라 우리가 선물을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깊은 애정을 거절하지 못해 고맙게 받았다. 이 글을 통해 감사드리고 싶다. 교민 댁에 초대를 받아 방문했는데 고급 주택이라 산 위에서 망망대해 태평양을 정원처럼 바라보고 있는 궁궐 같은 집이었다. 내부도 볼 게 많았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셨는데 바깥 어르신이 손수 스테이크를 굽고 사모님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융숭하게 대접을 해 주셨다. 정말 인자하시고 고마우신 분들이셨다. 먼 이국땅에서 서로 의지하고 믿으며 어울러 사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미국은 공원에서 바베큐를 해먹을 수 있도록 장소를 만들어 놓았었다. 하루는 공원에서 제부가 바베큐를 해 주어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휴식도 취했다. 그 곳에서는 바베큐는 해 먹을 수 있으나 술은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남이 보지 않아도 그들은 공중도덕을 실천하고 있었다. 아울렛, 코스코를 둘러 쇼핑(제부께서 많은 것을 사 주셨음)도하고 롱비치, 베니스 비치 등 태평양 연안의 해수욕장도 관광하고 천문대가 있는 곳에 올라 로스엔젤레스를 한눈에 내려다보기도 했다. 며칠 동안 구경도 많이 하고 맛있는 양식도 많이 먹었다. 이번여행에서 느낀 것은 피를 나눈 자매가 있다는 게 좋았고(자랄 때는 7남매라 부모님께서 키우고 가르치느라고 많이 힘드셨음) 제부와 동생이 하는 일을 제쳐두고 일정표를 짜서 여행사의 코스 외에 여행을 할 수 있었고 일부지만 교민의 생활상도 알 수 있었다. 제부께서는 직접 요리도 하시고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고마웠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다시 한 번 제부(우종호)와 동생(이기옥)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언니와 남편도 20일간 건강하게 여행을 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이달균의 문학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 중앙시조대상·중앙신인문학상 영광의 수상자를 소개합니다 (0) | 2013.12.24 |
---|---|
2013년 11월 중앙시조백일장 당선작 심사평 (0) | 2013.12.02 |
2013년 10월 중앙일보 지상백일장 당선작. 심사평 (0) | 2013.10.31 |
백건우, 사량도 바다를 두드리다.-이 달 균 (0) | 2013.06.10 |
참 이상하게 변한 시 '늙은 사자' (0) | 2013.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