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문학 여행

내가 읽은 한 권의 책-삼중당 문고 <말테의 수기>(1978년 초판 발행)

이달균 2011. 8. 18. 23:46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삼중당 문고 <말테의 수기>(1978년 초판 발행)

 

이 달 균

영민아, 책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1978년 초판본 삼중당 문고의 <말테의 수기>(정가 270원)를 찾아내었네. 이 책을 보니 잊을만하면 한 번씩 마주치는 네가 생각난다. 왜일까? 너를 통해 힘겹게 중년을 건너가는 내가 보여서일까? 상실의 도시 파리, 그리고 단절되고 고독한 우리들 유리된 삶.

 

어제 온 책(작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 속에 이지엽 시인을 나를 일컬어 ‘즐거운 언더그라운드’라고 명명했더군. 일견 맞는 말이지만 낸들 언더그라운드를 고수하고 싶어 하겠느냐? ‘피하지 못하면 즐겨라’고 하기에 하는 것인 줄 넌 알지 싶다.

 

당시 나는 <삼중당 문고> 회원이었지. 물론 그 이전엔 <삼성문고> 시리즈판 독자회원(여기 회원이 되면 조금 할인혜택이 있었으므로)이었고. 이 두 곳은 내게 양서를 읽게 한 자양분이었지.

 

넌 잘 알겠지만 우리들 중학교 때까지는 집안형편상 책을 사서 읽을 사정이 아니어서 매일 헌책방을 들락거렸는데, 나는 주로 반의 학급석차를 떨어뜨리는 악서(옐로우 서적)들을 퍼뜨리는 역할을 했거든. 나열하기엔 민망하지만 ‘낮과 밤이 없는 대지’, ‘꿀단지’, ‘노변정담’, ‘이불 속에서 읽는 배비장전’ 금병매를 패러디한 ‘서문경과 반금련’ 등등. 당시 난 영양실조로 매일 두통과 싸워야 했고, 나중엔 머리가 함몰되는 병을 얻기도 할 정도로 심각했기에 그런 책들은 내게 위안이었지. 하지만 내가 꼭 그런 책들만 가방 속에 넣어다닌 건 아냐. 까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는 아직도 나의 화두이기도 하니까.

 

72년도부터 난 삼성문고 회원이 되어 ‘인간의 위기’, ‘기독교의 본질’, ‘낙엽을 태우면서’, ‘독일국민에게 고함’ 같은 어려운 책들을 폼 삼아 읽기 시작했지. 그리고 제법 세월이 흘러 읽은 <말테의 수기>도 그런 기분의 연장쯤으로 기억되네.

 

나는 첫 장 첫 귀절 "사람들은 살아보겠다고 이 도시로 몰려오는 모양이다. 허나 나는 이곳에서 죽음을 본다."는 구절에 매혹되었지. 고갱의 "파리의 화려함을 피해 타이티로 간다"는 말처럼 나를 매혹시킨 이 글귀는 나중이 되어서야 내가 잘 못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지. 사실 그 말은 당시 인구 18만의 작은 도시 마산에선 파리의 광휘를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그 글귀가 주는 이미지와 뉘앙스에 매료된 것뿐이었지. 그 속에 담긴 릴케의 비판의식, 즉 인간성의 파괴와 순수의 타락에 대한 것들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민아, 하지만 말테의 고독은 아직도 유효하다. 내게 ‘두이노의 비가’를 읽게한 소설 <말테의 수기>.우연히 찾아낸 책 한 권이 이런 옛이야기들을 주절주절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경남문학관의 <내가 읽은 한 권의 책> 소개가 장황해져 버렸다. 또 언제 만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행복하여라. 교원동 내 자췻방 그 동네 아직 재개발 안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