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열려있다. 아니, 닫혀 있다. 존재하는 모든 정보는 실시간으로 달려오고, 몰라도 될 것들이 악착같이 알아주길 강요하는 사회, 그런데도 사람들은 외롭고 고독하다. 사랑받지 못하여, 눈 뜨는 하루가 절해고도 같아서 자살을 꿈꾸기도 한다. 모든 것들과 연결된 듯하지만 사실은 철저히 단절된 묵중한 성벽. 바로 우리 시대의 풍경화다. 그렇다. 우린 지금 무인도에 살고 있다. 이곳에선 아무도 자신을 구원해 주지 못한다. 철저히 혼자 적응하고 대처해야 한다.
인도는 영화감독에겐 구미 당기는 소재다. 단절된 곳에선 인간의 동물적 본성과 감춰진 것들이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로빈슨 크루소 」,「15 소녀 표류기」,「식스 데이 세븐 나이트」,「지중해」,「파리대왕」,「캐스트 어웨이」등등 무인도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다. 신나는 모험과 호기심 가득한 관객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데엔 이만한 곳이 없다.
「캐스트 어웨이」와 「빠삐용」은 단절에서 소통을 향한 몸짓을 보여주는 영화다. 「빠삐용」에서 스티브 맥퀸은 소통에의 강열한 희구를 보여준다. 매번 실패하지만 끝내 좌절하지 않는다. 하지만 <드가> 역의 더스틴 호프만은 소통의 염원보다는, 절망적인 상황 그 자체를 인정하고, 안주하려 한다. 그것은 사람의 또 다른 일면이기도 하다. 누구의 선택이 더 나았다고 단정지울 순 없다. 스티브 맥퀸에게 단절은 죽음이다. 무엇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탈출만이 유일한 존재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파리대왕」은 무인도라는 절대의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세상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낭만적 모험영화가 아니다. 표류된 25명의 소년단원들은 사회에서 익혀왔던 질서와 협력을 묻어두고 차츰 이성의 반대편에 내재된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계급이 만들어지고, 파벌과 피아, 지배와 굴종, 광기 등을 드러낸다. 아이들은 차츰 힘의 논리를 인정하고 자연스레 폭력의 구조에 길들여진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골딩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 인간에 대한 물음과 엄중한 경고를 읽을 수 있다. 통찰력 있는 관객이라면 나와 내 이웃들에게 돋보기를 들이대어 좀더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계기로 삼기에 적당한 영화다. 나는 얼마만큼 열려 있는가? 혹시 무인도에 불시착하여 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살고 있진 않은가?
'이달균의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듀, 2003년 한국영화 (0) | 2011.08.01 |
---|---|
라이언 일병과 린치 일병 (0) | 2011.08.01 |
왜곡된 현실을 허무는 영화 (0) | 2011.08.01 |
시인들이 추천하는 영화 (0) | 2011.08.01 |
장애우 연기에 대한 갈채 (0) | 2011.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