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낯선 도시에 와 닿은 까닭이겠지요.
지금 나의 시계는 잠들고
외로운 채 하염없는 자유가 밀려왔습니다.
익어가는 고도(古都)의 황혼에 손을 내밀어
누구의 귓바퀴를 닮은 낙엽을 주워
그대의 책갈피에 끼워 둔 낙엽과
빈센트 반 고호의 캔버스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주 만나던 헌 책방 주인의
너털웃음과 웃을 때마다 흔들리던
빛바랜 자화상을 생각하면서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의
공원처럼 호젓한 찻집에 들러
한 잔의 커피와 일인분의 고독을 주문합니다.
창밖엔 우리의 이별과는 무관한 바람이
긴 머리칼을 흩날리게 하고
나와는 무관한 가로등이 켜지는 이런 저녁에
빈 찻잔에 남았던 그대는
슈베르트를 따라 목조계단을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