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대표시

낯선 도시에서

이달균 2011. 7. 14. 14:35

낯선 도시에서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낯선 도시에 와 닿은 까닭이겠지요.

지금 나의 시계는 잠들고

외로운 채 하염없는 자유가 밀려왔습니다.

익어가는 고도(古都)의 황혼에 손을 내밀어

누구의 귓바퀴를 닮은 낙엽을 주워

그대의 책갈피에 끼워 둔 낙엽과

빈센트 반 고호의 캔버스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주 만나던 헌 책방 주인의

너털웃음과 웃을 때마다 흔들리던

빛바랜 자화상을 생각하면서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의

공원처럼 호젓한 찻집에 들러

한 잔의 커피와 일인분의 고독을 주문합니다.

창밖엔 우리의 이별과는 무관한 바람이

긴 머리칼을 흩날리게 하고

나와는 무관한 가로등이 켜지는 이런 저녁에

빈 찻잔에 남았던 그대는

슈베르트를 따라 목조계단을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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