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가사문학

이달균의 체험적 가사시론(歌辭詩論)

이달균 2018. 6. 21. 19:47

<2016 가사문학관 가사문학 세미나 원고>

 

이달균의 체험적 가사시론(歌辭詩論)

 

이 달 균(시인)

 

1. 한국현대문학 속에서의 가사문학

 

한국현대문학은 “우리 문학을 잘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가?” 하는 물음 앞에서 당당한가. 일본의 전통시 단가와 하이쿠, 중국의 한시(漢詩) 등에 비해 우리 민족의 얼이 살아 있는 빛나는 전통시들은 현재 어떤 모습으로 계승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 전통문학의 현주소는 중심에서 벗어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큰 문제점은 한국현대문학은 이런 귀중한 유산들을 홀대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시조와 가사를 들 수 있다. 최근에 와서 중요성을 인식한 많은 분들에 의해 다시금 그 위의를 찾아가고 있지만 전 국민의 문학으로 애송되었던 시절에 비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사실 이 두 장르만 배워도 우리 전통문학의 절반을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조는 짧은 정형의 형식 속에 작자의 생각을 닮는 것이고, 가사는 시조가 갖는 음보와 마디를 바탕으로 얼마든지 줄이고 늘여 노래할 수 있다.

가사의 가장 큰 장점은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부터 여행담, 조국애, 철학적이면서도 전지적인 것까지 모든 것을 고루 담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녀노소, 학식에 관계없이 누구나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두 특징적인 대비를 통해 우리 시가의 아름다움을 새겨 본다면 매우 귀중한 체험이 될 것이다.

 

2. 가사는 우리들 삶의 문학이다.

 

내게 있어 문학으로서의 가사와 첫 만난 것은 그리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나 역시 교과서를 통해 정극인의 상춘곡,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관동별곡, 성산별곡, 사미인곡, 장진주사 등 불후의 글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후 성장하면서 원문을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런 과정은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상춘곡이 조금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개인의 경험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정극인은 단종의 폐위로 인해 벼슬을 사퇴하고 고향인 전북 태인에 은거하면서 안빈낙도의 생활을 하면서 봄 경치에 반해 이 가사를 지었다. 나의 고향 경남 함안에도 단종 폐위로 인해 생육신으로 추앙받는 어계 조려사당이 있고, 외가가 함안 조씨로서 어머니께서는 늘 이를 자랑으로 말씀하셨기에 왠지 먼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어떤 연관이 있는 듯한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사는 언제나 나를 독자로 머물게 했지 내 삶과 닿아 있는 어떤 무엇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굳이 어떤 연관을 짓자면 어머니와 이모님의 영향이 한 몫을 했다고 여겨진다. 두 분의 이모님과 어머니는 수시로 가사를 지어 읽곤 했는데, 특히 어머니는 제문을 지어 곧잘 읽곤 하셨다.

 

유세차 경술 유월 을유 삭 이십팔일/임자는 내아 친당부주 연계처사/함안조공 종상지 일야라/전일석 신해에 불초여식 재령이실은/망극한 비통을 이기지 못하와/일배박주와 수행항사로 재배통곡하나이다/영영지 하왈 오호 통재며 오호 애재라/인생이 귀한 중에 삼강오륜 으뜸이요/삼강오륜 증에서도 부자유친이 제일이라/부자유친과 부이자강은 사람마다 있건만은/ 우리 부주님은 정절공 어계선생 후예로서/무진정 선생과 청휘당 칠세손으로/입곡에서 자라나서 오형제분 둘째로서/...인품을 말하자면 천성이 활달 빛났으니/누구라 칭찬 아니 하리요/어려운 세간살이나마 봉제사 접빈객에 소홀함이 없었으며/문중에는 동양이요 향내는 유학자요/형제간에 우애하고 친척간에 화목하시어/일거수 일투족에 세심한 주의로써평생을 지내셨으니/우리 부주님 인품이야/어계선생 후손으로 부끄러움이 없을지라.

-조숙자(趙淑子) 제문 부분

 

일기는 화창하고 날씨는 온화하다/곳곳을 다 지나서 천안에 접어드니/천안 땅 수양버들 줄줄이 늘어서서/잎잎이 눈을 떠서 춘색을 즐기는 듯/우리들의 이 자리는 노소동락이 아닌가/젊다고 해서 흉을 볼까 늙었다고 괄시할까...... 마곡사 경내는 너무나도 웅장하다/법당에 들어가서 공양참배 하온 후에/ 법당을 둘러보니 이상하고 귀이하다/법당에 깔린 자리 너무도 남루하다/ 이 자리는 옛날초석 자리로되 공주군 불제자가/손수로 만들어서 시조한 자리로서/헤져도 쓰고 있다 하시더라

-조영자(趙英子) 「수덕사 마곡사 동학사를 다녀와서」부분

 

위의 글 은 저의 외조부 되시는 한학자 조증환(趙曾歡) 선생 별세하시고 어머니께서 지으신 제문이다. 전형적인 가사체의 제문으로써 음률에 맞춰 소리 내어 낭랑히 읽으시던 기억이 새롭다. 이밖에도 많은 제문을 지어셨는데 현재 내가 가진 것들을 별반 없다.

이래 글 ②는 1992년에 저의 이모이신 조영자님께서 펴낸 가사문집『네 옥모화용이 지먹에 묻어와서』의 한 부분을 인용한 글이다. 우리 집에는 가끔 어머니와 이모님을 비롯한 친구 분들이 모여 각자의 글을 돌려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가정환경은 자연스럽게 가사를 접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3. 나의 체험적 가사 짓기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랐다고 해서 가사 창작이 그리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나에게 가사 짓기의 영감을 제공한 곳은 경남 통영이다. 통영은 한려수도가 시작되는 청정해역과 570개의 섬,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된 천혜의 풍광을 자랑하는 도시이다. 또한 임진란을 맞아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서 한산대첩으로 국난극복의 계기를 마련케 한 이순신 장군의 얼이 고스란히 서려 있으며, 300년 지속된 삼도수군통제영의 문화가 면면히 살아 있는 도시이다.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난중일기와 통영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통영의 모든 곳에는 이런 이 충무공의 구국혼을 만날 수 있다. 어느 날 통영 한산도 제승당을 찾았다. 그곳엔 바다를 향해 앉은 정자 수루가 있다. 그 수루에 올라보면 누구라 할 것 없이 ‘한산도가’라는 시조 한 수를 떠올리게 된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그 짧은 시조 한 수 속에 너무나 많은 생각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이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실제 난중일기를 읽은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 이유는 한자로 쓰여 진 탓이 아닐까 싶다. 물론 한글로 번역된 책이 나와 있지만 전 국민적 교양도서로 읽히지는 않고 있다.

수루에 앉아 왜인들과의 접전을 앞두고 깊은 상념에 잠겼을 장군을 생각해 본다. 그의 시조에서는 ‘깊은 시름’과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는 이 두 구절로 드러내지만 그 순간 수많은 얼굴과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전쟁이란 태풍전야의 바다는 너무도 고요하지만 실은 일진광풍을 안으로 다독이며 숨죽이는 순간이다. 한산정은 늘 연습해 온 활터지만 오늘은 왠지 멀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임금으로부터 제수 받은 통제사란 벼슬로 이곳에 왔다지만 장부의 마음도 흔들린다. 멀리 바라보니 어부들의 고기잡이배도 전쟁으로 인해 묶여 있고, 그로인해 식솔들을 굶겨야 하는 고통이 안쓰럽다. 굶어서 부황에 죽고 살아서 창칼에 죽는 백성들이 어찌 가련하지 않을 것인가.

척후병의 소식에 의하면 거제 가는 좁은 해협인 견내량에 일본군 선단이 주둔해 있다고 한다. 그들도 아직은 어떤 움직임이 없는데 이 적요함이 더 고통스럽다. 부지런히 병서를 읽었으나 어찌 신출귀몰한 생각이 떠오를 것인가. 그저 물때를 잘 보고 판옥선에 화약 쟁이고 화포 잘 갖추어 방비 튼튼히 하는 게 제일이다. 제갈량과 유비, 그 군신간의 든든한 유대는 갖지 못했으나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바라보면 이 한 목숨 초개처럼 버린다는 각오가 허튼 장수의 마음이겠는가.

이런 생각이 스치면서 그 심정을 가사로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한 수의 가사를 지었다.

 

임진년 저문 저녁/한산바다 바라보니/홀연히 일진광풍/구름이 흩어진다/죽비로 다스린 마음/바람에 흔들리니/장부란 말 허랑하고/심경 또한 맹랑하다/깊은 숨 낮은 호흡/한산정에 홀로서서/오늘따라 멀어 뵈는/과녁을 바라본다

 

차라리 이런 날엔/의지할 그 무엇보다/팽팽히 조이고 푸는/활시위에 맘을 싣자/태풍도 오지 않는/남해바다 푸른 어구/가련타 이 백성들/통구미배도 묶였구나/줄에 묶여 노는 배야/이 하루가 편하다만/고깃배에 명줄 잡힌/식솔들이 걱정이다/굶어서 부황에 죽고/살아서 창칼에 죽는/만백성 저 고통을/통제사라 어쩔거나/어제는 저 배 풀어/왜적을 살폈거니/핏물로 흐를 물이랑/저으기 고요하다

 

견내량 물살은/고요하다 아뢰온다/봉홧불 잠잠하고/초병들도 말이 없다/댓바람은 소소하고

황혼은 비단에 수결/적요한 날들이/손끝을 저며 온다/장자방 제갈량의/신출귀몰은 내게 없다

 

내 어린 병졸들아/바다를 오로지 하며/썰물은 언제이며/밀물은 언제인가/화포에 화약 쟁이고

판옥선을 띄워보자/내일이 출진인가/외롭고 외로워라/오늘은 병서 접어두고/출사표나 읽어보자

 

삼고초려 맺고 맺은/군신의 정 없다지만/목숨은 하늘의 뜻/백성이 곧 명분이다/지필묵 앞에 놓고/시 한 수 적어볼까/아서라 초병이여/응시의 눈길일랑/홀로 앉은 수루 쪽으론/촌각인들 두지마라/장수의 호기로운/망중한은 아니리

 

-이달균「가사로 쓰는 난중일기. -한산대첩 전야」전문

 

그날 이후로 통영에 관한 많은 것들을 가사로 지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다시 말해서 가사로 쓰는 통영 역사인 셈이다.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은 조선 후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3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기관이었다. 선조 36년인 1603년에 세운 이후, 고종 32년인 1895년(고종 32)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그대로 유지되었다. 당시 작은 포구였던 항구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면서 거대한 계획도시로 변했고, 정치경제문화가 어우러진 작은 도시국가처럼 형성되었다.

통영엔 한국현대사를 장식한 많은 예술인들이 태어났다. 유치진, 유치환, 김상옥, 박경리, 김춘수, 김용익, 장하보 등을 비롯한 문인과 윤이상, 정연주 등의 음악가, 전혁림, 김용주, 이한우, 김형근 등의 미술가가 그들이다. 훗날 박경리 선생은 인구 14만의 작은 도시에 이렇게 많은 기라성들이 태어난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통제영 300년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대답했다.

이렇듯 축적된 역사와 전통은 ‘통영’이란 이름을 낳게 하였고, 수많은 작품을 잉태한 동력이 되었다. 그런 사연들을 가사 연작으로 써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작시 중 한국 전통공예의 자랑인 나전칠기와 관련된 시를 한 편을 소개해 본다.

 

장군님 가시고,/모진 난도 끝나고/막막하다 친구야/이제 우린 우얄끼고?/전란에 찢고 찢긴

일가친지 찾고 찾아/고향가나? 타관 가나?/가믄 또 어디가나?

 

백의종군 넘어 가던/원문고개 깔딱 고개/걸어갈까 배로갈까/찾아줄 이 없는 고향/노 젓고 떠나기엔/견내량 거센 물살/날 잡네 발목 잡네/통구미배론 못 떠날세/보게 저기, 저기 보게/널부러진 방짜유기/정든 공방 비워두고/이녁들아 어디가나/바다는 굼실 들앉고/남 먼저 매화 피는/이곳은 남도 항구,/삼도수군 통제영

 

내 이름은 소목장,/그대 이름은 대목장/팔자는 애초부터/고칠 팔자 못 타고 난/공방쟁이 목장 팔자/여기서 맺은 인연/예서 살고 예서 죽자/목장들아 공방들아/빛 좋은 느티나무/살결 고운 오동나무/장이더냐 농이더냐/어절씨구 장롱이더냐/장이나 짜고 살란다/농이나 짜고 살란다/갓쟁이 발쟁이/늘푼수 없는 슬픈쟁이

 

상사칼로 끊어내고/인두질로 달래며/끊음질 줄음질로/끼니나 잇고 살란다/곰비임비 알콩달콩

달래고 두드리며/한 끼 두 끼 세어가며/끼니나 잇고 살란다

 

백성도 궁궐도/내사 몰라 내던지고/평양으로 의주로/거듭 거듭 몽진하신/거룩한 선조 임금

하사 선물 생산하는/선자방이 이곳이니/나그네여 구경하소/벙거지 패랭이는/어디서 만들었나/흑립이란 낯선 이름/통영갓의 다른 이름/말총 엮어 만든 제품/망건 탕건 공방이면/입자방 총방에 들러/꾸밈새나 보고 가소

 

상자방 화원방도/눈길 한번 주고 가소/버들가지 대오리로/고리고리 엮어달고/수조며 점고도에/의장용 장식화도/화원방 화원들 솜씨/감탄이랑 나중 하소

 

야자방에 들러보면/쇠 붙이 담금 소리/각종 철물 주조하여/백동장석 금동장석/칠방으로 발길 옮겨/옻칠 구경하다보면/목숨은 백년이오/장석들은 천년이라

 

동개방 안자방/은방 금방 돌다보면/해 짧다 오늘이여/저녁별이 벌써 뜬다/대문 많아 열두 대문/고개 많아 열두 고개/공방 건너 또 한 공방/다 못 세어 열두공방

 

어차피 공방신세/난 예서 살다갈래/얼켜 설켜 살다가세/통영에서 살다가세/강화서 온 소목쟁이/알탕갈탕 찾거들랑/아서라, 진작 죽었으니/잊어 달라 전해주오

 

-이달균「가사로 쓰는 난중일기·2-통제영 열두 공방」

장군 가시고

전쟁도 끝나고

 

널부러진 방짜유기, 노젓고 떠나기엔 견내량 물살이 세기만 하다. 바다는 굼 실 들앉고 남 먼저 매화 피는 터엉 빈 통제영, 내 이름은 소목장, 결 고운 느 티로 장欌이나 짜고 살란다. 상사칼로 끊어내고 인두질로 달래며 끊음질 줄 음질로 끼니나 잇고 살란다. 갓쟁이, 발쟁이, 한집 건너 또 공방, 고향 못간 쟁 이들 다 못 세어 열두 공방. 강화서 온 소목쟁이 알탕갈탕 찾거든

 

아서라, 진작 죽었으니 잊어 달라 전해주오.

-이달균 「난중일기·2 -통영 12공방」

 

위의 인용 작품은 임진란으로 조성된 통제영 수군들을 따라 온 병장기, 생필품 장인, 예인, 기생 등등이 전쟁 끝나고 이곳에 눌러 앉는 모습을 가사로 표현해 본 것이고 ⑤는 그런 내용을 시조로 쓴 것이다.

전쟁 끝날 무렵, 통제사께서는 돌아가시고, 전란으로 피폐해진 고향을 찾아가는 일도 요원하다. 가본들 누가 있어 반겨주고 이 공방 자재들은 다 어떻게 가져간단 말인가. 기후는 온화하고 고기라도 잡아 먹거리 풍성한 이곳을 떠나기엔 벌써 정이 깊이 든 것이다. 소목장 대목장은 이곳 떠나면 천대받는 쌍것이다. 그럴 바엔 장이나 짜고 발이나 짜고 갓이나 짜고 살란다. 임금이야 백성들 나 몰라라 몽진이나 떠나는데 우린 그래도 기술이라도 있으니 망건 탕건 만들며 살아보자는 내용이다. 이렇게 장인들이 통영을 떠나지 않고 공방을 차려 공예도시로 전승시켜 온 사연을 가사로 적은 것이다.

통제영의 많은 유산들 중 대표적인 것들로는 통영오광대, 통영승전무, 남해안별신굿, 통영연 등이 있으며 통영 열두 공방의 유물인 나전칠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공예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의 것들이 모여 통영의 것이 된 열두 공방의 유산을 시인의 상상력으로 형상화한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사는 시인의 사명인 동시에 축복이다.

 

4. 시조와 가사, 그 길항(拮抗)의 미학

해 진다 꽃 진다. 청정한 사람도 진다 설워마라 휘엉휘엉 바람 속에 별 울 때 저무는 혈관을 지나 향기는 백리 간다.

 

전쟁에 미치는 날 사공의 노래는 없다 한산바다 판옥선 노 젓는 격군들 지문도 눈물도 없이 저어라 노를 저어.

 

역사는 영웅을 낳고 영웅은 신화를 낳고, 하지만 뉘라 알리? 짚신 한 짝, 누빈 누더기 서책이 외면한 이름 아득하다 낙화유수.

-이달균 「난중일기·7 -격군들」

 

가사를 짓다보니 거꾸로 짧은 시로 표현해 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이런 얘기들을 가장 잘 수용할 수 있는 장르로 시조를 선택했다. 평시조의 구심력을 통해 응축시키면 단단한 정형을 갖게 되고 타령조를 섞어 약간 늘이면 훌륭한 사설시조가 된다.

격군은 전쟁 때 배의 노를 젓는 병사를 말한다. 역사는 승전으로 이끈 영웅을 주로 말하지만 기실 숨은 이들의 노력이 없으면 결코 안 되는 일이다. 임진전쟁은 민초들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이순신 장군의 치밀한 전략에 따라 물때를 보는 이, 노를 젓는 이, 갑옷과 깃발, 창검과 방패, 화포와 화약을 만드는 이, 산에서 망을 보는 이 등등 모두가 제 자리에서 한 몫을 한 결과물이다. 이 작품은 세 수의 평시조를 줄글 형식을 표현한 것이다. 이들 격군들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이 시조 한수를 지었다.

처음엔 역사 속의 이야기를 좀 더 알기 쉽게, 혹은 가사를 보급하는데 일조하는 의미에서 가사로 썼는데, 나중에는 이를 시조연작으로 표현하자는 생각이 들었다.「시조로 쓰는 난중일기」연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난중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지만 문학작품이란 현재의 시점에서 작자 고유의 심상을 노래하는 것이기에 이 충무공의 난중일기와는 전혀 다른 작품으로 빚어진다. 다시 말해서 이달균의 난중일기 연작은 이충무공 난중일기의 오마주라고 말할 수 있다.

 

대감, 그곳 소슬한 청죽바람은 여전하온지요? 전하께옵서 기우제 드린 소식은 접했으나 이 남도 균열의 대지엔 미금만 풀썩입니다.

 

삼복염천을 나면서 이렇게 지필묵 놓고 글 올리는 이즈음이 매양 우울해서인지 한여름 고뿔이 찾아와 요 며칠 고생 중입니다.

 

문득 임진년 대승첩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왜적이라지만 떠오른 주검 앞에서 승전의 축하일배주는 허할 수 없었나이다.

 

오늘 한산 바다는 동백이 지고도 한참, 다홍빛 저 붉음을 어찌 꽃답다 하겠습 니까. 떠오른 고기들의 울음이 놀빛인 양 서럽습니다.

 

두창 뒤에 따라온 검붉은 호열자처럼 창궐한 떼죽음을 어찌 필설로 다하오리 까. 이럴 땐 목민의 자리가 죄스러울 뿐입니다.

 

세월을 당겨서 은하도 가까워진 오늘, 저 붉은 뉫살을 대적할 무기가 벽방산 무릎을 파낸 한 줌 황토뿐이라니.

 

한 차례 태풍이라도 다녀가시면 모를까 의서에도 이 병의 처방이 묘연타 하니 이만큼 차오른 울화만 다독일 뿐입니다.

-이달균 「난중일기·1-통영 세병관에서 적조를 아룀」

 

 

일각이 여삼추 한 심정으로/일촉즉발의 국난을 맞아 막중한 소임으로/동분서주 하고 계신 대감께/남도 먼 땅 한산 수군진영에서/한 자루 붓을 들어 근황이나마 전해 올립니다./한양성에도 이 화급한 풍전등화의 파발이/속속 당도할 터인데 저의 불민한 서신이/괜히 심사를 어지럽게 하여/무너진 억장만 되 무너지게 하는/소치가 아닌지 심히 저어되옵니다.

 

젊은 날 대감집 뒤뜰 푸르고 올곧은/청죽을 배경으로 바둑판 놓고 수담 나누던/화평한 날들이 문득 그리워집니다/어디 그 그리운 정경이 그뿐이겠습니까/청죽을 돌아 나온 바람을 보며/귀하고 명민한 어린 새싹들 모아놓고/바람에도 이름이 있고 모양이 있다시며/남동풍은 샛바람, 남서풍은 갈바람/서풍은 하늬바람, 남풍은 마파람/북풍은 된바람 하며 자애로운 가르침으로/파안대소 하시던 보습도 그립긴 매양 하나입니다

 

전하께서는 이 불운한 기운 속에서도/제단 차려놓고 명산대천 우러러/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님들 긴히 청해/가뭄에 타는 어리고 설운 백성 위해/기우제 드린 소식도 익히 들었나이다/이런 천은망극한 전하의 마음이/제발 천심을 울려 뇌성벽력이 하늘을 찢는/기적을 내려주십사고 멀리서 기도드렸나이다/허나 한편으론 외람된 마음을/어쩌지 못하는 심경이 앞서기도 합니다/지극정성 용신님께 제단 차려 빌고 빌어/해갈의 단비를 부를 수만 있다면/더 큰 제단에 진수성찬인들 모자람 없이/갖추갖추 차려내어 몇 날 몇 밤인들/축문 예악으로 뫼시지 못할 연유 있겠나이까/허나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구름이 모이고 흩어지는 이치가/정성의 부족이며 신의 노여움 탓이라 하여/기우제로 용서구한다면 이 갈급함이 이뤄지겠나이까

 

이곳 삼남은 전답은 물론/물꼬마저도 굵은 손가락 같은/균열에 풀썩 미금만 자욱합니다/이 오뉴월 삼복염천을 나면서/축담 비루먹은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고뿔에 위병까지 모질게 찾아들어/어제는 동헌에도 나가지 못했습니다/이렇듯 병고에 수척해진 얼굴을 보고/첩보가 있을까 심히 걱정도 되옵니다

대감, 어떤 날은 눈을 감고/임진년 대승첩을 떠올려 볼 때가 있습니다/그날 목숨을 건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사기충천한 어엿한 병사들에게/한잔의 일배주도 허하지 못했습니다/지나친 냉정이라 탓하실 수도 있겠으나/자칫 한 번의 승전에 취해/군율이 무너질까 염려하기도 했고/떠오른 수천의 주검을 보면서/측은지심이 작용한 것도 한몫을 하였나이다/아무리 왜적이라지만 그들 또한 두고 온/처자가 있고 간곡한 이별에 눈시울 적신/부모의 자식일 터, 한산 피바다 굽어보며/축배의 술잔을 들게 하기엔/사람의 인정으론 너무한 처사라/어쩔 수 없이 그리 하였나이다

 

후세에는 한산과 여수의 뱃길을 일러/한려수도라 이름 할만치 아름다운 이 푸른 바다를/비린 핏방울로 가득 적시게 한/저 허망한 왜적의 욕망이 한심합니다/생각해 보면 더 아프고 아린 것은/저들의 야욕이 늘 불타고 있고/끊임없는 노략질을 삼가치 않는 것입니다/제 비록 백골이 진토되어/영영 강토의 흙으로 살고 있으나/부릅뜬 영혼으로 이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이유가 그러합니다.

 

대감, 오늘은 조금 다른 사연을 적어/전령 행랑편에 전해볼까 하나이다/섬들은 이른 봄부터 늦은 봄까지/앞서거니 뒤서거니 붉은 동백을 피웁니다/군선에 올라보면 너울에 부딪치는/용초, 비진, 소지, 잠사, 국도/어디랄 것도 없이 꽃들은 저들끼리/니 잘났네 내 잘났네 피고 지기를 거듭하는/저 고운 자태를 저의 모자란 필설로는/아뢰고 아뢸 재간이 없나이다/하지만 노을이 붉고 꽃이 고울수록/아픔도 비례하여 커져가는/이 여름이 못내 우울합니다/그 붉음 가시고 가신 이 한산 넓은 바다에/또 다른 수만 수억의 창궐한 주검들/뱃가죽 드러낸 떼죽음의 아비규환/저 가두리 양식장에서 통곡하는 어민들/진한 고통과 허탈을 차마 형용키 어렵습니다/이 몹쓸 병의 이름마저 뜻대로 명명치 못해/적조(赤潮)란 가칭으로 부르고 있사오나/그 또한 그리 가당한 병명은 아닐 듯 싶습니다/두창이며 호열자에 비견되는 천형이라/목민관의 심사는 한시도 편치 못하옵니다/몇 해에 걸친 노동의 대가가/이토록 처참히 무너지는 현장이/어찌 또 다른 환란이 아니라 하겠습니까.

 

문명의 극점에 이른 요즘 세월이야/달에도 가고 은하에도 닿는다는데/저 바다 붉은 뉫살 대적할 무기가/붉은 흙, 참으로 한심한 한 줌 황토,/벽방산 무릎을 파낸 황토뿐이라니/의술이 백세를 무던히 넘기는 시대에도/화타, 편작은 고사하고 의서(醫書) 어느 한 줄에도/이를 퇴치할 처방 묘연타 하니/이 지방 백성들은 한숨만 나옵니다/이런 울화 속에서 고뿔과 위병이 돋아/이십 일 세기 새로운 난(亂)에 직면한/수군통제사의 미어지는 마음 하염없어/체찰사 대감께 한 줄 글월 올려/허랑한 심사나 위무 받으려 하오니/제발 꾸짖어 나무라지 마시기를 바라옵니다.

-이달균「가사로 쓰는 난중일기·6- 새로운 난(亂), 적조(赤潮)」

 

그들이 지켜낸 바다에 적조가 왔다. 배추가 풍년이 들어 제값을 받지 못한 농민들이 배추밭을 갈아엎은 광경을 우리는 보아왔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바다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적조가 와서 양식장의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해역엔 썩은 비린내가 진동한다. 이런 상황은 또 하나의 난이다. 꼭 전쟁만이 아니라 산 것들이 곧바로 송장이 되고 그로인해 어민들은 억장 무너지고 있으니 이 어찌 난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인용시⑦은 7수로 된 평시조이고 인용한 ⑧은 시조를 원용하여 쓴 가사이다. 7수 21행의 시조를 써 보았는데, 8연 126행의 긴 글이 되었다. 시조는 짧은 정형 속에 이 긴 사연을 가두어야 하고, 가사는 그 짧은 글을 풀어내어 세세한 사연으로 풀어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조와 가사는 상호 길항작용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가사는 원심력의 힘으로 퍼져나가는데 비해 시조는 구심력의 힘으로 절제하게 한다. 이 두 힘의 균형으로 인해 한국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준다.

 

4. 현대 가사, 어떻게 쓸 것인가

 

가사는 우리의 전통 문학이다. 그러나 전통의 것이라 하여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는 현대의 언어가 필요하고 현대의 사상, 현대의 정서로 노래해야 한다. 위에 인용한 가사들도 잘 살펴보면 모두가 현대의 시각에서 접근한 것들이다. 비록 난중일기를 말했으나 현대에서 겪은 난중일기에 다름 아니다. 때론 예스런 언어로 체찰사 대감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그 소재는 가두리 양식장의 적조를 노래한 것이고, 노 젓는 격군을 소재로 한 것 역시 현재의 시각이 아니면 작품화되기 못했을 얘기다. 당시 이들의 노고를 시로 노래한 이가 없고, 그 아픔을 통해 후세와의 소통을 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가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오늘의 노래가 세월이 흐르면 과거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전통의 것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현대의 우리는 오늘을 노래하여 내일로 이어주기 위한 사명을 짐 지는 것이다. 가사와 시조를 짓는 시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현대시조의 당위성만큼이나 현대가사의 당위성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병신년 봄날이 수상하다./자객이 찾아온 듯 낭자한 동백 선혈/무더기 동백 핀 날 고개 들어 산을 보니/산에는 핏빛 아우성 진달래도 피어난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침략의 아비규환/남도 끝자락에서 진군을 거듭한다/옅은 봄비 그치면 동백 따라 군락 따라/햇살 반짝이는 도타운 잎새 뚫고/때늦은 춘백들이 더딘 열정으로 깨어난다

 

----<생략>-----

 

가만, 입 다물고 서편을 바라보라/어디선가 화급히 전령이 뛰어온다/단디해라 단디해라 입단속 문단속에/날씨 단속 단디해라 북서풍이 밀려온다/서해 먼 황건의 소리, 하늘이 수상하다/소리 없이 몰려오는 자욱한 먼지구름/사이렌이 울린다 한낮의 경계경보

-이달균「가사로 쓰는 난중일기·7- 북서풍 황사대란, 봄날은 간다

 

위의 가사 는 봄날의 황사를 대란에 비유한 것이다. 현대의 난은 핵, 생화학 무기, 해킹 등등 예전에 우리가 알지 못한 것들이 전쟁무기로 사용된다. 의도된 바는 아니지만 무분별한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대기오염 등도 큰 환란의 주범이 된다. 우리가 봄이면 늘 겪는 황사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미국 쌍둥이 빌딩의 참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세계적인 고민이 되고 있는 난민 문제, 잔인한 IS테러 등의 상존하는 위험, 이런 것들은 모두 현대의 환란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난중일기 연작 가사를 쓰는 나의 경우지 다른 이들은 얼마든지 다양한 소재, 더 깊이 있는 주제에 접근할 수 있다.

문학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려낸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언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쓸 수 있다. 좀 짧게 쓸 수도 있고, 길게 쓸 수도 있다. 음률이 있으면 되지 반드시 지켜야 할 음보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이런 우리 문학이 영원하기 위해서는 오늘 내가 가사를 쓰고 읽는 것밖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