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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표현(2017.5) 장경렬 -<사물을 향한 시인의 시선과 상상력 - 이달균>

이달균 2017. 9. 5. 20:54

사물을 향한 시인의 시선과 상상력

장경렬(평론가. 서울대 영문과 교수)

 

....전략....

 

2. 「장미」와 “능청” 그리고 「복분자」와 “구라”

 

   장미꽃과 복분자 열매는 우리에게 친숙한 사물에 속하는 것으로, 아마도 이를 소재로 창작된 시는 한자리에 모으기 불가능할 정도로 많을 것이다. 이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미꽃과 복분자 열매와 같은 일상의 사물을 소재로 한 시가 창작되는 것은 시인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따로 없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앞서 언급한 두 작품 가운데 우선 「장미」를 함께 읽기로 하자.

 

꽃이라면 모름지기

시인 하나쯤은 잡아먹고

 

시침 뚝! 떼고 앉을

화냥기는 있어야지

 

아무렴

요염에 가리어진

저 능청과 푸른 살의殺意

「장미」전문

 

   단시조 형식의 이 작품에서는 “장미‘라는 꽃이 시적 소재로 등장한다. 이 시는 실재하는 꽃으로서의 장미꽃을 마주하고 이에 대해 시인이 느낀 바를 있는 그대로 담은 것일 수도 있지만, 장미꽃에 비유될 수 있는 어떤 대상-예컨대, 장미꽃처럼 아름다우나 파멸로 이끄는 이른바“팜 파탈 femme fatale”에 해당하는 여인-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즉, 장미꽃을 의인화한 작품일 수도 있고, 수사적 비유를 위해 장미꽃을 동원한 작품일 수도 있다. 시인이 어느 쪽을 의도했든, 이 작품에 관련해서는 비유적 차원의 시 해석을 피할 수 없으리라. 아무튼, 여기에 덧붙여 언급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장미꽃에서 누군가의 모습을 보거나 누군가의 모습에서 장미꽃을 보는 일이 시인의 상상력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갖느냐다. 따지고 보면, 상상력의 차원에서 볼 때 그런 행위는 특별히 의미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상투화된 이해의 시선을 반영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는 코울리지가 말하는 공상의 차원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이와 관련하여, 시인 이달균이 일깨우는 이미지는 단순히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장미꽃의 이미지 또는 장미꽃에 비견되는 누군가의 이미지만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우리는 그 차원을 뛰어넘어 시인 특유의 상상력을 통해 형상화된 사물 또는 대상의 이미지와 의미를 일별할 수 있거니와, 이로 인해 그의 작품을 공상의 차원에 속하는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즉, 시인 특유의 상상력을 통해 형상화된 시인만의“장미”라는 점에서, 여전히 시인의 상상력이 문제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이에 대한 논의는 잠시 뒤로 미루고, 또 한편의 단시조 형식의 작품인 「복분자」를 주목하기로 하자. 장미과 관목의 열매인 “복분자”가 소재로 등장하는 「복분자」는 「장미」와 달리 다중적多重的의 의미 읽기의 가능성을 애초에 배제하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 이는 있는 그대로 “복분자”에 관한 시다. 시를 함께 읽어 보기로 하자.

 

 

만리장성과 구만리 장천은

과장이 아니다

딸기 먹고 오줌 누니

요강이 뒤엎이다니

 

장삿속,

그 정도 구라는

되어야지

암만!

「복분자」전문

...중략...

 

   「장미」와「복분자」가 단순한 연상 작용의 결과물이 아니라, 미묘하고도 예사롭지 않은 상상력의 산물임은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분석할 때 또렷하게 확인된다. 이와 관련하여, 사물에 대한 비유적인 관찰의 결과물이든, 「장미」와「복분자」사이에는 쉽게 감지하기 어려운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즉, 두 시가 모두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또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실제가 다르다는 점을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시인이 이 같은 주제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탐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전자의 시에서 시인은 “장미”가 자신의 실제를 은폐함으로써 겉으로 드러난 “장미”의 이미지가 실제에 비해 ‘약화弱化 되어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면, 후자는 시에서 시인은 사람들이 “복분자”가 지니지 않은 속성을 지닌 것처럼 과장하는 가운데 겉으로 드러난 “복분자”의 이미지가 실제에 비해 ‘강화强化되어 있음’을 주목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각각의 작품이 내장하고 있는 핵심어核心語를 하나씩 고르자면 “능청”과 “구라”가 될 것이다. 요컨대, 두 시는 모두 겉과 속이 다른 대상을 소재로 동원하고 있지만, “장미”가 “능청”을 떨며 실체를 은폐하고 있다면 “복분자”는 “구라”를 통해 실체 이상의 것으로 과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선명하게 대조되는 이 두 시에서 우리가 읽고 감지할 수 있는 시적 메시지가 있다면, 이는 과연 무엇일까.

 

.... 하략....

 

월간 『시와 표현』201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