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羅生門)- 기억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이다.
라쇼몽(羅生門)
제작시기 1950년 , ※1951년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2004년 올드보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2002년 임권택 취하선 칸영화제 감독상
※1987년 <씨받이>(감독 임권택)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강수연)
※1989년 모스코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강수연)의
※2002년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의 <오아시스>(감독 이창동)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설 : 라쇼몽, 숲속
(아쿠다가와상)
만약 우리가 어린시절 운동회 날을 추억한다고 가정하자. 나는 백군의 일원으로서 마지막 릴레이에서 청군을 제치며 결국 백군이 이겼다. 그런데 다른 친구는 아냐 그때 나는 청군이었는데, 내가 다리를 삐끗하여 속력을 줄였고 누가 내 옆을 스쳐지나가 우리가 졌다. 또 누군 내가 원래 일등으로 가고 있었는데 이등으로 오는 친구가 내 팔을 잡아 채는 바람에 내가 이등으로 쳐졌고, 그 친구가 결국 일들이 되었다. 이런 답이 없는 동창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억은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런 기억의 착각을 영화로 만든 것이 바로 라쇼몽(羅生門)〉이다. 음산한 흑백영화 한 편을 보면 인간의 보편성이란 무엇인가, 혹은 진실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여러 의문을 가져보기도 했다. 워낙 철학적 명제가 신선한 영화였기에 일본 영화에 대한 찬탄을 한 바 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본질 자체를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 ‘취사선택’한다는 의미로도 쓰는데, 그래서 현재의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재구성하는 기억이라고도 한다. 라쇼몽 효과는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가 1950년 찍은 영화 〈라쇼몽(羅生門)〉에서 비롯된 말이다. 라쇼몽은 같은 사실이라도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영화로 유명하다.
사무라이 부부가 숲길을 지나던 중 도적을 만나 아내는 겁탈을 당하고 사무라이는 죽임을 당한다. 이를 목격한 나무꾼이 사건을 신고해 도적은 재판을 받게 되지만, 살인 사건에 대한 진술은 제각각 다르다.
1. 도적은 자신이 무사 남편을 살해한 것은 맞지만 무사 아내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진술한다.
2. 사무라이 부인은 도적이 사라진 후 남편의 눈빛에서 자신을 향한 경멸을 느껴 찔러 죽였다고 말한다.
3. 영매사에게 불려나온 죽은 사무라이는 겁탈 당한 아내가 강도에게 같이 도망치자고 해서 치욕감에 자살했다고 진술한다.
4. 사건을 신고했던 나무꾼은 사무라이의 아내가 남편과 강도 모두에게 남자답지 못하다고 모욕하자 남편이 마지못해 도적과 결투하다 죽었다고 주장한다.
나무꾼이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
나무꾼이 시체를 발견한다는 단순한 상황을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 다양한 카메라 각도와 숏의 크기, 운율적인 편집, 효과적인 음악의 사용 등을 통해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창조한다.
불가사의한 진실의 순간
〈라쇼몽〉이 195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획득하면서 일본 영화는 서구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구로사와는 세계적인 감독으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 영화는 1960년대 중반까지 황금기를 구가하면서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400개가 넘는 상들을 수상했다.
〈라쇼몽〉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1915)』과 『숲 속에서(1921)』라는 두 단편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내전으로 피폐한 12세기 헤이안조 시대.
한 사무라이가 숲 속에서 살해되고 그의 아내가 남편이 보는 앞에서 산적에게 강간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법정에서 사무라이의 아내, 살인 강간 혐의로 잡혀온 산적, 무당을 통해 증언하는 사무라이의 혼령, 목격자인 나무꾼이 증언하는데, 그들은 그 사건을 서로 다르게 이야기한다.
욕정과 배반과 살인에 얽힌 이 스토리는 4명의 인물들이 모두 자기 말이 진실인 것처럼 말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사건은 분명 하나인데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서로 다른 증언을 한다는 스토리는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하면서 진실의 상대성과 주관성이라는 주제를 고찰하는 데 매우 적절하게 기능한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러한 주제를 통해 인간의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적인 관점을 나타내고자 했다.
산적 타조마루(미후네 도시로)의 시점에서는 숲길을 가다가 마사코(쿄오 마치코)를 본 후 그녀를 탐하는데 그녀 역시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고, 그런 다음 남편 타케히로(모리 마사유키)를 풀어주고 결투를 하다가 그 남편이 죽은 것으로 보인다.
마사코의 관점에서 볼 때 그녀는 강간과 치욕을 당했고 그러자 남편까지 자신을 내쳐 그 분노로 발작상태에서 자신이 남편을 죽인 것이며
영매를 통해 말하는 타케히로는 그들의 주장 중 자신이 죽었다는 점만을 인정하고, 아내가 산적 타조마루 못지않은 욕정을 보이면서 산적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살인을 해서 얻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 타조마루는 달아나고 마사코 역시 달아나 버려 혼자 남은 그는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은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타조마루는 무자비한 범죄자이며, 마사코는 죄 없는 피해자이며, 타케히로는 명예를 아는 사무라이다.
나무꾼이 나타나 그늘에 숨어 지켜본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는 모두가 사실처럼 보인다. 나무꾼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내가 천박한 태도를 보인 것이 사실이고 산적의 허세는 거짓이며 사무라이 남편은 겁쟁이였다.
하지만 평민이 나무꾼도 사건에 연루되어 있음을 지적하자 누구의 말도 완벽한 증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만 남게 된다. 즉, 진실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라쇼몽〉은 음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에서 시작한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피해 라쇼몽 아래 모인 남자들. 겁에 질린 나무꾼은 승려에게 “이해할 수 없어요.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라고 반복해서 중얼댄다.
평민은 도대체 뭘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승려는 스님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하면서 보는 이의 혼란을 증폭시킨다. 잠시 후 나무꾼은 이해 할 수 없었던 그 이야기를 시작하고 관객은 플래시백을 통해 사흘 전 살인 사건의 현장으로 이동한다.
숲 속을 걷던 나무꾼은 모자, 밧줄, 그리고 호부 상자가 길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시체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가다 숲 속에서 시체를 발견하는 이 회상 장면은 풍부한 영화적인 형식미로 유명하다. 이 장면은 원작에서는 “나는 오늘 여느 날처럼 뒷산에 삼나무를 베러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산그늘의 어떤 숲 속에서 그 시체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라는 단 두 문장으로 묘사된 단순한 내용이다.
그러나 아키라는 시체를 발견한다는 단순한 상황을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 다양한 카메라 각도와 숏의 크기, 운율적인 편집, 효과적인 음악의 사용 등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면서도 인상주의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로 창조해냈다. 이 장면은 3분 50여 초 동안 29개의 숏으로 이루어진다.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나무꾼은 도끼를 메고 숲 속을 걷고 있다. 그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습과 나무들이 앙각으로 보이기도 하고,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과 나무꾼의 모습이 부감으로 보이기도 한다.
숲 속을 계속 걸어가던 나무꾼은 문득 뭔가를 발견한 듯 멈춰 선다. 여기까지 2분 4초 동안 16개의 숏은 한 번의 틸트 다운과 한 번의 팬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트래킹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러한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과 라벨의 ‘볼레로’를 편곡한 배경음악은 음산하면서도 어떤 위험이 다가올 것 같은 긴장감을 감돌게 한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영화촬영에서 금기시되던 태양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 것은 미묘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무꾼은 나무 위에 걸려 있는 여인의 밀짚모자를 발견하고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두리번거리며 계속 숲 속을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또 땅에 떨어져 있는 남자의 모자와 포승줄을 발견하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는 숲 저편에 무엇인가가 보이자 가까이 다가가다 뭔가에 걸려 넘어질 뻔 한다. 나무꾼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데 시체의 두 손이 드러나자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 17번째 숏부터는 트래킹을 사용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앞부분에 비해 관객의 주의와 감정을 고조시키지만 시체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마지막 3개의 숏은 나뭇잎 사이로 달려가는 나무꾼의 모습을 빠른 팬(스위시 팬)으로 따라잡음으로써 긴박한 심리를 표출하고 있다.
이 장면은 극적인 갈등과 결합된 설명의 흥미로운 변주가 돋보인다. 이 장면 자체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지만, 이 장면이 보이기 이전에 이미 나무꾼과 승려의 이야기를 통해 끔찍한 일이 벌어졌었다는 정보가 수차례에 걸쳐 제공되었기 때문에 관객은 잔뜩 긴장하게 된다. 따라서 이 장면에서 보이는 화면들은 지극히 평화로움에도 불구하고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라쇼몽〉은 줄거리의 ‘사실’뿐 아니라, 같은 사건에 대한 다각적이고 상충적인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했고, 그런 점에서 일본 영화에 현대의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영화였다.
또한 영화 스타일이 서구적이었기 때문에 특히 서구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라쇼몽〉은 마틴 리트의 〈폭행(1964)〉이라는 영화로 리메이크 되었으며, 불가사의한 진실이라는 주제는 알랑 레네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확대(Blow Up, 1966)〉 같은 영화들에 영향을 끼쳤다.
네 명의 각각 다른 진술
①산적은 말한다. “여자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사무라이 앞에서 그녀를 범한 것은 사실이다. 범행 후 혼자 떠나려 할 때 여자가 매달리며 말했다. ‘나의 치욕을 아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죽어야 한다.’ 그래서 묶어놓은 사무라이를 풀어주고 23번이나 검을 섞으며 남자답게 결투를 했다. 결국 남편을 죽이고 돌아와 보니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②사무라이 아내는 말한다. “나를 범했던 산적이 떠난 후 남편에게서혐오의 눈빛을 보았다. 제발 그 눈빛을 거둬달라고 애원했다. 자신의 단도를 들고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까지 했다.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남편은 죽어있었다. 그 후 연못에 투신도 해보았으나 자살에 실패하고 관아를 찾았다. 나와 같은 힘없고 불쌍한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③죽은 사무라이는 빙의된 무당의 입을 통해 말한다. “아내를 범한 산적은 아내를 꼬드겼다. 이렇게 된 바에야 나와 같이 사는 게 어떻겠냐고. 아내는 전에 없이 아름답고 몽롱한 표정으로 산적에게 말하더라. 산적과 함께 떠나려던 아내는 ‘저 사람이 살아있는 한 당신과 떠날 수 없으니 저 사람을 죽여 달라.’ 이 말을 들은 산적은 식겁하고 아내를 땅바닥에 팽개치며 이 여자를 죽일지 말지 내게 정하라 했다. 그 와중에 아내는 도망을 쳤고 빈손으로 돌아온 산적은 나를 묶은 포승줄을 풀어주고 떠났다. 나는 수치심이 밀려와 사무라이의 자존을 지키려 아내의 단도로 자결했다. 얼마 후 누군가 다가와 내 가슴에 꽂힌 단도를 빼갔다.”
④숨어서 본 나무꾼의 진술은 전혀 다르다.
“세 사람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숲 속에서 이들을 몰래 지켜보았다. 산적은 우는 여자 앞에서 자기랑 같이 살면 무엇이든 해주겠다고 하더라. 사무라이 아내는 외쳤지. ‘내가 어찌 대답을 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단도를 들고 남편에게 달려가 포승줄을 풀어주고 남편과 산적의 중간에 서서 서럽게 울더라. 산적은 눈치를 채고 결투를 벌여 여자를 얻으려 했지만 사무라이는 산적에게 이런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 순 없다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아내더러 어찌 자결하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산적도 이내 갈등을 하다가 길을 떠나려 했다. 이때 여자는 실성한 듯 두 남자를 몰아 세웠다. 먼저 남편에게 일갈했다. ‘네가 진정 내 남편이라면 왜 산적을 죽이지 않는가. 그 후에야 넌 나에게 자결하라고 할 자격이 있다.’ 이번엔 산적에게 외쳤다. ‘네가 유명하다는 그 산적이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너라면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나를 탈출시켜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너도 결국은 내 남편처럼 하찮구나. 둘 중 열정적으로 날 원하는 사람에게 나는 가겠다. 그래서 산적과 사무라이는 결투를 시작했지. 남자답게 23번이나 검 대결을 했다. 승리하게 된 산적은 사무라이를 죽이게 되고 그 사이 여자는 도망을 쳤다.”
제3자인 나무꾼의 진술 또한 허망하다. 나무꾼도 진주가 박힌 값 비싼 여자의 단도를 훔친 개입자이기에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건을 겪고 목도한 네 사람. 각자의 진술이 모두 다른 것은 생사를 앞에 두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