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홍 시집 『밥값은 했는가』해설 - 이달균
정신의 자유를 향한 여정
-윤석홍 시집 『밥값은 했는가』를 읽고
이 달 균(시인)
1. 선덕善德, 아니 만덕萬德에게
오늘 그대가 흘린 눈물 한 방울이
달빛 환한 이 밤 하늘로 돌아가
금바늘 은바늘로 천상을 수놓은
별이 되어 오래도록 떠돌다
그대 삶의 보석처럼
빛날 것이라 믿고 싶었습니다
이젠 누군가 그립고 아픈 곳으로
자꾸 고개가 돌아가는 지천명 나이에
치통처럼 찾아오는 만월의 사랑
보석 같은 눈물을 보여주었던
그대를 위해 서라벌 우체국에서
나 그대에게 연서를 보냅니다.
-「善德에게 보내는 연서」부분
윤석홍 시집『밥값은 했는가』는 동시대를 사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연서다. 선뜻 제호만 보면 생경한 리얼리즘으로 점철된 시집인 양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서정의 결을 잘 다독인 섬세한 가편들은 독자를 따뜻이 감싸준다. 그가 펼쳐낸 풍경들은 우리네의 초상이고, 떠나와 부른 노래들은 성대 결절을 견뎌낸 지천명의 기록이다. 그런 의미에서 밥값은 나잇값의 다른 말이면서 나이테 속에 드러나는 시인의 자화상인 셈이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109편의 시편들이 넓은 공감대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는 깎되 결은 살릴 줄 아는 믿음직한 장인의 솜씨 때문이다. 이 자연스러운 음률과 서정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과메기가 진미를 얻기까지는 덕장에서 찬바람과 햇살을 고루 받아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야 하고, 그런 과정을 겪으며 구덕구덕 살이 집히고 안으로부터 고소한 맛이 배게 되는 것이다. 밥값은 그런 노력 후에 얻어지는 대가가 아니던가.
위의 시는 선덕에게, 아니 여왕 이전의 공주 만덕에게 보내는 편지다.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위대한 여왕이었지만 시인은 그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더 눈길을 준다. 왕관을 쓰지 않은 세속의 한 여인이었다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그토록 흠모하던 지귀(志鬼)를 받아들여 고통의 화귀(火鬼)로 떠돌게 하진 않았을 것을. 시인의 상상력 속엔 수미산 도리천에서 영겁의 불국토를 꿈꾸는 여왕이기보다 살아서 사내를 탐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여인 만덕이 살아 있다. 그러므로 이 연서는 가지 못한 길 혹은 이루지 못한 우리 모두에 대한 연민이며 위로인 것이다.
2. 첨성대는 도처에 있다
윤석홍 시인을 처음 안 것은 1981년 즈음이다. 유신의 심장이 총탄에 쓰러지고, 다시 광주라는 거대한 해일이 전국을 덮쳐와 청춘들은 시대의 질곡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때 우리가 잡은 지푸라기는 문학이었고, 그 방황 속에서도 서로를 위무할 벗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허파를 키워가고 있었다.
필자는 마산에서 ‘살어리 동인’을 하고 있었고, 윤 시인은 포항에서 ‘역풍'동인활동을 하고 있었다. 월 회보를 교환하면서 이름을 익혔고 먼 도시의 또 다른 동류에 안도하기도 했다.
“불현듯!”이라고 해야겠다. 마산 허름한 중국집 다락방에서 월 회합을 갖던 날, 그가 찾아왔다. 정안면 시인과 함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달에 발표한 ‘눈을 밟으며’란 졸시를 소리 내어 읽으며 무학소주에 불콰해지던 밤이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이월춘 시인과 함께 포항 환여동 그의 자취집을 찾아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변 모래사장에 연한 집이었다. 밤바람에 밀려온 모래가 마루에 깔려 더욱 을씨년스러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형산강 물결을 시원으로 하여 시업의 열정을 쏟아내던 그와 동인들, 포항의 젊은 촉수들을 보고 왔다.
그 이후, 나는 포항이란 도시를 생각하면 그가 먼저 떠오른다. 군살 없는 몸을 감싼 황토색 잡업복과 형형한 눈빛을 가진 시인, 가슴엔 히말라야를 품고 티베트 아이들과 희망을 나누고 싶은 사람. 자주 만나진 못해도 이심전심 그를 통해 나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첨성대 여인숙에는 첨성대가 없다
이름없는 별하나 봉창 두드리며
이른 서라벌의 새벽을 깨운다
천년 세월 떠돌다 지친
몸 하나 뉘려 찾아 들었는가
白炭 지펴 식지 않은 온돌에 몸을 푼다
서라벌을 달리던 화랑의 외침이나
시대를 앞서 살던 비운의 천재 김시습
만파식적 神異나 선덕의 지혜를 떠올린다
첨성대 여인숙엔 신라별이 잠들고 있다
아직 깨어나기 싫은 유물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코발트 잉크빛 창에 물들인다.
별도 함께 찾아온다는 전설을 믿고 싶다
신새벽 하늘에 뜬 별 하나 올려다 본다
창틈 사이로 보이는 고분에 내린 무서리
밤새 이슬 맞은 잠자리는 하루의 평화를
놓치지 않으려 저공비행을 서두르고
짧은 가을해가 고단한 하루를 거둘 때
금빛 그물을 첨성대 여인숙 마당에 펼치고
수많은 뭇 별들이 마당에 떨어질 때
붉은 火印 하나 찍고 말없이 갈 뿐이다
첨성대에는 첨성대 여인숙이 없다
-「첨성대 여인숙」전문
첨성대 여인숙에서 하루를 의탁하고 싶다. 당연히 첨성대는 없겠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신라별을 볼 수 있고, 천년 세월을 만난다면 얼마나 횡재한 하룻밤이겠는가. 모르긴 해도 이 시를 읽고 찾아간 여행자는 십중팔구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노래를 따라 ‘서라벌을 달리던 화랑의 외침’과 ‘비운의 천재 김시습’, ‘만파식적 神異나 선덕의 지혜를 떠올’릴 수만 있다면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은 값진 체험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첨성대는 덤이다. 해질 무렵의 경주는 저마다의 존재를 빛내기 위해 바쁘다. 무서리는 고분에 내리고 잠자리는 저공비행으로 잠자리를 찾는다. 나그네는 여인숙 마당에 그물을 펼쳐 떨어지는 별들을 주울 준비를 한다. 그 순간 ‘붉은 火印 하나 찍고 말없이’떠나는 이는 누구인가.
이 허허롭고 처연한 시간, 시인은 별을 바라보다가 한 몸 누울 자리마저 잊고 만다. 여인숙을 찾았을 때엔 첨성대가 없었고, 첨성대를 찾고 나니 여인숙이 사라져버린다. 하긴 첨성대가 무슨 소용인가. 가슴에 별이 빛나고, 그 별빛에 살을 베이는 시인이라면 첨성대는 도처에 있다. 그날 침상은 비어있었고, 시인은 아득히 날밤을 새웠으리.
3. 절집에서의 발견
병원 마취실에서 잠시 아주 잠시 몽유도원도를 보았다. 눈을 떴을 땐 저녁 해 가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그날 늦은 밤 성찬을 먹으며 몸을 불리는 착한 것들 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날 때 나 스스로 반성을 해본다. 몸에 부족한 것들이 있 다면 몸 스스로 반란을 일으킨다는 걸 몸 스스로 반응하며 깨어난다는 걸 알았 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몸을 착하다고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른 아침에 보았 던 몽유도원도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몽유도원도」전문
어느 하루, 그의 삶도 신산했나보다. 응급실, 마취실, 수술실 같은 단어는 가까이 있지만 멀리하고 싶다. 그의 몽유도원도는 오매불망 염원한 무릉도원이 아니다. 혼절한 몽유의 시간, 저승인 듯 이승인 시간을 견디며 깨어나며 본 환영이다. 어떤 아픔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수술실을 나오면서 살았음에 대한 안도와 지킴에 소홀했던 자신을 반성한다. 완전히 침잠한 몸 상태라면 정신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어쩌면 수면유도를 위해 주사한 프로포폴에서 깨어나는 달콤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저만치 나를 떠난 몸이 일상으로 돌아온 시각, 어찌 착하고 고마운 몸을 쓰다듬지 않으랴. 그때서야 퍼뜩 환영처럼 스쳐간 몽유도원도가 생각났다. 환상과 기억의 경계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간 그 무엇, 그것이 고통의 산물이든 환희의 산물이든 건강을 앗긴 순간의 기억이라면, ‘다시 보고 싶어졌다’는 술회는 다분히 역설적이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그림을 그새 또 보고 싶어 하다니.
내가 잠에서 깨어난 새벽
아내가 금강경을 틀어놓고
금강경 사경을 하고 있다
현현하게 반짝이는 눈빛에
정성들여 쓰는 한 획 한 획
보리심으로 피어나고 있다
짧은 한 시간이 금새 흐르고
좌정한 채 미동도 없이
사경을 쓰며 무엇을 서원할까
붓과 종이 사이에 경계가 없고
새벽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듯
책장 넘길 때마다 풍경소리가 난다
금강경 한 권을 다 쓰면
하는 일이 다 잘 될 거라고
업業이 없어질 거라고 믿는 아내
집안에 걸려 있는 만다라를 향해
십 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다보탑 향해
나도 두 손 모아 절을 올린다
-「금강경 쓰는 아내」전문
시인은 벽에 걸린 만다라를 향해 기도한다. 오늘 내 하루의 삶이 안녕하기를. 나와 가족, 내 이웃도 함께 평안하기를. 하지만 오늘도 시인은 대책이 없다. 아내는 새벽에 금강경을 쓴다. 붓과 종이 사이에 경계가 없’듯 이승과 저승의 경계도 사라지는 보리심에 닿으면 ‘업(業)이 없어질 거라고’ 믿으며 정성껏 사경 한다. 이 한 문장만 봐도 아내 덕 톡톡히 보고 사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이런 가정이라면 그의 생은 이미 성공을 거둔 셈이다.
아내는 업장 소멸을 위해 기도하고, 시인은 ‘십 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다보탑’ 앞에서 기도한다. 아내에 비하면 시인은 철들기엔 아직 한참 멀어 보인다. 자신도 허방을 지나는 일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무량사에 가 봐도 ‘채워도 부족’함을 느낄 뿐, ‘뜻대로 곱게 늙어가기가/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만다.
네 것은 똥
내 것은 물고기
원효와 혜공이 마주앉아
선문답을 주고 받자
칠성각 옆 매화가 웃는다
-「여분오어(汝糞吾魚)」부분
그런 여백을 채우기 위해, 아니 여백을 사랑하기 위해 「갓바위 부처」며 「가을, 부석사」를 찾아가 ‘쓸쓸함 뒤에 오는 찬란한 노을을 추억하며 바람의 말을’ 듣기도 한다. 그의 절접 나들이는 계속된다. 낙산사, 사리암, 오어사, 압곡사, 범어사, 미황사 등 동해를 걸어 국토 맨 남단까지 바랑 없는 여행은 계속된다.
시인이 그려내는 절집풍경은 아름답다. 위 시에선 바람에 흔들리는 전설을 얘기한다. 봄비 그친 날 오어지엔 선명한 풍경이 그려진다. 삼국사기의 한 쪽이었던가. 물고기를 잡아먹은 두 스님의 선문답이 일품이다. “그대가 먹은 고기는 소화되어 똥으로 나왔고, 나는 삼켰지만 산 채로 배설했으니, 나는 부처님 뜻대로 행했고 너는 아직 속인을 벗지 못했도다. 공부 좀 더 하시게.” 토닥토닥 네 똥 보다 내 똥 굵다며 우기는 옛날 옛적 전설을 되새기며 목어는 환생을 꿈꾼다. 원효와 혜공 두 스님의 치열하면서도 익살스런 모습이 천년을 건너온다. 상당한 시편이 절접 나들이를 노래한 걸 보면 이는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4. 담담히, 또 다른 시인이 되어
빈방 가득히
내가 들어가 차 있다
이제는
살아있는 나로 들어가
이리저리 헤매다
다시 빈방으로 나왔다
오늘은
흐느끼면서 나를 빠져나간 네가
실수로
빈방에 들어간다
-「빈방」전문
시인은 그렇게 자신을 닦아간다. 수행하고, 참선하고, 묵언하며, 비우며 오늘을 산다. 문 앞에서 갈구하고 문 앞에서 절망한다. 봉창 앞에 다가온 공(空)을 슬쩍 느껴보기도 하고 용맹정진 하는 햇살에 몸을 맡겨 보기도 한다. 강토 곳곳, 지구촌 어디쯤을 헤매며 얻은 결실들로 이제 얼마간 화평을 얻었다. 그런 새로운 발견으로 절집 뜨락에서 시 한편을 건지기도 하고, 간이역에 멈춰선 시간과 교감하기도 한다. 몸은 한결 가벼워지고 언어도 단순의 묘미를 얻었다.
「빈방」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번뇌의 곁가지들을 쳐내고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시인은 행복하다. 너인 듯 나인, 가득 찬 듯 비어 있는, 의도한 듯 실수인 듯, 이런 정신은 자유를 얻은 후에야 가능하다.
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이 골에서 저 산으로
울고 가는 기적소리
늙은 여름 오후 햇살이
철길에 졸고 있다
-「승부역」전문
몇 개의 간이역을 지나 그가 닿은 역은 「승부역」이다. 이곳이 어디인가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절집을 지나, 「존 뮤어 트레일」을 내려, 팅그리, 아리루트, 초모랑마, 라체 지나 닿은 곳이다. 그렇게 시인이 만난 역은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인 지상 최고의 부자역이다. 이 역에 바쁜 사람은 없다. 그저 멀리 ‘울고 가는 기적소리’가 들려오고, ‘늙은 여름 오후 햇살이//철길에 졸고 있’을 뿐이다.
그가 원한 내일이 바로 오늘 만난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시인이 그린 심상화(心象畵)는 한 점 묵이 초상이 되고, 휑한 여백으론 바람이 찾아오는, 그런 그림이다. 이 시집 한권을 읽으면서 그가 살아온, 그를 둘러싼, 그가 지향하는 것들을 읽을 수 있어서 흐뭇했다. 만나지 못했던 세월들이 알알이 들어차 있다. 내가 알던 시인은 이제 또 다른 사람이 되어 길을 떠난다. 문득 그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한다. 담담히 걸어가는 시인 윤석홍의 발자국을 따라 나도 함께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