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평론

시조 700년의 힘- 이달균

이달균 2015. 7. 14. 20:55

시조 700년의 힘

 

이달균

1.

 

나는 어떤 글의 서두에서 ‘불멸’이란 말을 얘기하면서 잠시 김소월을 떠올린 적이 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이미 신화 가 된 김소월도 불과 육십 년 전의 세월을 살았던 우리 시대의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보면 우리는 너무 일찍 신화를 만든 셈이다 얼마 전 어느 문학 동아리에서 감명 받은 시인들에 대한 토론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거론한 이름들은 역시 훌륭한 시인들이었으며,현대 문학의 교과서를 장식한 이들이었다.

정지용, 백석, 한용운,조지훈,이상,유치환,윤동주, 서정주, 셰익스피어,보들레르, 워즈워드 등등. 하지만 그날, 월명사, 황진이,김병연,허난설헌,정약용 같은 출중한 우리 시인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왜 우리에게 문학은 불과 몇 십 년 안팎의 현대문학만 존재할까. 오천 년의 역사를 말하면서도 백년 이전의 문학은 오늘날의 문학도들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역사책이나 일부 연구자들에게 만 꼭꼭 숨어있는 죽어있는 문학이 되어버렸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그들이 감명 받았다는 셰익스피어는 황진이와 비슷한 시대의 사람이었고, 워즈워드와 보들레르는 백오십 년 전의 동시대를 산 시인이었다. 우리는 왜 외국작가들에겐 시대를 초월하는 교감의 폭을 갖는데, 우리 시들에게서는 유독 몇 십 년 전의 시인들에게서만 영향을 받는가. 향가나 고려가요 조선조의 사설시조, 황진이의 시조와 김병연의 시들은 시대를 관통해 내는 힘이 있었다. 그 힘은 바로 역사의 영속성 위에서 이루어진다. 문학의 단절은 곧바로 문화의 단절로 이어지며, 종래에는 역사를 떠받들 호연지기를 잃고 만다. 시를 통해 천년 전의 신라로 가기도 하고 고려나 조선조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활달한 상상의 진폭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 시들의 공감의 폭은 넓어질 것이며, 외국문학에 대해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조의 생명력은 매우 다행한 것이다 시조의 맥을 따라가 보면, 금세 칠백 년 전의 세상으로 거슬러 가기도 하고 다시 오늘의 자리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시조의 당위성이며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시조는 이런 바탕 위에서 창작된다. 오랜 바탕이 있는 것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저변에 가라앉아 있다. 변화에 민감하지 않지만, 서서히 스며들면서 전체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다. 기실 시조는 문학에 별반 관심 없는 전체 대중의 정서 속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장르로 자리하고 있다 일반인의 경우, 오늘날 중요하게 거론되는 몇몇 시인들의 이름은 몰라도 길재,정철, 윤선도 정몽주, 황진이 조식 같은 시인들의 시조 한 수씩은 다 외우고 있다. 이렇듯 시조는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대표적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문학사는 이런 거대한 저변의 정서를 애써 외면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단절과 왜곡이 창작의 폭을 왜소화시켜 문학 자체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한 원인이 되지나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제 격동의 한 세기를 마감하면서 다시 시조의 부활은 예견되고 있다. 시조는 문학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국민 전체의 정서를 아우른다는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관점의 변화는 꼭 필요한 시대적 요청이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변화는 시조인 스스로가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노력, 두말할 나위가 없는 중요성이다. 시조인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2.

 

무장 슴슴하구나, 저 냇둑 개복사나남이 참 천연덕스런 마음으로 듬성듬성 찍어 놓은 엶은 분홍 꽃물이

지천의 자부름 속에 마냥 겉거죽이 부풀어오르는 세상, 이맘때면 그냥 아무렇게나 구겨 놓 은 마음의 현도 스르릉 소리를 내고

안 뵈는 누군가 넌지시 건너다보고 있음이여

一박기섭,「시나위 詩篇-和平」부분(《현대시조》가을호)

 

간다 간다 푸른 하늘이 준 이 길을 따라 나는 간다

얽뚝배기 장돌뱅이 소금장수 허생원, 봉평의 제일 일색 성서방네 처녀, 소금 뿌린 듯 하얀 달빛에 숨막혀 숨이 막혀 정분 나는 곳,

하얀 길 새하얀 들판 지나 흰 붕대 풀어놓은 길을 간다.

 

달밤이 아니라도 밤새 이야기 할 눈물만 있으면 좋아라.

밤눈 내리는 세상보다 횐 지상에서 침묵 속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젖어 자꾸만 가는 길 여 름 끝에 피어버린 너처럼 울어나 보았으면,

내 마음 오래 된 폐허 물방앗간 추억의 풍경에 젖어 자꾸만 가는 길 여름 끝에 피어버린 너처럼 울어나 보았으면,

내 마음 오래 된 폐허 물방앗간 추억의 풍경에 젖어,

끝없이 가는 하얀 길 목쉬도록 부를 이름이면 족해라.

고요의 산 적막한 주막에 외롭지 않게 호롱불 하나 밝혀놓고 억장 같이 무너진 가슴에 꽃 피워도 좋을 그 이름 부르며,

나귀의 긴 방울소리 뒤로 그 길을 따라 나는 간다.

- <하 략>-

 

-오종문「봉평. 메밀꽃 필 무렵」부분, (《열린시조》가을호)

 

시조를 읽다보면 특유의 여유와 이완을 잘 용해시킨 시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약간 모자란 둣 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시들은 다변의 기운 뒤에 오는 허무를 충분히 메워줄 만하다. 이런 관점에서 찾아본 위 시들은 우리가 관심 있게 바라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 시들의 특징은 넌출거리는 우리말들을 시조 속으로 끌어들여와 자유자재로 구사해 내는 입담이 우선 눈길을 끈다. 거칠거나 옹이진 데 없이 그저 강물이 흘러가듯, 아니 흐르지 않는 듯 하다가 어느새 닿아 있는 유장함은 시조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시편이다.

박기섭의 시는 우선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으려는 미덕이 좋다. 언어를 속박하지 않고 그냥 풀어둔다. 그 느슨함은, 그러나 보이지 않는 현으로 다스리고 있으므로 결코 더하거나 모자라지도 않는다. 그것은 이 시인의 관록을 그대로 말해 준다 ‘시나위’의 의미는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 가락의 기악곡’인데,이는 다시 말하면 토속의 가락이란 뜻으로 해석하면 될듯 싶다. 비단 이 뜻을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시가 움 트고 꽃 피는 어느 봄날의 그 분주함과 나른함이 함께 있는 한낮을 정겨운 민화의 느낌으로 그려내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 허튼 가락은 엇시조로 슴슴히 시작되다가 때로 스르릉 마음의 현도 건드리며 건너뛰다가 마지막 종장에선 무심히 지나치며 보고 있는 계절 하나를 슬쩍 부려 놓는다. 화평한 봄날이다

오종문의 「봉평. 메밀꽃 필 무렵」은 박기섭의 어법과 일견 유사한 듯 하면서도 확연한 경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시인이 기존에 발표한 「한 소년의 봉산탈춤을 위하여」의 탈놀음 같은 역동성이 이 시에도 묻어난다. 자신이 허생원이나 된 듯 ‘여름 끝에 피어버린 너’를 그리며 길을 간다. 이효석의 봉평장 길은 하얀 달빛과 메밀꽃, 노인과 제 피붙이 일 것 같은 한 아이와의 아름답고 아리아리한 밤의 이야기이다. 이 길을 따라, 아니 이 이야기 속의 길을 따라 시인은 가고 있다. 그러다가 둘째 수에 오면, 어느새 시인은 얽뚝배기 허생원과 시공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느끼기도 하고, 물방앗간 정분 나누던 노인의 추억을 마치 시인의 것인 양 즐기기도 한다. 처음엔 봉평의 길을 가면서 이효석의 소설을 생각해 내내고, 나중엔 아예 소설 속의 길을 따라 시인이 이입해 들어가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시와 소설의 일체를 이루게 하는 이채로운 시다.

 

3.

시는 심상을 끌고 목적한 곳으로 가 닿아야 한다. 시인과 독자의 경계를 허물고 곧바로 가 닿는다면 그 시는 공감의 폭이 넓은 좋은 시가 된다. 그 길은 징검돌로 놓여 있다. 징검돌은 간격이 넓으면 물에 빠지게 되고 좁으면 걷기에 불편해 진다. 그러므로 시는 넘쳐서도 안되고 모자라서도 안 된다. 정형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위에 인용한 두 편의 시에 비해 다음의 시들은 절제의 미학이라는 시조의 특성에 매우 근접해 있어 눈길을 끈다.

 

삯바느질 노파가 며칠 전 죽었다네

낯이 선 수양아들과 허청대는 술꾼도 몇

북녘 땅 건너다 뵈는 질펀한 부두난전

늦가을 눈부신 옥양목 결을 따라 .

바늘땀 하얗게 팬 재봉틀 소리로 가던

바닷가 그 언덕 마을 차양도 낮은 집

—김윤철, 「백령도에서」전문(《다층》가을호)

 

 

한창

피던 꽃도

그대로 멈추었고

 

공간에

떴던 잠자리

날개짓도 정지한챈데

 

그 속을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나만 가네

-이문형, 「斷想· 1」전문 (《시와 생명》가을호)

 

김윤철의 시는 농울 치는 서정으로 인한 감정 과잉의 우려가 있었으나 작은 유화 한 점처럼 이미지 처리를 한 결과 단아한 시 한 수를 얻었다. 백령도에 사는 한 노파의 고향은 북녘인 듯하다. 두고 온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남한에선 수양아들 하나만을 두었다. 그마저도 떠난 지 오래인가 마을 사람들에겐 낯선 얼굴이다. 둘째 수에선 눈물도 한도 결을 삭인 채 바닷가 옛집을 찾아간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다. ‘늦가을 눈부신 옥양목 결을 따라’ 더듬어 찾아가는 길손의 마음은 조심스럽고, ‘바늘땀 하얗게 팬 재봉틀 소리’는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표현이다. 이런 모성적 섬세함으로 인해 완성도 있는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이문형의 시는 이호우의 ‘개화開花’를 연상 시킨다. 이호우는 꽃이 피어나는 순간의 정적을 극도의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묶어 놓는데 비해, 이 시는 반대로 피어나는 꽃도, 잠자리의 날개짓도, 정지한 일순의 정적 속에서 종종걸음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게 한다. 이 정적의 순간에 시인은 갑자기 유리되고 만다. 초침도 멎어있고 공기도 흐르지 않는 진공 속에서 시인은 자신에게서 빠져 나간 또 다른 나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그 속을 걷고 있는 자신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종종걸음으로 걷는 소년, 즉 거꾸로 가는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다. 이 시 역시 최소한의 말로써 율격을 지켜낸 미덕이 돋보인다.

 

4.

《열린시조》에서 기획한 80년대 시인 특집은 여러 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시조로서의 80년대는 공황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시조인들이 늘면서 변화의 기운이 내적으로 움트고 있었지만, 문단 전체의 사정은 시조단의 이런 움직임을 간파해 내기란 쉽지 않은 현실 이었다. 광주로 대변되는 철권의 기운은 민중문학론의 기폭제가 되었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소집단 문학운동의 열기는 자유시의 물결로 뒤덮인다.

그것은 어쩌면 시조인에겐 예견된 결과일지도 몰랐다. 시조의 운율은 외형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내적 응축의 미학이므로 외치고 저항해야 하는 시대와는 필연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했다. 물론 시조를 통해서도 저항의 필봉을 휘두르려 노력한 시조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유시의 도도한 물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다.

이런 시대에 시조로 시작한 시인들은 소외와 절망으로 문단과 맞딱뜨린 일군의 시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패배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견뎌낸 80년대는 이들에게 새로운 자생력을 키워 주었고, 시조 부흥의 기치를 내건 선배 시조인들과 함께 선봉에 설 수 있는 생명력을 갖게 해 주었다. 나는 이런 역사적 관점에서 80년대 시인들의 변화된 모습을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가야할 길을 몇 번이고 잘못 들면서 생각한다

살아오면서 많은 길을 잘못 들었을 거라고

내 그대 찾아가는 길 애초부터 없었을 거라고

그러나 길 들어서면 거기 어울리는 풍경 있둣

뒤란 간장맛 우려내는 5월 햇살도 있으리

독신(篤信)의 서늘한 뜨락 펑펑 꽃들은 피어나리

바다가 꼭 목적이 아니라면 바다는

어디에나 있고 또 아무데도 없으리니

꽃핀 길 한때의 나무 밑에 잠시 짐을 내려두자

바라보는 것만으도 눈부신 사랑은 남아

애써 섬들은 제 희망의 노란 불씨를 깨무는가

미로(迷路)의 투명한 시간이 겨울 수사(修士)처럼 지나는 저녁

—이지엽, 「하동 가는 길j, (《열린시조》가을호)

 

광주에 사는 시인은 경상도 하동땅으로 가고 있다. 그의 길은 번번이 엇갈린다. 여기서 하동은 꼭 그곳이어야 할 지명은 아닌 듯싶다. 그저 목적지에 곧바로 닿지 못하고 엇갈린 길은 시인이 살면서 엇갈린 어떤 체험을 떠올린 것일 게다. 5월 햇살은 하동에도 있고, 또 다른 어디에도 있다.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바다가 없는 곳이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할 것이니 시대를 짐 지겠다는 대책 없는 사명감은 내려두자고 다짐한다. 광주의 5월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제 시인에게 쏟아지는 햇살은 평화롭다. 시인은 그 지긋지긋한 집착에서 저만치 벗어나, 바다가 아니어도 바다를 볼 수 있고 찾아 갈 마을이 아니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게 되었다. 시인이 만난 하동의 저녁은 투명하고 수사(修土)의 눈빛처럼 경건하다. 이 시는 그저 아름다운 한 편의 서정시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단순히 서정 그 자체만으로 읽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80년대 시인의 한 변모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까닭이다. 이 감상은 일견 위험해 보이지만 아직도 그 연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의 분별없는 감정이 작용한 탓이기도 하다.

 

불안한 봄이 온다 북위 삼십칠도 삼십팔도 그 사이 잠든 푸른 뱀 한 마리 누군가 이월의 비늘을 아프게 헤집는다

 

물길 끊고 길을 끊어 마음까지 끊어졌다 정선 가수리(佳水里)부터 영월 만지(滿地)까지 침 묵의 댐에 잠겨 있는 수몰 예정 마을들.

 

소년은 웃으면서 어름치라 말했다 꾸구리 끽지 여울각시 그물 가득 튀 는데 순은(純銀)의 모국들이 저리 살아 빛나는데.

—<하 략>一

—정일근. 「겨울 동강(東江)에서」부분 (《열린시조》가을호)

 

오랜만에 정일근의 시조를 읽는다

정일근이란 이름은 80년대의 솜이불처럼 내게 다가온다. 80년대 초중반, 젊은 시인들은 백골의 돌격대처럼 외롭고 지쳐 있었다 한편으론 우군의 박수소리와 또 한편으론 구둣발의 호각소리가 혼재된 거리에서 우리는 노래하다가 지치고 다시 일어서서 노래하던 시대였다. 이때 정일근은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로《한국일보》신춘문예에 당선한다. 그와 문청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 역시 영양실조로 말라 있었고,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때 그의 넉넉한 시편들은 그들을 따뜻한 솜이불처럼 덮어 주었다. 86년 다시《서울신문》신춘문예로 시조 등단을 했지만 기실 그동안 그는 시조 창작을 많이 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시조에 대한 애정만은 변함없으리라 여겨진다. 지금보다 더 시조에 열정을 보여준다면 시조의 지평 확장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된다. 80년대 시인들은 우리 문단의 허리다. 이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문단의 흐름이 좌우될 수도 있다. 진화하는 실험과 전통서정시는 대척점에 선 것이 아니라 무한 반성의 결과물일 뿐이다. 이 사이에서 시의 중심을 지켜내어야 할 몫은 이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구심력 없는 일탈은 없다. 끊임없는 원심력 욕구는 구심력으로 조절되고 제어된다. 우리 시조를 떠받히는 힘 역시 80년대 시인들의 몫이 크다. 반성에 대한 새로운 반성으로 더 큰 에너지를 갖기를 희망한다.

 

5.

 

시조는 원래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시조에 대한 이러저러한 말들은 이제 구차하기까지 하다. 우리 시대에 문학 전반의 위상이 어떤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사이버 소설이 단번에 몇 백만의 독자를 확보해 가고, 출판사는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단편집들과 시집의 간행을 꺼리는가 하면,일부 팔리는 소설가들만을 겨냥하는 시대에 시조에 대한 편견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또한 그래도 문인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시인에 대한 기대도 만만찮다. 아직도 아니 앞으로도 시는 유효할 것이다 시조 역시 마찬가지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창비시선 189번으로 ‘6인집 시조집’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를 펴내었다. 창비사에서 시조만을 한권의 책으로 묶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는 시조에 대한 인식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여러 문예지에서 시조난을 기획하고 있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신경림 시인의 “시로 읽어서 좋은 시조가 살아남는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 아닌가. 시조는 시다. 민족시가의 양식이기 때문에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 가치가 있는 민족시가이기 때문에 미래에도 계승되어야 하는 것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 잠자는 독자를 끌어내는 힘, 거기에 시조 700년의 당위성이 있다.

-『다층』1999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