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평론

김명인 시집『東豆川』을 읽고 - 이달균

이달균 2015. 7. 14. 20:35

동두천에서 부르는 부활의 노래

- 김명인 시집『東豆川』

 

    이 달 균

지난날 나는 김소월의 ‘초혼’을 읽으면서 불멸이란 단어를 생각하곤 했다. 한 천년을 마감하는 해인 오늘, 새 천년이란 시간 개념을 통해 보면 시인 김소월은 불과 육십 년 전의 세상을 살았던 우리 시대의 시인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미 그는 고전이 되었고. 요절한 민족 시인이란 수식어로 장식된 신화가 되어 있다.

신화는 지난 시대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결국 김소월은 우리 시대의 가인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불멸의 시인은 있을 것인가. 탄생이 곧 소멸인 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에 불멸의 것들은 존재하는가. 아니, 영혼의 영원성을 경배하고 추억해 줄 시대의 사람들은 있는 것인가.

어쩌면 시인은 잊혀 질 것이다. 섣부른 결론에 이르고 싶진 않지만, 불멸의 영혼을 갖지 못한 시인들은 인명사전 속에 이름 석 자를 누이고 조용히 잊혀 져 갈 것이다. 한때 그의 시를 사랑했던 일군의 독자들도 신제품처럼 밀려오는 신문화에 탐닉하면서 서서히 시인을 잊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그가 펴낸 시집들은 이미 낡아서 헌책방 한구석을 뒹굴다가 마침내 폐휴지로 실려 나갈 것이다. 시인이란 이름 석 자와 몇 줄의 시는 그래도 몇 사람의 기억 속에 추억처럼 남아 있겠지만, 시집은 그렇게 실려 나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김명인의 시집「東豆川」을 읽는다. 79년 10월 25일 초판 발행된〈문학과 지성〉시선집이다. ‘다시 읽는 추억의 시집’이란 코너에 내가 굳이 이 시집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독자들께서는 이 시집이 출판된 79년이란 해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 70년대는 ‘청년’이란 이름의 한 세대가 비로소 대중문화라는 말을 만들어 내던 시기였다.

박정희 식의 개발독재가 온 나라를 위압적으로 통치할 때, 청년들은 청바지, 통기타, 장발 같은 동질의 표현으로 서서히 저항의 문화를 형성하면서 잠재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한대수. 김민기, 송창식 같은 대중음악의 기수들은 노래를 통해 청년문화를 한 궤로 엮어 내었고, 영화감독 하길종은「바보들의 행진」이란 영화를 통해 ‘바보’라는 한 단어로 시대를 조롱하면서 저항의 폭발력을 시험하던 시기였다.

한편. 시인들은 60년대의 난해한 모더니즘 시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고, 하고픈 말의 물꼬를 트지 못하는 시들에 반(反)한다는 도전적 언어인〈反詩〉라는 말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 시절 제어하지 못할 열정으로 문학 청년기를 보내던 우리들에게〈反詩〉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70년대 후반.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면서 시사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던〈反詩 동인〉은 80년대 광주의 소용돌이로부터 시작되는 소집단 문학운동의 절정기인 동인의 시대를 예비했던 것이다.

 

월급 만 삼천 원을 받으면서 우리들은

선생이 되어 있었고

스물세 살 나는 늘

마차산 골짜기의 허둥대는 바람 소리와

쏘리 쏘리 그렇데 미안하다며 홀러가던 물소리와

하숙집 깊은 밤중만 위독해지던 시간들을

만났다 끝끝내 가르치지 못한 남학생들과

아무것도 더 가르칠 것 없던 여학생들을

 

막막함은 더 깊은 곳에도 있었다 매일처럼

교무실로 전갈이 오고

담임인 내가 뛰어가면

교실은 어느 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태어나서 죄가 된 고아들과

우리들이 악쓰며 매질했던 보산리 포주집 아이들이

의자를 던지며 패싸움을 벌이고

화가 나 나는 반장의 면상을 주먹으로 치니

이빨이 부러졌고

-「東豆川 Ⅱ」 중에서

46년생인 시인에게 처음 다가온 현실은 곧바로 한국동란이었다. 그리고 그가 유년에 맞닥뜨린 전혀 새로운 경험은 미군과 혼혈아, 붉고 검게 분칠한 여인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의 시적 공간으로 그는 <동두천>을 택한다. 물론 우리는 시인이 그곳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든가 하는 일상을 굳이 알 필요는 없다. 단지 출생에서부터 비극이 시작되는 아이들의 삶과 음습한 골목, 포주들의 악다구니가 있는 우리 상처의 현대사를 드러내는 공간으로 동두천이 선택되어진 것뿐이다.

동두천은 분명 우리나라의 한 지명에 불과한 곳이지만 막연한 아메리카에 대한 변형된 꿈이요, 혼혈아들의 돌아가고 싶지 않은 유산의 본향이기도 했다. 동두천은 우리 아버지들이 숙명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오늘로 향한 통과의 문이다. 이 시집은 60년대에서부터 70년대까지의 리얼리즘이다.

 

우리들은 헛간 같은 데다 여자를 그렸다 낯 붉힌

여자애들이 총무에게 달려가고

함께 벌 서고 꿈쩍도 않던 아이 너는

두꺼비같이 불거진 눈두덩에 긁힌 상처 속에서

숨긴 손칼을 꺼내 기둥에다 던지기도 하면서

 

그 여름 위에 흠집을 만들었다 물볕

쏟아지던 속을 걸어 가을이 가서

바라보면 배고픔조차 견딜 수 없던 긴 날들 지나자

너는 방죽을 따라 힘없이 맴돌기도 하였다 추위 다가와

날마다 더 먼 곳 싸돌던 다리 아래

거지들은 천막을 걷고 떠나가 버렸고

〈중략〉

우리는 떠났다 들기러기 방죽 따라 낮게 흐르는

여울을 건너면 저무는 들길

모두 밤인데 어느 눈발에

젖어 얼룩지는 마음만큼이나 어리석게

그 세상 속에도 좋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으면서

믿음이 만드는 부질없는 내일 속으로 우리들은

힘들게 빠져나가면서

一「안개」중에서

 

‘송천동 그 해 그 모든 것들 속에서’ 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육칠십 년대 천막촌의 고아원에서 성장기를 보내던 아이들의 이야기다. 안개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막연한 불안함이고 거꾸로 위안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 믿음은 ‘눈발에 젖어 얼룩지는 마음’같은 것이며 ‘부질없는 내일 속으로 힘들게 빠져나가는’ 확신 없는 행위들이다. 안개 밖의 세상은 그들에겐 두려운 꿈이요 현실이다. 안개 속에서 그들은 힘들고 궁핍하지만 차라리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다. 이 익숙한 고통에서 벗어나 안개 밖의 세상으로 향한 그들의 걸음은 조심스럽고 두렵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부모 잃은 아이들과 버림받은 아이들이 갈 곳은 이곳 밖에 없었다. 역사는 항상 그들의 편이 아니었고 희망의 반대편 쪽 삶을 살게 만들었다. 이 시 ‘안개’는 그들 고아원 아이들의 모습이면서 이데올로기적 상황 속에서 겪어야 했던 약소국가의 비극적 기록들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어떤 희망의 모습도 비전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역사물의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고아원 아이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낼 뿐이다. 그래서 이 시는 독자들을 함께 우울하게 만든다. 이 우울함의 암묵적 분위기가 바로 안개다. 우리나라 전체를 뒤덮고 있던 상황의 안개. 우리 현대사 속의 한 단면이다.

 

운동장을 질러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너희 나라가 생각난다. 탐아.

한 나라가 무엇으로 황폐해지는지 나는 모르지만

한 어둠에서 다음 어둠으로 끌려가며

차례차례 능욕당한 네 땅의 신음 소리를 다시 듣는다.

 

내 손에. 정글刀만 쥐어진다면

자르고 싶은 것은 敵이 아니라 나의 연민이다.

불란서 튀기 너는 우리 부대의 마스코트였지만

가난한 나라의 한 병사가 바라본 너는

슬픔이 아니라 미움이었다

一「베트남 Ⅱ」중에서

 

40년대의 세대는 절망과 모색을 교차하면서 살아온 들찔레 같은 운명에 비유된다. 시인이 폐허의 10대를 보내고 맞닥뜨린 20대의 현실은 또다시 감당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한국동란이 가져다 준 피폐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에 날아든 월남전쟁과 파월의 소식은 온 국토를 들끓는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게 된다. 월남전쟁은 세대별로 각기 다른 경험을 갖게 해 준 사건이다. 한국동란으로 허기진 유년을 보낸 시인의 세대에게 전쟁은 하나의 숙명이었다.

이제 그들은 직접적으로 전장에 투입되어 생사를 경험해야 하는 최대의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우리들은 국군 아저씨들을 위한 송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이름도 생소한 온갖 부대 이름을 줄줄이 외면서 파월 장병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곧바로 누구네 삼촌이 죽었다느니 다리가 잘려나갔다더니 하는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디오 하나 없는 시골구석에서 파월 장병의 노래만 부르는 우리들에겐 전쟁이란 막연함 그 자체였다. 그들의 죽음보다 우리를 더 들뜨게 했던 월남전쟁은 누구 형님이 돌아올 때 두 손 가득 가져온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옷가지들. 위문공연 온 여가수들과 찍었던 사진 따위였다. 우리들에게 월남전쟁은 이런 새로운 물질에 대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변해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두 축을 지배하고 있었던 미국과 소련, 파병 조건의 반대급부로 얻은 군사력 현대화와 건설 국가로의 전환. 라이따이한의 존재 등을 안 것은 세월이 한참 지난 후였다.

 

먼지를 일으키며 차가 떠났다. 로이

너는 달려오다 엎어지고

두고두고 포성에 뒤짚이던 산천도 끝없이

따라오며 먼지 속에 파묻혔다 오오래

떨칠 수 없는 나라의 여자. 로이

너는 거기까지 따라와 벌거벗던 내 누이

「베트남 Ⅰ」중에서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혈아인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

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 나가더니

지금도 기억할까 그 때 교내 웅변 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 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東豆川 IV」중에서

 

①의 시 월남의 몸 파는 아이 로이와 ②의 시에서 시인이 아는 어느 혼혈아는 매우 닮아 있다. 로이가 아이를 낳는다면 역시 국제 혼혈아 일 것이며 그 아비는 제 나라로 가서 그 아이의 존재마저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 역시 제 나라에서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 서럽게 살아 갈 것이다. 시인은 로이를 보며 ‘벌거벗던 내 누이’ 를 생각한다. 내 누이와 로이는 동질의 이름이며 운명이다.

시인은 월남의 전장에서 조국을 생각했다. 능욕 당하는 여인들을 바라보면서 능욕 당하는 땅의 신음 소리를 듣는다. 로이가 낳은 아이들은 시인이〈켄터키의 집〉이라 불렀던 송천동 그 바닷가 고아원으로 흘러갈 것이며 알지 못할 두려움처럼 휘감아 오던 안개 속에서 웅크린 채 성장의 숨을 쉴 것이다.

목덜미를 닦으며 사촌은

이제 막 제철인 울릉도와 오징어를 이야기한다.

물장구를 치며 여름 내내 장구애비처럼 달아

문을 열면 전체가 입 전체가 눈 전체가

바다의 귀를 달고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시절 파도가

거칠게 깨어진다.

깨어진다 눈에 가시를 박아 주며

맨살에 얼음을 비비는 물보라 날은 흐려

턱 밑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수평선을 털어 내며

더는 기다릴 것 없어도 서른은

한 가지 생각을 끝끝까지 흘러 보내게 한다

바라보면 절반쯤 눈물을 섞고 섰는 오리숲

 

바람이 쉬임없이 모래를 퍼 나른다 .

떼지어

낮게 지붕을 타고 흐르는 물새들

결심은 이내 어두워지고 저 젖은 바다의 힘줄에

모든 것은 또한 감길 뿐

우리들은 묶여 있다 이물을 서로 대고

굳게 묶여서

빈 배처럼 다정하게 흔들린다

ᅳ「嶺東行脚 I」부분

 

이 시집〈東豆川〉에는 영동행각 연작이 7편이 실려 있다. 이 연작 뒷편에 붙은 시〈다시 嶺東에서〉를 포함하면 8편이다.

이제 시인은 생활이라는 또 다른 현실을 만나게 된다. 왜 그가 생활이란 현실의 시작을 영동행각에서 얻어낸 것일까 영동과 시인과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주 단편적인 정보인 경북 울 진이 시인의 고향이란 사실을 나는 알지만 그것이 이 시를 이해하는데 큰 열쇠가 되지는 않는다.

거부할 수 없었던 10대와 20대를 보내고 이제 막 30대를 시작하면서 영동에 와서 시인의 외연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우리들은 묶여있다 이물을 서로 대고/굳게 묶여서/빈 배처럼 다 정하게 흔들린다’

저무는 영동 어느 마을에서 시인은 식솔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물을 서로 맞대고 묶인 인연의 끈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 인연들은 다정하고 소중하다.〈嶺東行脚〉연작에서도 시인의 현실은 썩 밝아 보이 진 않지만, 조금씩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안개를 걷고 새로운 세상과의 화해를 시작한다.

동해의 바람은 ‘내 살의 아픈 상처에 붕대를 감아’준다고 느낀다. 서울을 떠나와서 울릉도로 간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 섞고 서 있는 오리숲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가시를 찔러 오는 세상 같은 건/껴안아서 흘려보내’고 그 곳을 떠날 준비를 한다. 바다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연결 고리가 완전히 맺어진 것은 아니지만, 역사의 노정에서 힘에 의해 결박당하고 헤어지던 지난 시절의 숙명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비록 이곳이 ‘깃발을 벗겨 가버리’고. ‘파도만 들어서 귀뺨을 후려’치는 곳이지만 ‘이 물결에 마음 붙인 사람들의 오랜 고향’임을 시인은 안다. 이제 시인은 조금 더 따뜻하게 이들을 껴안고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1993년 김명인은〈華嚴에 오르다〉외 몇 편으로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다. 첫 시집〈東豆川〉과 다음 시집〈유다 시집〉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변모가 많은 것을 생각게 해 주었다. 사실주의적 직관으로 대변되던 그의 경향은 어느새 사물에 대한 폭넓은 관찰과 인식을 통해 사상적 깊이를 구축한 세계로 변모되어 있었다.

첫 시집이 출판되던 그 해 그 달 그 다음날,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곧바로 80년대라는 새로운 격동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嶺東行脚〉을 거쳐 조금씩 화해의 손길을 맞잡으려는 그에게 현실은 화해를 이루기엔 너무 섣부른 결론이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하지만 이 격동의 시기를 보내면서 시인은 오히려 내적으로 침잠하면서 결을 고르기 시작했고. 마침내 시인이 다다르고자 했던 그 궁극의 것들을 찾기 시작한 셈이다. 혹자는 그 느닷없음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의 귀결은 일견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이 시집「東豆川」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집 3부에 해당되는〈高山行〉외 몇 편의 시들과 5부를 구성하는〈復活〉외 몇 편의 시들은 그의 시적 변모를 위해 제공된 복선의 시편들이다.

 

삽을 들어 산오리나무 밑둥을 파헤쳤다.

살은 썩어서 다시 집이 되는 흙 속에서

아버지, 이제 태어나시는 아버지

산 그림자를 깔고 앉아 눈부신

횐 뼈를 추리면서

잿속에 그이 이름을 털어넣고 일어섰다.

 

굽어보면 荒天 끝까지 바람을 섞고 있는 바다.

동해여. 한 가지 생각에 깊이 빠져서

내 기댈 곳 없을 때 서로 마주 서야 하느냐?

문득 조롱새 한 마디가

주르르 등덜미를 치며 흘러간다.

〈중략〉

아버지 아버지의 모습은?

그리고 제 모습은?

마침내 나를 풀고 한 점 구름이

멀리 청운을 흩으며 떠나간다.

—「移葬」중에서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면서 다사 태어나는 아버지를 부른다. 부활이다. 죽은 자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다거나 생멸의 일치를 느끼는 일 둥은 훗날 시인이 화엄과 유적에 오르는 시편들과 다르지 않다. 몇 동가 리의 횐 뼈를 추리고 바다를 바라볼 때 마주친 조롱새 한 마리가 등덜미를 치고 날아오른다는 구절과 ‘굴참나무 잔가지에 얹히는 經典을 들어 나를 후려’친다〈華嚴에 오르다〉는 구절의 의미는 지극히 유사하지 않은가.

이 시집〈東豆川〉은 육칠십 년대의 리얼리즘이지만 군데군데 묻어나는 시인의 내적 갈망이 앞으로 변화될 시의 경향을 다소나마 예고하고 있기도 했다.

처녀 시집은 시인에겐 첫 아이의 출산처럼 두근거리는 그 무엇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쉬이 잊어버린다.〈시와 생명〉에서 기획한 ’다시 읽는 추억의 시집’ 은 잊혀 진 시집들을 끄집어내어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그 시인의 변화와 모색의 과정을 짚어보고자 하는 취지다. 시인은 누구나 불멸을 꿈꾼다. 오늘 나의 영혼이 불멸의 것이라고 믿고 치열하게 창작의 길을 간다. 하지만 시대는 우리의 욕망과는 달리 몇 사람의 가인만을 선택한다. 그것이 시인의 운명이다.

이 코너에 첫 시인으로 김명인 시인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잊혀 진 시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누구 못지않은 왕성한 시업의 현역이며, 많은 독자들을 갖고 있고 문단의 비중도 크다. 하지만 그런 성공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잊혀 져 갈 수 밖에 없는 첫 시집을 다시 읽으면서 지난 시절의 열정을 되새겨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70년대의 말미에서 그 시대를 정리하는 시집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하였다. 그리고 80년대의 시들이 흘러갈 방향을 함께 예고해 준 의미 있는 시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의 김명인 시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원하는 뭔가가 달라졌다 해도 결코 이 시들이 공허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시들에 대한 비옥한 토양이 되게 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 것은 큰 기쁨이다.

-『시와 생명』(1999. 여름 창간호)

 

시조, 쟁점과 과제

이달균

 

초정艸丁, 초초시실艸艸詩室, 불력마천시루不易摩天詩樓 등의 아호로 불리신 김상옥 선생께서 타계하셨다. 1937년 김용호, 함윤수 등과 함께 ‘맥貘’ 동인을, 1938년엔《문장文章》지와 동아일보 등에 시,시조, 동시로 추천 및 당선되어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시문학 전반을 아우르면서도 고아한 언어의 경지를 열어 보인 시인은 2003년 10월 30일 절창의 가락 속에 생을 묻고 표표히 떠나셨다. 이는 그냥 한 시인의 서거 소식이 아니라 한국 문학사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될 만하다. 시서화詩書畵 3절三絶이라 불렸으며, 《문장》추천 시인으로서 일세대의 마감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학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후학들에겐 참스승이 그리운 시대다. 누가 그처럼 언어를 정갈히 씻어 시를 빚는 시인이 있었던가? 계신 것만으로도 시조단의 힘이었는데 큰 산 하나를 잃은 기분이다. 시인이라면 의당 갖춰야할 품격 높은 어른을 이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선생께서 일찍이 말했다. ‘시詩도 받들면/문자에/매이지 않는다’ 고. 하지만 문자에 매이지 않는 시인이 어디 흔하던가? 차라리 문자에 매이는 시인이라면 순결하다. 시를 받들어 쓰진 못해도 문자에라도 매여 있으면 받들고 싶어진다. 문단과 허명에 매이지만 않는다면. 시조는 계속 쓰여 질 것이고 시조인구는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나갈 것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뭐라고 말할 입장은 아니다. 그저 발표되는 작품에다 돋보기를 들이댈 밖에.

초정 선생의 명복을 빌면서 지난가을호에 발표된 시조들을 읽었다.

 

권달웅의〈반딧불이 날다〉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여기 술 한병 더! 뿔테가 외치자 에어컨 끄러 일어섰던 김영재가 예,예 대답했다

아냐 아냐 됐어 은테가 손짓하자 예,예 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니, 주인장이 아닌가봐 이거 실례했잖아 아니, 당신 사과해 손님이야 손님! 눈밝은 경오생 뿔테와 은테를 가리키며 말했 다

아이구 이거 미안합니다 뿔테가 굽신거리자 은테도 일어서서 아아 이거 참말 죄송합니다 아이구,괜찮습니다 김영재가 서서 허릴 연신 굽히고 박시교 김현도 웃음으로 화답할 때 아, 저 양반 염량을 좀 봐요 아무렇지도 않게 다 받아주는 저 염량을 좀 봐 내 이런 경험 처음일 세 우리가요, 6.25참전용산데요 50년만에 만났어요 이 친구하고는요 경오생이 뿔테를 가리키 며 말했다 아,그러십니까 아이구 축하합니다 좋으시겠습니다 아주머니, 여기 술 한 병 갖 다 드리세요 제가 올리겠습니다 아이구 이런 고마우실 데가....

 

칠순의 푸른 웃음이 번져 흰 꽃잎 마냥 흩고 있었다

-홍성란〈사동면옥 이야기〉《열린시조)2004 가을호

 

사설은 언어를 자유자재하게 주워섬기지 못하면 실패한다. 앞말을 뒷말이 이어받고 앞 구절이 끊기기 전에 뒷 구절을 끌어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담과 호흡의 넌출거림이 좋아야한다 그러므로 사설은 타고난 문창성이 없으면 노래하기 어렵다 광대의 기질과 굴곡진 삶의 체험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사설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산문시와의 구별이 어렵다는 이유로 창작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분명 사설시조는 자유시 훨씬 이전에 노래된 양식이다. 이는 사멸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유시단 의 눈치를 봐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중요한 것은 좋은 사설시조가 창작되고 독자들의 반응을 얻는 일이다. 약간의 제한된 형식만 지키면 이만큼 자유롭고 탁월한 시가 없다. 산문시는 율을 제어할 장치가 없다. 스스로 조율에 실패하면 시가 아니라 그저 산문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사설시조는 구와 구의 급박한 호흡에 의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해학과 풍자야 말로 시가 가진 최고의 덕목이다. 이런 것들을 단 번에 읽게 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양식이 없어 보인다.

홍성란의 이 작품을 읽어보면 시조가 오늘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기능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이 시의 내용은 단순하다. 옆자리의 손님에게 주인인 줄 알고 술 한 병을 시켰고,금방 이를 알고 사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술잔들이 오가는 왁자한 풍경을 담아낸 것이다. 전혀 극적이지 않는 내용을 사설시조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것은 주인인 양 그 손님이 너스레를 떠는 염량을 포착하여 능숙하게 시화하였기 때문이다. 중장의 긴 엮음은 여러 문장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쉬어갈 틈이 없다. 그래서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따로 된 문장이지만 하나의 문장처럼 연결되어 있다. 사설시조의 선입견인 거친 육두문자와 음담패설 없이도 정겹고 서민적인 풍경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보법을 다스리는 자신만의 독특함을 이 시에서도 잘 보여준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출근해서 날마다

책을 찢고 버린다

그일이 즐겁지는 않지만

개운하고 편하다

 

〈중략〉

 

한 때는 욕심이 넘쳐

이 책 저 책 품었지만

열정도 시들해져

품는 일도 귀찮아졌다

욕심을 버리다보니

버리는 것도 욕심이 된다

-김영재,<책>부분(《 개화 開花》13집)

 

이 작품은 꼭 시조라고 생각하고 읽진 않았다. 그저 쉽게 읽히고, 읽다보니 시조인 줄 알겠다. 시조가 독자를 잃어가는 주원인으로 장과 구에 얽매여 자유로운 보법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호흡을 제어하면 시 속에 갇혀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런데 이 시는 물 흐르듯 창과 장이 연결된다. 얼핏 긴장감이 떨어져 보이지만 이런 시는 이래야 제 맛이 난다.

한국 시단에서 ‘버림’ 혹은 ‘무욕’이란 말은 이제 너무 낡은 것이 되었다. 젊을 땐 욕심으로 책을 품었고, 나중엔 욕심을 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젠 버리는 마음도 차라리 욕심 같아서 그때그때 마음에 맡겨버리고 만다. 이 시는 책을 통해 욕심과 버림을 얘기하지만 오늘날 우리 시단에서 ‘버림’이란 화두를 조자룡 헌 창 쓰듯 너무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한 지적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시인들이 한결 같이 노자연하고 도덕군자연한다면 그 또한 얽매임이 아닌가.

 

뱃가죽 한복판

얼씨구

흥이 달아

 

소리 틈을 메우는

추임새 한판이다

 

소리꾼

구성진 가락

하이 쿵 딱 좋을시고

-이숙경,〈북〉전문(《정신과표현》11·12월호)

 

이 작품은 왜 시조인가, 아니 왜 단수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좋은 답이 될 성 싶다. 초장에선 얘기를 끌어내고 중장에선 펼치고 종장에선 완벽한 마무리를 짓는 짜임새를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3장 6구 속엔 넣고 뺄 수 없는 단단한 틀이 존재한다.

초장에선 잔뜩 달아오른 북과 흥을 보여주고 중장에선 소리소리 사이의 틈을 메우는 추임새의 기능을 느슨히 풀어낸다. 그러다가 종장에 오면 북과 소리꾼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가락을 읊으면서 정작 가락을 잃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 시는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아 좋다. 이유는 결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하이 쿵 딱 좋을시고’ 의 적절한 의성어 사용은 자칫 평범에 빠질 위험에서 생명을 지닌 시로 거듭나게 한 요인이 된다. 단수의 성공확률은 낮다. 짧은 시 속에 풀고 맺음을 제대로 해내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 다.

언어를 자르고 마름질하는 시조 본연의 기본이 탄탄해 보인다. 그런 가능성만은 확인한 셈이다. 무엇이 시가 되는지,존재해야 할 당위성은 어떤 것인 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과제일 듯싶다.

 

군포새 군포새 하며 울었다는 그 새는

눈먼새 모르새들 둥지 튼 가지 위에

호포새 호포새 하며 울기도 했다는데.

 

양물을 잘리내고 마른 뼈 불을 질러

구강포 뻘밭 목숨 살풀이로 살던 땅에

풍랑에 잠 못 든 달빛 뒤척이며 부서진다.

 

보지 못해 듣지 못해 울지도 웃지도 못해

내 오늘 강진에 오면 살아서 다시 못가도

언젠가 그가 오리라 올 수 없는 길을 밟고.

 

앉은뱅이 씀바귀들 띠풀 모아 초당 짓고

달빛이 먼저 들며 목민심서 베껴 쓰던

지금도 강진에 가면 천둥처럼 외고 있다.

-최영효〈지금도 강진에 가면>《서정과 현실》2004 하반기호

 

앞의 시〈북〉이 맛깔스런 가락의 변용을 보여주었다면 이 시는 남성적 고저장단의 넘치는 힘을 보여준다. 역사를 끌고 와서 풀어놓는 모양이 품새 너른 판소리꾼을 연상케 한다. 첫 수의 군포새와 눈먼새,모르새,호포새의 중복 사용은 시조의 가락을 위해 적절히 차용된 시어들이다. 새 울음과 새 이름,울음 소리와 연상되는 포탈 조세의 이름이 어우러져 밀고 당기는 묘미는 이 시를 한결 숙성시킨다.

고통의 시 ‘애절양哀絶陽’을 빌려와 폭정에 우는 서민의 편에서 함께 울어주는 다산의 마음이 여기 있다. 역사적 사실을 얘기할 때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자칫 화학적 용해가 이뤄지지 않으면 생경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넷째 수 중장의 ‘목민심서’ 의 언급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승전결의 구도를 취하면서 마지막 수에 들인 공으로 이런 단점들은 극복되었다. 초장의 ‘앉은뱅이 씀바귀들 띠풀 모아 초당 짓고’ 같은 표현 들은 첫 수의 의성어들과 어울려 훌륭한 결구를 이룬다.

다소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어법은 이 시인의 장점이다. 유려한 문장을 만들지 못해 거친 호흡으로 노래 한 것이 아니다. 고통은 반복된다. 역사 속 일들과 오늘의 일들이 완전히 경계를 가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강진에 가면 천둥처럼 외고 있다.’는 구절은 현재에도 목민심서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어디선가 받아 든 낯선 명함 한 장

손끝으로 더듬더듬 짚어보다 말 뿐

한 발도 그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듯 하릴없이 바라보다 지나친

어득한 길과문이 점자위에 겹쳐질 때

혼자만 동동 건너온 삶이 새삼 누추해

 

완행이나 지하칠 후미진 계단쯤서

마주친 검은 손과 총총 피한 눈빛을

결국은 다시 만나고 갇히고 마는 것을

겹겹의 책 사이에 문맹으로 나앉아

몸으로 늘 길 트는 물소리를 더듬다

헛말의 아픈 목록을 점자에 새겨보다

-정수자,〈점자 명함〉전문(《시선》가을호)

 

정수자의 시는 단아함과 품격이 단연 돋보인다. 이 작품 역시 안정된 외형율에 바탕한 본연의 전통과 율격을 잘 갈무리 하고 있다. 결을 다스리는 조신함은 시인이 가져야 할 필연적인 덕목이다. 이 시조는 명함 한 장으로 그려낸 시대의 단면이다. 단절된 벽 앞에서 담담히 소회를 피력한다. 무분별한 영탄에 젖어 감정을 쏟아내는 시조들이 많다. 이 시의 장점은 비탄에 젖어 노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인은 누군가로부터 점자 명함 한 장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 세계로의 진입은 쉽지 않다. 그들은 손끝 감각으로 대화하고 시인은 눈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소통의 길이 다르다. 비단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단절이 아니다. 지역과 지역, 이념과 이념, 무리와 무리와의 사분오열, 동시대를 사는 우린 모두 소통의 단절을 겪고 있다. 서책들의 흥수 속에서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시인이 인식하는 세상은 이렇게 삭막하다.

 

MP3를 듣는다

마흔 넘은 나이에

 

소리바다에서 다운 받은 MC몽의 180도를

 

힙합의

빠른 템포는

반응하기엔 감이 멀다

 

발라드에 익숙한 귀로

쉽게 쫓아갈 수 없는

 

밑도 끝도 없이 주절 주절대는 래핑

 

어차피

해독치 못할

코드가 맞지 않다

-김세진, <코드가 맞지 않다>전문(《생각과 느낌〉2004 가을)

 

자유시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 시조를 어떻게 느낄까. 시조답지 않은 시조? 만약 그렇게 느낀다면 이유는 왜일까. 시조에 대한 고정관념에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시조란 의례 고답적인 어투와 전원적 서정을 가져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다. 현대시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을 원망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시조인들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조인들 중에서도 이 작품에 대해 코드가 맞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시조가 독자 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와 실험성 짙은 작품들에 주목해야 한다. 튄다 싶은 작품들에 사시적 시각을 갖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 시조가 그렇게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예전에도 이런 소재와 발상은 있었다. 다만 시조 평단에서 조차 제대로 거론되어지지 않은데 원인이 있다. 공감이 간다. 직장에서도 나이 어린 이들과의 소통은 필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노력해 마혼 넘은 나이에 랩을 들어본다. 코드가 맞을 리 없다. 노력은 가상치만 결국엔 손들고 만다는 얘기다.

시조단에도 쟁점이 필요하다. 양장시조처럼 실패하더라도 논쟁의 장이 형성되어 야 한다. 이런 바램이 우릴 목마르게 한다. 이제 다음세대가 시조를 짐 지고 가야한다. 늘 강조하지만 700년을 지켜온 유일한 민족시가라지만 독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소멸하고 만다. 존재하는 것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도리깨가 요긴한 농기구였지만 기계농 시대엔 종말을 고하고 만다. 물론 정신과 말을 그렇게 비유할 순 없지만 지킬 가치가 있다면 지켜낼 힘을 모아야 한다. 그 점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과제다. 시를 받들어 문자에 매이지 않는 영혼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은 문자에라도 매이는 시인이 많아야한다.

-『정신과 표현』2005년 1·2월호

 

 

 

2000년, 시간의 매듭 위에서

1.

2000년이 저문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이라고 떠들던 기억도 이젠 사라졌다. 한 세기의 출발점을 떠난 사람들의 모습도 이전의 그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편의상 규정한 시간의 매듭이 달라졌을 뿐,삶의 모습과 본연의 것들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의 문단 역시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한국 최초의 노벨상이 평화상으로 나왔고, 아직 문학상의 기별은 없다.

그런 와중에도 2000년 한국 문단은 서서히 변해 가고 있다.

그 첫 번째로는 사이버 공간 속으로의 문학의 이동을 들 수 있다. 발 빠른 문인들은 몇 해 전부터 이런 일에 익숙해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다. 이 와중에서 올해 특히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동안 종이책 속에서만 존재했던 문학이 사이버 공간 속으로 발을 넓혀 온갖 논쟁을 확대 재생산시켰다. 전자문학 도서관, 사이버 문예지, 사이버 작가회 같은 움직임은 근년에 들어 특히 활발해진 변화 중의 하나다.

이런 흐름에 발맞추어 온갖 논쟁들이 쏟아졌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문단 권력 논쟁이 쏟아진 한 해였다. 이것이 두 번째 변화다. 그동안 이런 문제제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올해처럼 이렇게 문단의 이슈가 된 적은 없다. 힘 있는 문예지와 권력자들에게 감정적으로 도전하다 상처를 입는 문인이 혹 있었지만, 이렇게 논쟁을 유발한 적은 별반 없었다. 한국 문단의 권력은 정말 존재하는가. 만약 이를 부정한다면 그는 문단의 중심부에서 기득권을 행사하거나,상당한 추종 독자를 가진 행복한 문인일 것이다. 전자는 원하든 원치 않든 비판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후자는 문인이라면 누구나 열망하는 뿌듯한 성취일 것이다. 혹자는 문단 권력 논쟁은 지극히 소모적이므로 관심을 끄기를 바라는 이들도 많다. 독자들은 이런 문단의 이런 행태에 관심이 없기에 결국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느냐 못쓰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하지만 문인은 귀거래사를 말하면서도 잊히지 않으리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욕망은 곧바로 작품 생산과, 문학적 행위의 에너지원이 된다. 그 행위가 어떤 이에겐 권력 지향과 헤게모니의 노림수로 비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문인으로서의 본성, 즉 문인 기질의 표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폭력적 언사가 난무하기도 하고 그 말에 대한 새로운 맹공이 가해지기도 한다.

세 번째는 이런 권력구조와는 별개로 지역 문학의 특질을 대외적으로 공유하고 질적 향상을 꾀하려는 지역 문학지의 창간과 교류를 들 수 있겠다. 몇 해 전부터 앞장서 정착시킨 몇몇 문예지가 있었고, 이들 문예지의 성공은 타 지역에도 파급 효과를 가져와 이젠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예지의 전국화 경향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들 문예지들은 지역 간 교류를 통해 상호 발전을 꾀하려 한다. 이들은 또 하나의 권력을 만들지 않아야 하며. 변방을 탈피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과제도 동시에 안고 있다.

네 번째는 문학이 기록으로서의 감동 차원을 벗어나 삶과 역사, 대중과 직접적 교류를 통해 공감의 폭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기존의 시비건립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기념관건립과 생가보존 등 문학과 지역, 역사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긴밀한 연관성 위에서 얻어진 구체적인 결과물이란 인식을 심어주려 한다. 이런 시도는 일정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들 문인들의 기념관은 대개 그들의 고향이나 작품의 현장에 세워지게 되는데 이는 곧 문학의 중심 이동 현상을 낳게 한다. 그 동안 문학의 중앙 집중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생가 보존과 기념관 건립 등은 결국 자연스럽게 문학의 지역화를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동시에 지역민들에겐 새로운 긍지와 문화적 자부심을 갖게 하여 그들 스스로가 문화 주체자가 되는 중요한 변모를 겪게 한다. 이런 식의 변화는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이상 언급해 본 몇 가지 현상들은 문학 환경의 구조적 변화와 직결된다. 컴퓨터는 발표 매체의 다변화-기존의 문학잡지와 매스미디어를 통하지 않고서도 직접 독자와 만나는 지면의 해체-를 가져왔고,그와 함께 문단의 권력화 문제도 앞으로는 크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탈 중심주의를 부채질하여 작가가 중심이고. 작품의 고향이 중심이 되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정착될 것이다. 이런 지역 정서를 지역 문예지가 통합해내고 다시 대외적인 것들과의 가교 역할을 하여 문학의 균형적 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2.

 

먼데서 은은한 포성이 그치자

전선은 일시 소강상태다.

병정들 숨죽이고 일제히 적진을 노려본다.

 

일순

정적을 가르며 하늘에서 번쩍 터지는 불빛.

번개를 신호로

일제히 총구가 터진다.

후두둑

발등에 총탄이 떨어진다.

이윽고

격렬한 전투 끝에 적진을 점령한 뒤

보무 당당 전선을 이동하는

푸른 제복들의 저 일사불란한

구둣발 소리.

- 오세영,「소낙비」전문(《작가》2000년 가을호)

 

설명이 필요 없는 명쾌한 시다. 이렇게 보니 소낙비와 전쟁은 너무 흡사하다. 멀리서 몰려오는 먹장구름과 먼 비울음은 은은한 포성으로, 비 오기 전의 정적은 숨죽이는 병정으로, 급기야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은 총탄으로, 금세 사라져 버리는 소낙비의 군무는 푸른 제복과 일사불란한 구둣발 소리로 비유한다. 소낙비가 묻어오는 광경은 침략군이 세상을 점령하는 모습과 같다. 이 사실적인 비유로 소낙비는 또 다른 상상력 하나를 얻게 되었다. 시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슬프면 차라리 웃지 그랬어

그래도 아프면 눈 감지 그랬어

돌아서 말 못할 가슴이라면 소리치지 그랬어

 

망치 혹은 공옥진

응어리진 슬픔은 때려야만 부서지나니

늘 배고픈 모서리 용서 없이 내리쳐다오

말 못할, 고꾸라져버릴, 환장할, 저 절복할

 

작은 사랑

내 사랑 이런 房이라면 참 좋겠다

한지에 스미는 은은한 햇살받아

밀화빛 곱게 익는 겨울 유자향 그윽한

 

(중략)

내력

아무래도 난 삼각형의 피를 가지고 있어

외려 후비는 붉은 상처 혹 빗면의 나태로움

직각의 외로움 조금, 모서리의 불온함 조금

 

하동포구에 와서

내 상처가 내게로 와 독약 같은 사랑 된다기로

풀꽃 같은 사람아 용서할 무엇 남겠느냐

우리는 두 갈래 강물, 한 바다에 가 죽으리

-이지엽.「交感」부분(《시안》2000년 가을호)

 

이 시조들은 따로따로 떨어져 완전한 한 수의 작품이 되기도 하고 또 전혀 다른 여덟 수가 모여져 한 작품으로 살아나는 재미가 있다 그것을 시인은 ‘交感’이라 말한다.

인용된 첫 수는 못 박힌 자의 고통을 통해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면, 둘째 수〈망치 혹은 공옥진〉은 못도 외면하는 모서리, 즉 철저히 소외된 자들을 향한 절복한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공옥진을 데려와 슬픔과 한을 뛰어 넘는 춤판을 벌여 고통 받는 자의 눈으로 더 고통에 찬 춤을 보게 하여 한을 승화시켜내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첫 수의 못과 둘째 수의 망치는 늘 때리는 자와 소외된 모서리에 선 자를 대비시키며 한바탕 춤으로 얘기를 이어간다. 그래서 셋째 수에서 격렬함 뒤에 오는 작은 사랑.〈한지에 스미는 은은한 햇살〉같은 사랑을 염원한다. 하지만 이 염원은 끝내 시인의 것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인용한 마지막 두 수에서 보여 진다. 이 두 수는 시인과 연관된 타자의 이야기에서 이제 자신의 모습으로 옮아와 중도자로서의 외로움을 말하고 있다.

90도의 완전 한 직각의 모서리도 아니고 모두를 포용할 평면도 아닌, 비스듬한 빗면을 가진 불안한 균형의 심상을 지닌 시인의 상처. 그래서 사랑을 이루는 방식도 완전하지 않다. 하동포구의 강물과 내가 합일을 이루지 못하고, 평행을 달리다 결국 한 바다에나 가서 이루리라는 아픈 다짐은 상처로 남는다. 이 8수의 시들은 따로 또 같이 흐르다 만나는 능선처럼 여유롭다. 시조의 묘미다.

 

금방 수면 위로 뛰어오른 물고기가 물고 간

달빛, 그러나 달빛은 물고기의 몸속에서 소화되지 않고

배설물과 함께 강 밑바닥에 쌓일 것이니

그렇게 쌓인 달빛들 수북할 것이니

비오는 밤이거나 달뜨지 않는 밤이 와도

강은 제 속에 쌓인 달빛들로 환해지리

그 환함으로 물고기들 더듬지 않고도 길을 가리니

내 한 중 강물을 마신다 내 몸 속도 환해져서

캄캄함의 세월이 와도 더듬지 않을지니

신발을 벗어놓고 정중히 강을 경배함이

어찌 사람의 할 일이 아니라 하겠는가

— 김충규,「강을 경배함」(《시와 생명》2000년 가을호)

 

김충규의 시는 진중하다. 강과 달빛. 빛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생명의 경이를 말해준다. 이 시는 요즘 진지한 사유를 거치지 않고 배설해낸 일군의 시들에 대해 성찰을 통한 시의 모범을 몸소 보여준다. 실험적 혹은 현대적이란 말로 쉽게 넘어가는 지나친 모호성의 시들에 대해 피곤을 느끼는 독자들도 많다.

김충규의 시는 어렵지 않게 읽히면서도 얘기를 풀어가는 호흡이 안정적이다. 또한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깨끗하고 겸손하다. 달빛과 강물의 영원성은 과장도 미화도 아니다. 원래 그렇게 존재했던 그 신성을 우리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시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밤이 깊어집니다

지네가 활동을 시작할 시간입니다

며칠 전 어머니는 이마를 지네에 물려

얼굴이 퉁퉁 부었다고 합니다

홀로 방 속에 갇힌 채 굳어버린 육신

늙는다는 것이 서럽다고

두렵지 않은 건 죽음이라고,

아픈 다리 통증에 진통제를 먹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꿈꾸는 것이 무섭습니다

 

친정에 가기도 전에 몸이 떨리는 것은

세월에 외식당한 지네들 부패된 내 오욕덩어리에

우르르 몰려들어 나의 사지를 갈기갈기

뜯어먹지나 않을까,

(하략)

— 조해숙.「어머니의 방」부분(《시현실》2000년 9〜10월호)

 

조해숙 시인은 담담히 문장을 밀고 간다. 지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를 무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잃은 몸뚱어리를 공격하는 대상으로 화한다. ‘부패된 내 오욕덩어리’를 향한 공격은 곧 ‘황폐화된 정신’의 다른 말이다. 그렇다면 지네는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녀석이 아니라 시인의 나태 혹은 무력감을 향해 적의를 보이는 긍정의 침 같은 것이다. 시인의 불안한 의식과 지네의 등식이 알맞게 녹아 난다. 시어 운용과 배행의 간결함을 더 추구했다면 더욱 단단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한적한 늦여름 오후.

종착역에서 한줄기 기적이 사라져간다.

어떻다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로

한참을 메아리치더니

무겁게 발길을 멈춘다.

함께 도착한 몇 사람은

옥수수밭 이랑을 따라 말없이 흩어져 간다.

철도중단점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나는 이정표를 잃어버렸다.

 

(중략)

 

건너편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을 바라보며

강물은 아무 말 없이 휘감아간다.

나는 오늘도 지워진 이정표를

적어 넣지 못하고 돌아선다.

- 김홍석.「신탄리 역에서」부분(《시현실》2000년 9·10월호)

 

시인은 소멸하는 것들을 불러내어 적막에 감싸인 시골 역사를 보여준다. 역은 풍경화처럼 객관화되어 서 있다. 이 시는 소멸하는 대상을 보여주면서 존재자로서의 ‘나’ 마저 사라지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내 하루의 날들은 ‘지워진 이정표’가 되고 만다. 문득 어느 한적한 곳, 빛나지 않는 것들 속에 나도 하나의 풍경이 되어 서 있음을 볼 때가 있다.

 

한 사내가 앞서가는 그림자를 발에 묶으며

호프집 앞을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다

한 사내가 두 여자와 함께 서로 등을 밀며

호프집 안으로 들어가 삭제되고

한 사내가 호프집 앞에 그림자와 함께

주춤주춤 멈추어 서 있다

건너편 궁전다방의 입구에는

퀵써비스 오토바이 한 대가 막 도착하고

두 사내가 서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호프집 앞을 지나가고 있다

세 사내가 묵묵히 남의 그림자를 밟으며

호프집 앞을 지나가고 있다

길 건너편의 플라타너스 잎 하나가

서 있는 한 사내의 발 앞까지 가 좌우로 굴렀다

한 아이가 우와하하하 하며

앞만 보고 뛰어갔다

- 오규원,「거리와 사내」(《창작과 비평》2000년 가을호)

 

상상은 자유이므로 호프집 앞은 연극 무대로 설정해도 좋겠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특별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호프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무대에서 사라진다. 그러므로 시인은 ‘삭제’된다고 표현한다. ‘삭제’라는 표현을 얻으면서 앞의 상황도 연극적으로 변모되는 현상을 본다. 그들이 한 묶음으로 무대에서 사라지자 또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퀵써비스 오토바이’, 지나가는 두 사내, 길 건너편의 플라타너스 잎새까지 아무런 사건도 반전도 없다. 그리고 ‘한 아이가 우와하하하 하며/앞만 보고 뛰어’가면서 무대는 다소 극적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다. 뭔지 모를 의문과 여운을 남기고 연극은 끝난다. 그 의문과 여운이 시가 되는 이유다. 호프집은 나타나고 사라지는 중심공간이다. 연출자는 시인이다. 컴퓨터 마우스로 모니터 속의 누군가를 지워버리면 삭제된다. 그리고 마지막 아이의 웃음과 질주는 무엇을 의미할까?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도 고도는 나타나지 않았고, 극적 반전도 없이 연극은 끝나고 만다. 시인이 모니터 속에서 지워버린 사내와 앞만 보고 뛰어가는 사내와의 상관관계를 딱히 무엇이라 규정할 수는 없다. 규정하지 않는 것이 묘미다. 행복을 강요하고, 눈물을 강요하는 시대를 우린 살고 있다. 그게 진실일까? 우리들 삶은 예사로운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삭제된 그들처럼 결국엔 모두 삭제된다. 누군가에 의해.

 

2000년 한 해를 보내면서 몇 가지의 변화를 기술해 보았다. 그것은 ‘겨울호’라는 잡지의 성격, 즉 ‘마감과 반성’이란 역할도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시현실》겨울호의 계절평을 쓰는 이 순간에도 후학들에게 가장 영향 을 많이 준 저명한 비평가의 표절 논쟁으로 뜨거운 설전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제 의외성의 사건이 아니라 문학 환경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시현실』2000. 겨울

 

 

2000년, 다시 시조부흥을 위하여

 

1. 시조의 위상과 그 당위성에 대하여

 

2000년 시조의 지평은 확장되는가?

이제 시조 발표지면은 매우 다양해졌다. 시조를 함께 싣는 시전문지들이 늘고 있고,휴간된『시조시학』의 복간이 준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월간『현대시』가〈한국 정형시〉라는 고정 난을 만들어 시의 한 축을 담당케 하고,『다층』2000년 봄호는 시조문학 특집을 실어 한국문학 속에서 시조의 위의를 재점검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다층』여름호의 시조 문학 특집은 여러 면에서 눈길을 끄는 기획이었다. 이 잡지는 그 동안 시조와 자유시를 함께 싣되, 시조를 자유시의 전면에 배치시키는 등 편집방향을 드러내 왔다. 이번 특집은 오늘의 시조문학을 진단하고 전망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특집의 주제 평문에 해당하는 김준 교수의「오늘의 현대시조 이대로 좋은가」라는 글은 시조인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글에서 힘주어 말하고자 하는 김준 교수의 주제는 맨 나중에 언급된 한 마디 “시조는 시이어야 하지만 시는 시조이어야 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로 요 약될 수 있겠다. 시조는 정형화된 시이므로 시적 특질을 두루 담아내야 하지만, 결국 정형의 틀을 벗어난 시는 시조일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로 끝을 맺고 있다. 그 어떤 누구도 이 말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비단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지적은 늘 있어온 것이다. 그런데도 어찌하며 이런 우려와 문제는 계속되고 있는가.

 

김준 교수는 이 글에서 형식 파괴의 주원인을 분석하면서. 현대적 경향을 드러내고자 하는 시인들이 범하는 오류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가 인용한 여러 지적은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이 파격이 현대적 경향을 나타내 보이는 시인의 탓이란 말은 공감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동안 드러난 시조 단의 문제점은 갑작스런 시조 인구의 증가와 그로 인한 질적 수준의 현저한 저하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조에 있어서 형식이란 반드시 지켜내야 할 기본 장치지만, 그 형식에 집착한 나머지 시가 되지 못하는 시조를 우리는 숱하게 보아 왔다. 시조는 아직 검증되지 못한 선무당의 것도 아니며, 상상력도 시적 재능도 갖지 못한 주변부의 무자격 시인들을 위한 장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시적 성취도가 뛰어난 시인이라면 시조의 형식 장치는 충분히 갖출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최소한의 소양도 갖추지 못한 시조인 출현의 근원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김준 교수는 신춘문예의 부정적 파급성을 우려하면서, 당선작의 선별에 신중을 기해 달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상 더 큰 문제는 시조 전문지의 무분별한 신인 등용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몇몇 계간지의 경우, 매호 책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서너 명의 신인을 배출하고 있는데, 이들은 과연 신인상의 이름에 값하는 격과 재능을 보여 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또한 신인이란 이름이 무색하리만치 나이 든 신인들이 너무 많다. 물론 연륜이란 다른 어떤 것보다 귀할 때도 있지만 신인상이란 참신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고, 대개는 선자들과의 친소관계를 고려하여 문단에 등단시키는 예를 더러 보아왔다.

시조단의 저변을 확장시키는 일이 곧 질을 끌어 올리는 일은 아니다. 우리가 다소간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젊은 문인들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기왕에 시조의 저변을 확장시키되 좀 더 가능성 있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이들, 곧 젊은 시인의 발굴이 우리 시조단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준 교수의 글은 시조형식의 엄격성에 대한 고언으로, 시조인들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인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조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 글은 다소 아쉽다. 주제 평문을 맡은 시조단 이론가의 입장이라면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시조단 내부의 문제를 드러내기보다는, 그 책의 기획 의도에 따라 세계문학 속에서 한국문학의 정체성을 찾아내고. 동시에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란 명제 위에서 유일한 장르인 시조의 위상 점검과 존재의 당위에 관한 평문을 실었더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2.외형을 넘어 내적 승화를 위해

 

『현대시』7월호의〈한국 정형시〉에는 나름대로 엄선된 시인들의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정형시가 자유시와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지 우리 시대에 왜 정형시는 존재해야 하는지 등등의 의문은 이 난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변두리나무들도

저간엔 서열이 있어

쥐똥나무는 한사코 중심에 서지 못 한다

낙향한

술벗 현씨처럼 오일장에나

들앉는 것

 

〈중략〉

 

몇 년째 세금고지서를 받은 적이 없다

늦가을 끝물쯤에

동박새가 거두어 갈

쭉정이

쥐똥 열매들

노숙자의 동전 몇 닢

-홍성운 「나무야. 쥐똥나무야」

 

 

휘청대던 골목 어귀 두 바퀴를 받쳐 놓고

 

시린 희망의 옆구리를 쓸어가며 눈물의 그 온기만큼

 

붕어빵이 익고 있다.

 

빵틀 속에 젖어드는 늦은 귀가길마다 눈뜬 채 식어가는 붕어빵의 시간들이여

 

흙바람 난장의 슬픔도 꼬챙이에 걸려 나온다.

-이승은「붕어빵의 시간」전문

 

위 두 편의 시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홍성운의 시는 경제난으로 인한 실직과 낙향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고, 이승은 지난 연대의 먹거리를 끄집어내어 정갈한 풍경화 하나를 보여 준다.

시대는 우리에게 귀향을 권한다. 떠난 자리를 다시 돌아와 앉는 일은 순리다. 하지만 오늘의 귀향을 누가 순응이라 말할 것인가. 근원을 이탈하여 타관을 떠돌다 돌아와 존재를 묻는 것을 순환이라 한다면, 이 타의에 의해 밀려난 변두리 사내의 낙향은 또한 무엇이란 말인가. 숲의 가장지리에 밀려 서 있는 쥐똥나무와 저만치 비켜 선 사내의 얼굴. 홍성운은 낙향의 설움을 곱씹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다가가 헤진 남루라도 덮어주고 싶은 게다. 그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눈길이 율격 속에 자연스레 곰삭아 있다. ‘노숙자의 동전 몇 닢’ 이란 표현이 사족 같아 보이지만 마침표를 찍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여겨진다.

홍성운이 중심에서 비켜 선 사내의 초라함으로 현실을 이야기한다면. 이승은의 현실은 좀 더 곡진하다. 붕어빵은 사라진 연대의 간식이다. 하지만 시대의 아랫도리를 훑고 지나가는 차가운 가계부의 바람은 이 사라진 음식을 다시 현실 속으로 불러내고 말았다. 그것들은 추억처럼 지난 연대에 묻혔다고 우리들은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우리를 배반하고 비탈진 골목에서 몇 닢의 동전을 만지작거리게 한다. 잊고 싶어서 걸어 잠근 것들이 문을 열고 나와 우리들 앞에 팔 벌려 섰을 때 그 현실 확인은 한 순간 참담함으로 바뀔 뿐이다. 그래도 이승은은 끝내 울음을 보이지도, 눈을 감지도 않는다. 그저 리어카 위에서 누군가의 양식이 되기 위해 가지런히 누운 붕어빵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첫수 중· 종장과 둘째 수 초·중장을 각각 한 행으로 배행하여 행간을 넓혀 놓았다. 여운을 위한 시각적 배려다.

 

편지 배달 나간 봄빛은 오지 않고

별정 우체국 나직한 창 틈으로

바람난 아래윗각단 복사꽃만 화한 날

- 박기섭,「별정 우체국의 봄」전문(《시조문학》2000년 여름호)

 

신작 특집란에 실린 박기섭의 시 네 편은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이승은이 행의 배열을 통해 공간의 여유를 갖게 해 주었다면,박기섭은 다독이고 다독인 최소한의 언어로써 공감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빼어난 단수는 3장 6구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최소한의 언어로 완결에 이르고자 할 때 시어 하나 하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작은 마을 한적함의 대상으론 우체국이 제격이다.

‘우체국’ 은 시인들이 즐겨 노래하는 대상이다. 시에서 뿐만 아니라 대중가요에서도 우체국은 즐겨 노래된다. 편지를 담아 두는 빨간 빛깔의 우체통은 시인들에겐 영원히 다정스런 소재다. 70년대 문청들의 애송시였던 이수익의 ‘우울한 샹송’에서부터 최근 안도현의 ‘바닷가 우체국’ 에 이르기까지 우체국은 이미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독자들의 선입견 속에 고착된 이미지인 우체국을 빌려오지 않고 원하는 상황을 그려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어쨌든 단수로써 정지된 봄의 정취를 이만큼 맛깔나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실상

실상사 가서

실상사는 못보고

 

툭눈이 왕방울의 돌장승만 보고 왔네

 

횡허케 새벽길 가서

실상사는

못보고

-박기섭「꽃과 실상사」전문

 

함께 실린 이 작품은 동어 반복에 의한 가락의 묘를 잘 살렸다. 황동규가 원효가 지은 절을 찾았다가 ‘원효가 없는 것이 원효 절 다웠다’ 고 노래한 것을 연상케 한다. 새벽에 떠나 실상사를 찾았지만 정작 보고 싶은 그 무엇을 보지 못했다. 시인은 실상사에서 무엇을 보고자 했음인가. 마음의 개안에 이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일까. 깨달음이란 망막에 비추어진 물상의 확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재한 것들의 여백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실상사에선 고려 허튼 불상 ‘툭눈이 왕방울의 돌장승’을 보면 다 본 것이다. ‘실상/실상사 가서/실상사는 못’ 보았는지는 몰라도 한수 시조로는 다 보여주었다. 각설하고 다 보여주지 않는 절에서 부족한 나의 초상을 보는 것도 꽤나 수지맞은 여행이다.

 

호박단추 속에는

 

할아버지가 숨어 있다.

 

할아버지 옥빛 마고자

 

담뱃내도 숨어 있다.

 

혀 대면 텁털 짭짜름했던

 

할아버지 호박단추.

-백이운, 「호박단추-하왕십리· 20」전문(《현대시조》2000년 여름호)

 

 

요즘 백이운은 ‘하왕십리’ 연작을 통해 시간 여행 중이다.『현대시조』여름호에 13편의 연작이 실렸다. 작품들 역시 고른 수준으로 독자를 편하게 이끈다.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시인에게 하왕십리는 시적 토양이다. 고향 시편들은 자칫 감정의 노출과 영탄에 의존할 위험이 있는데. 백이운의 시들은 적절한 절제를 통해 감동에 이르게 한다. 이 연작들은 대체로 과거에 머물러 있다. 과거가 오늘을 위한 거울이라면 이 시인에게 있어 하왕십리도 어제를 통해 오늘을 비춰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변화된 문명의 모습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재구성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독자는 언제나 ‘왜 하왕십리인가?’ 라고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무래기 서넛 동네 골목에서 장난감나팔을

삐이삐이 불며 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 나팔

소리에 먼먼 동화의 나라, 꼬마병정이 줄줄이

내려와 엇둘엇둘 뒤따르고 있었다.

구멍가게 사내가 나무걸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꽥 고함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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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면(湖面)에 파문이 일 둣

병정들은 지워졌다.

-이문형,「장난감나팔 소리」전문(《열린시조》2000년 여름호)

 

다분히 동화적이다. 구멍가게 사내는 꾸벅꾸벅 졸다가 꿈을 꾼다. 좀 전 장난감나팔을 사간 아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소리에 졸음에서 깨어나면서 무안해서 고함을 지른다. 꿈속 이야기는 사설로 엮여지다가 종장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풍자나 비판이 없어도 동화적 세계를 연출하여 잃어버린 동심에 다가간다. 여름날, 골목의 한 찰나를 포착하여 현실과 꿈. 동심과 지친 사내를 대비시켜 새로운 시조 한 수를 만들었다.

 

숲이 젖고 산이 젖어 마음 또한 젖는다

 

안개가 산을 내리며 뿌옇게 옮아가고

 

첩첩산 골물 소리만 산을 온통 차지했다.

 

처마 밑 먼데 사람 그도 지금 젖을 게다

 

무언가 손에 들고 번개 속을 떠나간 이

 

모습도 잊혀진 눈빛 후일담을 듣고 싶다.

­이상범,「후일담-아버님께」전문(《다층》2000년 여름호)

 

노익장을 과시하듯 이상범은 신작 10편을 발표했다. 지난해부터 국토의 곳곳을 돌아보고 쓴 기행시들이다. 나이를 잊은 원로의 용맹정진이 부럽다. ‘처마 밑 먼 데 사람 그도 지금 젖을 게다.’ 는 나와 먼 곳 누구와의 교감이다. 혼자 외로운 것이 아니라, 이 외로움마저 함께 느끼는 것은 독자와도 공감되는 위안이다. 시인은 빗속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물고 후일담을 듣고 싶어 한다.

 

3. 민족문화의 계승을 위해

 

이상 몇 편의 시들을 통해 살펴본 시조의 내적 공간은 무한히 열려 있다. 시조는 형식에 의해 빛난다. 시조가 갖는 최소한의 형식은 결코 구속을 위한 족쇄가 아니다. 이 단단해 보이는 외적 질서가 오히려 방만함을 제어하는 내적 질서의 유연함으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재능 있는 시인이라면 그 정도의 율격 장치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시조냐 아니냐가 아니라 시조로서 무엇을 포괄하느냐가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 시조의 발표 지면은 매우 넓어졌다. 계간평을 쓰기 위해서도 많은 책을 보아야 할 수고를 얻는다. 7·80년대의 시인들은 발표지면의 한계 때문에 자비를 들여서라도 동인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의 밑받침이 있었기에 다시 시조 부흥은 시작되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시조의 물리적 지평을 확장시키는 일에 시조단의 노력이 있었다면, 지금부터는 여타의 어느 장르보다도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그 지면들을 채워야 한다. 독자들은 언제나 냉엄한 심판자다. 그 냉엄함이 호승심을 부추긴다. 팽팽한 시인정신이야말로 시조가 진정한 민족문학으로 거듭나느냐 마느냐 하는 관건이 된다. 결국 시조인 모두의 몫이다.

-『열린시조』2000년 가을호

 

 

 

시조 700년의 힘

1.

 

나는 어떤 글의 서두에서 ‘불멸’이란 말을 얘기하면서 잠시 김소월을 떠올린 적이 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이미 신화 가 된 김소월도 불과 육십 년 전의 세월을 살았던 우리 시대의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보면 우리는 너무 일찍 신화를 만든 셈이다 얼마 전 어느 문학 동아리에서 감명 받은 시인들에 대한 토론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거론한 이름들은 역시 훌륭한 시인들이었으며,현대 문학의 교과서를 장식한 이들이었다.

정지용, 백석, 한용운,조지훈,이상,유치환,윤동주, 서정주, 셰익스피어,보들레르, 워즈워드 등등. 하지만 그날, 월명사, 황진이,김병연,허난설헌,정약용 같은 출중한 우리 시인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왜 우리에게 문학은 불과 몇 십 년 안팎의 현대문학만 존재할까. 오천 년의 역사를 말하면서도 백년 이전의 문학은 오늘날의 문학도들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역사책이나 일부 연구자들에게 만 꼭꼭 숨어있는 죽어있는 문학이 되어버렸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그들이 감명 받았다는 셰익스피어는 황진이와 비슷한 시대의 사람이었고, 워즈워드와 보들레르는 백오십 년 전의 동시대를 산 시인이었다. 우리는 왜 외국작가들에겐 시대를 초월하는 교감의 폭을 갖는데, 우리 시들에게서는 유독 몇 십 년 전의 시인들에게서만 영향을 받는가. 향가나 고려가요 조선조의 사설시조, 황진이의 시조와 김병연의 시들은 시대를 관통해 내는 힘이 있었다. 그 힘은 바로 역사의 영속성 위에서 이루어진다. 문학의 단절은 곧바로 문화의 단절로 이어지며, 종래에는 역사를 떠받들 호연지기를 잃고 만다. 시를 통해 천년 전의 신라로 가기도 하고 고려나 조선조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활달한 상상의 진폭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 시들의 공감의 폭은 넓어질 것이며, 외국문학에 대해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조의 생명력은 매우 다행한 것이다 시조의 맥을 따라가 보면, 금세 칠백 년 전의 세상으로 거슬러 가기도 하고 다시 오늘의 자리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시조의 당위성이며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시조는 이런 바탕 위에서 창작된다. 오랜 바탕이 있는 것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저변에 가라앉아 있다. 변화에 민감하지 않지만, 서서히 스며들면서 전체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다. 기실 시조는 문학에 별반 관심 없는 전체 대중의 정서 속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장르로 자리하고 있다 일반인의 경우, 오늘날 중요하게 거론되는 몇몇 시인들의 이름은 몰라도 길재,정철, 윤선도 정몽주, 황진이 조식 같은 시인들의 시조 한 수씩은 다 외우고 있다. 이렇듯 시조는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대표적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문학사는 이런 거대한 저변의 정서를 애써 외면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단절과 왜곡이 창작의 폭을 왜소화시켜 문학 자체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한 원인이 되지나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제 격동의 한 세기를 마감하면서 다시 시조의 부활은 예견되고 있다. 시조는 문학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국민 전체의 정서를 아우른다는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관점의 변화는 꼭 필요한 시대적 요청이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변화는 시조인 스스로가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노력, 두말할 나위가 없는 중요성이다. 시조인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2.

 

무장 슴슴하구나, 저 냇둑 개복사나남이 참 천연덕스런 마음으로 듬성듬성 찍어 놓은 엶은 분홍 꽃물이

지천의 자부름 속에 마냥 겉거죽이 부풀어오르는 세상, 이맘때면 그냥 아무렇게나 구겨 놓 은 마음의 현도 스르릉 소리를 내고

안 뵈는 누군가 넌지시 건너다보고 있음이여

一박기섭,「시나위 詩篇-和平」부분(《현대시조》가을호)

 

간다 간다 푸른 하늘이 준 이 길을 따라 나는 간다

얽뚝배기 장돌뱅이 소금장수 허생원, 봉평의 제일 일색 성서방네 처녀, 소금 뿌린 듯 하얀 달빛에 숨막혀 숨이 막혀 정분 나는 곳,

하얀 길 새하얀 들판 지나 흰 붕대 풀어놓은 길을 간다.

 

달밤이 아니라도 밤새 이야기 할 눈물만 있으면 좋아라.

밤눈 내리는 세상보다 횐 지상에서 침묵 속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젖어 자꾸만 가는 길 여 름 끝에 피어버린 너처럼 울어나 보았으면,

내 마음 오래 된 폐허 물방앗간 추억의 풍경에 젖어 자꾸만 가는 길 여름 끝에 피어버린 너처럼 울어나 보았으면,

내 마음 오래 된 폐허 물방앗간 추억의 풍경에 젖어,

끝없이 가는 하얀 길 목쉬도록 부를 이름이면 족해라.

고요의 산 적막한 주막에 외롭지 않게 호롱불 하나 밝혀놓고 억장 같이 무너진 가슴에 꽃 피워도 좋을 그 이름 부르며,

나귀의 긴 방울소리 뒤로 그 길을 따라 나는 간다.

- <하 략>-

 

-오종문「봉평. 메밀꽃 필 무렵」부분, (《열린시조》가을호)

 

시조를 읽다보면 특유의 여유와 이완을 잘 용해시킨 시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약간 모자란 둣 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시들은 다변의 기운 뒤에 오는 허무를 충분히 메워줄 만하다. 이런 관점에서 찾아본 위 시들은 우리가 관심 있게 바라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 시들의 특징은 넌출거리는 우리말들을 시조 속으로 끌어들여와 자유자재로 구사해 내는 입담이 우선 눈길을 끈다. 거칠거나 옹이진 데 없이 그저 강물이 흘러가듯, 아니 흐르지 않는 듯 하다가 어느새 닿아 있는 유장함은 시조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시편이다.

박기섭의 시는 우선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으려는 미덕이 좋다. 언어를 속박하지 않고 그냥 풀어둔다. 그 느슨함은, 그러나 보이지 않는 현으로 다스리고 있으므로 결코 더하거나 모자라지도 않는다. 그것은 이 시인의 관록을 그대로 말해 준다 ‘시나위’의 의미는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 가락의 기악곡’인데,이는 다시 말하면 토속의 가락이란 뜻으로 해석하면 될듯 싶다. 비단 이 뜻을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시가 움 트고 꽃 피는 어느 봄날의 그 분주함과 나른함이 함께 있는 한낮을 정겨운 민화의 느낌으로 그려내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 허튼 가락은 엇시조로 슴슴히 시작되다가 때로 스르릉 마음의 현도 건드리며 건너뛰다가 마지막 종장에선 무심히 지나치며 보고 있는 계절 하나를 슬쩍 부려 놓는다. 화평한 봄날이다

오종문의 「봉평. 메밀꽃 필 무렵」은 박기섭의 어법과 일견 유사한 듯 하면서도 확연한 경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시인이 기존에 발표한 「한 소년의 봉산탈춤을 위하여」의 탈놀음 같은 역동성이 이 시에도 묻어난다. 자신이 허생원이나 된 듯 ‘여름 끝에 피어버린 너’를 그리며 길을 간다. 이효석의 봉평장 길은 하얀 달빛과 메밀꽃, 노인과 제 피붙이 일 것 같은 한 아이와의 아름답고 아리아리한 밤의 이야기이다. 이 길을 따라, 아니 이 이야기 속의 길을 따라 시인은 가고 있다. 그러다가 둘째 수에 오면, 어느새 시인은 얽뚝배기 허생원과 시공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느끼기도 하고, 물방앗간 정분 나누던 노인의 추억을 마치 시인의 것인 양 즐기기도 한다. 처음엔 봉평의 길을 가면서 이효석의 소설을 생각해 내내고, 나중엔 아예 소설 속의 길을 따라 시인이 이입해 들어가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시와 소설의 일체를 이루게 하는 이채로운 시다.

 

3.

시는 심상을 끌고 목적한 곳으로 가 닿아야 한다. 시인과 독자의 경계를 허물고 곧바로 가 닿는다면 그 시는 공감의 폭이 넓은 좋은 시가 된다. 그 길은 징검돌로 놓여 있다. 징검돌은 간격이 넓으면 물에 빠지게 되고 좁으면 걷기에 불편해 진다. 그러므로 시는 넘쳐서도 안되고 모자라서도 안 된다. 정형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위에 인용한 두 편의 시에 비해 다음의 시들은 절제의 미학이라는 시조의 특성에 매우 근접해 있어 눈길을 끈다.

 

삯바느질 노파가 며칠 전 죽었다네

낯이 선 수양아들과 허청대는 술꾼도 몇

북녘 땅 건너다 뵈는 질펀한 부두난전

늦가을 눈부신 옥양목 결을 따라 .

바늘땀 하얗게 팬 재봉틀 소리로 가던

바닷가 그 언덕 마을 차양도 낮은 집

—김윤철, 「백령도에서」전문(《다층》가을호)

 

 

한창

피던 꽃도

그대로 멈추었고

 

공간에

떴던 잠자리

날개짓도 정지한챈데

 

그 속을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나만 가네

-이문형, 「斷想· 1」전문 (《시와 생명》가을호)

 

김윤철의 시는 농울 치는 서정으로 인한 감정 과잉의 우려가 있었으나 작은 유화 한 점처럼 이미지 처리를 한 결과 단아한 시 한 수를 얻었다. 백령도에 사는 한 노파의 고향은 북녘인 듯하다. 두고 온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남한에선 수양아들 하나만을 두었다. 그마저도 떠난 지 오래인가 마을 사람들에겐 낯선 얼굴이다. 둘째 수에선 눈물도 한도 결을 삭인 채 바닷가 옛집을 찾아간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다. ‘늦가을 눈부신 옥양목 결을 따라’ 더듬어 찾아가는 길손의 마음은 조심스럽고, ‘바늘땀 하얗게 팬 재봉틀 소리’는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표현이다. 이런 모성적 섬세함으로 인해 완성도 있는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이문형의 시는 이호우의 ‘개화開花’를 연상 시킨다. 이호우는 꽃이 피어나는 순간의 정적을 극도의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묶어 놓는데 비해, 이 시는 반대로 피어나는 꽃도, 잠자리의 날개짓도, 정지한 일순의 정적 속에서 종종걸음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게 한다. 이 정적의 순간에 시인은 갑자기 유리되고 만다. 초침도 멎어있고 공기도 흐르지 않는 진공 속에서 시인은 자신에게서 빠져 나간 또 다른 나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그 속을 걷고 있는 자신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종종걸음으로 걷는 소년, 즉 거꾸로 가는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다. 이 시 역시 최소한의 말로써 율격을 지켜낸 미덕이 돋보인다.

 

4.

《열린시조》에서 기획한 80년대 시인 특집은 여러 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시조로서의 80년대는 공황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시조인들이 늘면서 변화의 기운이 내적으로 움트고 있었지만, 문단 전체의 사정은 시조단의 이런 움직임을 간파해 내기란 쉽지 않은 현실 이었다. 광주로 대변되는 철권의 기운은 민중문학론의 기폭제가 되었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소집단 문학운동의 열기는 자유시의 물결로 뒤덮인다.

그것은 어쩌면 시조인에겐 예견된 결과일지도 몰랐다. 시조의 운율은 외형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내적 응축의 미학이므로 외치고 저항해야 하는 시대와는 필연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했다. 물론 시조를 통해서도 저항의 필봉을 휘두르려 노력한 시조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유시의 도도한 물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다.

이런 시대에 시조로 시작한 시인들은 소외와 절망으로 문단과 맞딱뜨린 일군의 시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패배하거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견뎌낸 80년대는 이들에게 새로운 자생력을 키워 주었고, 시조 부흥의 기치를 내건 선배 시조인들과 함께 선봉에 설 수 있는 생명력을 갖게 해 주었다. 나는 이런 역사적 관점에서 80년대 시인들의 변화된 모습을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가야할 길을 몇 번이고 잘못 들면서 생각한다

살아오면서 많은 길을 잘못 들었을 거라고

내 그대 찾아가는 길 애초부터 없었을 거라고

그러나 길 들어서면 거기 어울리는 풍경 있둣

뒤란 간장맛 우려내는 5월 햇살도 있으리

독신(篤信)의 서늘한 뜨락 펑펑 꽃들은 피어나리

바다가 꼭 목적이 아니라면 바다는

어디에나 있고 또 아무데도 없으리니

꽃핀 길 한때의 나무 밑에 잠시 짐을 내려두자

바라보는 것만으도 눈부신 사랑은 남아

애써 섬들은 제 희망의 노란 불씨를 깨무는가

미로(迷路)의 투명한 시간이 겨울 수사(修士)처럼 지나는 저녁

—이지엽, 「하동 가는 길j, (《열린시조》가을호)

 

광주에 사는 시인은 경상도 하동땅으로 가고 있다. 그의 길은 번번이 엇갈린다. 여기서 하동은 꼭 그곳이어야 할 지명은 아닌 듯싶다. 그저 목적지에 곧바로 닿지 못하고 엇갈린 길은 시인이 살면서 엇갈린 어떤 체험을 떠올린 것일 게다. 5월 햇살은 하동에도 있고, 또 다른 어디에도 있다.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바다가 없는 곳이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할 것이니 시대를 짐 지겠다는 대책 없는 사명감은 내려두자고 다짐한다. 광주의 5월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제 시인에게 쏟아지는 햇살은 평화롭다. 시인은 그 지긋지긋한 집착에서 저만치 벗어나, 바다가 아니어도 바다를 볼 수 있고 찾아 갈 마을이 아니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게 되었다. 시인이 만난 하동의 저녁은 투명하고 수사(修土)의 눈빛처럼 경건하다. 이 시는 그저 아름다운 한 편의 서정시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단순히 서정 그 자체만으로 읽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80년대 시인의 한 변모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까닭이다. 이 감상은 일견 위험해 보이지만 아직도 그 연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의 분별없는 감정이 작용한 탓이기도 하다.

 

불안한 봄이 온다 북위 삼십칠도 삼십팔도 그 사이 잠든 푸른 뱀 한 마리 누군가 이월의 비늘을 아프게 헤집는다

 

물길 끊고 길을 끊어 마음까지 끊어졌다 정선 가수리(佳水里)부터 영월 만지(滿地)까지 침 묵의 댐에 잠겨 있는 수몰 예정 마을들.

 

소년은 웃으면서 어름치라 말했다 꾸구리 끽지 여울각시 그물 가득 튀 는데 순은(純銀)의 모국들이 저리 살아 빛나는데.

—<하 략>一

—정일근. 「겨울 동강(東江)에서」부분 (《열린시조》가을호)

 

오랜만에 정일근의 시조를 읽는다

정일근이란 이름은 80년대의 솜이불처럼 내게 다가온다. 80년대 초중반, 젊은 시인들은 백골의 돌격대처럼 외롭고 지쳐 있었다 한편으론 우군의 박수소리와 또 한편으론 구둣발의 호각소리가 혼재된 거리에서 우리는 노래하다가 지치고 다시 일어서서 노래하던 시대였다. 이때 정일근은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로《한국일보》신춘문예에 당선한다. 그와 문청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 역시 영양실조로 말라 있었고,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때 그의 넉넉한 시편들은 그들을 따뜻한 솜이불처럼 덮어 주었다. 86년 다시《서울신문》신춘문예로 시조 등단을 했지만 기실 그동안 그는 시조 창작을 많이 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시조에 대한 애정만은 변함없으리라 여겨진다. 지금보다 더 시조에 열정을 보여준다면 시조의 지평 확장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된다. 80년대 시인들은 우리 문단의 허리다. 이들이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문단의 흐름이 좌우될 수도 있다. 진화하는 실험과 전통서정시는 대척점에 선 것이 아니라 무한 반성의 결과물일 뿐이다. 이 사이에서 시의 중심을 지켜내어야 할 몫은 이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구심력 없는 일탈은 없다. 끊임없는 원심력 욕구는 구심력으로 조절되고 제어된다. 우리 시조를 떠받히는 힘 역시 80년대 시인들의 몫이 크다. 반성에 대한 새로운 반성으로 더 큰 에너지를 갖기를 희망한다.

 

5.

 

시조는 원래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시조에 대한 이러저러한 말들은 이제 구차하기까지 하다. 우리 시대에 문학 전반의 위상이 어떤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사이버 소설이 단번에 몇 백만의 독자를 확보해 가고, 출판사는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단편집들과 시집의 간행을 꺼리는가 하면,일부 팔리는 소설가들만을 겨냥하는 시대에 시조에 대한 편견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또한 그래도 문인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시인에 대한 기대도 만만찮다. 아직도 아니 앞으로도 시는 유효할 것이다 시조 역시 마찬가지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창비시선 189번으로 ‘6인집 시조집’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를 펴내었다. 창비사에서 시조만을 한권의 책으로 묶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는 시조에 대한 인식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여러 문예지에서 시조난을 기획하고 있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신경림 시인의 “시로 읽어서 좋은 시조가 살아남는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 아닌가. 시조는 시다. 민족시가의 양식이기 때문에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 가치가 있는 민족시가이기 때문에 미래에도 계승되어야 하는 것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 잠자는 독자를 끌어내는 힘, 거기에 시조 700년의 당위성이 있다.

-『다층』1999년 겨울호

 

 

전환기의 시조시학

 

1.

90년대 범문단을 휩쓴 가장 큰 화두는〈문학의 위기〉라는 말이었다. 이제 이 <위기〉라는 말은 하도 낡고 닳아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어져 버렸다. 이 말이 범문단적 공감올 이끌어 낸 이유는 위기 뒤에 찾아올 절망에 가슴 치기보다는,차라리 오늘을 기회의 순간으로 역전시켜야 한다는 그 절실함 때문이었다.확실히 오랜 날들을 지탱해왔던 가치의 혼돈과 해체는 우리들에게 절박한 경계경보를 울려주었고、다시 정신을 추스리고 전의를 가다듬을 수 있게 해주었다.

 

누구도 지금이 <문학의 시대〉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까닭으로 지금이 문학성 회복운동의 최적기는 아닐런지. 그 운동은 지금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극심한 경제난과 IMF 정국 속에서, 그것도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에서 속속 문예지들이 창간되고 있다.

이 <문학의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왜 문예지들은 창간되는가. 문예지의 창간이 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역 문예지의 출범은 곧바로 그 지역의 문인, 학자, 독자들과 함께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지역의 것들을 전국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이제 원하든 원치 않든 지역 문예지의 출범은 하나의 기현상이 아니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시조단의 새로운 시조운동과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시를 사랑하는 모임’이 전국적 조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뚜렷한 방향성을 가진 젊은 시조 동인들이 결성되어 지역별로 시조 문학 모임이 활성화 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시조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존의 종합지들 외에도 몇몇 신생 잡지들이 정형시와 자유시를 함께 싣고 있는데, 이는 장르적 특장점의 상보관계를 인정함은 물론,무엇보다도 다양한 입맛을 가진 독자들의 입장을 존중 하려는 편집 의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리서 이제 시조인들은 잡지의 이런 변화에 발맞추어 보다 더 흡인력 강한 시조 창작으로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2.

 

윤금초는「청맹과니의 노래』에서 풍물패의 가락, 고려가요 사당패들의 입심들을 평시조와 사설과 엇을 섞어 걸쭉하게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는 의미가 있겠지만, 사실 그런 장치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현해 내려던 것은 스토리가 있는, 다시 말해서 시조의 서사성을 목적하였던 것이다. 이 스토리가 있는 장형시초를 윤금초는 <옴니버스 시조〉라 말하고, 평론가 이상옥은 장편시조라고 이름 붙였다.

오늘날 우리 시조단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범문단적 주목을 끄는 시조의 지평확장과 대중성의 획득이다. 어쩌면 시조의 대중성 획득은 의외로 쉽게 올지도 모른다. 무릎을 치는 절묘한 종장의 한 행이 한 줄의 광고 카피가 되어 감각적으로 귀를 후벼 파면 금세 대중성은 획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중성은 일회적 파장에 불과할 것이다. 진정한 대중성의 획득은 오늘은 물론 내일에 이르기까지 도도한 힘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시조의 여러 형식들을 자유자재로 구사 하여 역사적 사건이나 민족혼을 불 지르는 감동적인 서사시조가 나와야 한다. 시조 700년을 거슬러 가보면 역사의 흐름을 관통하던 시조들이 많다. 거기에 비해 현대시조는 다소 파편화되고 여성화되어 가는 경향도 있다. 시조의 지평은 아무래도 지사적 자세를 견지하는 시인에 의해 열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녹슨 굴렁쇠 하나 이리 저리 굴리면서 귀뚜라미 한 마리 먼 산맥을 넘어와서,

 

이 세상 家家戶戶를 다 헤매고 다니더니…

 

폐광촌 빈 아파트 열 길 벼랑 타고 올라

베란다 강아지풀, 그 옆에서 울고 있다.

모처럼 마음 턱 놓고 목을 놓아 울고 있다.

 

이박 삼일 동안 정식으로 날을 잡고 저무는 天地玄黃 가이 없는 저녁놀을,

 

이 세상 울고 싶은 놈 다 따라와 울고 있다.

-이종문,「입동立冬」전문(《열린시조》1999년 여름호)

 

한겨울에 저렇듯 푸를 수 있다니

그것도 숭숭한 섬의 담장을 베고

어기찬 하늬바람을

견딜 수 있다니

 

늦은 햇살에 지레 속잎을 펴며

년지시 하늘을 떠받칠 때부터 나는,

보았네

절명의 순간에

꼿꼿할 네 모습을

 

이윽고

화려한 것들이 몸을 오그릴 때

너는 깨어 기(氣)를 모으고

허옇게 사정했구나

오오! 겨울 오르가슴!

-홍성운, 「수선화」전문 (《시와 생명》1909년 여름호)

 

90년대 등단 시조인 중에서 자신의 개성을 뽐내는 두 사람으로 이종문과 홍성운이 있다. 이종문은 풍자와 아이러니에 강하고, 홍성운은 풍성한 시정과 활달한 시상전개가 장점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보법이 자유롭고 꾸준히 해온 형식 실험을 통하여 시조 쓰기의 남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종문은 자신이 선택한 소재에 끌려가지 않는다. 철저히 대상을 자기화 시켜 재생산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위 시 「입동(立冬)」의주인공은 귀뚜라미다. 귀뚜라미는 이미 여러 시인들이 다룬 낯익은 소재이지만 이종문의 귀뚜라미는 시인의 특질을 고스란히 가진 귀뚜라미로 살아 있다.

장정일의 귀뚜라미가 공사장 옆 풀밭에서 도회의 풀죽은 사내를 쯧쯧쯧쯧!하며 조롱했다면 이 귀뚜라미는 이박 삼일을 천지현황 가이 없이 울어 제끼는 대책 없는 귀뚜라미다. 시인은, 각설이나 청상과부, 실직자 등등 울지 못하는 한(恨) 많은 사람들의 뺨을 후려쳐 함께 속 시원히 울게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이 시와 함께 실린「난타(亂打)」또한 실컷 짓밟히고 얻어맞으면서 통쾌해하는 모습을 특유의 어법으로 그려 낸다.

홍성운의 수선화는 남성성을 한껏 드러낸다. ‘절명의 순간에’ ‘허옇게 사정(射精)’ 하는 꽃은 그런 시각으로 읽힌다. 시인과 수선화는 통 큰 합일을 이룬다. 홍성운의 시조는 상투적이지 않고 높낮이가 적당한 능선을 걷듯이 자연스러워 좋다.

분명한 것은 이 두 시인의 활달한 에너지가 어떤 기대를 갖게 한다.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사고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성큼 성큼 걸어서 시의 강을 이루었으면 한다. 우리 시조단에서 아직 이뤄내지 못한 서사구조의 완결과 대중성의 획득은 이제 젊은 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

 

1

누가

햇빛의 은유를

나에게 가르쳤는가

저 연한

햇살들에게

눈물을 가르치고

눈물이 기쁨이라고

 

누가 소리치는가

 

2

작은 섬

자전거 길

선술집 베아트리체

바다와 노시인과

낡은 우편 가방

그 속에

배경처럼 들어가

나도 은유가 되고 싶다.

一강현덕,「영화처럼·9 -일포스티노」(《열린시조》1999년 여름호)

 

시조의 대중화는 쉽게 노래로 만나진다. 노산의 시조들은 이미 문학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가곡을 통해 민족 정서를 움직이는 역할까지 한다. 언어와 음악과의 결합,즉 노래로의 치환은 정형시가 갖는 특징에 가장 쉽게 근접한 방법이다.

강현덕은 반대로 영화와의 결합을 통해 시조의 대중화에 기여하려 한다. 강현덕이 의욕적으로 시도하는「영화처럼j 연작은 영상언어를 캔버스에 옮기는 회화적 작업이다. 이 시인은 핀셋으로 집어내듯이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를 구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작은 가장 강현덕 다운 작업으로 평가될 만하다.

하지만 이 작업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세상은 우리들 일상과 상상력을 학장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시에서는 영화 그 자체를 옮겨와서도 안 되고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에 얽매여서도 안 된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을 다시 자신의 프리즘을 통해 재 구성해내지 못하면 자칫 영화만 있고, 시는 없는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이 작업의 성공은 아무런 정보도 없는 독자와 영화와의 관계설정이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재즈를 지나 지중해 몽마르뜨 올페를 지나

허물어진 기억의 창고에 남아있는 모든 다방의 어두운 모퉁이를 지나

늦은 밤 카페 ‘스칼렛’에서 창 밖을 내려다 본다

—김일연, 「카페 ‘스칼렛’에서」부분(《열린시조》1999년 여름호)

 

위 시는「카페 ‘스칼렛’에서」의 첫 수다. 김일연에게 시조는 더 이상 답답한 정장이 아니다. 시공을 넘나드는 상상력, 급박하고 몽롱한 분위기 연출이 세련된 한 편의 영화처럼 진행된다. 시인이 앉아 있는 카페는 지중해,몽마르뜨, 올페, 기억의 어두운 모퉁이를 지나서 있다. 그리고 그 창문 아래는 혜화역이다. 이제 이곳에는 ‘화염병 대신 깜박이는 담뱃불을 든 실직자들과 애인들이 무력한 시위’를 하고, ‘집 없는 아이들은 연기처럼 들끓고 갈 데 없는 길이 허공으로’ 치솟기까지 한다. 일순 시인은 도시의 한 공간에서 균형을 잃고 만다 ‘구명조끼는 아래쪽에 산소 마스크는 위쪽에’… 아직도 사설은 계속된다. 둥둥 공중을 부유하다가 ‘안개 같은 안개 속 구렁이 같은’ 정체모를 힘에 가위 눌린다. 안간힘으로 ‘항복하진 않겠다 나를 붙들어 매놓겠다고’ 다짐하지만 끝내 시인은 마지막 종장에서 ‘미립자가 되어 무중력 속으로 떠오른다’.

안개, 안개 속 구렁이 같은 이 정체 모를 힘은 보이진 않지만 우리를 위협해 오는 어둠이고 폭력 같은 것이다. 이 폭력에 대항할 그 무엇도 우리에겐 없다. 삶은 시나브로 도시를 점령해 오는 폭력을 피해 잠시 허물어진 기억의 창고 같은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김일연의 변모는 파격적이다 시집 「서역 가는 길」에서 보여 주었던 그 단아함에서 성큼 몇 걸음 앞서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강현덕이 일련의 영화들을 시조 속에서 녹여 낸다면, 김일연은 시조 속에서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해 낸다. 이런 작업들 역시 새로운 시조의 지평확장에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4.

 

지난 계절에 발표된 시조들을 살펴보면서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시조단 내면에서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이 힘들은 이제 어떤 확신을 갖게 한다. 이 밖에도 각각의 개성이 돋보이는 여러 시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기쁨이었다. 강경주는 일상성에 기초해 시를 쉽게 풀어내는 시인이다. 「不眠」과「어디 가든」(《현대시조》) 두 편의 시조로 가장의 위치와 책무에 대해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 시인은 촉수는 여러 곳을 향해 있다.

이동백은 「이밤에」(《열린시조》)에서 ‘자신의 그림자에/갇혀버린 사람 하나/그 뚫린 지붕을/망치로 뜯어 내다 말고/이 봄에/우주도 삭으면 이럴까’라며 자아를 잃은 현대인의 모습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또한 김윤철은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어두운 흙구렁 속에서/꽃피고 촉도 틔우는’ 「지중생蘭」(《현대시조》)을 통해 낮은 곳에서 손을 뻗어 희망을 향하는 몸짓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해진 목소리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심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난 여름, 타고난 서정성을 바탕으로 일정한 무게를 늘 지녀왔던 박권숙의 시를 읽은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눈물이 펄럭이고 눈물이 펄럭이고

눈물이 펄럭이는 낙동강 물비늘

물들이 몸을 뒤채며 빛을 몰아 오는 소리

 

이 땅의 질긴 어둠 치마폭에 안으시고

딸아, 어둠을 이기는 건 기다림의 힘이란다

어머니 푸른 촛대로 충충히 켜신 봄 언덕

 

손에 초를 받쳐든 어머니의 어린 딸들

쇠뜨기 가시나물 쑥 냉이 질경이풀

풀들이 몸을 뒤채며 빛을 몰아 오는 소리

-박권숙, 「낙동강」전문(《현대시조》1999년 여름호)

 

이 시인의 시엔 눈물이 묻어있다. 그 눈물은 돌이서서 적시는 어머니들의 굵은 무명 삼베올 같은 것이다. ‘어둠을 이기는 건 기다림의 힘’이라고 어머니는 힘주어 말한다. ‘쇠뜨기, 가시나물, 쑥,냉이,질경이풀’들은 한결같이 제철이면 아무렇게나 나는 잡풀들이다. 이런 생명들이 눈물을 낳고, 물비늘을 낳고, 빛을 몰아와 강을 이룬다. 박권숙은 그저 어머니라는 한 단어를 통해 젖줄 낙동강으로 우릴 초대한다.

 

5.

시조인구가 급증하고 저변 또한 넓어졌다. 하지만 이런 양적 팽창이 바로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 주지는 않는다. 문학의 발전은 문인과 향유자 모두의 노력과 관심에 의해 좌우된다. 현재 시조의 정체성 확립과 관련하여 매우 의미 있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이며 존 올린 전략연구소 소장인 새뮤얼헌팅턴(72)의 ‘유민 기념 강연’의 내용이_7월 12일자《중앙일보>에 지상중계 되었다. 정치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마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학자가 21세기를 예단하면서 그 최대의 현안으로 국가 간 민족 간 고유한 문화의 충돌과 갈등, 그리고 필연적 상호 작용에 대해 역설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세계화>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개별 문화의 종말에 따른 범세계적인 단일 문화의 창조는 허구일 뿐이며, 문화적 통합이 아닌 개별적 문화에 대한 인식과 상호 관계에 따른 공존화 경향으로 나아가가리라고 예견하고 있다.

<갈등과 상호작용>이란 말은 상대를 동일한 무게로 인정했을 때 가능한 말이다. 그리고 상호작용이란 국가와 국가 간의 고유한 것들에 대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말인데 오늘날 우리 문단에서 진실로 지켜내야 할 우리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다층』1999년 가을호

 

 

절해고도에서의 시 쓰기

 

시인 김수돈은 그의 시「憂愁의 皇帝」 에서 “英雄이 너무 많다 //絶海 가운데 외로운 섬에 살아 /歷程을 되씹는 皇帝가 되랴”라고 노래했다.

시인이 살다간 오십 평생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노도의 시대였다. 이 파란과 질곡의 세월을 건너다보면 시대가 영웅을 간절히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갈구가 커지면 커질수록 도처에서 영응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거창한 구호와 맹약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시대는 영웅을 원했지만 온갖 소인배 들이 영웅을 자처한 탓에 난세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시인은 몰려오는 피곤을 주체할 수 없어 영웅이 너무 많은 세상을 피해 절해고도에서 역정을 되씹는 황제가 되고 싶다고 노래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한 마디로 시인이 너무 많다. 그래서 시도 넘쳐난다. 오늘 우리 사회는 진실로 시인을 원하는가. 나 역시 시인이고자 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므로 이 물음은 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 시의 홍수시대에 좋은 시를 고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제 경천동지할만한 작품을 써내지 않고서는 모두를 감동시킬 수 없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적당히 시인이 될 수 도 있다. 이 적당주의는 자칫 그들만의 문단이 될 병폐가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시대가 원했다면 어쩔 수는 없다. 수많은 문예지마다 ‘우리가 뽑은 좋은 시인’, ‘이달에 읽는 좋은 시’들이 쏟아지지만 솔직히 모두가 동의하기는 어렵다.

넘쳐나는 풍요는 시를 대충 읽게 하고, 또 대충 쓰게 한다.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다. 시들이 너무 비슷해서 권태롭다. 이 권태를 피해 절해고도로 떠나는 시인은 없는가. 만경창파의 절해고도에 선 시인은 있는가.

 

문정희의 시를 읽는다.

 

시청 앞을 지나다가

떨어지는 분수를 본다

힘찬 새들의 깃털

추락하는 별들이 긋는 눈부신 한 획

아. 나도 저런 시를 쓰고 싶다

언제나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가

가령 바다라던가 바위 같은 지혜로운 것들이

조금만 말을 걸어와도

몸을 떨며 감격 했는데

오늘 시 청 앞을 지나다가 허공으로

떨어지는 분수를 본다

자연도 아닌 것이

사람이 만든 것이

무엇을 세우려고 고통하지 않고

맘껏 무너져 내리며

나를 장엄하게 일으켜 세운다

-「분수」(현대시. 2000년 5월)

 

이수익, 이시영. 문정희 같은 중진 시인들의 시는 읽고 나면 만져지는 뭔가가 있다. 씨줄과 날줄로 언어를 엮어가다가 어느 틈엔가 지향도 형체도 없이 혼돈 속으로 묻혀 버리게 하는 시들. 이 혼돈을 혹자는 모호성이란 말로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위 시의 시적 성취는 정연함에 있다. 형식의 정연함은 시적 자세의 진지함에서 온다. 일견 너무 고답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여과지에 걸러지지 않은 설익은 실험보다는 공감의 폭이 크다. 분수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었기에 ‘자연도 아닌 것이’고, 자연인 물을 대상으로 했으나 ‘사람이 만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고통스럽게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고, 무너짐을 즐기는 물줄기의 장엄함을 뽐낸다.

 

둥그런 해바라기 시계 안으로

기어들어간 애벌레 한 마리 그 쬐그만

입으로 시간의 비단실을 우물우물 삼킨다

 

시간이 소멸한 지점에서

애벌레는 신비스런 종소리를 낸다

애벌레가 눈을 감고 죽은 후

투명한 날개를 달고 천년 동안 에밀레종 안으로

숨어 들어가 천년을 하루처럼 울다

파아란 하늘 끝 허공에

창이 커다란 집 한 채 지었음을

누가 알았을까?

- 김혜영.「집」전문 (《시와 사람》2000 여름)

 

이 집은 이런 과정을 통해 지어진다. ‘시계 안으로/기어들어간 애벌레’⟶ ‘입으로 시간’을 삼킴⟶ ‘시간의 소멸’ ⟶‘신비스런 종소리’를 냄 ⟶ ‘애벌레가 눈을 감고 죽은 후/‘에밀레종 안으로/숨어들어가 천년을’ 울다 ⟶ 하늘 끝 허공에/창이 커다란 집 한 채 지었’다. 이런 식의 과정을 따라가 봐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해바라기 시계’ 속으로 들어간 애벌레는 시계가 뱉어낸 시간을 삼켜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소멸한 지점에서’ 애벌레는 죽고 영혼은 에밀레종 속으로 들어가 천년을 운다. 그렇다면 애벌레의 존재는 에밀레종 소리를 내기 위해 끓는 쇳물에 던져진 아이의 영혼이란 말인가. 이 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딱히 알 필요도 없다. 시를 읽다가 길을 잃어도 할 수 없다. 시인은 독자들을 자신이 축조 한 이상한 집 속으로 끌어들여 스스로 출구를 찾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영웅이 너무 많은 시대를 지나 시인이 너무 많은 시대를 우리가 걸어간다. 독자가 곧 시인이고 시인이 곧 독자인 시대의 시 쓰기는 매우 지난하다. 이런 날들을 지나가는 이 땅의 시인들이여, 시인의 바다 위 에서 시인이 간절히 그리운 이곳이 바로 만경창파의 절해고도가 아닌가.

-『시와 생명』2000년 여름호

 

떠도는 魂, 진정성의 詩學

 

용서하라, 地上의 한점 풀잎으로 남아서

시들지 않는 길은 세상에 없었다.

-「釣行日誌」부분

 

그렇다. 세상에 시들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지상의 한점 풀잎으로나마 남고자 하는 안간힘을 누군들 외면할 수 있으랴.

 

이 시집은 이상원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이미 불혹이 넘은 나이에, 몇 권의 시집을 묶을 분량의 작품을 쓰고서도 이제야 첫 시집을 펴내는 것은 그의 성격의 일면을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시는 오래 담근 장맛처럼 편안하다. 그만큼 튼튼한 시력의 바탕 위에서 충실히 작업을 해왔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 편안함 속에 내재된 고통과 스스로를 향한 끊임없는 의문 부호들을 찾아내고 나면 더 이상 편안한 마음으로 그의 시를 대할 수는 없게 된다. 80편이 넘는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그가 그토록 끌어안고 풀고자 했던 물음에 대해 필자 역시 함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것은 특이한 경험이었다. 처음 그의 시는 낮은 음성으로 읽힌다. 처음엔, 몇 잎 이파리들의 수런거림이 차츰 전이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중에는 숲 전체가 하나의 화음으로 출렁대는 느낌으로 치환된다. 결국 그의 시는 독자를 객관적 거리에 두고 담담히 읽게 하지 않는다. 독자를 함께 고뇌하게 하는 이상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 설득력은 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두터운 서정의 바탕 위에서 진정성으로 시를 빚어내는 정신의 깊은 진폭 때문이었다. 시는 그에게 신앙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시 속에서 자신을 질책하고, 구원을 찾아 헤맨다.

이 한 권의 시집 속에서 그가 구축하는 세계는 단절과 이어짐, 떠남과 돌아옴 등의 서로 대응되는 의미들이 충돌하고 친화하면서 생기는 ‘빈 공간의 울림’같은 것이다. 그 울림은 대숲이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고향 언덕의 숲정이가 흔들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의 물음은 늘 끊겨 있는 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에게 있어서 풀리지 않는 話頭인 ‘길’은 대체로 막혀 있거나 끊겨 있다. 길은 내일로 가는 삶의 이정표이자 보다 높은 정신을 지향하는 가치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통하게 하는 공감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이 끊어진 길 앞에서 떠돈다. 그의 정신은 막혀 있는 혹은 단절되어 있는 어떤 것들과의 부단한 싸움으로 고단해 있다. 그래서 영혼은 상처받아 있으며 시의 저변에 깔린 분위기는 둔중한 고뇌의 빛깔을 띠고 있다. 시인은 자신이 마주친 끊어진 길 앞에서 기진한 몸을 이끌고 새로운 길 찾기에 열중한다. 바로 단절된 시인 자신의 삶의 궤적을 찾아가는 것이다.

 

저마다 갑골질의 지붕을 두르고

달디단 잠 속으로 세상이 빠져들 때

몰래몰래 이 港口를 빠져나가는

下水처럼 자세를 낮춘 채

未明의 바다로 木造船을 타고 갔다.

 

(중 략)

 

內海를 벗어나며 우리는 보았다

몰래몰래 뭍에서 내다버린 주검들이

무수한 夜光忠으로 살아 이 바다에 떠도는 걸.

한마리가 익울하다 소리치면

억울하다 억울하다고 일제히 소리치고

그래서 바다는 큰 울음으로 출렁인다.

_「約行日誌」부분

 

시인은 혼돈으로 일그러진 영혼을 구원해 줄 해답을 잦아서 바다로 나간다. 그에게 있어서 바다는 잉태의 거대한 자궁이다. 발에서 내다버린 주검들이 억울한 울음으로 출렁이는 바다는 신생이미 부활이다. 그의 바다는 몇 PPM으로 썩어가고 오염되었다는 식의 표면의 바다가 아니다. ‘거대하게 밀려오는 적막과 눈보라’ 앞에서 다시 한 번 자세를 움츠릴 수밖에 없는 거대한 절대의 바다로 존재한다. 그러나 끝내 빈손으로 돌아와 설 수밖에 없는 허망함 앞에서 시인은 숙명처럼 ‘끝없는 덧없음 뒤의 오직 한 소리를 만나기 위해/내일은 다시 이 바다를 떠나갈 것’이라고 결언 한다.

그의 고향은 경남 고성이다. 유난히 아름답고 맑은 바다와 작은 섬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그곳에서 나서 유소년기를 보내고 현재도 그곳을 지키며 살고 있다. 고단하고 외로울 때 그는 더욱 외로워지기 위해 조행을 떠난다. 이 작은 떠남은 그를 늘 자성하는 시인으로 살아가게 한다.

 

마을 앞은 지나가자

내가 만날 사람은 여기 살지 않는다.

지난밤 한 어둠 속에서 觸手를 세우고

나는 보았다, 그 너머서 들리는 자란만의 울음.

물새들의 흰 뼈와 몇 조각의 마스터로 떠밀려온

漁夫들의 筋骨을 나는 만나야한다.

길은 언제나 몇 개의 무덤으로 시작되고

늙은 홰나무는 그 앞에 즐비한 집을 가리키며

여기에 生이 있다고 날마다 손짓한다.

 

(중략)

 

지나가자.

집집마다 忘却의 핀 연기는 굴뚝에 가득하고

하루의 햇살들을 깡그리 태우는

세상의 거대한 아궁에서 불타지 못한 채

눈 떠 있는 억울한 말 몇개를 남몰래 추스리고

나는 저 물새들의 十二音이 죽어간 바다에서

자란만의 슬픈 노래를 만나야 한다.

一「紫蘭灣·1」에서

 

시인이 만나야 할 대상은 마을에 없으므로 빠른 걸음으로 마을 앞을 지나간다. 간밤에 시인의 미세한 촉수에 감지된 것은 자란만의 울음이다. 그들 삶의 터전이며 애초부터 짐지워 진 숙명의 길인 바다에 그냥 존재하는 물새나 어부가 아닌 흰뼈와 부서진 늑골로 띠밀려 온 난파의 소리인 것이다. 시인이 만나고자 한 깃은 일인분의 안락이 아니라 난파의 현장, 우리 시대가 무참히 황폐화 시킨 인간 본연의 모습이 좌초된 그 현장이다.

그러나 찾아 가는 길은 늘 무덤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길은 삶의 시작 이고 삶은 죽음에서부터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절망에 절망을 더하여 더 절망할 그 무엇도 없을 때 비로소 소생하는 生의 참 의미를 만나고자 한다. ‘가엾구나,뭍의 귀는 밤마다 열리지만/너무 많은 것들로 겹치고 쌓여서/노래까지 닿기에는 너무 묵중하구나’ 그의 귀는 끊임없이 바다를 향해 열리지만 끝내 그 해답은 얻어내지 못한다. 혼미의 연속이다. 이 길 찾기의 방황은 도처에서 행해진다.

 

 

늦기 전에 가야 한다

國道는 끝나고 이어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나 가득한 無人都市의 스모그를

떨쳐내켜 외곽으로 달려온 사내들은

묶인 개처럼 허공으로 울지만

그대가 찾은 하늘에

반짝이는 至上의 낱말들은 이미 없다.

 

(중략)

 

가야하는 사내들의 길이 끝나는 곳에

春三月의 진눈깨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칠지난 무서리 外面된 이 세상 오지에서

울지 말아, 억울하게 시드는 野性의 풀 한포기

다시 그리운 우리들의 女人이 여기 와서

캄캄한 허공에 횐 옷자락을 나부낄 때까지,

마지막 한개비의 성냥불을 켜 들고

언 손을 여윈 가슴에 부비면서까지도

너는 다시는 더 울지 않아야 한다.

-「풀밭에서·3」부분

 

춘삼월이라 하지만 그가 감지하는 현실은 진눈깨비가 질퍽이는 춥고도 우울한 시점이다. 고통의 근원을 찾아가는 심정도 역시 한기를 동반한다. 어딘가 분명히 가 닿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깨어 있지만 여기서도 길은 끊겨 있다. 현실을 넘어 그의 고뇌가 끝나는 그 마지막 지점에 와서도 그를 구원해 줄 至上의 말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그저 주저앉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다시 그리운 우리들의 여인이 여기와서/깜깜한 허공에 흰 옷자락을 나부낄 때까지’ 야성의 풀 한포기로 의인화된 시인 자신에게 다짐하듯 기다리라고 말한다. 여인은 생명의 상징이다. 아무리 지난한 어둠이라지만 끝내 깨끗한 시원의 삶이 열릴 것을 믿으며 혹한의 세월을 기다리려는 것은 참으로 처연한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자신을 더 혹독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울지 말아, 어둠을 가르고 선 그대

곧고 긴 고집으로도

이 山의 寒氣를 다스릴 수는 없었거니

마침내는 어둠이 그대 살 속

마지막 한 개비의 성냥불을 흔들 때

뼈마디 마디마다 불타는 좌절을 쓸어안고

山頂엔 그대 눈물 그대 아픈 피 한 방울

어둡고 치운 공간으로 사라져갔다.

울지 말아, 진실은 이 세상에 이미 없고

그대가 지켰던 한 뼘 땅은 쓸쓸해서

깜깜한 허공 너머 묻혀가는

그대 입술은 돌처럼 무겁게 굳어 갔겠지만

보아라, 끝내는 아득한 인식의 저편 어디

별 하나 떠올라 보이지 않는 그 별 하나 떠올라

얼어버린 山의 깊이로 숨어드는 것을.

밤새도록 승냥이가 우는 혹한의 날에도

깊은 땅 버릴 수 없는 소리로 떠돌아

내일은 다시 한 푸름이 타오르고

노래하는 모든 말들에 설운 울음 빛날지니

울지 말아, 그대 적막한 혼불로 이 山에 서서

울지 말아,다시는 더 울지 말아.

-「억새풀 領」전문

 

차고 어둔 산정에 서 있는 억새풀은 시인 자신이다. 그는 감정의 편린들인 피눈물 한 방울까지도 거부한다. 겨울 산정의 적막 한 공간에서 그가 믿어왔던 진실이란 것마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몇 번이고 자신을 추스리며 울음을 보이지 말라고 말한다. 그가 믿었던 마지막 명제까지도 의지할 수 없는 절대 절명의 공간에서 시인은 비로소 섬광처럼 스치는 빛 하나를 보게 된다.

‘아득한 인식의 저 편 어디/별하나 떠올라 보이지 않는 그 별 하나 떠올라/얼어버린 산의 깊이로 숨어드는 것을’ 본 것이다. 혹한의 날에도 끝내 버리지 않고 지켜낸 가치 하나는 내일 이 산정에 푸름으로 돋으리라는 믿음, 여기 오면 시인이 발견한 단 하나의 희망, 그것은 내일이 있음으로 해서 가능하게 된다. 오늘 의 온갖 영화를 마다하고 택한 이 지난한 삶 최후의 가치는, 내일의 이 지상에 바른 生이 있게 하는 작은 거름이 됨으로써 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 믿음이 있게 되면서 혹한 속의 고적한 시인은 조금씩 그 정신의 자유를 찾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 본 이상원 시인의 시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독자들을 구속하고 있다. 지나친 감정의 표출은 읽는 이를 곤혹스럽게 한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이 정제되지 못한 관념의 시행들과 길 찾기의 방황은 그만큼 한 시인의 내면세계의 지평을 넓혀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진통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새 생명의 개안과도 같은 것이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시의 인플레이션 시대에 거친 감정의 토로일망정 극한 고통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는 시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인가. 어떤 내적 진통과 방황도 없이 버젓이 시를 쏟아내는 적당주의 시인들에 비하면, 그의 이런 자세는 차라리 순결하기까지 하다.

그가 천착해 있는 대상들은 바다와 풀밭 혹은 나무들 같은 것이다. 이 대상들은 현실에서 많이 비껴 시 있는 듯한 소재들이지만, 그는 그가 늘상 접하는 이 객관적인 상관물들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통하여 새로운 화해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수많은 시인들이 선택하고 다루었던 이 소재들에 그가 그토록 집착하고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제에 오면 그는 자신의 시론에 대해 구구하게 변명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일면 아둔한 고집이기도 한 이것이야말로 이상원 시인의 특징적인 시론이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계절에도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무등산이 온통 흔들리던 날에도 천안문 이 괴기스런 얼굴로 세상을 덮칠 때도 민중이다, 노동해방이다, 남북이다 하고 한 나라가 시끄럽던 날에도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도 후회할 일은 없다. 아무래도 중심에서 얼마쯤 이탈되어 있는 내가 그것들 을 쓴다는 것은 염치없는 위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느 후기에서 쓴 이상원 시인의 금이다. 우리는 민주와 광주의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숱한 시인을 보아왔다. 하루아침에 민족,민중의 시인인 양 둔갑하려는 치졸한 발상의 세태를 향해 일침을 놓는 자기 고백이다.

 

이 빠진 백자토기 하나가 물소리를 그리며 삭아가고 있네. 物形도 紋樣도 아무 것도 아 닌, 자갈들이 송사리떼마냥 소색이던 날도 있던가. 알 수 없는 아득한 날의 그대 목소리만 잡초 속에 남아서 바람이 불 적마다 원혼처럼 우네.

-「개울에서의 片紙」부분

 

사람아, 내가 축복 내린 還生들아. 사람들아, 짐승보다 먼저 내고 이제 와서 먼저 거두니 내 罪가 얼마인가.

그 눈물 베갯닛 적시고 별을 적셔 흐르다가 地上의 풀잎에 내려 이슬, 이슬로 맺혀 있네.

-「풀잎에 내린 이슬」부분

 

아득한 날 창랑한 물로 남해 바다 이루시고, 바다 홀로 외로울라 섬을 내쳐 두셨더란다. 좌사리 열 두 諸島 남풍만 불라시고 속물살 간질대는 비늘 소리만 내셨더니 기어코는 발길 몇이 닿아 人跡을 심었구나. 용왕님 그래도 어여삐 여기시어 너희도 갈매기소리 내 섬의 소 리 닮아 살라시고 深深海 조개 빛살로 아이 하나 내리셨단다.

-「좌사리 辭說」부분

 

이 세 편의 산문시는 서정의 조율을 통해 매우 순화된 시행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앞서 보여주었던 시들과는 많은 거리를 갖게 한다. 그만큼 시인은 얼마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게 되었다. 위에 인용된「좌사리 辭說」은 좌사리라는 섬의 설화를 시인의 심상 속에서 창조함으로써 그저 놓여 있는 하나의 섬에 생명을 불어넣게 되고, 따라서 자연과 사람이 화합할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한다. 시 형식에 있어서의 변화도 변화려니와 시로써 형상화 하려는 시적 변용의 묘도 한충 성숙되어 나타난다. 이 처럼 다양한 기법의 변화는 앞서 말한 고통의 소산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이제 시인은 서서히 나만의 것에서 우리 모두의 것으로 관심의 지평을 넓혀간다. 그의 그리움은 ‘우수리강, 요수 너머 끝없는 지평의 땅’ 고구려에까지 닿아간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소한 존재들과 풀잎, 숲 등의 소재들에까지 자유롭게 이어진다.

 

지금은 서울 사람 소유가 되었지만

토석이네 종산이던 그 산의 소롯길에

무슨무슨 나무들이 살아가고 있는가를

내가 더 잘 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 「所有論」부분 .

우리가 나무라고 불렀던 그것들이

참으로 나무인줄 아는가,

은행이고 푸라탄이라던 그것들이

하품처럼 늘인 검푸른 잎들이랑

빈 몸을 도시에 허울로 버려둔 채

 

혼들은 밤마다 이 숲에 몰려와

몸 내놓아라 내 몸 내놓으라고

원귀로 울부짖고 떠도는 저 소리를

우리가 정녕 숲이라고 부르는가.

- 「밤, 숲에서」부분

시인은 이미 서울 사람 소유가 되어버린 산에 서 있는 나무 하나하나를 마음 속에 소유함으로써 진정한 소유의 본질을 느끼고 있다. 유한한 존재인 사람이 아무리 금을 긋고 탐해도 무한한 넓이와 깊이로 있는 자연을 점유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진실로 내 것인 것은 나와 심적 교감을 갖는 이웃일 때라야 가능하다는 어 넉넉한 마음 열림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열려 있는 교감의 즐거움을 위해 그는 굳이 자연을 떠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밤의 숲에서 우리가 그냥 홀려 듣는 바람 소리가,이 시인에게 도시에서 잠들지 못한 나무들의 원혼들로 와서 두런이는 소리로 닿는 것도 같은 소이일 것이다. 시인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독자를 함께 자유롭게 한다.

그는 매우 드물게 현실의 문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메스를 대려는 몸짓도 나타낸다. 시인은「波長」,「狀況 A」,「靑山」,「풀잎에 내린 이슬」등등 몇 편의 시를 통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의 막막함을 공통적으로 드러낸다.

 

싸이렌 소리에 놀라 산토끼는 달아나고

꿈을 잃고 갑자기 이승으로 돌아온 네 살배기는

울음보를 터트리며 애비를 옭아맨다.

 

(중략)

 

自由니, 共産이니 하는 半世紀나 쓴 말을

저에게 닿을 만큼 풀어줄 수가 없다.

-「波長」부분

 

이데올로기가 대치한 곳과는 너무도 무관한 반도의 남쪽, 순하디 순한 사람들의 마을에 갑자기 진동하는 무서운 소리를 해맑은 새순 같은 네살배기에게 무슨 말로 설명할 것인가. 자유건 반공이건 공산이건 다 욕망에 세습된 기성인들의 일일뿐, 천진한 아이는 전혀 다른 원초의 세상을 가졌다. 이념과 사상, 끝없는 대치의 질곡을 벗어나 인간의 인간다움을 가꾸자고 하면서도 ‘나무들은 나이테가/떨리듯 곡선으로 쌓여져 가는’ 것을 보았다고만 담담히 얘기한다.

‘地球의 저편에서/수천의 선량들이 죽어가던 날/포장마차에 앉아 우리는/밤새도록 소주를 마셨다./여기는 코리아,베이루트는 다른 人種의 나라라고/혀 꼬부린 소리로 연신 흥얼대며/독한 것을 마시고 독이 오른 것들이/낯선 여자들과 갈꽃처럼 서걱였다.’

 

먼 지구의 저쪽, 그냥 지나쳐버려도 좋을 베이루트의 대학살이 시인을 독한 술에 젖게 한다. 그러나 세계 도처에서 횡행하는 이 생명 경시, 생명 말살의 사건들에도 시인은 어찌 할 수가 없다. 간밤의 비밀한 응혈 하나가 아침 포도 위에 아픈 자책으로 떠올라도, 그런 풍조가 현실 어디에나 음습하게 널려 있는 것을 감지하면서도 그는 뉘우침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깜깜한 아 침을 觸手도 없이 걸으며/걸으며 빠져드는 이 무량한 無人의 늪에서/賢者여, 그대가 빌었던/세 개의 불빛마저 찾아볼 수 없는 어둡고 외로운 날,/東邦으로 가는 길을 묻는 그대 목발 소리만이/아침 안개 속을 끝없이 울린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 이상의 어떤 제시를 한 사람의 시인이 할 수 있을 것인가. ‘맨 밑의 하찮은 풀잎 하나 하나가/다 마른 숲에는 적요만 흐르고/끝내 산은 삭아내려/허망한 모래알로 사라지고 마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함께 사는 것이다’라고 저마다의 존재의 가치와 당위성을 역설한 것도 우리 사회에 팽만한 개인 이기주의에 대한 질타를「靑山」이라는 자연의 모습으로 환치시켜 보여준 것이다.

농촌은 그의 삶의 터전이다. 도처에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그로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 문제에 이르면 그로서는 보기 힘든 결론의 표출을 보게 된다.

 

대숲에 바람이 일면

아이들도 일었다. ’

한집에서 울음으로 시작하면

앞뒷집서 따라 울고

집집에선 울음인 소리들이

골목에서 어우러져 합창으로 높았다.

-「農夫歌 .4」부분

 

改良種子의 튼튼한 볏잎들이

숭숭한 그물처럼 메뚜기에 갉히우고

이른 아침 하늘이 아이들 뙈기소리에

놀란 물살처럼 튀흩히기 전에는

참새는 언제나 그렇게

그저 지날 뿐이다.

-「農夫歌 .5」부분

 

「술래잡기」에서 보여준 극한 상실의 상황이나「시골 校庭에서」의 차라리 허탈하기까지 한 정적 등과 함께 사내가 돌아와 술 젖은 붉은 눈을 번뜩인다 해도 암내 하나 못 풍기는 폐경의 농촌 현실을 뼈아프게 갈파한 시인은 수매가니 농공단지가 해답은 아니 라고 비친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단 하나 ‘아이들’인 것이다.

늙은 농부가 마지막 대물림이 아니라 청장년이 있고 그 뒤를 이을 아이들의 함성이 함께 어우러질 때라야 비로소 농촌은 구제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 사라져 버린 ‘아이들의 소리’에 닿으면 앞서 보여준 시인의 내적 단절과 구체적 현실의 단절이 비로소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가 바라보는 농촌 현실은 수없이 나타나는 현안, 즉 지엽적인 현상이 아니라 산업화 속에서 변화되어가는 구조적인 것들에 대한 염려와 관심이다. 시인은 차마 그 얘기를 소리 높여 외치지 못하고, 다만 볍씨들의 내적 울음을 스스로 조율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상원 시인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는 약간의 결벽성을 갖고 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오히려 자신을 다잡아 놓는다. 감정의 고조에서 침묵하고 평정을 되찾았을 때 입을 여는 일면은 그의 시를 보다 성숙하게 만든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탱자나무

꽃들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수캐마냥 집 나간

애비는 이레째 돌아오지 않고

논배미 타는 소리보다 더 크게 아려오는

개구멍 가시 끝에 어린 피 한방울.

물처럼 깊은 속눈

어머니 횐 옷고름에

소리없이 꽃잎 한점

지고 있었다.

-「記德 · 하나」 전문

 

진종일의 무논에서 돌아온 어미는

호롱불에 여린 숨을 굳이 확인하고서야

종아리 얼룩진 거머리를 떼내었다.

따슨 그 마음자락 또 한 자락이 덮이면서

비로소 아이들은 잠이 더 깊어지고

꿈에서도 들판을 내달아

조금씩 더 자라갔다.

-「記德 · 셋」 부분

 

이 두 편의 눈물겨운 시는 유년의 어려웠던 삶을 손끝이 저리게 표현해 준다. 그러나 끝내 우리를 울음까지 닿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엔 이 시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 때문이다.

 

가족을 버려둔 채 아비는 떠나간 모양이고, 어머니는 설움을 안으로 삭이면서도 제 자식을 기르는 일에 전념한다. 그가 그려내는 가족사가 그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 모두의 가족사이듯 그가 그려내는 어머니 또한 시인 자신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므로 이 시는 큰 울림을 갖는다. 전통의 가족 질서가 무너져가는 세태에 모성의 큰 세계를,모성의 본성을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시인 이상원, 그는 우리를 신뢰하게 한다.

‘너무 곧아서는 안 되는 세상이 되고/잘 휘는 것들만이 요긴한 세상이 되고/끝내는 곧은 것은 깡그리 꺾여지는 날이’ 온 시대 에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곧은 심성의 발로인가. 그러나 그는 그가 노래한 대나무처럼 ‘여느 한적한 산기슭에나 물러앉아/덧없이 가는 골바람 소리나 듣고’있는 시인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진정성의 혼불로 끝없이 길을 찾아 떠도는 시인, 지상의 한 점 억새풀로 외롭게 서서 내일의 푸름을 갈망하며 혹한을 견디고 서려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까닭이다.

 

이 한 .권의 시집으로 명징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낸 것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가 가 닿아야 할 길의 중간쯤에서 쉼 없이 걸어가는 과정을 충실히 보여주었고, 앞으로도 그런 모습을 보여 주리라는 믿음을 보내며, 그것을 우리가 기대할 뿐이다. 변모된 모습의 제2시집을 기다린다.

 

-이상원 시집『地上의 한 점 풀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