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 시집『북행열차를 타고』-소멸과 대결의 미학
소멸과 대결의 미학
-이달균 시집『북행열차를 타고』를 읽고
오형엽(문학평론가ㆍ수원대 겸임교수)
이달균의 시는 시간의 운명 속에서 소멸해 가는 존재들과 사물들로 가득 차 있다. 흘러가는 시간은 존재의 생명력을 퇴화시키고 사물의 원상을 퇴색시킨다. 이달균은 저무는 황혼 무렵 낡아가는 공간에 혼자 남아 무너지는 육체들과 바스러져가는 사물들을 응시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성당의 종지기 영감이 죽은 뒤 남은 종소리와도 같이, 소멸과 퇴락의 아우라를 근저에 깔고 있다.
그 성당 종지기 영감이 죽었다.
말없이 종만 울리며 살다간 사람은
가슴에 무슨 말들을 품고 살았을까
종각 옆 광목빨래처럼 펄럭이던 한 생애
당신의 이빨 빠진 웃음도 내 유년도
한 장의 낡은 사진처럼 붙박혀 남았을 뿐
-종소리 전문
말없이 종만 울리며 살다간 종지기 영감의 가슴에 여며 있을 무수한 말들. 그것은 이달균 시의 침묵의 여백 속에 스며 있는 뜨거운 고뇌와 넘쳐흐르는 정념들과 흡사하다. 이달균의 시는?광목빨래처럼 펄럭이던 한 생애?와 ?이빨 빠진 웃음?과 ?유년?이 붙박혀 남아 있는 낡은 사진처럼, 존재가 지닌 본래적 생명력이 닳고 희석된 현재의 양상에 착목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퇴색되어 가는 과거적 존재나 사물들에 이달균의 시선이 머물고 있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이달균의 시는 종지기 영감이 죽은 뒤 이제는 울리지 않는 종소리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는 종소리 사이에서 희미한 추억의 아우라를 형성한다.?박수근 화집 속의 마을?에 그려진?빛바랜 파스텔조의 머리깍은 나무들?과?다리를 절며?가는?겨울새 한 마리?(?겨울 화집(畵集)?)는 그의 시에 나타나는 소멸과 퇴락의 모티프를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이 소멸과 부재의 이미지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나의 빈 내부에서
소리가 난다
오래된 목조건물,
그 목질(木質)의 휘파람처럼
빈 가슴
깊은 그 어디에서
소리가 난다
-?목질(木質)의 휘파람? 부분
시인은 자신의 ?빈 내부?를 ?오래된 목조건물?로 비유하고, 깊은 그 어디에서 나는 소리를 ?목질의 휘파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내면을 ?빈 공간?으로 파악하는 것은 부재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지만, 휘파람 소리를 낼 수 있는 생성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래된 목조 건물?에서 나는 ?목질의 휘파람?은 부재에 대한 인식을 생성에 대한 인식으로 전이시키는 내면적 근거를 제공한다. 그것은 철근과 콘크리트가 주조를 이루는 현대 건물의 흐름에 저항하는 전통 건물에 대한 긍정으로부터 시적 메타포를 얻는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실의 시간성 사이에서 형성되는 이러한 시적 의미는, 실재의 공간과 가치의 공간 사이에서 형성되는 시적 의미와 겹쳐지기도 한다.
오늘도 소매물도는 저만치 앉아 있다
차라리 지도 속에 실재하지 않는 섬
사라진 전설의 바다, 그 파도였으면 좋겠다.
그리운 이가 죽으면 핏빛 동백이 피고
그 생애를 덮을 만큼의 싸락눈이 내리면
먼 바다 작은 섬 하나를 가슴에 묻고 산다면...
그래, 어디에도 소매물도는 없었다.
다만 그리운 이와 동백을 피고 지우는
쓸쓸한 싸락눈의 빛깔만이 내게 남아 있을 뿐
-?소매물도는 없다? 부분
?소매물도?는 실재하는 섬이지만, 화자는 그 섬이 ?사라진 전설의 바다, 그 파도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전설의 섬이라면,?그리운 이가 죽으면 핏빛 동백이 피고/그 생애를 덮을 만큼의 싸락눈이 내리는?섬 하나를 가슴에 묻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자는 어디에도 소매물도가 없었다고 말하고,?다만 그리운 이와 동백을 피고 지우는/쓸쓸한 싸락눈의 빛깔만이 내게 남아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현실적으로 실재하는 공간 보다 정신적인 가치의 공간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이달균의 시의 표면에 나타난 소멸과 퇴락의 이미지 내부에,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지켜져야 할 정신적 가치에 대한 애착과 긍지가 숨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소멸과 죽음의 운명에 대결하는 이러한 양상은, ?삭아가는 시간?과 ?허연 시간의 뼈?(?시간?)룰 주시하는 시간성에 대한 인식과, 그 시간성에 저항하려는 정신적 의지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소멸과 죽음에 저항하려는 시인의 의지는 ?기억의 길?과 ?낙타의 길?과 ?순교의 길?이라는 세 가지 모색의 방향으로 구체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기억의 길?은 기억의 주름을 펼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가는 물줄기를 형성하여, 닳아가는 존재와 사물의 육체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다음의 시를 살펴보자.
눈빛이 투명하다 물소리가 난다
사람의 뼛속으로도 출렁이며 흐르는 강물이 있다면 향기도 빛깔도 없이 그저 흘러서 모래내를 이루던 남강 하류 그 기슭에서 보던 갓잡은 물메기 지느러미의 깃 치는 소리며 물밤 줄기나 수초에 묻어나던 물때냄새, 배추씨 모종삽 뜨는 경삼이 아재 누런 이빨같이 오래 잊었던 것들아, 청청한 물빛으로 반짝이는 그대, 그대를 지나
기억의 조이배 타고
그곳에 가고 싶다
-?기억의 종이배 타고? 전문
?사람의 뼛속으로 출렁이며 흐르는 강물?은 기억의강물이다. 1연의?눈빛이 투명하다 물소리가 난다?는 ?기억의 종이배?를 타고 과거로 진입하는 시인의 생생한 감각을 ?눈빛?과 ?물소리?의 이미지를 겹쳐서 표현하고 있다. 과거로 흘러가는 이 기억의 항해를 통해 시인은 ?갓 잡은 물메기 지느러미의 깃 치는 소리?를 듣고,?물밤 줄기나 수초에 묻어나던 물때냄새?를 맡으며,?배추씨 모종삽 뜨는 경삼이 아재 누런 이빨?도 만난다. 이 모든 것들, 즉 오래 잊었던 과거의 기억들은 시인에게 ?청청한 물빛으로 반짝이는 그대?로 인식된다. 따라서 시인은 ?투명한 눈빛?의 이미지에 ?청청한 물빛?의 이미지를 호응시킴으로써 추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과거의 생동하는 감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억의 길?은 ?거리엔 랩처럼 세월이 지나간다?와?조국은 랩송을 부르며 도시를 질주한다?(?나는 랩시(詩)를 쓰지못한다?)에 표현된, 질주하는 현대 세속도시의 속도전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럴 때 시인은 지워지는 생애의 고단한 길 위에서 ?낙타?가 되어 그 소멸을 견디며 죽을 때까지 걷는다. 이 길이 두 번째 모색의 방향인 ?낙타의 길?이다.
등짐이 없어도 낙타는 걷는다
고색한 성채의 늙은 병사처럼
지워진 길 위의 생애 여정은 고단하다
생을 다 걸어가면 죽음이 시작될까
오래 걸은 사람들의 낯익은 몸 내음
떠나온 것들은 모두 모래가 되어 스러진다
모래는 저 홀로 길을 내지 않는다
동방의 먼 별들이 서역에 와서 지면
바람의 여윈 입자들은 사막의 길을 만든다
낙타는 걸어서 죽음에 닿는다
삐걱이는 관절들 삭아서 모래가 되는
머나먼 지평의 나날 낙타는 걷는다
-?낙타? 전문
모래 사막은 길을 지우고 떠나온 것들을 모두 스러지게 하는, 흐르는 시간의 메타포이다. 이 모래 사막을 등짐이 없어도 걷는 낙타는, 소멸의 시간성이라는 현실에 맞서 죽음의 운명을 자신의 몸으로 실행한다.?고색한 성채의 늙은 병사?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는 시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낙타는 걸어서 죽음에 닿?지만, 그곳에 이르기까지 ?머나먼 지평의 나날?들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견딤?과?저항?의 의미를 내포한 ?사막을 걷는 낙타?의 이미지는, ?청기와의/ 마구리나/ 낡은 단청./ 저무는/ 퇴기의 정절 같은/ 여생?(?백일홍?), ?허나 난 고개 꺾어 절하진 않겠노라// 목을 쳐, 목을 쳐라고 하늘을 보겠노라?(?보리?), ?오직 나 혼자/ 메마른 검불처럼/ 선 채로 젖지 못하여/ 검불처럼 젖지 못하여?(?비?) 등에서 보듯, 이달균의 시 도처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이 견딤과 저항은 비애의 냄새를 동반한다. 소멸과 죽음의 최후를 예감하는 어두운 잿빛의 그림자를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뒤꼭지에선 비애의 냄새가 난다
제국을 꿈꾸던 공룡들의 최후처럼
백악기 그 잿빛 소멸의 쓸쓸한 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공룡이 남긴 발자국을 헤매 놀지만
어른들은 선 채로 석유냄새를 맡곤 했다
한 차례 더운 바람이 전야처럼 몰려왔다
잠자리는 날개를 펴고 잠행을 시작한다
비릿한 폐허의 연기 자욱한 도심 하늘
공장의 불빛을 지나 화력발전소 굴뚝을 지나
-?잠자리ㆍ2? 전문
?제국을 꿈꾸던 공룡들의 최후처럼?이달균의 시에서는 ?백악기 그 잿빛 소멸의 쓸쓸한 냄새?가 난다. 시인은 이 비애를 안은 채 ?비릿한 폐허의 연기 자욱한 도심 하늘?을 ?날개를 펴고 잠행을 시작?하는?잠자리?가 된다. ?고단한 비행(飛行)의 행로(行路) 여기서 마감하노니/ 체념처럼 네 죽음은 투명하고 아름답다?(?잠자리ㆍ1?)에 나타난 이 ?잠자리 비행은?은, 걸어서 죽음에 도달하는?낙타의 길?과 상통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가 시인은 소멸의 운명에 맞서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는 결단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의 흐름에 비수를 던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세 번째 길인 ?순교의 길?이다.
타다 만 한 줌의 재
허무의 가슴에
던지는 붉은 비수
결행의
짧은 한 순간
비명 같은 흔들림
운명처럼 내던져져
점화된 한 점 불씨
옷깃에서 커튼으로
찬란한 불기둥의
완벽한
사랑의 연소
오, 탐미의 동반자살
-?생명을 위한 연가ㆍ12-점화? 부분
시인의 ?사랑?은 ?허공에 흩어지는/ 달콤한/ 입맞춤의 여운?처럼 ?간결한 최후?를 맞이한다. ?점화된 한 점 불씨?는 ?타다 만 한 줌의 재?를 남긴다. 이때 점화는 곧 죽음이 된다. 여기서 ?결행의/ 짧은 한 순간? ?허무의 가슴에/ 던지는 붉은 비수?는 자신을 겨냥하는 동시에 세상을 겨낭하는 것이다. ?완벽한/ 사랑의 연소?로써 ?탐미의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이달균의 시에서 자기 살해는 세계에 대한 살해와 겹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1)
차라리 빛나는 수의를 걸치고
장엄한 노래에 묻혀 뜬눈으로 죽어주마
동강난 헌 칼처럼 쓰러져 뒹굴어도
뼈마디 마디마디 꺾여 울진 않겠노라
한 마리 준마와 함께 서서 잠들 내 영혼
-?순장(殉葬)? 부분
(2)
나는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주머니 속에 든 표창을 꺼내어
세상의 눈들을 향해 힘껏 던져버렸어
-?생명을 위한 연가ㆍ11-부화? 부분
(1)의 ?뜬눈으로 죽?는 ?순교?의 결단은 소멸과 죽음의 운명에 맞서는 가장 장엄한 최후를 보여준다. ?쓰러져 뒹굴어도? ?꺾여 울진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는 ?서서 잠들 내 영혼?에서 그 대표적인 표현을 얻는다. ?뜬 눈의 죽음?과 ?서서 잠들 영혼?은 ?그 빛을 이토록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하늘이 스스로 저물어 어두워지는 것이다?(?관계?),?어둠을 낳기 위해 태양을 지우는/ 죽음을/ 죽음답게 하는/ 배꼽의 힘이여?(?밤의 배꼽?) 등에서 보듯, 이달균의 시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죽음의 결단이 된다. 그리고 ?제대로 칼맛을 본 천재는 요절한다?(?오윤?), ?손으로 제 눈을 찔러 실명의 길을 간다?(?최북?), ?칼별에 찔려/ 최후를 맞고 싶다?(?참회?) 등에 나타나는 ?비수?의 이미지는 (2)에서 보듯 자결의 의미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이달균의 시는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소멸과 죽음의 운명에 처한 과거와 전통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추억?과 ?죽음?의 길을 걷는 순교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시는 ?아득히 이름을 버린 사내들의 뒷모습?(?생명을 위한 연가ㆍ14-두문동?)처럼 퇴락한 비애의 냄새를 동반하지만, ?메마른 추억의 부름켜?와 ?허약한 체념으로부터? ?작별하?(?생명을 위한 연가ㆍ13-시를찾아서?)고 ?걸어서 죽음에 닿?는?낙타의 길(?낙타?)과 ?부서져 이루는 사랑법?의 ?찬란한 멸망?(?생명을 위한 연가ㆍ9-난파?)을 선택한다. 소멸의 운명을 소멸의 시적 미학으로 맞서는 이달균의 ?꽃다운 절망의 창법?은 다음의 시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돌아가리 이승의 생명줄 끊어버리고
당신의 따뜻한 자궁을 걸어서
소멸의 한낱 미립자로 돌아가고 싶어라
생성 이전의 바다는 폐허인가 절정이가
잉태의 꿈 끝끝내 못 이룬 닮은꼴들의
꽃다운 절망의 창법 나는 듣게 되리니
사랑이여 태동보다 아름다운 소멸이여
오늘은 아득히 자궁 속을 걸어가서
무정란(無精卵) 씨방의 노래 귀대고 들어보리라
-?생명을 위한 연가ㆍ10-자궁 속으로? 전문
스스로 ?이승의 생명줄 끊어버리고??한낱 미립자로 돌아가고 싶?은 소멸의 욕망은, 자궁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생성 이전의 바다에 닿으려는 시도가 된다. ?태동보다 아름다운 소멸?을 노래하는 이달균의 소멸의 미학은, 죽음의 운명을 죽음으로 맞서려는 대결의 미학이다. 따라서 시인이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은 소멸을 견디고 넘어서는 역설의 힘을 낳는다. 소멸의 미학이 지닌 이러한 역설의 힘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표현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쓰네 손가락을 구부려
떠나는 노래들을 부르고 불러모아
저무는 가내공업 같은 내 영혼의 한줄 시
-?저무는 가내공업 같은 내 영혼의 한 줄 시?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