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사량도 바다를 두드리다.-이 달 균
백건우, 사량도 바다를 두드리다.
통영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섬이 아름다운 것은 놀빛에 취한 사람이 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요람에서부터 음악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고깃배가 떠나고 돌아올 때도 육지로 띄워 보낸 짭조름한 편지지에도 파도의 선율은 묻어납니다.
오늘 그 바람에 귀 기울여 봅니다. 한 낯익은 노신사가 찾아옵니다. 배 위엔 한 대의 피아노가 놓였습니다.
건반은 코발트빛 사량도를 노래합니다. 칠현산을 감아 돌다가 맞은 편 옥녀봉에 깃들기도 합니다.
유월의 밤은 깊어가고 우리들 사랑도 깊어갑니다.
백건우, 그가 섬마을의 여름을 잠 못 들게 합니다.
---이달균(시인)
백건우, 그의 프로필엔 서울 출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출생지는 부산이다.
그래서인지 “바다를 보면 고향을 찾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통영 사량도에서 섬마을 콘서트를 열었다. 클래식을 몰라도 한 세상 잘 살던 섬사람 곁으로 '음악 나눔'을 위해 찾아온 것이다.
어쩌면 그도 정이 그리웠을 것이다. 2011년 욕지도 콘서트 때도 한 할머니가 내온 고구마 한 보시기를 왕의 밥상처럼 맛나게 먹었다고 하니 긴 타국생활 속에서 고국의 맛과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웠을 터이다.
저녁 7시 30분, 저녁놀은 어둠에 잠긴다. 뱃고동 소리며 바람은 잦아드는데 아직 사람소리는 왁자지껄하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맞춰둔 자리를 찾는 등 정리는 아직 되지 않았다.
이윽고 검은 차이나차림의 희끗희끗한 머리칼 백건우, 그가 걸어나온다. 박수가 끊이지 않고,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앞에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곤 청중을 향해 인사를 한다.
그제서야 돌아보니 사량도에 이만큼 많은 이들이 모인 적이 있었던가 싶다. 하긴 가오치에서 출발하는 배에 다 오르지 못하고 돌아간 이들도 많았다고 하니 짐작이 간다.
순간 섬은 고요했다. 그 적막을 깬 것은 피아노의 첫 음률이었다. 조금씩 정화와 평화를 실감하다가 어느 순간엔 절정을 맞는다. 클래식을 알든 모르든 세계를 떠돌던 한 거장과 섬마을 사람들은 마음이 맞닿는다. 어느 곳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어느새 백건우와 청중들이, 선율과 저녁바람이, 무대 위에 위용을 드러낸 검정 피아노와 어둠이... 그렇게 하나 되는 광경은 감동 그 자체였다.
베토벤의 비창, 중간쯤 낯익은 선율이 흐르자 일순 일렁이던 불빛도 정지된다.
준비한 3곡의 연주를 마치고 그는 자리로 돌아갔다. 박수와 연호가 계속되었지만 사회자의 오늘은 이만 하자는 멘트로 아쉬움을 달랜다.
뒤풀이 자리에서 시장님께서 준비한 통영시보의 판넬을 건네자 활짝 웃었다. 아내 윤정희씨는 배우답게 “이거 우리 주는 겁니꺼? 옴마야 좋아라!”하며 경상도 말로 화답해준다. “이 그림은 시장님이 주시지만 글을 내가 썼소.”하니 정겹게 어깨를 감싸준다.
그날 사량도는 사랑도였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었다. 한 노신가 그려낸 사랑의 물결이 우리에게 몇 해의 시간을 되돌려 주었다.
(글 - 이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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