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문학 여행

이달균 중앙시조대상수상-<중앙일보 2012>가사-수상소감, 작품, 심사평

이달균 2012. 12. 21. 12:02

2012 중앙시조대상

 

국내 최고 권위의 시조문학상인 ‘2012 중앙시조대상’ 수상자가 결정됐다. 올해로 31회를 맞는 중앙시조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이달균씨의 ‘늙은 사자’가 선정됐다. 신인상 수상작으로는 정혜숙씨의 ‘풍경, 적막한’이 뽑혔다. 대상은 시집을 한 권 이상 펴냈고 등단 15년 이상인 시조시인, 신인상은 시조를 10편 이상 발표한 등단 5년 이상 10년 미만의 시조시인 가운데 선정한다.

그들이 지난 1년간(2011년 12월∼2012년 11월) 문예지 등 각종 지면에 발표된 신작을 심사했다. 예심은 시인 김세진·선안영씨가, 본심은 시인 박기섭·정수자씨와 문학평론가 유성호씨가 맡았다. 한편, 제23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은 김태형씨의 ‘바람의 각도’가 차지했다. 올 1월부터 11월까지 매달 실시한 중앙시조백일장 입상자들의 새 작품을 받아 심사했다. 일종의 연말장원 성격이다.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해당하며, 수상자는 등단 시인이 된다. 시상식은 26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순화동 215번지 리더스나인(02-6272-3690)에서 열린다.

 

사자는 죽어가며 초원을 살찌운다, 그게 세상 이치다

 

대상

 

늙은 사자

 

죽음 곁에 몸을 누이고 주위를 돌아본다

 

평원은 한 마리 야수를 키웠지만

 

먼 하늘 마른번개처럼 눈빛은 덧없다

 

어깨를 짓누르던 제왕을 버리고 나니

 

노여운 생애가 한낮의 꿈만 같다

 

갈기에 나비가 노는 이 평화의 낯설음

 

태양의 주위를 도는 독수리 한 마리

 

이제 나를 드릴 고귀한 시간이 왔다

 

짓무른 발톱 사이로 벌써 개미가 찾아왔다

 

◆약력=1957년 경남 함안 출생. 87년 시집 『남해행』을 출간하며 문단활동 시작. 95년 ‘시조시학’으로 등단. 2003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수상. 시집 『문자의 파편』『장롱의 말』등.

 

 

 

대상 이달균 시인

 

 

 

이달균(55) 시인은 끊임없는 실험을 해왔다. 자유시에서 출발해 시조로 발을 옮겼다.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에서는 해학과 풍자, 서사로 시를 풀어가는 도전도 했다. 여전히 자유시를 쓰는 것도 그런 초발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의 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지역과 저잣거리다. 올해 중앙시조대상 대상 수상작인 ‘늙은 사자’도 그렇다. 지역은 ‘지금 이곳’에 대한 관심이고, 저잣거리는 희로애락이 담긴 삶의 현장이다.

 “초원은 동물들의 저잣거리에요. 시의 영혼이 살아 있는 곳이죠. 그 공간에서 자연의 소멸과 생성에 관해 생각해 본 것이죠.”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사자를 통해 공포와 평화의 시간을 같이 생각해봤어요. 사자는 힘을 잃어가고 쓸쓸해지지만 그것이 초원의 평화를 상징하기도 하죠. 나비 한 마리가 갈기에 와 앉는 평화요. 사자는 죽어가면서 초원을 살찌우는 거름도 되고, 윤회의 모습도 담았죠.”

 

이 시인이 꼽은 가장 대표적 시제(詩題)는 그가 오래 살았던 마산이다.

 “마산은 바다에 면한 작은 도시였는데 갑자기 인구가 늘면서 주택가와 학교, 환락가가 공존하게 됐어요. 그 속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이야기가 나를 지배했죠. 산업사회가 저무는 모습, 물질문명에 가려진 도시 문명을 시조로 형상화하고 싶어요.”

 이런 모습을 그려내는 데 시조는 적절한 장르다.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에요.

말 그대로 시대의 노래인 셈인데, 리얼리티가 생명이죠. 현대인의 고통과 좌절을 담아야 시조도 생명력을 얻을 수 있어요.”

 시조의 가능성을 점치며 그는 “현대인이 짧은 글을 선호하는 만큼 시조는 미래에 가까운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시조가 시의 본질에 다가서 있는 장르라는 자부심도 내비쳤다.

 “시조는 일탈하려는 원심력과 그를 형식 속에 제어하고 축약하려는 구심력이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죠. 3장 6구의 제어 장치 속에 운율도 살아 있고 시가 지나치게 산문화하는 것도 막아주죠. 경계 위에서 누리는 언어유희에요. 시의 전형에 맞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구요.”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2012 중앙시조대상 대상을 받은 이달균 시인.

9년 전 신인상을 받은 데 이어 한국 시조단의 최고 영예를 안았다.

 

 

 

죽음을 향한 걸음 선명한 감각으로 묘사

 

시조대상 신인상 심사평

 

제31회 중앙시조대상에는 모두 11명의 시인이 선고위원의 손을 거쳐 본심에 부쳐졌다.

등단 15년을 훌쩍 넘긴 우리 시조단의 중견 혹은 중진들인지라, 작품적 완결성과 미적 품격에서 어느 해보다 미더운 성취를 보여주었다. 심사위원들은 박명숙·박권숙·이달균 시인을 각별하게 주목하고 그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어나갔다.

 박명숙 시인의 단단한 심미적 표상과 박권숙 시인의 속 깊은 진정성의 시 세계에 후한 점수가 매겨졌지만, 심사위원들은 결국 감각의 새로움을 모색한 이달균 시인의 ‘늙은 사자’를 수상작으로 뽑게 됐다. 이 시편은 ‘사자’로 비유되는 야성의 한 생이 존재론적 소실점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가는 과정을 선명하고 구체적인 감각으로 묘사해낸 점이 높이 평가됐다. 이달균 특유의 호활한 어법과 이미지가 잘 살아 있는 작품이었다.

 신인상 부문은 각축이 심했는데, 오랜 토의 끝에 정혜숙 시인의 ‘풍경, 적막한’을 골랐다. 그의 시편은 밀도 있는 시상 전개와 투명한 필법이 눈에 띄었다.

수상작은 밤하늘의 달과 별, 그리고 지상의 꽃이 이루는 적막한 풍경을 ‘운필/문장/편지/음독’ 등 ‘쓰기/읽기’ 표상으로 비유하면서, 그 유장한 흐름을 감각적으로 포착했다. 시인의 남다른 능력을 보여줬다. 정 시인이 올해에 쓴 다른 시편도 수상작에 버금가는 성취를 보여주었다.

대상과 신인상 수상자의 정진을 마음 모아 부탁드린다.

◆심사위원=박기섭·유성호·정수자(대표집필 유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