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리문학관 주최 달빛낭송회 초청
<통영바람새에서 퍼옴>
평사리문학관 주최 달빛낭송회
평사리문학관이 주최하는
<경남대표서정시인 6인 초청 달빛 낭송회>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하동 평사리문학관에서는 저명 문인을 초청하여 달빛 낭송회를 연다.
올 여름 6월 30일엔 경남대표서정시인 6인을 초청하여 달빛낭송회를 개최한다.
초청시인은 김일태, 김혜연, 이달균, 이상옥, 이월춘, 정이경 시인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시의 전령사 역할을 해왔고, 경남문학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이들은 공히 57년 동년배로서 동시대의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왔고, 우정 또한 남다른 데가 있어 문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자선대표시 7편씩을 발표한다.
박경리 선생과 소설‘토지’의 혼이 서려 있는 평사리 들녘을 비추는 달빛을 맞으며 독자 여러분과 함께 시의 향연을 펼치고자 한다. 많은 이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
일시: 2012년 6월 30일(토) 저녁 7시, 참관 무료
이달균 대표시 7편
평사리행 국도에서
살아있는 것들은 죄다 반짝인다
재첩을 줍는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분주한 한 떼의 송사리들처럼
강의 비늘은 살아서 반짝인다
강물은 늘 그 자리에 있어 왔지만
오늘은 내 여기 있다 여기 있다 손을 흔든다
물끄러미 가을 햇살들이 뒤돌아보는 평사리행 국도
나는 돌아갈 집을 잊기로 했다
눈 떠 있는 깨진 사발의 영혼처럼
나도 함께 반짝이며 어울릴 순 없을까
사납게 사라지는 버스, 두껍고 짙푸른 잎새
살아서 빛내는 오후는 아름답다
재첩이 여무는 날에 나란히 배들이 익어가듯이
아무 것도 혼자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왜 살아있는 것들은
내 여기 있다 외치며 해종일 반짝이는가
존재의 고단함 역시 산자의 몫이 아닌가
외로워서 반짝이고 싶은 나를 거기 세워두고
황혼 속에 파묻힌 우리들의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누군가의 세상 속으로 버려져 가고 싶다
세상 밖에서 별똥별이 하나 버려진다.
그대가 버려지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버려지는 것들의 덜미는 아름답다
그냥 버려진 채 아무 것도 버릴 수 없는
빈 가슴으로 버려진 서로의 가슴을
데우고 녹이는 눈물이 있을 뿐
버려진 싯귀처럼 누가 나를 버려다오
내 일찍이 슬픔을 버리고
증오의 반짝이는 칼날도 죄다 버리고
망가진 쓰레기통마저 버리고 버렸어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하늘이 기어이 별똥별을 버리듯이
누가 나를 사정없이 버려다오
그리하여 저 창백한 별똥별이
세상 안으로 버려지듯이
나도 누군가의 세상 속으로 버려져 가고 싶다
내 오래된 기억의 집
-이월춘에게
그때 내가 있었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도원 같은 집 나는 내게서 너무 멀리 떠나왔네 처음 그곳에서 나는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너무 낯설어서 마르고 까칠해져서 외면하고 돌아서 버리지나 않을까 담쟁이 넝쿨 가득한 기억의 집이여 그때 내 무엇을 열망하고 믿었기에 오래 된 수도원 같은 집을 가졌던가
걸음이 둔하다 애인의 습관처럼 익숙해진 관념들을 잘라내고 돌아가려 한다 회귀본능이란 낡은 언어를 쓰지 말아다오 누군들 떠나온 언덕 위의 한 그루 소나무가 그립지 않으랴 그때 내가 있었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도원 같은 집 지금 나는 내게로 돌아가려 하네
아버지
가을이 깊어갈수록
아버지의 해소병도 깊어갔다
나는 그 가을과 상관없이 키가 자랐고
병문안 오는 사람들을 숨어보면서
하얀 알약처럼 한 철을 보냈다
아버지의 밭은기침 소리가
꽃밭에 꽂힐 때마다
새들은 눈부신 갈대꽃이 되기도 하였다
가을의 끝에서
한 쪽 폐를 도려낸 아버지가 오셨다
아버지는 하얗게 웃고 계셨다
어머니는 남아 있는 폐를 위해
기도 하셨지만,
나는 버려진 폐를 위해
휘파람을 불었다
세상의 오래 묻은 때들을 잘라내고
바람에 뼈를 말리시던 아버지
죽음도 그렇게 불현듯 올 것인가
그 가을의 햇살은 사금파리들을
잘게 부수어 내렸고
나는 신열 속에서 한 철을 보냈다
눈을 밟으며
한밤에 내리는 눈은 사랑이다.
기적은 지나버리고 그래도 눈 내리는 레일을 따라
지상(地上)의 못내 잠들지 못한 심장의 고동을 들으며
그중 낯익은 눈을 골라 밟으며
닻 내린 민물어구의 적막을 생각한다. 아아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눈발이여. 메마른 사람의
폐부를 움트게 하고 황량한 얼음 속에 정박한
새들의 비상을 예언하여라. 눈이여, 이 고장에 돌아와
묻히는 눈이여. 스스로 수억의 허무(虛無)를 떨쳐버리고
여기 아리따운 사랑하나를 마련하나니
나의 현실을 장식하였던 회한(悔恨)과 욕망을 순결히 태우고
태워서 얻은 애오라지 인종(忍從)의 재를 밟으며
밟히면서 사는 우리네 얼굴 같은 레일 위로
지금 누구의 입술이 내려와 입 맞추는지
그들의 영혼을 밟으며 내가 가고 또 오랜 기억 속에서
나의 등을 따사로이 밟아줄 눈을 밟으며
지금 내가 가는데.
근조화(謹弔花)•1
꽃들이 영안실에 부동자세로 서있다
목발에 의지한 덧없고 창백한 도열
언제나 벽을 등진 채 배경이 되고 만다
관계를 맺지 못한 사자(死者)와의 시든 동행
한 번도 저를 위해 피고지지 못했던
목 잘린 꽃들의 장례, 순장(旬葬)은 진행형이다
발효
-고초산방에서
나이든 바람들은 옹기를 넘나든다
네모난 소금들이 절어 눈물이 되는
곰삭는 일의 참맛을 익히 알기 때문이지
체념에 길들기란 쉬운 일이 아냐
햇살에 씻겨져 빛나던 감들이
곰팡이 뒤집어쓰고 곶감 되는 모양을 보아
장맛 된장맛이 뉘 집 아낙 손맛이라지만
뒷각담을 들며나는 바람이며 세월이며
시름도 삭여야 하는 곡절맛이 아니더냐
때깔 고운 푸른 잎만이 다 제 맛은 아냐
어찌 젊은 놈이 묵은 장맛을 알까부냐고
껄껄껄 눙치고 웃는 여유가 바로 발효인 게야
이달균 약력
이달균 시인은 1957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여
1987년 무크 『지평』과 시집 『남해행』간행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고
마산문협 회장, 경남문협 부회장, 계간 『시와 생명』편집인을 역임하였다.
시집으로 『문자의 파편』, 『말뚝이 가라사대』, 『장롱의 말』,
『북행열차를 타고』, 『남해행』이 있으며
중앙시조대상신인상, 경남문학상, 마산시문화상, 경남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