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문학 여행

통영 - 상처입은 용들의 도시 4.

이달균 2011. 10. 10. 22:11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어장주)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금)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과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난)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眀井)골에 산다는데

 명정(眀井)골은 산을 넘어 동백(冬栢)나무 푸르른 감로(甘露) 같은 물이 솟는 명정(眀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깃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 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冬栢)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백석 <통영(統營)2.> 전문


 마산에서 배를 타고 한나절을 걸려 청년은 통영에 왔다. 하루를 통영에서 묵고 오늘은 충렬사 계단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그이’ 난(蘭)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 난의 집 명정골을 말로만 들었고, 한 번도 가보지도 않았다. 그 마을은 동백이 푸르고 감로수가 솟는 샘이 있고, 처녀들은 샘가에서 빨래며 물도 길을 것이다.

 

그 청년은 후학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시인이란 칭호를 얻고 있는 시인 백석이다. 시인은 그다지 낯익지 않는 통영을 매우 섬세하면서도 정겹게 묘사한다. 물맛도 짭짤하고 바람맛도 짭짤한 새벽 항구를 들어오는 만선의 북소리며, 밤새 떠나고 돌아오는 고깃배들의 소란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다시 박경리의 소설<김약국의 딸들>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미륵도에는 봉화를 올리는 고봉 용화산이 있고 그 아래에 봉수골. 더 내려오면 통영 항구가 바라보이는 해명나루가 있다. 바다에 가서 죽은 남편을 뒤 따라 순사한 여인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용화산을 넘어서면 첫개와 그밖의 소소한 어촌이 있고, 넓은 바다를 한눈으로 굽어보는데, 대충 큰 섬만 추려도 사랑섬, 추도, 두미도, 욕지섬, 영화도 등 많은 섬들이 있다. 되돌아 와서, 통영 육지도 막바지인 한실이라는 마을에서 보는 판데는 좁다란 수로다. 현재는 여수로 가는 윤선의 항로가 되어 있고 해저터널이 가설되어 있다. 왜정시에는 해저터널을 다이꼬보리(太閣이 팠다는 뜻의 왜말. 太閣은 豊臣秀吉의 존칭)라 불렀다. 역사상으로 풍신수길이 조선까지 출진한 일이 없었는데 일본인들까지 해저터널을 다이꼬보리라 불렀으니 우습다

지금은 걸어서만 갈 수 있는 터널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탓인지 왠지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1932년에 동양에선 최초로 만들어진 바다 밑 터널이다. 양쪽 바다를 막고 바다 밑을 파서 길이 461m의 콘크리트 터널을 만든 것으로 5년 6개월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터널입구에 현판처럼 쓰여있는 ‘龍門達陽’이란 글은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도로 입구의 문'이라는 뜻으로 이는 "용문(중국고사에 나오는 물살이 센 여울목으로 잉어가 여기를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된다고 함)을 거쳐 산양(山陽)에 통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글씨는 해저터널 건립당시의 통영군수인 야마구찌가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