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남천강에서 사자평까지4.
종남산에는 사림의 바람이 없다
밀양땅 부북면 제대리 추원재
선생의 일생이 한숨으로 흘렀을 작은 정원
팔 구월 늦은 땡볕에 절은 잡풀들
눈먼 땅강아지 한 마리 황급히 몸을 숨긴다
선생이 꼿꼿이 앉아 일필하던 대청마루
끝끝내 지워지지 않을 무오년 그늘 내리고
숙부 수양에게 영월 원한귀가 된 단종 임금
중음신으로 우우우 떠돈다 삐걱이는 후원(後園) 옆문 밖
대숲을 빠져 나온 바람소리 음산하다
소생은 선생을 부관참시케 한 김일손의 19세손
아직도 지천에는 훈구파들의 날선 칼날들 뿐
부끄러운 시대를 엎디어 고한다
관 뚜껑 덮기 전까지 책선하라시던 선생의
그 말씀 아직도 유효하신가
정치장졸들의 가렴주구는 하늘에 사무치고
호재가들의 재물은 이미 곳간을 차고 넘쳤다
오렌지족 야타족들이 자지러드는 장안의 밤
세리들의 손 또한 더러워진 지 오래다
효재충신, 온 백성 그 소업(所業)에 안착한다는
선생이여 그날은 언제인가
터럭만큼의 염치 하나 보이지 않는 거짓 문민의
그늘이 짙어 끝이 아득함을 선생은 아시는가
당신의 추원재 늘어진 잡풀이나 밟고 서서
부끄러움에 땅강아지처럼
재재바르게 숨을 곳이나 찾는 소생의 비겁함도
-김태수 「김종직」전문
부북면 제대리 한골마을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생가 추원재追遠齎가 있고, 부북면 후사포리에는 예림서원(경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 79호)이 있다. 추원재는 선생(1431~1492)이 태어나 자라고 별세한 곳으로 밀양문학의 뿌리와 뼈대가 얼마나 실하고 꼿꼿한가를 금방 알게 해 준다. 안향으로부터 시작된 도학이 정몽주, 길재를 거쳐 강호 김숙자에게 이어지고, 점필재에 이르러 영남 사림파가 형성되어 사림파의 사종으로 추앙받게 된다.
김태수 시인은 80년대 초반 처음 만난 날부터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의 첫 시집 <북소리>는 혈기 왕성한 우리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를 생각하면 곧바로 부산 경남 젊은 시인회의 시절의 청년으로 돌아간다. 위 시처럼 정말 요즘엔 사림의 바람이 귀하다. 언로는 수없이 많아졌지만 목숨 걸고 대갈일성하는 사람도, 관 뚜껑을 덮기 전까지 책선하라던 선생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도 없다. 가을의 한낮은 덥다. 점필재 선생의 생가를 나오면서 느낀 갈증이 더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얼음골로 가야겠다. 남천강을 따라가다 긴늪숲을 만나면 오른편으로 꺾어져야 한다. 거기서 다시 표충사 가는 길과 헤어져 오른편으로 꺾이면 얼음골이다. 천연기념물 제224호이며 밀양군 산내면 남명리에 있다. 계곡을 따라 물이 흐르는 약9000평의 바윗돌 틈에, 삼복 한더위에는 얼음이 얼고 처서가 지나면 얼음이 녹는 이상기온 지대다.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엔 이곳이 중요하게 거론된다. 이 서늘한 계곡 동굴에서 스승 유의태는 제자 허준에게 자신의 반위 수술을 맡긴다. 무릎을 꿇고 스승이 내준 몸둥어리에 칼을 대었을 허준의 날선 기상이 감지되어 온다. 지금은 얼음이 녹아있다. 여느 골짜기와 다르지 않다.
이 천왕산 자락 산내면 송백마을은 작가 김춘복의 고향이다. 작가가 어린 시절 다녔던 산내초등학교는 밤이면 빨치산이 와서 기습하고, 낮에는 경찰이 득세하던 그런 곳이었다. 이곳 산맥을 가리켜 영남알프스라고 하는데 산내면은 그 초입에 해당되는 곳이다. 그는 낙향하여 생가를 헐어 심우당尋牛堂을 짓고 서재를 환원재還源齋라 이름 지었다. 환원재는 심우도尋牛圖 10도 중 제9도에 해당하는 반본환원返本還源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집 뒤엔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어 오랜 마을 내력을 말해준다.
그는 이곳을 무대로 소설 ‘쌈짓골’을 썼다. 쌈짓골은 70년대 초반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를 배경으로 물질보다는 순수한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주인공 팔기를 통해 농촌의 실상과 허상을 극명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잘못 접어든 길이었을까
큰 바위 돌산 칼길
칼길 위의 서늘한 목
배냇골 너머 사자평
사자평 너머 피안 가는 길
고비마다 재물 뿌리며 간다
한번은 손가락 발가락 자르고
한번은 팔다리 몸통 묻고
입술 주고 코 주고 귀 잘라
날아가는 새에게 골까지 열어주며
아득히 눈만 남아 당도한
첩첩한 외로움
먼저와 붙박힌 눈들이
일제히 일몰을 보네
수백 년을 보아도 나날이 새롭다고
자리를 뜰 줄 모르는 눈 옆에
내 눈도 따라 붙박힌다
훠이훠이 무거운 흔들어 증발하고 난 뒤의
이 고요함.
- 최영철「사자평」전문
밀양 사자평을 찾아온 최영철 시인은 ‘아득히 눈만 남아 당도한/ 첩첩한 외로움’ 속에서 일몰을 본다. 배냇골 너머엔 사자평, 사자평 너머엔 피안이 있다고 먼 길 돌아왔다. 밀양 사자평을 찾아온 최영철 시인은 ‘아득히 눈만 남아 당도한/ 첩첩한 외로움’ 속에서 일몰을 본다. 시인은 배냇골 너머 사자평, 사자평에 오면 피안이 있다고 먼 길 돌아왔다. 이 가을 억새 만발한 사자평에서 도심의 번뇌를 씻을 수 있을까. 무엇을 버리고 또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마을 아이들이 다니던 고사리 분교는 이제 문을 닫았다. 아이들 소리는커녕 어른 만나기도 쉽지 않다. 몇 채의 집들이 비어있다. 바람에 빈집이 조금씩 삭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예전엔 이곳엔 보신용으로 흑염소 먹으러 오던 이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뜸하다고 한다.
재약산 아래 표충사가 있다. 밀양알프스가 품은 표충사와 석남사, 운문사는 이 글에서 담기엔 너무 큰 사찰이다. 허기진 마음에 얼른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돌아 나왔다. 이른 낙엽들이 부서져 발길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