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균의 문학 여행

밀양-남천강에서 사자평까지3.

이달균 2011. 9. 5. 13:46

 다시 읍으로 나왔다. 둑길을 걸으면서 햇살에 비늘을 일렁이는 물살을 바라본다. 아직도 이 물속에 은어가, 뻥구리, 텡가리, 노지름쟁이, 꺽다구가 있을까.


     먼저 떠오른다. 그 맑고 푸르던 남천강南川江. 사람은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지만, 나는 아련한 꿈속에서 또한 애틋한 그리움 속에서 수없이 그때의 그 강물에 내 발을 담궜다. 봄눈 녹아 흐르던 찬 여울살에, 모랫벌을 얕고 넓게 지나느라 뜨거워져 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은어떼를

    이따금씩 혼절시키던 여름의 느린목에,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까닭 없이 슬퍼지던 가을의 교각橋脚 곁 그 맑은 웅덩이에, 이미 유리 같은 살얼음이 끼기 시작하던 그 발저린 겨울물굽이에 세월은 구름처럼 허망히 흘러가버렸으나 내 발을 감싸는 물살은 언제나 예전의 그 물살이었다.   

        - 이문열 대하소설「변경」제1부 제10장 중에서


 대하소설「변경」은 우리시대의 작가 이문열이 ‘내가 산 시대의 거대한 벽화’를 그리겠다고 선언하고, ‘내 문학의 가장 중요한 한 시기를 걸겠다.’고까지 공언하면서 쓴 야심작이다. 3부작 중 제1부는 6․25직후부터 5․16에 이르는 격동의 세월을 그리고 있다.

  밀양은 작품의 주인공이 유년을 살았던 곳으로 설정되는데 작가는 이 회상 부분에서 매우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남천강의 기억을 묘사해내고 있다. 그의 청년 이후의 밀양에 대한 기억이 어떠했든 간에 그가 그려낸 당시 50년대의 밀양은 맑고도 아름답다.


본포나루에서 달려와

가슴 활짝 열고

와락 안기지 않으면

그게 무슨 강이랴.


발가락으로

엉덩이로

끝없는 비밀을 밀어내

이짝 저짝으로

황금방석을 펼치지 않으면

어찌 강이라 부르랴.


비틀고 굽이치고 휘어져서

곡강 언덕을 쥐어박고

맞은편 강둑 허벅지에 닿지 않으면

그게 어찌 산 생명이랴.


그냥 솔직해지자

자 대고 줄 그어

강을 파먹고 시멘트 붓고

돈 좀 만지겠다고

땅값 좀 주무르겠다고.


다 파먹은 뒤에

다 빼먹은 다음

운하든 하수구든

죽은 자식 뭣 만지는 건

내 알 바 아니라고

딱 깨놓자.


펑퍼짐한 볼기짝

뒷기미에서 밀양강 만나

마침내 삼랑진에 와서

굵은 허리 비틀며 꿈틀대노니

저 숨소리 없으면

강은 무슨 얼어죽을 강이냐.


  -이응인「굽이치지 않으면 무슨 강이랴-밀양 곡강에서」전문


  밀양엔 강이 있고 산이 있고 사람이 있다. 강을 끼고 마을과 들이 생겨나고 그 강은 아득히 흘러서 남해로 간다. 물길 휘돌다 여울목 지나면 삼각지를 만들고 굽이굽이 물너울 흔적을 만든 모래톱 위에 백로나 왜가리도 앉는다. 햇살 받으며 훠이훠이 들판 휘감고 가는 물길, 그래 “곡강 언덕을 쥐어박고/맞은편 강둑 허벅지에 닿지 않으면/그게 어찌 산 생명이랴.” 이 시는 강에 바치는 연서이면서 자연에 반역하는 인간욕망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