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 문화재처럼 찬연한 문인들의 태묘-3
이제는 창녕으로 곧장 가도 되겠다.
창녕읍 교상리의 만옥정 공원. 이곳에는「진흥왕척경비(국보 제33호)」가 있다.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었는데 소풍갔던 학생에게 발견되어 1924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다. 한반도에 전하는 비석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창녕에는 이 비 말고도 술정리 동삼층석탑(국보 제34호)과 보물 등 진귀한 유물들이 여럿 있다.
창녕 출신 문인들은 유난히 제 고장을 소재로 글을 많이 쓴다.
지난날 드높던 석축石築 둘레
갈대만 길길이 자라
바람에 옛 이야기 전하고
아홉 샘 못 찾더라도
세 못이 여구如舊히 있지 않느뇨.
천년 묵은 이끼 푸르듯
창녕昌寧 조씨曺氏 그 전설傳說 품고 있지 않느뇨.
화왕산火旺山 고원高原의 휜 갈대
하늘빛 바람결에 오늘도 손 흔들며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와 의병장義兵將 성천희成天禧
장한 승전勝戰을 노래하누나.
오, 화왕산火旺山
구국救國의 성지聖地여
오, 화왕산火旺山
눈부신 갈대여.
하늘 받들어 창녕昌寧 땅 펼쳐두고
기도祈禱 드리듯 십 리 갈대밭도
화왕산봉火旺山峰 아래 한 마음으로 펼쳐져 있나니
- 성권영 장시「들판과 소」중에서
성권영 시인은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문학과 고향에 대해 지고지순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시인이 영탄에 찬 음성으로 노래했던 화왕산. 해발 757m의 산으로 가을이면 밀려서 올라야 할 만큼 등산객이 많다. 옛날 산천을 다니며 호연지기를 기르던 사람들은 이 산을 빼놓지 않았다 한다. 이 산 뒤쪽엔 창녕의 명찰인 관룡사가 있고 정상에 배바우와 창녕 조씨 득성비, 화왕산성이 있다.
그리고 산 정상의 넓은 평지와 비스듬히 경사진 56,000평의 억새밭은 청춘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시인은 억새를 갈대로 잘 못 그렸지만 과거 정상의 용지 근처엔 갈대도 많았다고 하니 그리 새겨읽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기실 화왕산은 억새 뿐 아니라 봄날의 진달래 군락지로도 유명하다.
시에 언급된 용지는 창녕 조씨 시조의 득성설화지다. 원래 9개의 못과 3개의 샘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못들은 거의 자취를 찾기 힘들고 3개의 샘 중 가운데 것인 용지를 창녕조씨 대종회에서 성지화 작업을 하였다. 비슷한 크기의 이 3개의 못은 선사시대 화산의 분화구로 추정되는데 가뭄에도 늘 물이 차 있다. 나는 화왕산을 신성한 산으로 여기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이 용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