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장도(粧刀) 장이 노인
장도(粧刀) 장이 노인
이 달 균
한 가지 일만으로 평생을 살긴 힘든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몇 가지의 일들을 함께 하지 않으면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의학의 발달로 인해 평균 수명이 길어져 나이에 맞는 직업을 택하다 보면 자연스레 여러 일들을 거치게 되는 현상도 있다. 이런 때일수록 한 가지 일만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지금이야 인간문화재니 기능장이니 해서 장인들도 어느 정도의 대접을 받기는 하지만, 썩 대접받지 못한 시절에 평생을 장인으로 보낸 사람은 흔치 않다. 한 노인이 생각난다. 거의 이십 년에 가까운 기억이다.
구덩살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억세게 박힌 손으로 섬세하고 정교한 장도를 만드는 노인을 만난 적이 있다. 공방이야 한 두어 평 남짓 했을까. 통째로 쓰러진 통나무와 몹시 어수선하고 어두컴컴한 공방에서 그는 불구녁이랑 화덕과 함께 흡사 오래된 하나의 연장처럼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공방을 지배하는 장인이 아니라 빛 바랜 그림 속에 잘 녹아있는 하나의 정물같은 것이었다.
그 주위에는 흰 빛깔의 얇은 판과 거기서 떼어낸 듯한 쇠부스러기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다른 벽 쪽에는 목장도(木粧刀)를 만드는 재료인 나무토막이 가득 쌓여 있었다. 또 방바닥에는 줄이니 조각도니 망치니 하는 자잘한 연장들이 널려 있었는데 그것을 그는 일일이 손으로 다 만들었다고 했다.
누가 곁에 있건 없건 그는 좁은 공방에서 쇳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고 때우는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 했다. 하잘 것 없어 뵈는 것들을 구부리고 때우고 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어떤 것들은 칼집으로, 또 어떤 것들은 칼자루로 조금씩 그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장도가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들어지는 모양은 한 사람이 나고 자라면서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되는 것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사람이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려면 마음 씀씀이나 생각이 옳고 곧아야 하듯이, 장도가 칼의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단단한 칼날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노인은 주물로 만든 일정한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굳혀 만드는 편리한 방법을 쓰지 않고, 재래식으로 칼날을 하나하나 익히고 두드려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가 칼 끝에 각별한 신경과 애정을 쏟는 것은 장도는 늘 사람 몸 가까이 놓고 쓰거나, 아니면 아녀자들의 품속에서 그녀들을 지켜주는 신성한 물건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장인의 영혼이 칼 끝에 스며 차가운 금속의 본질에다 따뜻한 영혼을 스미게 하려는 까닭이 아닐까 싶었다. 매질을 하고 다시 담금질을 하는 사이에 어느덧 날선 장도에 한 줄기 빛으로 흐르는 노인의 참뜻이 새겨지는 것이다.
그는 어둡고 답답한 공방에서 종일 쭈그려 앉아 일하면서도 늘 자신이 만든 칼이 제대로 가야할 곳으로 가서 본래의 뜻으로 사용되길 원했었다. 하지만 공방을 벗어나면 장도들은 그의 바램과는 달리 얼뜨기 수집가나 돈 씀씀이가 헤픈 사람들의 한낱 애장품으로밖에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다소 시대와는 맞지 않는 말이지만, 귀기울여 들으면 자신의 분신에 대한 애정이 사뭇 느껴진다. 본디 장도란 아녀자들이 정조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갖는 무기이며, 남정네들에겐 축문이나 지방을 자르거나 짚신을 삼고 머리를 자를 때 쓰여진 생활에 요긴한 물건이었음을 생각할 때, 아파트 거실 벽면에 장식된 오색 색실을 단 자웅 한 쌍의 장도는 왠지 너무 화려하고 거만해 보인다는 얘기였다.
그 비좁은 공방에서 삼십 년을 넘게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가던 노인을 생각해 보노라면, 장도 하나의 의미는 우리에게 매우 큰 교훈을 안겨주는 것이다.
칼은 곧 양심이며 마음을 베어내는 거울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그 장인이 만든 장도 한 자루씩을 가질 수가 있을까. 무딘 마음을 깎아내고 욕심의 찌꺼기를 도려내는 저 칼날의 영혼을 우리는 가질 수가 있을까. 애초에 이 한가지 물음만으로도 나는 외길을 살다 간 노인의 삶을 기억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쉬지 않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그리운 시대. 작은 역할, 작은 단역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 그리울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