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의 흙먼지와 시를 위하여 -이월춘
마산의 흙먼지와 시를 위하여
이 월 춘(시인)
시민극장 앞이었어
10.18 마산항쟁 전야에도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우린 무슨 약속처럼 그곳에서 만났지
조조할인 입간판 앞에서
영화처럼 바람에 깃을 세우며 서 있던 사람들
포장마차의 불빛이 따스해지는 시각
극장을 돌아가는 골목에서 먼저 어둠이 오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와 닥터 지바고
그 빛나는 사내들의 화음도 들려오곤 했지
이제 극장은 없고
하릴없이 기다리던 시민들도 가고 없고
간판화가로 초년을 살았다는
문신화백도 가고 없는 마산의 겨울
내게는 아득하여라
썰물의 발자국들만 어지러운
시민극장이 있던 자리
-----이달균, 「시민극장이 있던 자리」 전문
하아, 우리들의 칠십년대여!
마산 불종거리와 부림시장통, 창동 거리를 거쳐 오동동 파출소여!
참 춥고 쓸쓸하고 외롭고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던 그때, 지금은 없어진 술집 ‘고모령’에서 이광석, 최운 선생이나 현재호, 허청륭 화백, 창동 백작 이선관 형님(왜 우리는 형이라고 불렀을까? 동년배인 오하룡 시인은 선생님이라 부르면서)을 비롯한 ‘우리’ 마산의 문화 예술인들의 냄새를 맡으며 늙어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말석에 앉아서 막걸리 한잔에도 넉넉해지던 시절이 눌재(訥齋,이달균의 호)와 나의 문학적 자산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걸핏하면 문을 닫았던 학교를 떠나 거제로 통영으로 쫓겨 다니고, 하릴없이 마산과 진해, 창원의 술집 골목을 전전하며 어깨를 걸고 고래고래 악을 쓰던 나날이며, 남성동 낡은 중국집 2층에서 짬뽕 국물에 무학소주를 들이키던 날들, 함안군 산인면 입곡못 언저리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보냈던 ‘살어리’ 동인 시절, 그 사람들 중 정이경, 정일근, 성선경, 배한봉, 권경인, 정완희 등은 살아남았는데 성창경 형을 비롯한 나머지 분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늙어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없이 열정 하나에 목숨을 걸었던 그 마음들이 누가 뭐래도 나는 그립다. 그 젊음의 눈매와 뒤통수까지 그립다.
이달균의 이번 다섯 번째 시집은 그런 그리움의 집적이다. 아니, 나는 그렇게 읽고 싶다.
예전 계간 진해에서 그의 세 번째 시집 『장롱의 말』(고요아침)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새삼 그때의 글 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이 시집의 시들이 『장롱의 말』에 실린 시들보다 묵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오늘도 한 사람을 등지고 왔습니다
슬픔을 나눠지라던 소명을 거역하고
냉정히 등만 보인 채 돌아온 내가 미워집니다
- 이달균, 「등(背)」 전문, 시집 『장롱의 말』42쪽
등을 뜻하는 한자 背는 긍정적 의미보다는 부정적 의미에 가깝다. 背信者(배신자)나 背恩忘德(배은망덕)이나 背叛(배반) 같은 어휘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손바닥에 못을 박고 하늘과 땅 사이에 몸을 누이신 예수님도 유다라는 배신자가 있었다. 사람살이에서 배신하거나 배신당하는 일은 다반사일 것이다. 그것은 삶의 곡절이 만들어낸 문화의 한 단면일 수도 있겠고, 팍팍한 세상의 뒷골목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義人(의인)이니 비겁자(卑怯者)니 하는 말들을 쓴다.
그러나 나는 그와 생의 동행자가 되고 싶다. 삶의 공통적 지향점을 향해 가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며, 고통과 눈물까지도 말없이 안아 들이는 그런 동행자가 되고 싶다.
하루에도 수없이 만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그야말로 복잡하기 그지없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고, 기분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으며,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보기도 싫은 사람도 있다. 오늘도 화자는 어느 누구와 등지고 돌아왔다. 화가 나서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 표현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그를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한 자신을 꾸짖는다. 누구나 공감하는 상황이요 누구나 이런 일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하략>-
그렇다. 벌써 이달균과 나는 우리 나이로 오십 다섯이다. 그렇다고 복고의 의미를 붙이진 마라. 자극적이고 순간적인 삶의 맛을 버리고 눅진하면서도 곡진한 사람살이의 참맛을 그리워하는 것이니까. 그것이 시인의 숙명이니까. 결국 이달균은 시적 대상과 대상 사이의 관계를 애정의 시선으로 살피고 나아가 사람살이의 모든 의미를 사랑으로 엮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번 시집에서 뽑은 「시민극장이 있던 자리」와 세 번째 시집 속「등(背)」은 생의 길목에서 만나는 애환과 지향, 그 공통점이 잘 묻어나고 있다. 한 마디로 역시 눈을 감아도 이달균 냄새가 충실한 글들임을 알 수 있다.
이형, 없어진 게 어디 ‘시민극장’뿐이며, 가신 분이 어디 문신 선생뿐이랴. 황선하 선생도, 이선관, 정규화, 최명학 형도 다 가셨다. 세월은 늘 거기 있는데 우리가 가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나. 무엇이나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날마다 깨달으며 하루가 간다.
팔십년대, 그 어수선한 시대의 골목을 지나 우리는 지천명을 넘어 이순을 향해 가고 있다. 아무 연고가 없던 우리가 이십대 초반에 만나 이렇게 함께 나이 들어 갈 수 있다는 게 나는 좋다. 이제는 서로 마음을 드러낼 필요도 없을 정도가 됐다. 말이 없어도, 좀 섭섭한 일이 있어도 서로의 가슴에 앉아있다 싶을 만큼 여유롭게 되었다. 언제나 눌재의 마음이 고맙다. 그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도 건강을 염려하며, 자식들의 취업과 결혼을 생각하는 세속의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 오랜 우정과 문학을 면면히 엮어가고 있으니 친구여,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신가.
이월춘
1986년 『지평』과 시집 『칠판지우개를 들고』로 등단
시집 『그늘의 힘』外
월하지역문학상 外 수상